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기독교와 동방 기독교!
예수의 말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 14:6)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누가17:20)
천국과 진리는 우리들 안에 있다.
불교가 남방 불교와 북방 불교로 나뉘어 교리의 범위와 해석에 차이가 있듯이 기독교에도 서방 기독교와 동방 기독교로 나뉘어 교리의 해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남방불교는 한마디로 현재 동남아시아에 있는 여러 국가들 중에서 베트남을 제외한 불교국가의 불교를 말한다.
남방불교는 붓다가 설법한 팔리어라는 인도의 방언으로 쓰여진 팔리어 법전에 따라, 계율을 엄수하는 원시불교 이래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과 체험을 중시한다.
반면에 북방 불교는 팔리어를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한 불전을 다시 중국어 등 각 지역의 언어로 번역한 '3차 해석 불전'을 기반으로 교리를 해석하는 '번역불교'라 할 수 있다. 티베트어나 한자로 번역된 불전에 의해 이해된 불교인 것이다. 번역과정에서 의미가 변하고, 자국의 문화나 사고방식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많으므로 본래의 인도불교와는 그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방 교회의 관점은 동양의 불교, 특히 남방 불교와 매우 비슷하다.
간단히 말해, 종교는 역사인 것이다. 교리, 계율, 계명, 조직, 체계, 예배, 의식 등 모든 내용이 정치와 경제의 역사와 같이, 환경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한다.
종교와 신은 절대적 가치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야기는 진리가 아니다.
예수의 말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 14:6)
예수의 이 말씀은 '나'라는 존재가 진리
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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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카렌 암스트롱저 '신의 역사'에서 해당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동방의 도그마와 서방의 케리그마:
로마에 근거를 둔 서방 교회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근거를 둔 동방 교회의 차이.
비전적 진리와 공개적 진리의 구분.
동방 정교회의 주교 바실리우스329-379, 니사의 그레고리우스335-395 등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오직 종교적 경험만이 신에 관한 문제를 풀 열쇠를 제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스 초기의 합리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문제에 주의를 기울였다.
플라톤은 이성에 의해 표현되고 그러므로 증명이 가능한 철학과 신화를 통해 전승되어 온 중요한 (그러나 과학적 증명을 비켜가는)가르침을 비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비 종교의 입문자들이 요구받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둘을 구분했다.
바실리우스는 도그마dogma와 케리그마kerygma로 구분해 설명했다.
'케리그마'는 성서에 근거한 교회의 공개적인 가르침.
'도그마'는 오직 종교적 경험을 통해 파악되고 상징적 형태로만 표현될 수 있는 성서적 진리의 더 깊은 의미를 가리켰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 뒤에는 비전적 진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비전적 진리와 공개적 진리의 구분은 신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도 모두 나름의 비전적 전통을 발전시켰다.
바실리우스는 모든 종교적 진리를 명료하게 논리적으로 표현하거나 정의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환기했다. 어떤 종교적 통찰에는 내적 울림이 따르는데 그 울림은 오로지 각 개인이 자기만의 시간에 플라톤이 '테오리아'라고 부른 것, 즉 관조를 행할 때 파악할 수 있었다. 모든 종교는 일반적인 개념과 범주를 벗어나는 형언할 수 없는 실재를 지향하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제약이 있고 혼란을 일으킨다. 종교 경전에는 문자 그대로의 뜻 외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영적 의미가 담겨 있다. 붓다 역시 말이 닿지 않는 범위에 있는 실재에 관한 질문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서방적 기독교는 진리의 공개적 가르침인 케리그마를 강조하는 언어 지향적 종교로 발전해왔고, 결국 신을 이해하는데 중대한 문제를 야기했다.
반면에 그리스 정교회-동방 기독교는 모든 신학적 작업을 일종의 묵시적 또는 아포파시적 (apophatic, 말없는, 침묵의)측면에서 수행하고자 노력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가 말한 것처럼 모든 신 개념은 신 자체를 드러낼 수 없는 모조품, 거짓된 상, 우상이었다. 기독교인이라면 아브라함이 그랬듯 모든 신 개념을 멀리하고 '어떠한 개념에도 얽매이지 않는 순수한' 신앙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바실리우스는 '우리는 오직 신의 활동을 통해 신을 알 수 있으나 신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향후 동방 정교회의 모든 신학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신의 본질-우시아는 인간의 언어로는 결코 이름 붙일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성부, 성자, '성령'은 신이 자신을 드러내는 활동(에네르게이아)에 대해 말하기 위해 인간이 쓰는 용어일뿐이다. 이용어들은 불가해한 실재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로 옮겨준다는 상징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성부, 성자, 성령의 세가지 표현형태, 즉 히포스타시스hypostasis는 신의 본질을 부분적으로 그리고 불완전하게 드러낼 뿐이다. 다시 말해 삼위일체는 문자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라 신의 감추어진 실체에 대응하는 상징적 범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삼위일체는 궁극적으로 신비적 또는 영적 경험으로만 이해될 수 있었다. 신은 인간의 개념을 훌쩍 뛰어넘기에 삼위일체는 사유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되어야 했다. 그것은 논리적이거나 지적인 공식이 아닌 상상적 인식의 체계였다.
그러나 서방 기독교인들은 케리그마적으로 삼위일체를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서방 기독교인들은 18세기에 이 도그마 때문에 난처해지자 삼위일체를 신학체계에서 제거하려했다. 그들은 신을 '이성의 시대'에 합리적으로 이해 가능한 것으로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나중에 이것이 결국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른바 '신의 죽음'을 초래하는 한 원인이 되었다. 니케아 신조의 성육신 교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을 지나치게 인간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게 만들수도 있고, 심지어 신이 인간 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계획한다고 상상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는 우상숭배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동방 교회의 테오리아theoria는 늘 관조를 의미하지만, 서방 기독교의 이론 theory은 논리적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합리적 가설을 의미했다. 그러나 '신'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신'이 인간의 사고 체계 안에 담길 수 있음을 함축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도 동방 기독교와 서방 기독교에서 각기 다른 관점에서 이해되었다. 동방 기독교의 개념은 비잔틴 신학 창시자 막시무스580-662가 정의한 것이었다. 그것은 서방 기독교의 성육신 개념보다 오히려 불교의 이상에 더 가까왔다. 막시무스는 인간은 신과 합일할 때에만 스스로 충만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신은 인간 삶의 조건에 덧붙여진 예외적이고 이질적인 외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신과 같은 존재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일이 실현될 때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 말씀이 육화된 것은 전 인류를 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불성과 깨달음이 초자연적 실재의 개입을 배재하고 인간 본연의 능력을 고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었듯이, 신화된 예수 그리스도는 신의 은총을 통해 우리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상태를 보여주었다.
성육신에 대한 동방 교회의 관점이 기독교를 동양 종교에 가깝게 보이게 했다면, 서방기독교의 관점은 동방 교회와 달랐다.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안셀무스1033-1109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원죄는 신에 대한 엄청난 모독이었기에 속죄가 반드시 필요했다. 말씀이 육화된 것은 우리 인간을 대신해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안젤무스의 구상은 신을 마치 인간 처럼 생각하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존재로 묘사했다. 또한 일종의 인간 희생량으로 바쳐진 신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만 만족하는 가혹한 신의 이미지를 강화했다. 서방 교회에서는 '신'을 인간에 외재하는 존재이자 우리가 아는 세계의 대안적 현실로 남겨 두려는 경향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신은 인간의 편견과 욕망이 투여된 대상이 되기 너무 쉬었다.
구경회 2024.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