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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약속
제목 : 약속을 따르는 자의 복
성경 : 창 30:25~43
찬송 : 546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41006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창 30: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창 30:26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창 30:27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창 30:28 또 이르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창 30:29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가축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창 30:30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창 30:31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창 30:32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창 30:33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창 30:34 라반이 이르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창 30:35 그 날에 그가 숫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양 중의 검은 것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창 30:36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 떼를 치니라
창 30:37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창 30:38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창 30:39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창 30:40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을 라반의 양과 서로 마주보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창 30:41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 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창 30:42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창 30:43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사람을 흔히 “사회적 존재”라고 합니다. 아무리 인간이 개인으로 존재해도 끊임없이 타인과 관계해야 함을 뜻합니다. 사회적 존재로 사는 것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남녀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과 각양각색의 생각이 모인 복잡계(complex system)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한 사회 속에서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 다수가 흉내 내거나 따라 하는 사람을 신조어로 ‘인플루언서’(influencer)라고 합니다. SNS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인플루언서가 입은 옷, 헤어스타일, 방문한 곳, 먹는 것, 취향, 가치 등을 따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곳에서 사진을 찍고, 같은 음식을 먹고 후기를 남기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 내용은 관심 있는 인플루언서의 새로운 정보를 공유하는 내용으로 채워지기 다반사입니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성도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하나님의 성도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선하시고 아름다운 영향력을 끼치는 인플루언서로 살아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어떤 대상들에게 영향력을 흘려 보내고 계십니까?
√배경 이해하기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아버지의 집을 떠날 때만 해도 외삼촌의 집이 안전한 도피처가 될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삶을 보면 ‘평안’(샬롬)을 기대했던 것(29:6)과는 달리 고난의 훈련소에 입소한 것처럼 보입니다. 야곱은 7년을 섬기고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려고 했지만, 라반은 레아를 아내로 줍니다. 결국 야곱은 라반을 7년 동안 더 섬기기로 하고 라헬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레아는 연이어 출산을 합니다. 그러자 시기가 난 라헬이 시녀를 통해서 아이를 얻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레아가 자기 시녀를 통해 아이를 얻으면서 출산 경쟁을 이어 갑니다. ‘보라 아들이다’(르우벤), ‘들으심’(시므온), ‘연합’(레위, ‘찬송함’(유다), ‘억울함을 푸심’(단), ‘경쟁함’(납달리), ‘복됨’(갓), ‘기쁨’(아셀), ‘값’(잇사갈), ‘거함’(스불론), ‘더함’(요셉)이라는 아들들의 이름 뜻만 보아도 여인들의 경쟁이 치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아들 열한 명을 낳고 딸 한 명을 낳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야곱의 꿈에 나타나셔서 평화와 안녕을 약속해 주신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하나님은 척박한 하란 땅에서 √‘어디로 가든지 지켜 주겠다.’(28:15)라는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이제 야곱은 √‘아버지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해 주겠다.’(28:21)라는 약속을 기대합니다. 라반을 떠나겠다는 야곱의 요청은 그와 함께 도우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귀환 통보와 품삯 흥정(25~28절)
야곱은 형 에서의 위협을 피해 하란으로 떠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라반과 지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말처럼 형의 화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27:44)만 지내면 될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어느새 20년이 지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창 31:38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야곱은 네 명의 아내와 그들을 통해 낳은 자녀들과 함께 가나안으로 돌아가고자 장인 라반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보내다’라는 말에는 ‘석방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창 30: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이것은 야곱이 라반과 맺은 종속적 관계에서 자유로운 신분으로 해방시켜 달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그러나 재리에 밝은 라반이 야곱의 요청을 순순히 들어줄리 만무합니다. 라반은 야곱 때문에 이전보다 더 부요하게 된 것을 인정합니다. 야곱으로 인해 가축 떼가 많아졌을 뿐 아니라, 라반의 아들들에게 가축을 맡긴다는 기록에서 가족 수도 늘어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두고 라반이 뭐라고 말합니까?
√창 30:27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여기서 ‘깨달았노니’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점을 쳐서 알았다’, ‘경험적으로 알다’, ‘열심히 관찰하다’라는 뜻입니다. 라반에게 혼합 신앙의 모습이 있기는 하지만, 가까이에서 야곱을 볼 때 그를 통해서 복을 주신 하나님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 라반의 집에 복을 부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가 받은 복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 그런 복을 주시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로 인해서 내가 속한 공동체나 조직이 잘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참 기쁜 일입니다. 이런 말은 그동안 기여한 것에 대한 보상과 격려가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원리와 법칙에 타협하지 않으면서 ‘잘되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약속을 붙잡고 각자가 가진 기회, 관계, 재능, 자원, 지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며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한 것을 활용해 이웃을 돕습니다. 이럴 때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성도의 삶에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품삯 제시와 속임수(29~36절)
야곱은 자기가 그동안 얼마나 성심성의껏 수고했고, 그 결과 라반이 얼마나 큰 이익을 얻었는지를 지적합니다. 자기 과시 같기도 하고 엄살 같기도 한 그의 발언은 품삯을 유리하게 흥정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입니다.
결국 그는 흰 것을 제외한 아롱지거나, 점이 있거나, 검은 양과 점 있거나 아롱진 염소를 자기 품삯으로 지목합니다.
√창 30:32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창 30:33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아마도 그 지역에는 흰 양과 검은 염소가 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라반은 별 고민 없이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사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밑에서 일만하고 있다면 언제 가문을 일으킬지 막막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30절하)
사실 라반은 야곱을 떠나보낼 때 빈손으로 쫓아낼 계획을 세웠는지도 모릅니다.
√창 31: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야곱은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이라고 말하여 돌아가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밝힌 것입니다. 야곱은 라반의 제안을 단호하게 뿌리칩니다. 그는 라반으로부터 작별 선물도 기대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품삯을 라반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기 위해 노력한 것입니다. 야곱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털 색깔을 통해 가축의 소유를 정하자는 계약을 제안합니다. 양들은 대부분 흰색이었고 염소는 대부분 검정 계열의 어두운 색이었는데, 야곱은 그것을 라반의 소유로 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대신에 야곱이 라반의 소유를 치다가 얼룩진 양이나 흰 점이 있는 염소가 태어나면,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삼겠다고 말합니다. 라반은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드렸는데, 그는 단색의 양과 염소 사이에서는 얼룩진 것이 태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에 라반은 흰 양과 검은 계열의 염소를 야곱에게 맡긴 후에 자신의 아들들과 야곱의 목초지 간격을 3일 거리로 떨어지게 했습니다. 라반은 지금까지 야곱을 속여 왔는데, 이제는 야곱이 자신을 속이지 못하도록 경계한 것입니다.
결국 야곱은 품삯 흥정에도 불구하고 빈털터리로 일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이는 야곱에게 하나도 더 주지 않으려는 라반의 인색함을 보여 준 것입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고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해야 합니다.
√야곱의 번창(37~43절)
야곱은 불리한 조건에도 손해 보기로 작정하고 결정했습니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은 어떻게 도우셨을까요?
라반이 야곱을 고향으로 보내려고 하지 않은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를 빈손으로 돌려보낼 경우 여동생 리브가를 볼 면목이 없기 때문입니다. 종으로 부리던 사람을 자유인으로 내보낼 때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몫을 챙겨 주던 당시의 문화를 고려하면 라반은 여간 인색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라반에게 야곱은 양 떼 중에서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염소 떼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 자신의 품삯으로 요구합니다.
당시 목자들은 품삯으로 양털과 우유 일부는 물론이거니와 새로 태어나는 짐승의 10~20%를 받았던 것을 고려하면 야곱의 요구는 무리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라반은 이마저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고자 계약 맺을 시점에 야곱이 말한 조건의 양과 염소를 추려내 자기 아들들에게 맡깁니다. 그것도 삼일 거리 간격을 두게 하고 말입니다. 삼일 거리라면 태인에서 전주보다 훨씬 더 가야 하는 먼 거리입니다. 그러니 양이나 염소가 섞일 이유는 1도 없습니다.
근동 지역의 양들은 대체로 하얗고, 염소는 까맣거나 갈색이었던 만큼 야곱에게 돌아갈 몫이 더 적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라반이 생각한 것처럼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창 30:37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창 30:38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창 30:39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야곱은 양떼를 치면서 아주 이상한 방법을 사용 했습니다. 야곱은 양떼들이 물먹는 개천가의 물구유에 시각적 효과를 내는 물체를 설치했습니다.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플라타너스) 가지를 벗겨 흰 무니를 내고, 그것을 물구유에 세웠습니다. 양떼가 와서 물을 먹을 때에, 그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새끼를 배면 얼룩이 점박이가 나옵니다. 이런 방법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새끼를 밸 때, 양들이 물에 어른거리는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돌연변이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학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그런 돌연변이가 규칙적으로 계속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돌연변이는 문자 그대로 돌연히 변하는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나무를 설치할 때만 얼룩이 점박이가 나온 것을 보면 어떤 효과가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면 뭡니까? 결론은 기적입니다. 과학적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세운 나뭇가지의 효과가 계속적으로 나타난 것은 오직 초자연적인 기적뿐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기적이 야곱에게 6년 동안이나 지속적으로 일어났을까요?
불어나는 양떼를 위해서 야곱의 작전은 계속됩니다. 얼룩이 점박이가 나오면 따로 구분하여 본래 야곱의 양떼와 섞이지 않게 했습니다. 그 대신 얼룩이 점박이 양들을 야곱의 양떼와 얼굴을 마주보게 했습니다. 야곱의 양들로 하여금 계속 얼룩이 점박이를 바라보게 한 겁니다. “너희들도 얼룩이 점박이를 바라보고 똑 같은 새끼를 낳아라!” 그런 뜻입니다. 야곱은 튼튼하고 실한 양이 새끼를 밸 때는 나뭇가지를 설치하고, 빌빌하는 양들이 새끼를 밸 때는 나뭇가지를 치웠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양들은 튼튼하고 좋은 양들로 채워지고, 라반의 양들은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의 양들은 엄청나게 불어났습니다. 수학적인 계산을 해 보세요. 양이나 염소는 보통 150일 정도의 임신 기간을 가집니다. 달수로 하면 약 5개월입니다. 새끼는 보통 2마리 정도를 낳습니다. 새끼는 3-4개월이 되면 번식이 가능합니다. 계산상으로 일 년에 3대가 가능합니다. 만일 양 100마리를 길렀다면 2대까지 총300마리가 되고, 3대가 되면 총 900 마리가 됩니다. 6년 동안 그렇게 양떼가 불어났습니다. 대단한 부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을 보세요. “이에 그 사람이 심히 풍부하여 양 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43절)
‘매우’, ‘지나치게’, ‘크게’을 뜻하는 히브리어 ‘메오드’가 두 번이나 사용될 정도로 야곱은 큰 물질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가축 떼가 많아지는 복을 주셨습니다. 물질적으로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야곱은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았습니다. 소유가 많아지는 축복을 누리는 것뿐 아니라, 누구든지 그와 가까이 있는 사람까지도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어떤 일을 진행할 때 내가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개인적인 유익이나 관계, 하나님의 인도하심등)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나치게 경쟁적입니다. 더 많이 배우고, 더 좋은 학교에 가고,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더 많이 갖고, 더 맛있는 것을 먹고, 더 편안하게 살고, 더 성공적인 인생을 살길 원합니다. 순위가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 같고, 경쟁을 통해 우위를 점하는 것이 선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과열 경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때때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내가 속한 공동체가 복을 받게 하시고, 복 주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며, 경쟁의 쳇바퀴 속에서 열심히 달리던 걸음을 진리의 길 위에 서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라반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 야곱은 경쟁하던 모습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야곱과 라반의 이야기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역설적으로 풍성한 복을 누릴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입니다. 세상의 약삭빠른 계산과 전략은 언약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도우심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세상의 복이 되게 하십니다. 사회는 경쟁적 시스템으로 돌아가지만, 성도는 남보다 우위를 차지하려는 욕망과 유리한 조건을 따르기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르는 자들이 되어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기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