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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영성의 향기 - 이성희 지음
▣ Short Summary 이 책은 이성희 목사가 1989년 연동교회에 부임한 후 두 번째 안식년(2003년)을 맞아 이집트 사막의 성 마카리우스 수도원을 방문, 그곳에서 수도사들과 생활하며 보고 듣고 깨달은 것을 정리한 책이다. 콥트 교회는 기독교 역사에서 수도원 역사의 주류를 형성한 교회이다. 초기 카톨릭 교회의 수도원이 콥트 교회의 수도원을 많이 모방했을 만큼 콥트 교회 수도원은 수도원 본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 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야 할 신앙인들이 머리에 잠재된 지식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실 천하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자는 행동의 존재화가 신앙이며 성임을 말하고 있다. 또 한 우리 모두가 수도사의 삶을 살수는 없지만 그리스도만으로 만족할 작은 방이 있으면 우리가 사는 집도 수도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하나님만 바라보려는 수도사들의 생활을 보며 그들의 신앙을 우리 실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여 미래사회의 모든 해답이 되는 성을 현재 자리에서 회복하고 향상시킬 길을 제공한다.
수도원 영성의 향기
머리말
생태적으로 사막은 살아 있는 곳입니다. 사막은 적으로도 살아 있는 곳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기에 많은 곳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수도사들은 즐겨 사막으로 갔습니다. 오래 전부터 사막의 수도 사들 삶을 그리워했습니다. 수도사의 삶이 개인의 신앙이나 목회에 큰 도전을 주리라 생각했습니다. 성에 대한 책을 가까이 접하면서 수도사들의 삶을 배웠고 특히 사막 수도사들의 삶에 매력을 느꼈 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직접 수도사의 삶을 체험하고 그들과 대화 나누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삶을 우리 실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앨빈 토플러는 제5의 물결은 성이라고 단언합니다. 미래 학자들은 모두 미래 사회를 성 사회라고 예측합니다. 나의 작 은 경험이 성의 회복과 향상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1부 비움의 성
1장 좁은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카이로에서 알렉산드리아 사막을 향해 한참을 달려서야 비로소 성 마카리우스 수도원 안내판을 발견 했습니다. 굳게 닫힌 철문은 여러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어 마치 교도소 입구처럼 삼엄하기까지 했습 니다. 그러나 수도원이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다는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오래 전 부터 와 보고 싶었던 수도원에 마침내 오게 되었다는 감격이 턱 아래까지 차오르면서 마음을 재촉했 습니다.
콥트 교회는 수도원에서 콥트 교회 수장인 교황(pope)을 몇 명 배출했느냐에 따라 유명도를 가늠합니 다. 그런데 이 수도원에서 가장 많은 교황을 배출했다고 합니다. 수도원은 4세기에 세워졌으며 현재 중심 건물들은 13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건립된 것들이었습니다.
수도원 건물에 도착해서 입구에 들어서자 한 수도사가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이 좁은 문에서 이루 어지는 수도사들의 따뜻한 환대는 그리스도를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정말 수도사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세상 부귀와 재물과 쾌락을 다 버리고 예수님과 함께 살겠다고 헌신한 사람들 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가는 길도 바로 이 길입니다. 세상에서 길이신 예수님을 선택하고 믿는 것은 참 으로 좁은 길을 걷는 삶입니다. 세상의 편하고 넓은 길을 포기해야 얻는 길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편 하고 좋은 길이 아니라 불편하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선택의 지혜는 생명입니다. 적인 사람에게는 분별력이 있습니다. 적인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선택은 삶이며 책임입니다. 선택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선택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중세 철학에 모든 선택은 포기이다 는 명언이 있습니다. 실제로 모든 선택은 수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밭에서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 그것을 선택하기 위해 전 재산을 팔아 밭을 삽니다. 모든 것 을 포기할 떄 비로소 보물은 내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 의존하여 선택한 길은 최상의 길입니다. 하나 님께 의존한 의인의 길은 곧습니다.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도다 (사 26:7)라는 이사야의 고백처럼 의인의 길은 항상 곧습니다.
좁은 문은 죄의 짐을 가지고 들어가기에 너무 좁습니다. 세상에서 정결하고 깨끗하게 살려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좁은 문은 또한 수도원에서 가장 시원한 곳입니다. 종일 시원한 골바람이 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좁은 문에도 은혜의 바람이 강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시원 함을 만끽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간 사람은 다른 사람을 시원케 합니다. 우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 면 주님이 시원해 하십니다. 우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면 주님은 비로소 안도하십니다.
2장 작은 방에 거하십시오
내게 아주 작은 방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만 계시면 아무것도 필요 없는 방입니다. 최소한의 필요로 만 채워진 작은 방, 그 방은 비워진 방입니다. 비워진 것은 채워진 것입니다. 비울 때 비로소 가득 찹 니다. 세상의 것이 비워질 때 그리스도로 가득 찹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반면에 사탄은 말합니다. 높아져라, 이름을 높이라, 천하만국을 얻으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 다면 우리도 비워야 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으로서 가지셨던 그 많은 것을 비우셨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고 말합니다. 비우니 종이 됩니다. 종 된 우 리는 모두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야 합니다. 가장 큰 것으로 먼저 채우십시오. 작은 것들은 그 후에 넣을 수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로 채우십시오. 그리스도로 채우면 작은 것들이 채워집니다. 그러나 작은 것을 먼저 채우면 그리스도는 원히 채워지지 않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그 외의 모든 것은 더하여 주십니다. 그것이 하늘 나라의 원리입니다.
이 수도원에는 선지자 엘리사의 유골과 세례 요한의 유골이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엘리사에게는 수넵 여인이 마련해 준 작은 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수도원의 작은 방, 셀이 수도사들에게 그런 곳입 니다. 작은 방은 풍요롭습니다. 세상으로 향하던 문이 닫히고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방입니다. 그리 스도를 모실 마음의 방이 있으면 우리도 이미 수도사입니다.
3장 빈 의자를 마련하십시오
작은 방에는 빈 의자 하나만 단출히 놓여 있습니다. 작은 방을 채워 주고 있은 이 의자는 내가 앉지 않으면 늘 비어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앉아야 할 자리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잔치에 초청을 받았을 때 차라리 낮은 자리에 앉으면 높은 자리로 갈 것이라고 말하셨습니다. 겸손의 실천적 태도 는 높은 자리에 앉지 않고 낮은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인간의 비극은 의자 주인이 되려고 하기 때문 입니다. 의자 주인이 되려고 할 때에 다툼이 일어납니다. 의자 주인이 되면 자리를 지배 수단으로 악 용합니다. 의자 주인이 되면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의자주인일 때 자리는 봉사와 섬김의 도구가 됩니다. 우리 마음에는 예수님이 앉으실 빈 의자가 있어야 합니다. 수도원 작은 방의 빈 의자는 주님의 자리입니다. 내 마음 빈 의자의 주인은 원히 주님입니다.
4장 마음의 창을 여십시오
방에는 동그란 창이 하나 있습니다. 이 창이 밖으로 향한 유일한 통로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을 알 수 있는 마음의 창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 창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열어야 하지만 또한 닫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의 창은 혼의 창입니다. 마음의 창은 양심의 창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하 나님의 말이 절대적 기준인 혼의 소리입니다. 혼이 맑은 사람은 티가 없는 맑은 창을 가지고 있습니다. 혼이 맑지 못한 사람은 티로 얼룩져 세상을 온통 더럽게 봅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창은 온전한 맑음입니다.
마음의 눈, 의 눈이 회복될 때 진정으로 사물을 보고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육체의 눈은 문제만 봅니다. 다른 이의 단점만 봅니다. 세상의 더러운 것만 봅니다. 을 해치는 것만 봅니다. 그러나 의 눈은 하나님을 봅니다. 다른 이의 장점을 봅니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만 봅니다. 을 풍요하게 하는 것만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통해 세상을 보고, 세상을 통해 하나님을 봅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 은 이 창이 맑은 사람입니다.
5장 생명의 바람으로 호흡하십시오
수도원 작은 방은 종일 찜통처럼 더운 열기가 식지 않습니다. 이런 찜통더위 속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은 잠시도 바람이 자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막의 신비입니다. 바람은 하나님의 자연의 은혜입니다. 사막은 바람 때문에 죽는 것 같지만 바람 때문에 살아 있습니다. 사막은 죽은 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막은 살아 있습니다. 사막이 이렇게 풍요한 것은 그곳에서는 하나님과 단 둘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람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바람은 인간에게 생명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사람을 만드실 때, 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만들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 생기는 하나님의 바람 루아 흐입니다. 하나님의 바람은 인간에게 생명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황량한 사막이지만 거기에는 끊임없는 생명의 바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삭막한 세상이지만 거기에는 끊임없이 생명을 지피는 바람 이 있습니다. 아무리 악취를 피우는 세상이지만 그 속에 향기가 있습니다. 죄악뿐인 세상이지만 의로 운 그리스도인은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루아흐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 바람으로 생명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보존하십니다. 생명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바람은 작고 둥근 창을 통 해 쉴 새 없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2부 투쟁의 성
6장 모든 것을 버리십시오
나중에 알고 보니 수도사가 되기 위한 자격은 제법 까다로웠습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을 버린 사 람들에게는 이런 자격은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사랑만이 이들이 수도사가 되게 한 이유 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사랑을 누립니다. 그 사랑은 인간의 삶의 해 답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질되고 왜곡된다 해도 사랑만은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이 변질되면 사회가 변질됩니다. 사랑이 혼돈될 때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이들은 매일 아침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로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그분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사랑할 생각의 틈 새가 이들에겐 없습니다.
7장 자기를 부인하십시오
세례 요한의 유골은 이 수도원의 중심 예배당인 성 마카리우스 교회 지하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예수 님과 세례 요한의 차이는 나는 ...이다 (I am)와 나는 ...이 아니다 (I am not)의 차이입니다. 세례 요한 의 자기 증언은 정확했습니다. 자기 부인은 예수님을 따르는 조건입니다. 어떤 학자는 인간의 신적 부정(divine no) 다음에 하나님의 신적 긍정(divine yes)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 부인은 곧 자기 긍정입 니다. 자기 부인은 소명의 전제입니다. 자기 부인은 예수님께 인정받는 길입니다. 자기 부인은 위대한 사도가 되게 합니다. 자기 부인은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자기 부인은 그리스도인이 되 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물과 은혜는 낮은 곳에 고인다 는 말이 있습니다. 바닷물이 대조(한사리) 직전에 가장 많이 빠지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시기 전에 낮추십니다. 이런 낮은 마음이 그리스도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입니 다.
수도 규칙에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자신을 끊어 버리라 , 세속의 행위들을 멀리하라 는 내용이 있습니다. 자신을 끊는 그 자체가 순종입니다. 수도사들의 자기 부인은 구체적으로 떠나는 것이었습니 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떠남으로서 하나님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떠남의 연습이 필요합니 다. 재물이 있으나 재물에서 떠나고, 지식이 있으나 지식에서 떠나고, 지위가 있으나 지위에서 떠나야 합니다. 자기 부인은 적 재물이 되는 신비한 제사입니다.
8장 그리스도를 위해 죽으십시오
이 수도원은 5세기에 세 차례나 북 아프리카의 도둑들(Nomads, Berbers)에게 침범을 당했습니다. 수 많은 수도사가 이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순교는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교회를 지키기 위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바울은 살아 있을 때에 이미 죽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라고 말했습니다. 매일 죽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매일 죽는 삶은 또한 매일 부활하는 삶입니다. 세상에 대해 죽고 하나님에 대해 사는 것이 순 교입니다. 수도사들은 이미 순교자입니다. 이들은 세상에 대해 죽었고, 정욕에 대해 죽었고, 재물에 대 해 죽었고, 가족에 대해 죽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교의 삶입니다. 순교의 각오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일한 대가를 지불하십니다. 순교는 반드시 보상이 있습니다. 면류관이 있습니다.
9장 가난하고 순결하고 순종하십시오
수도사의 세 가지 서약은 가난(poverty), 순결(Chasti ty) 그리고 순종(Obedience)이었습니다. 이 서원을 통해 수도사들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수도 서원은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되고 파기될 수도 있 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매일 아침마다 서원을 반복하며 다짐합니다.
가난은 수도사들의 서원이라기보다 이들의 삶입니다. 수도원에서는 사유 재산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수도사들이 가난을 서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오로지 그분만 찬양하기 위한 인간적 봉헌입니다. 가난은 인간적인 욕망에서 벗어나게 하여 마음의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 또한 가 난은 나눔입니다. 진정한 가난은 받는 것에 감사하고 자기 분수에 맞게 선용하면서 함께 누리는 것입 니다. 카를로 카레토는 마음으로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보다 유행이라 불리는 것에서의 해방이다. 가 난의 정신은 자유다 라고 말했습니다. 가난은 무한한 자유를 선물로 제공합니다. 수도사들은 자발적으 로 가난하게 된 이들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는 것이 적 가난입니다.
수도사들은 순결한 삶을 삽니다. 이들은 적 순결뿐만 아니라 육체적 순결도 지킵니다. 순결은 하나 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수도사들의 순결은 불완전한 인간의 사랑을 넘어 완전한 하나님의 사 랑을 누리기 위한 방법입니다. 진정한 수도사의 삶은 경건합니다. 참된 경건은 동정심을 가지는 것과 세속에 물들지 않는 깨끗한 삶입니다. 순결은 하나님께 대한 정절입니다. 세상의 다른 것에 마음을 빼 앗기거나 눈을 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순결한 사람은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입니다(시 84:5). 그래서 다른 길을 기웃거리지 않습니다. 순결은 도덕입니다. 순결은 배우자에 대한 정절입니다. 순결 은 책임입니다. 사랑은 한 남자를 남편이 되게 합니다. 사랑은 한 여자를 아내가 되게 합니다. 사랑은 그리스도를 원한 신랑이 되게 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수도 서원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순종이라고 했습니다. 순종이란 인 간의 의지, 의향, 생각 등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것입니다. 순종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겸손 입니다. 그래서 순종은 평안입니다. 성경은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벧전 5:3).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하나님께 승복하는 자세가 순종입 니다. 순종이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방법이요 자세입니다. 순종하는 것은 들으려고 하는 의지입니 다. 순종은 그리스도인의 진실성입니다. 순종은 핑계거리를 사전에 차단해야 가능합니다. 순종의 모범 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빌 2:8). 그리스도의 복종은 죽는 것까지입니다. 우리가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 외의 다른 것에는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3부 단순함의 성
10장 묵상하는 시간을 떼어 놓으십시오
수도원에서는 육체 노동과 독서를 동시에 강조합니다. 독서는 수도사들의 삶입니다. 이들은 독서를 통 해 마음을 만들어 가고 경건을 다듬습니다. 이들은 독서를 통해 수도사로서 필요한 모든 지식과 경륜 을 얻습니다. 교회 전통에서 말하는 상상력에 의한 기도는 처음부터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와 관 계가 있습니다. 교회전통에서 말하는 거룩한 독서는 말 묵상 단계를 통해 말이 삶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독서를 하는 사람은 나태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독서를 하는 사람은 경건합니다. 거 룩한 독서를 하는 사람은 죄에 빠지지 않습니다. 거룩한 독서를 하는 사람은 좌절하지 않습니다. 거룩 한 독서는 그 자체가 힘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독서는 성경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세상 사는 지혜를 주는 신문이 필요합니다. 혼을 맑게 하고 성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필요합니다. 신앙의 지평을 넓히 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혼을 살찌게 하는 책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독서는 지적 행위 뿐 아니라 성과 인격의 행위이어야 합니다. 습관이란 학습과 연습을 거쳐 굳어지는 것입니다. 수도 사들의 학습은 습관 이상의 삶이었습니다. 이들의 삶은 잘 정돈된 방과 같았습니다. 이들의 사고는 풍 요로운 곳간 같았습니다. 이들의 대화는 시원하게 흐르는 냇물 같았습니다. 학습은 그리스도인에게 이 런 인품과 삶을 열어 줍니다.
11장 절제된 식탁이 아름답습니다.
이들은 최소한의 음식을 먹습니다. 그들에게 음식이란 생존을 위한 수단이지 즐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식사를 절제하는 것은 수도사들을 위한 일입니다. 고기는 극히 허약한 병자의 회복을 위해서만 허 락됩니다. 수도사들에게는 술도 금합니다. 먹는 문제는 수도사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삶의 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식탁이었습니다. 만나를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 까?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 신 백성에게 지금도 이런 은총을 주십니다. 날마다 마음을 열고 생각을 가다듬고 보면 호흡하게 하시 고 먹이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질 것입니다. 만나는 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입니다.
모든 음식은 하나님의 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도 그리스도인에게는 경건한 삶의 기준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고전 8:8). 우리는 음식을 받는 창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창이 다른 창보다 크면 적 균형은 깨어집니다. 또한 이 창이 너무 작으면 육체의 균형이 깨어집니다. 이 창의 크기가 적절해야 삶의 성도 균형 있게 잡힙니다.
12장 사치스러운 옷을 벗으십시오
수도사의 옷은 수도사의 또 다른 삶입니다. 단순한 듯 보이지만 단순하지 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 다. 수도사의 옷은 검은 색입니다 또한 수도사는 항상 모자를 니다. 수도사는 모자를 써서 순진성과 단순성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모자 안쪽 띠에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데, 항상 십자가를 기억 하며 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허리에 다시 십자가가 새겨져 있습니다. 십자가를 머리로 생각만 하 는 것이 아니라 항상 몸에 지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나아가 십자가를 지고 가라는 의미입니다. 검은 수도사복 안에는 항상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를 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고통과 섬김입니다. 예수님의 가죽 채찍으로 맞으신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 발을 씻기 신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진리의 띠를 띠고 진리로 살려고 애니다. 또한 이들 옷에는 꾸 밈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 옷은 사치일 뿐입니다. 수도규칙에는 수도사들의 옷에 대해 매우 엄격한 규칙이 나옵니다. 수도사들은 항상 준비된 상태에 있다가 신호가 나면 지체 없이 일어나서 하나님 일 에 서로 빨리 오도록 노력할 것이나 온갖 신중함과 단정함으로 할 것이다. 이곳 수도사들이 검은 수 도복을 입는 것은 단순성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화려한 것보다 단순한 것이 마음을 단순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제사장 옷을 엄격하게 구별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옷은 엄격해야 합니다. 너무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허술하지 않아야 하나님께 나아가기 좋습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옷을 바꾸어야 합니다. 사치하고 화려한 옷에서 단순하고 편리한 옷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가 아니라(벧전 3:3), 깨끗한 마음을 가지는 내면의 옷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세상 것으로 옷 입지 말고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합니다(롬 13:14). 그리스도인은 옷에 대한 욕심에서 자유해야 합니다. 옷 에 대한 욕심에서 자유하기 위해서는 유행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이런 매임에서 해방되어야 그리스 도인의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13장 노동으로 기도하십시오
수도원의 하루 일과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는 기도와 학습과 노동입니다. 수도사들이 하나님 께로 나아가고자 하는 숙련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기도와 노동입니다. 노동을 통해 이들은 하나 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을 만납니다. 카를로 카레토의 말처럼 노동자는 자신의 일에 있어서 사제입니다. 모든 노동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노동자는 자신의 일을 하나님의 일처럼 해야 합니다.
영성이란 인간이 되어 가는 삶의 과정입니다. 노동은 인간이 되어 가는 삶의 도구입니다. 인간에게 노 동은 하나님의 은총의 통로입니다. 노동은 안식을 위한 수고입니다. 노동은 그 자체가 신성한 것입니 다. 성경이 말하는 노동과 안식은 조화의 관계입니다. 양질의 노동과 양질의 안식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진보적 자본주의의 발전은 노동과 여가에 대한 가치관을 역전시켰습니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여 증 가된 놀이 문화는 인간의 삶과 사회 변동에 중요한 요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놀이에 익 숙해지는 교인들에게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을 제공해야 합니다. 주5일 근무제는 역동적이고 탄력적인 훈련을 통해 교회의 내적 성장에 도움을 줄 것이며, 잘 훈련된 그리스도인의 사회 참여로 교회와 사 회의 신뢰 회복과 선교에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노동은 그 자체가 은총입니다. 수고한 만큼 대가를 얻는 것은 대단한 축복입니다. 이들은 수도원이 있는 이 사막에서 열심히 일해서 누런 사막을 푸른 축복의 땅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노동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노동은 이들에게 삶이며 기쁨입니다.
14장 단순함을 사랑하십시오
수도사들의 삶은 단순함으로 귀결됩니다. 많은 일과 만남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데 장애가 됩 니다. 농부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가지치기를 합니다. 현대 문명은 인간을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삶의 질은 단순함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과학과 지식의 발달은 인간을 문명인으로 만들었 다고 자랑하지만 문명인은 반자연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에게 수많은 것을 안겨 준 문명은 오히 려 지구를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단순한 사람들의 세계는 풍요합니다. 우리는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 다. 필요치 않은 것은 빨리 나누어야 합니다. 단순한 삶은 적 삶의 지름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단순성이란 우리 삶을 포기하거나 아예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가질 수 있지만 가지지 않는 것이 단순성입니다. 가지고 있지만 가지고 있지 않은 듯이 사는 것이 단순성입니다. 가지고 있지 않지만 가진 것처럼 풍요로운 것이 단순성입니다. 단순성은 삶의 외적 표현이 아닙니다. 단순성 은 삶의 내적 실체입니다. 마태복음 6장 22절에는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눈이 단순해지면 온몸이 밝아집니다. 예수님도 단순화 작 업을 하셨습니다. 유대교의 경전에는 613개의 율법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단 하나의 황 금률로 바꾸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12). 리처드 포스터의 말대로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내 권리를 포기하는 멋진 능력이야말로 단순성의 핵심입니다. 단순함은 성의 단면입니다.
4부 향기의 성
15장 고독의 방에서 침묵하십시오
수도사들이 사막을 찾는 이유는 고독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없기에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는 곳입니다. 거룩한 고독을 느낄 때에 사람은 가장 성숙합니다. 고독은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의 내 면과 만나는 방입니다. 어두운 밤에 홀로 사막을 걷는 수도사들은 자신의 셀로 들어가 하나님과 긴 침묵의 대화를 계속합니다. 이들의 일과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고독과 침묵은 인간을 성장하게 하는 에너지입니다. 그러나 인간적 고독만으로는 내적 성숙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 고독은 그 자체가 내적 공허이기 때문입니다. 신적 고독은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 홀로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고독은 내적 충만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한 공간입니다. 하나님 한 분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이 런 고독 없이 적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고독한 생활은 침묵의 생활입니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사물의 적나라한 존재를 만납니다. 침묵하며 우리는 가장 세미한 소리를 듣습니다.
고독과 침묵은 들어야 할 소리를 듣게 합니다. 세상으로 열린 귀가 닫혀야 하나님의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가 의지적으로 경청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귀를 기울이는 일은 의사소통하는 일 (communicating), 위임하는 일(delegating), 인간관계와 조화를 형성하는 일(human relations and harmony)과 더불어 리더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질이기도 합니다.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충만하게 되며 온전히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2)라고 하습니다. 말을 따르는 것과 듣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더 귀한 일입니다. 혼이 열리면 돌 속에 있는 다윗과도 대화가 가능합니다. 열린 혼은 모든 것을 듣게 합니다. 수도 사들은 작은 셀에서 홀로 있기를 연습합니다. 이들이 한없는 자유를 누리는 것은 고독과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16장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빛나게 하십시오
사막에서의 밤은 두려움으로 가득합니다. 캄캄함은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캄캄한 밤에 가장 밝은 별을 볼 수 있습니다. 별은 신비로움을 간직한 존재입니다. 별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별만 신비로운 것 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신비롭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은 별의 언약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별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큰 별을 보고 왕이신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을 알고 동방에서부터 경배하러 왔습니다. 별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계시 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별보다 평탄한 길을 택합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별을 따라 험난한 길을 갑 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보여 주시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예수님의 성 육신입니다.
예수님은 광명한 새벽별입니다(계 22:16). 이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는 새벽의 빛난 별입니다. 누구에게 나 가장 빛난 별이며 누구에게나 비취는 별입니다. 예수님의 말대로 승리하는 자들에게 새벽 별을 주십니다(계 2:28). 이 별을 가진 사람은 그 자체가 빛입니다. 이 빛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끕 니다. 이 빛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참 빛을 찾습니다. 진정한 스타는 가슴에 새벽별을 가진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사람입니다. 수도원에는 이마에 별이 없는 스타들이 삽니다. 이들 은 성을 교회에 흘러 보내기 위해 쉼 없이 기도하고 묵상하고 교회를 중보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스타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17장 기도로 하루를 여십시오
새벽이 되면 수도원 제일 높은 탑에 매달린 종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종소리는 아침 기도를 알리는 소리입니다. 수도원의 아침 기도회는 두 시간 동안 진행됩니다. 아침 기도회는 시편 낭송으로, 하나님 의 구속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기도의 내용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시편 낭송 외에 나머지 시간에는 기도회 인도자가 선택한 시편을 낭송합니다. 이런 기도는 하루에 일곱 번 계속됩니다.
기도는 정말 힘듭니다. 수도원장 아가토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만큼 중노동은 없다. 인간이 신앙생활에서 수행하는 다른 모든 수고에는(아무리 간절하고 충실히 지속하는 것일지라도) 어느 정도 쉼이 있다. 그러나 기도는 마지막 호흡까지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노동이다. 고통은 기 도의 을 깨워 줍니다. 기도는 적전쟁입니다. 이들의 기도에는 청원이 없습니다. 단지 찬양과 감사 로 기도할 뿐입니다. 이곳 수도사들의 기도는 소리 없는 침묵이 아니라도 고요하며 은은합니다. 가장 좋은 기도는 침묵입니다. 기도는 마음 없는 말보다 말없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은 하나 님보다 내 자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때가 많습니다. 기도는 우리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고 그 초점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수도사들의 기도초점은 상황보다 하나님입니다. 주 변을 위한 청원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위한 찬양과 감사가 이들의 기도입니다. 기도는 구하는 것이 아 니라 혼의 갈망인 것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기도만이 열고 닫는 삶의 문입니다.
18장 세상을 닫으면 하늘이 열립니다.
수도원의 철문은 종일 굳게 닫혀 있습니다. 크게 둥근 원을 그린 수도원의 담장은 세상을 차단합니다. 오후 8시가 되면 좁은 문도 굳게 닫힙니다. 문이 닫히면 하늘이 열립니다. 세상을 닫으면 하늘이 열립 니다. 하늘이 열리면 하나님이 보이고 예수님이 보입니다. 하늘이 열리면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고 하 늘의 이상이 보입니다. 하늘이 열리면 하늘의 음성이 들립니다.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인정받습니다. 하늘이 열리면 이후에 될 일들이 보입니다. 이곳 수도사들은 문을 닫고 하늘을 열었습니다. 이제 하늘 을 보고 하나님을 듣는 열린 하늘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19장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들이 왜 사막을 선택했을까요? 사막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막은 고독한 장소입니다. 사막은 절망 의 자리입니다. 세상에 동화되지 않는 길은 사막으로 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막은 하나님을 만나 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입니다. 사막에서 무한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은혜입니다. 사막은 풍요 그 자 체입니다. 사막의 풍요함은 하늘나라의 풍요함입니다.
수도원이 있는 이곳은 지하에 물이 있다고 합니다. 물 때문에 수도원 안은 늘 푸른 나무들이 싱싱하 게 자라고 예쁜 꽃들이 만발해 있습니다. 물은 생물을 번성케 합니다. 예수님은 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물을 주시겠다고 제안하십니다.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물을 한 바가지 부어야 합 니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만 있으면 많은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많은 물은 은혜이며 한 바가지의 마 중물은 우리의 노력과 수고입니다.
수도원의 마카리우스 예배당 앞에는 수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아름드리 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습니다.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수도원인데도 어디에서 왔는지 새들이 수도원의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나무가 있으면 새도 살 수 있듯이 생명이 있으면 다른 것들이 깃들어 삽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있으 면 다른 것들도 생명을 얻습니다. 아무리 삭막한 세상이지만 우리가 생명을 잃지 않으면 생명의 희망 이 있습니다.
수도원 뜰 곳곳에는 하얀 백합화가 피어 있습니다. 백합화는 예수님의 꽃입니다. 예수님은 상처를 받으면서 진한 향기를 드러내셨습니다. 온갖 악취를 풍기는 세상 사람을 바라보며 백합화 한 송이는 향 기의 소리 일곱 번을 냅니다. 향기의 소리는 악취를 제거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구속입니다. 모래 바 람에 향기가 실려 옵니다. 수도사들의 땀이 밴 검은 옷에서 향기가 뿜어져 나옵니다. 이들 손에서 진 한 향기가 전달됩니다. 이곳에서 피어나는 향기는 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를 진동합니다. 사막의 향기는 교회의 희망입니다. 사막의 향기는 열린 하늘 문을 딛고 하늘로 올라가는 생명의 기운입니다.
사막의 향기로 가득한 수도원은 이미 하나님이 다스리는 작은 나라입니다.
▶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 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첫댓글 귀한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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