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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구속주회 (상)
1732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성 알폰소 리구오리(St. Alphonsus Maria de Liguori, 1696~1737)에 의해 창설된 구속주회(Redemptorist)는 하느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영성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고유 카리스마다.
영어의 'Redemption'을 뜻하는 '구속'(救贖)의 의미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국가간 전쟁으로 잡혀간 포로를 왕이 대가를 지불하고 찾아오는 행위를 가리킨다.
즉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을 함축하는 단어로써 사도 바오로는 그의 서간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이뤄진 구원 사건을 표현하는데 사용했다. 구세주라는 단순한 표현을 넘어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자신의 생명과 우리 인간의 비참한 상태와 교환하신 사랑의 깊음과 처절함의 의미였다.
예수는 성부의 뜻을 따라 사랑을 살고 이를 완성하신 구속자(救贖者, Redeemer)라 할 수 있는데 구속주회는 바로 그렇게 구속자로 사셨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성모님을 공경하며 그분이 행한 구속 사업을 수행하는데 최선의 삶을 추구한다.
알폰소 리구오리 성인은 구속주회 창설 뿐만 아니라 민법 교회법 학위를 지닌 법률가, 현대 윤리 신학의 창설자였으며 또 유명한 설교가로서 91년 생애동안 110권의 책을 펴낸 저술가다.
1696년 나폴리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인은 당시에 받을 수 있을 수 있는 최상의 교육을 받으며 16세 나이에 민법 교회법 박사학위를 취득할 만큼 뛰어남을 보였다.
법률가로 활동하던 중 병원 자원봉사를 하며 "세상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1726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열성적인 사제의 삶을 살게된다.
그가 수도회 설립을 위한 또 한번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도시 외곽 지역에서 양치는 가난한 농부들을 만나서 였다. 당시 나폴리에는 신자 100명당 사제수가 1명일 만큼 많은 수의 사제가 있었음에도 이들은 복음 선포에서 철저하게 소외돼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충격을 받은 알폰소 신부는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사제들과 수사들의 모임을 조직, 1732년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 선교 수도회'를 창립한다.
성인의 성소는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과 함께 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특징을 보인다. 그는 도시의 편안함을 떠나 스칼라 산 위에 수도원을 세웠고 수많은 저술들은 기본 교육을 받은 이들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쉬운 언어로 저술됐다. 그는 두려움과 공포의 하느님 감시자로서의 하느님관을 불러 일으킨 얀세니즘과 경건주의를 거슬러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소개했으며, 구원의 위대한 의미로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신자들에게는 단순한 양식으로 기도하는 법을 가르친 '기도의 박사'였다.
수도회 설립후 1762년 주교로 선출된 알폰소 신부는 1787년 세상을 떠났으며 1839년 시성됐고 1871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교회의 박사로, 또한 1950년에는 고해신부와 윤리신학자들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됐다.
교황 비오 9세는 1866년 특별히 구속주회에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전파할 것을 맡기셨는데 그런 배경으로 회원들은 전 세계 70여개국에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께 드리는 9일 기도'를 통해 성모님께 기도할 것을 설교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4년 12월 12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구속주회 (하)
설립자 알폰소 성인은 수도회 창립 초창기의 어려움을 공동체가 거룩한 동정녀 마리아의 보호하에 있는 믿음으로 극복했다.
그는 또한 보다 널리 구속주회의 이념이 퍼져갈 수 있도록 힘썼고 그러한 의지와 사도 성 클레멘스 홉바우어 등 회원들 노력에 의해 공동체는 유럽으로 확산됐고 다시 미국 및 다른 대륙으로 전해졌다.
특히 1866년 교황 비오 9세가 구속주회에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께 대한 신심 전파를 맡긴 것을 계기로 구속주회 회원들은 세계 각처에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 마리아 신심을 전하는 특별함을 보이고 있다.
"본 회의 목적은 '주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나를 보내셨다'고 예수께서 선언하신 것 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구속주이신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따르는데 있다"(회헌 1항).
회헌에서 처럼 이들이 사도직 활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는 것은 '창립자 정신에 따라 가난하고 버림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것. 이를 위해 회원들은 각 사회가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복음화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선교활동', '본당 사목 협조', '신앙쇄신 활동', '피정 및 영적지도', '영원한 도움의 성모마리아 신심 전파' 등인데 선교 활동에서는 외방 선교뿐 아니라 국내 선교 영역에도 활동을 넓히고 있고 본당 사목 협조시에는 구속주회 이념에 따라 해야할 일, 즉 본당 구역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영적으로 돌보고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살피는 데 관심을 집중시킨다.
'본당 선교활동(parish mission)'은 구속주회 만의 독특한 활동이라 할 수 있는데 일정 기간동안 기존 신자들의 재교육을 맡아 피정 지도, 영적 상담 등의 활동을 한 후 6개월 내지 1년이 지났을 때 신자들을 재방문, 신앙 생활을 점검해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신앙 쇄신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은 자신에게 도움을 간구하는 이들의 청원을 많이 들어주셨기에 '기적의 성화, 은혜 넘치는 성화'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구속주회 회원들은 이 성모님의 신심을 전파할 특별한 임무를 통해 전세계에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께 드리는 9일기도'를 주관하고 있다.
구속주회의 한국 진출은 1985년 열린 수도회 세계 총회에서 아시아 선교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이후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헤차노바(Luis Hechanova) 참사는 수차례에 걸친 한국 방문 및 서울대교구와의 접촉을 통해 진출 가능성을 타진했다.
늘어나는 냉담자 문제, 신자들의 영성 교육, 신앙 생활의 심화 등 과제를 지니고 있던 한국 교회 상황에 부응하고, 향후 북한과 중국 선교를 위한 교두보 마련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선교를 결정한 구속주회는 1991년 3월 서울대교구장 요청으로 공동체를 꾸렸다.
이들의 주요 활동은 본당에서의 미사와 고해성사, 피정지도, 영성지도,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위한 영성지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사목 등이며 영원한 도움의 성모께 드리는 9일기도를 통한 성모 신심 전파에도 헌신하고 있다.
브라질과 필리핀 태국 관구에서 파견된 회원들로 출발한 구속주회 한국지구는 2004년 현재 사제 13명과 평수사 1명, 수련자 3명, 청원자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성 프란치스코 의료봉사 수녀회
전남 장성군 진원면에 위치한 성 프란치스코 의료봉사 수녀회 본원. 손님이 왔다며 마당까지 반갑게 뛰쳐나와 맞아준 사람은 다름 아닌 일본인 수녀였다. 그것도 베일 사이로 보이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살포시 주름진 얼굴을 보니, 나이가 지긋이 든 고향 할머니 모습이었다.
『안녕하스무니까. 환영합니다』
일본인 특유의 억양이 배어나온긴 했지만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줄 아는 데데오(우스자카 스에코) 원장수녀의 인자한 첫인상과 목소리는 낯선 땅에서 한국인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온 수녀회의 정신을 짐작케 했다.
성 프란치스코 의료봉사 수녀회는 1844년 독일 뮨스터에서 작은형제회(당시 프란치스코회) 크리스토퍼 베른슨 마이어 신부에 의해 창설됐다. 창설 초기부터 수녀회의 주된 사도직은 병든 이, 가난한 이, 도움을 필요로 한 이들에 대한 봉사였다.
수녀회 회원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작은 형제가 되신 그 신비를 활동적으로 살 수 있도록 불림 받고 있다. 본회는 때와 장소에 적합한 새로운 방법으로 가난한 사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병든 사람을 향한 봉사를 계속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적고있다. 즉 수녀회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공유하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전(全)교회와 각 소속 교구, 선교지의 복지를 위한 사도직을 부여받았다.
현재는 총본부가 있는 독일을 비롯해, 미국, 폴란드, 일본, 인도, 하이티, 체코, 탄자니아, 대만 등 10개국에서 1500여명의 수녀들이 활동하고 있다.
일본관구는 1948년 미국 관구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됐으며, 한국과의 교류는 1986년 수도회 총장일행이 일본 관구 방문의 기회에 한국을 찾음으로써 시작됐다.
이후 1994년 한국 작은형제회에서 운영하는 노인요양시설인 「프란치스코의 집」에서 간호분야에 협력해줄 것을 요청, 이를 일본관구에서 수락함으로써 수녀회의 한국 진출이 구체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광주대교구장이었던 윤공희 대주교도 기꺼이 수녀회의 진출을 허락해줌으로써 현재 장성 프란치스코의 집 뒤편에 수녀회 본원을 설립하고 이곳에서 사도직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의료봉사 수녀회라는 이름답게 수녀 대부분이 간호학과 임상병리, 사회복지 등을 전공했거나 공부하고 있으며, 치매나 뇌졸중 질환으로 인해 전문적인 요양 보호가 필요한 70여명의 노인들을 돌보며, 또 그들의 벗이 되어주면서 동거동락하고 있다.
2002년 11월에는 서울 중구 송월동에 양성의집 공동체를 설립, 현재 한국에는 일본인 수녀 4명과, 한국인 수녀 1명, 유기서원자 1명, 지원자 1명 등 총 7명이 활동하고 있다.
데데오 원장수녀는 『평생 외국이라고는 나가 본 적이 없는 생활이었지만 늘그막에 하느님께서는 생각지도 않은 방법으로 지금 이곳에 있게 해 주셨다』며 『버려지고 아픈 노인들이 저희 수녀들의 자그마한 보살핌으로 새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한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성소모임은 장성 수녀회 본원에서는 매월 셋째 주일 오후 2시에, 서울 양성의집에서는 매월 넷째 주일 오후 3시에 있으며, 매주 토요일 오후 3~5시에는 일본어 성서 읽기 모임도 갖는다.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성모승천수도회 (상)
광주시 서구 내방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 여느 수도원과는 달리 성모승천수도회는 아직 번듯한 수도원은 없었지만 신부 2명과 유기서원자 1명, 청원자 1명 등 총 4명이 오붓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이곳에서 반갑게 기자를 맞는 외국인 신부와 한국인 수사의 모습은 170년 전 선교를 위해 낮선 땅에 오른 외국인 선교사가 김대건 신부 등 한국인 성소자를 키웠던 그 때의 상황을 아련히 떠오르게 했다.
1845년 프랑스 남쪽 지방 님에서 엠마누엘 달종(Emmanuel d」Alzon) 신부에 의해 창설된 성모승천수도회의 첫째 목적은 우리 자신과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일하는 것이었다.
1834년 로마에서 사제로 서품된 달종 신부는 1844년에 성모승천학교 교장이 되면서 수도회의 필요성을 느끼고 1년 뒤인 1845년에 성모승천 수도회를 창설했다. 달종 신부는 수도회가 새 시대에 부응하는 현대적인 면모를 갖춘 공동체인 동시에 교회의 전통에 뿌리를 둔 공동체로 자리잡기를 원했다.
또한 달종 신부는 수도공동체가 하느님을 체험하고 형제적 공동생활을 하며 진리와 일치, 그리고 애덕 안에서 교회를 사랑하며 사람들에게 봉사한다는 목적에 대부분의 지침을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속에서 찾도록 했다.
달종 신부는 자신의 출신 교구인 님교구의 총대리 신부로서 38년 동안 일하게 된다. 달종 신부는 그곳에서 광범위한 복음 전파활동을 했는데, 특히 개신교 신자들의 회개, 젊은이들을 위한 교육, 영적지도, 교육사업, 성지순례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한 사도직을 수행했다.
또한 1863년 교황 비오 9세로부터 동방교회와의 그리스도교 재일치를 위해 일해 달라는 선교사명을 받고 즉시 불가리아에 신부를 파견하고, 1865년 신부를 도와 일할 성모승천 봉헌자 수녀회를 창설했다. 그러나 달종 신부는 모든 활동에 임하기에 앞서 수도회원들에게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 주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찾는 일』을 추구하도록 강조한다.
성모승천수도회는 1880년 달종 신부의 선종 이후, 칠레에 공동체를 설립하고 이후 터키와 미국에 공동체를 설립했다. 1900년 반 성직법으로 인해 프랑스의 수도자들이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 등지로 귀양을 가게됐지만 오히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곳에서 수도회가 점점 더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러시아, 자이레, 브라질 등 27개국에서 1000여명의 신부, 수사들이 다양성 안에서 활동하는 국제적 공동체를 이루고 성모승천 수녀회, 성모승천봉헌자 수녀회, 성모승천 작은수녀회, 성모승천 관상수녀회와 함께 다섯 개의 수도회가 한 가족처럼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서로 도우며 하느님의 말씀을 이 세상에 전파하고 있다. 한국 공동체는 1991년 12월 당시 광주대교구장인 윤공희 대주교의 초청으로 진출해 활동하고 있다.
1880년 11월 선종한 엠마누엘 달종 신부는 199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가경자」로 인정받게 된다. 또한 성모승천수도회 소속인 카멘 빛체브(Kamen Vitchev), 파벨 치저브(Pavel Djidiov), 요사팟 칫거브(Josahat Chichkov) 신부는 1952년 불가리아 공산당에 의해 불가리아 중앙 교도소 총살대 앞에서 사살당했다. 이들 3명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2002년 5월 26일 불가리아의 부럽디브시 광장에서 복자품에 올려졌다. [가톨릭신문, 2005년 1월 1일, 김재영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성모승천수도회 (하)
성모승천수도회의 영성은 우리 자신과 주위에 있는 사람들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일하는 것을 첫째 목적으로 한다. 성부께 대한 사랑의 증거자이며 인간과 친히 연대하시는 예수그리스도처럼 성모승천 수도회원은 신앙을 증거하는 사람, 현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또한 『무엇보다 먼저 공동체 안에서 오직 한 마음과 한 정신으로 하느님을 향해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살라』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정신에 따라 공동체 안에 산다. 따라서 솔직하고, 우의 깊고, 소박한 형제적 생활을 추구하며, 회원들이 바치는 기도는 교회의 기도로서 공동체는 그 기도로 신앙을 드높이 표현하며 전교사명 수행을 위해 노력한다.
또한 창설자의 정신을 따라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품고, 하느님이 인간 안에서 위협 당하는 곳이나,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이 위협 당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도록 촉구한다. 이처럼 교회의 가르침과 지향에 충실함으로써 교회의 생명력과 사명에 참여한다.
학교 안에서 공동체가 시작된 성모승천수도회가 학교라는 틀안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달종 신부는 당신이 맞아들인 첫 제자들로 하여금 진리, 신앙, 교회일치, 성소개발,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 등 하느님의 위대한 뜻과 그 시대 사람들에게 처해진 상황에 민감해지도록 이끌었다. 또한 달종 신부의 제자들이 새롭고도 과감한 길로 나아가도록 촉구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신학교 개설, 동유럽 선교, 언론, 성지순례, 노동자 가족을 위한 봉사 등을 착수하도록 했다.
수도회의 사도직 활동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데 교육, 매스미디어, 성지순례 안내, 교회 일치운동, 본당사목, 평신도 사도직을 위한 기관, 사회사업,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위한 봉사 등을 들 수 있으며, 수도회원들이 하는 모든 활동은 교회일치의 정신으로 임하고 있다.
특히 「십자가(La Croix)」라는 일간신문과 수십종의 출판물을 통해 진리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고 분열된 교회의 일치를 위해 동방교회와 끊임없는 대화 속에 관계를 맺고 있으며, 성지 순례를 통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강한 믿음으로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하고 있다.
1991년에 한국에 진출한 수도회는 현재 도세민 원장신부(벨기에)를 비롯해 2명의 신부와 유기서원자 1명, 청원자 1명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으며 주로 본당사도직 활동과 청소년들을 위한 영어교육, 수도회 및 장애인 시설인 백선바오로의 집과 사랑의 집에서 전례 등을 돕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광주시 서구 쌍촌동에 자리잡은 수도원 기공식을 갖고, 올 여름에는 그곳에서 피정지도를 비롯해, 교회일치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또한 필리핀과 베트남 등 동아시아 지역의 공동체와 연계해 수도자 양성 등의 활동도 전개할 예정이다.
『수도자들은 존재자체로 하느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도세민 원장신부는 『저희 수도회는 형제적인 사랑으로 공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을 체험하고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도로서 일하고 있다』며 『성모승천 수도회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언제든지 찾아오시면 환영한다』고 전했다.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작은 예수 수도회 수녀회 (상)
『수도자의 가장 중요한 몫이 하늘 나라를 증거하는 것이라면, 하느님을 증거하며 복음적 삶을 살 수 있는 영혼들은 신체 장애인이라도 진정한 수도자로서의 길을 갈 수 있다』.
1992년 박성구 신부에 의해 설립된 「작은예수 수도회 수녀회」는 건강한 이들과 장애인들이 함께 수도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설립된 수도회다. 설립 당시 활동수도회로서는 「세계 최초의 장애인 수도회」라는 기록으로 화제를 모았다.
수도회의 시발점은 창설자 박성구 신부가 서울 성산동본당 주임 신부로 재임중이던 1983년 10월 한 장애인 부부를 만난데서 비롯된다. 이 부부와의 만남은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삶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사제관에서 이들과 함께 생활을 하던 박신부는 이를 계기로 「작은 예수회」라는 영성 단체를 설립했다.
장애인 식구가 늘어나면서 별도의 공간 마련이 필요했던 박신부는 『고통 받는 저 장애인의 얼굴에서 영원히 미소가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이 하느님께로 부터 받은 나의 소명』이라는 깨달음으로 1984년 6월 7일 경기도 파주군 교화면 한 무허가 집에 「운정 사랑의 집」을 열고 본격적인 장애인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고통받는 장애인의 얼굴에서 영원히 미소가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은 나때문에 고생하시는 주님의 얼굴에 내가 새롭게 빛으로 거듭나는 생을 말하는 것』이라고 역설한 박신부는 「운정 사랑의 집」 명칭을 작은 예수회로 개칭하는 한편 후원회원이 늘어나자 수도회 창립 준비를 위한 봉헌자회를 설립했다.
또 성남 장애인 공동체 개설, 현리 장애인 재활원 개원 등 장애인들의 자립과 재활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던중 마침내 1992년 10월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수도회 설립 미사 허가를 받고 그해 12월 8일 수녀회 수도회 설립식과 함께 준비중이던 자매들의 착복식을 거행했다. 작은예수 수도회 수녀회의 영성과 목적은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고 말한 세례자 요한 처럼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날마다 커지게 하는 것, 즉 가장 고통스런 장애인 모습 속에서 예수를 만나고 사는 것을 중심으로 하면서 하느님 왕국을 회원들 안에서부터 건설해 나가야 하며 하느님의 영이 내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나」라는 이기의 욕심으로 만든 「나」만의 세상을 대속물로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인간은 모두가 장애인이고 모두가 일반인이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인간은 완전한 자가 없다』는 의미에서 작은 예수 수도회 수녀회는 「보이는 장애인의 모습이 안 보이는 우리의 참 모습」이라는 슬로건으로 사람들 모두가 복음의 정신으로 하느님 사랑 안에서 「함께 삶의 기쁨을」 나누며 스스로 영적 장애인임을 깨달아 부활한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의 기쁨을 누리고 세상의 큰 빛이 되는 것을 정신과 목적으로 삼는다.
또한 회원들은 장애인과 함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영적 장애를 인식하고 날마다 십자가에 계신 예수의 사랑으로 성장하며 온 세상 모든 사람이 「성령안에서 예수 살기」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인류를 위해 자신을 봉헌한다는 영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5년 1월 16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작은예수 수도회 수녀회 (하)
1998년 2월 28일 「작은 예수 수녀회와 작은 예수 수도회」를 정식 명칭으로 서울대교구장으로부터 교구 설립 수도회 회헌 회칙을 인준 받은 작은 예수 수도회 수녀회는 「고통받고 소외당한 이들이 인간적 삶의 존엄성을 모든 사람들과 평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사도직 활동의 생명으로 삼아야 한다」(회헌 36조)는 정신에 따라 지역 사회 안에서 장애인들과 기도 공동체를 이루며 생활하는 모습을 주된 활동 모습으로 드러내고 있다.
회원들에게 있어 특히 고통받고 소외당한 이들을 위한 복지 활동은 「성스러운 직무」로 여겨진다.
「함께 삶의 기쁨을!」이라는 수도회 정신을 세상의 큰빛이 되는 운동으로 적극 펼쳐 나가는 것을 사명감으로 지니고 있는 회원들의 기본 자세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복합적인 삶을 사는 것」.
삶의 현장인 세상에 직접 뛰어들어 자선이 아닌 나눔으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투신을 하며 대중과 함께 살때 회원들의 사도적 자세는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작은예수 수도회는 9~15명 인원을 기준으로 경기도 현리, 서울 중곡동, 화곡동, 경기도 역곡, 전라도 광주, 거제도 고현, 제주도 서귀포, 중국 등지에서 형제 공동체를 이루고 있으며, 용두동에서는 행려인 식당과 숙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서울 가양동에서는 「기쁜 우리 복지관」, 안산에서는 봉제 공장을 세워 장애인 가족들과 함께 삶을 나누고 있다.
아울러 1997년 한국 교회 밖으로도 시각을 넓혀 중국으로 진출한 수도회는 단동에 북한 · 중국인들을 대상으로한 「천의 공예품 유한 공사」를 설립, 양초 공장을 운영하는 동시에 식량 약품 나눔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또 천령시와 요양시에는 양로원 장애인 소공동체를 설립하기 위한 건물을 구입한 상태다.
한편 작은 예수 수녀회는 경기도 성남, 서울 구의동 화양동 불광동 등을 비롯 대구 거제 제주도 등지에서 장애인 공동체를 운영중이며 금천 노인 복지관 국립 재활원 등에서는 정기적인 기도회를 개최하고 있다.
수녀회 역시 1997년 3월 해외 진출을 시도, 브라질 상파울로에 행려인 무료 급식소 및 장애인 노인 공동체 「요셉의 집」을 마련했고 1999년 3월에는 미국 LA에 장애인 그룹홈을 위한 「리틀 지저스 패밀리」를 설립했다. 이밖에 작은예수 수도회 수녀회는 정신 문화 사업 일환으로 피정의집 운영, 출판사업, 음악선교, 성물제작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또한 성령기도회를 통해 수도회 창립 계기가 마련 됐다는 점에서 수도회 영성의 뿌리를 성령기도회에 두고 꾸준한 기도회로써 신자들과 함께 사도 시대와 같은 성령의 역사를 보존, 유지시켜 나가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울려 서로가 대속물 영성으로 생명의 빵이 되어 영육적 변화를 일으키는 「예수사랑 영성원」 건립을 추진중이다. 이 영성원은 이 시대 사람들 속에서 「함께 삶의 기쁨을!」 나누는 작은 예수의 영성이 흘러 나올 수 있도록 영성의 영양을 공급하는 자리로 준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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