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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릇한 시의 기원을 찾아서
---조순희 {바람의 이분법}의 시세계
이경수(문학평론가, 중앙대 국문과 교수)
1.
조순희의 두 번째 시집은 기원에 대한 탐색으로 가득하다. 푸릇한 최초를 찾아 멀리는 역사를 거슬러 오르고, 한편으로는 “유목의 낭만”(「풀빛 신전」)을 좇아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첫 시집 꽃 피우는 그 일(2019)에서 보여준 서정적인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한층 더 확장된 시세계를 보여준다. “새벽이면 복된 하루를 견인하는 마량진”이라는 현실로부터 출발해 “구약성서 속에서 40일 밤낮 떠다녔던 방주 위로 비둘기가 물어왔던/그 푸릇한 최초”를 탐색해 보기도 하고 “오래전 이방의 윤택한 말씀 품고 당도한 푸른 눈의 사내들” “바실 홀과 맥스웰”(「마량진에서 만난 최초」)의 흔적을 찾아보기도 한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서천에 뿌리를 내린 시인답게 시 쓰기를 통해 지역의 현재와 과거를 답사한다.
조순희의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 사이에는 겨우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첫 시집 출간 이후 초유의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했으므로 그 사이에 사실상 엄청난 시간적·문화적·정서적 격변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두 시집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출간된 시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푸릇한 최초를 찾아 기원을 탐색하는 조순희 시의 행보가 더욱 공감이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관심이기도 할 것이고 생명을 지닌 존재의 기원에 대한 관심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 시집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며 “길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방송을 틀면 연일/상한 빵처럼 부푸는 창백한 숫자들”이 보이고 “관 속에서 걸어 나온 소문이/좀비처럼 떠다”니는 시절을 우리는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너와 나의 거리가 서둘러 단속되고/마스크 쓴 봄이/소독약을 피해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서는 시절. 그 시절을 지나며 “너와 나”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결빙의 마음”(「부직포에 갇힌 봄」) 추슬러 어김없이 봄은 오고 또 왔지만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영영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예감하고 있다. 슬픈 예감 속에서 조순희의 시는 기원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오르거나 자연 속으로 눈길을 돌리는 선택을 한다. 그것은 푸릇한 시의 기원을 찾는 길이기도 하다.
2.
부여에서 태어나 서천에서 주로 살아온 조순희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서천의 로컬리티를 본격적으로 보여준다. 시의 공간으로 서천을 새롭게 호명하는 것은 물론 서천의 역사와 현재를 시를 통해 구축한다. 서천군 서초면 선암리, 한산면 신성리, 서면 마량리, 문산면 신농리, 종천면 지석리 등 서천의 구석구석을 소개함으로써 살아있는 삶의 터전이자 아름다운 시적 공간으로 서천을 새롭게 구축하는 일을 시 쓰기를 통해 실천하고자 한다. 문학의 공간으로 본격적으로 호명되지 못했던 서천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지역 시인으로서의 소명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햇살 맑은 날이면
투명한 ㅂ은 공중에 유리알 같은 깃발을 내걸었다
오래전 골목 끝으로 낡은 단어장을 던진 소년을,
바람은 알고 있었다 마을회관 안쪽 누군가의
등 굽은 무용담도 이젠 낙엽만큼 효험이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너라는 모서리에 묶여
백기처럼 펄럭이던 꽃무늬 손수건, 알고 보면 그 모두는
ㅂ이 너의 오후에게 저지른 수줍고 향긋한 만행이었다
(중략)
신성리 갈대밭에 가보면
태양의 세 번째 심장과 사랑에 빠진 바람이
노을 물든 서천을 두루마리처럼 언덕에 펼쳐놓고
붓보다 고운 갈대로 길고 긴 편지를 쓴다
-「바람의 이분법」 부분
한 지역에서 오래 산다는 것은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내력과 사연이 구석구석 깃든 곳에서 살아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것은 골목의 역사와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사연을 기억하는 일이자 지금은 사라진 장소와 그곳에 얽힌 사건을 기억해내는 일일 것이다. 인용한 시에서는 바람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어디든 갈 수 있는 바람의 속성을 빌려 구석구석을 누비며 과거의 시간을 불러오기도 한다. 바람이 가닿는 곳에서는 잊고 있던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다.
바람은 “오래전 골목 끝으로 낡은 단어장을 던진 소년을” 알고 있고 “마을회관 안쪽 누군가의/등 굽은 무용담도” 기억하고 있다. 이 시의 배경을 이루는 “신성리 갈대밭”은 바람이 시작되는 곳이자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는 바람 소리만큼이나 수많은 사연이 깃들어 있다. “신성리 갈대밭에 가보면” “태양의 세 번째 심장과 사랑에 빠진 바람이/노을 물든 서천을 두루마리처럼 언덕에 펼쳐놓고/붓보다 고운 갈대로 길고 긴 편지를 쓴다”고 갈대밭에 붉게 물든 노을이 가득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조순희의 시는 옮겨 적는다. 바람이 갈대밭에 쓰는 아름다운 편지는 마치 시 같다. 아마도 시인은 이런 시를 쓰고 싶은 모양이다.
갈대밭 갔다 햇볕 좋은 아침에
유목의 낭만 조우하러,
직선의 계절이 하늘로 크는 성소
해그림자 사이사이 바람이 들어있다
민낯의 표정 꺼내 혼자 울기 좋은 곳이다
마스크 벗고
개개비와 한참을 놀았다
바람의 목록 펼쳐 직립의 방식으로
흔들림을 건축하는 풀빛 신전,
저기 흰 구름 하나
방금전
내 안에서 부리 씻던 그리움이다
허리 휜 길 저만치
물속 유목의 날들 밀고 가는 금강,
유유하다
-「풀빛 신전-신성리 갈대밭」 전문
신성리 갈대밭을 “풀빛 신전”이라 부르는 이 시에서 주체는 “햇볕 좋은 아침에” “유목의 낭만 조우하러” 갈대밭에 간다. 드넓게 펼쳐진 갈대밭은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곳이므로 가히 풀빛 신전이라 일컬을 만하다. 그곳에서 주체는 현대 사회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유목의 낭만”을 조우하곤 한다. 드넓은 갈대밭을 가득 채운 갈대는 직선으로 자라는 성질을 지니고 있으므로 “직선의 계절이 하늘로 크는 성소”라고 갈대밭을 부른다. 바람이 깃들어 머물다 가는 이곳은 “민낯의 표정 꺼내 혼자 울기 좋은 곳이다”. 갈대밭을 웅성대는 바람 소리에 웬만한 울음소리는 묻힐 테니까.
그곳에서 시의 주체는 “마스크 벗고/개개비와 한참을 놀았다”. 지난 2년 7개월 사이에 마스크를 쓴 일상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는 각자의 골방에 갇혀 있던 시간을 지나 사람이 드문 들판이나 숲을 찾게 되었다. “바람의 목록 펼쳐 직립의 방식으로/흔들림을 건축하는 풀빛 신전” 신성리 갈대밭에 시의 주체도 자주 찾아들었던 모양이다. 인간의 발자취가 줄어들자 자연은 본연의 모습을 찾아갔음을 지난 2년 7개월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자연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시의 주체도 갈대밭이 이룩한 “풀빛 신전”을 우러러본다. “저기 흰 구름 하나”에서 “내 안에서 부리 씻던 그리움”을 발견하고 “저만치/물속 유목의 날들 밀고 가는 금강”이 유유히 흐르는 것을 목격한다. 조순희 시가 그리는 풀빛으로 가득한 신성리 갈대밭의 풍경은 숭고를 경험하게 한다.
푸른 바람 회화나무 잎을 분다
태양이 그림자를 받아 적고 있고
기와집 몇 채
그림처럼 앉아있다
낮달의 시선 따라
오래된 인연을 만나러 가는 오후
홍살문을 들어서자
솔향 한 움큼 훅- 스쳐 온다
사위어 가는 나라의 명운 앞에서
지절의 삶을 살다 간 목은,
영당 앞 매화나무로 서 있다
담자색 햇살이 서원의 어깨 감싸고 있는 담장 아래
시간을 껴입은 배롱나무가
내 다가가는 발소리에 귀 쫑긋하다
장판각 문살 스치며 불어오는
푸른 바람 몇 점, 더운 이마 식혀주는데
초록을 밀며 돌아 나오는 길목 어디쯤에서
피안의 언덕 같은 당신 만났으면 좋겠다
-「문헌서원 가는 길」 전문
문헌서원은 충남 서천군 기산면에 있는 서원으로 고려 후기 이곡과 이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곡과 이색은 부자지간이다. 이색은 정몽주, 길재와 함께 고려말 삼은(三隱)으로 불리며 고려가 멸망한 후 은둔했다. 이 시는 서천의 로컬리티를 환기하는 장소로 문헌서원을 호명한다.
문헌서원 가는 길에는 회화나무에 “푸른 바람”이 불고 “태양이 그림자를 받아 적고 있고” “기와집 몇 채”가 “그림처럼 앉아있다”. 시의 주체는 “오래된 인연을 만나러” 그곳에 간다. “홍살문을 들어서자/솔향 한 움큼”이 “훅- 스쳐 온다”. 시각적으로 묘사되던 풍경에 후각적 감각이 더해지면서 문헌서원에 가 본 독자들이나 비슷한 서원에 가 본 적이 있는 독자들은 마치 문헌서원 가는 길에 함께 있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영당 앞 매화나무”를 보며 시의 주체는 “사위어 가는 나라의 명운 앞에서/지절의 삶을 살다 간 목은” 이색을 떠올린다.
“담자색 햇살이 서원의 어깨 감싸고 있는 담장 아래/시간을 껴입은 배롱나무”를 시적 주체는 마치 연인을 바라보듯 반갑게 마주 본다. “내 다가가는 발소리에” “배롱나무가” “귀 쫑긋”한다고 느끼는 것은 그의 마음이 투영된 것이겠다. 붉은 배롱나무꽃이 만발한 모습에서 “오래된 인연을 만나러 가는 오후”의 설렘이 느껴지기도 한다. “초록을 밀며 돌아 나오는 길목 어디쯤에서/피안의 언덕 같은 당신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게 하는 것도 풍경과 장소의 힘이다.
조순희의 시를 읽다 보면 “천 개 돌의 전설이” 지키고 있다는 “천방산”(「시간에 말을 걸다」), “배낭 가득 뻐꾸기 소리, 산물 흐르는 소리, 제비꽃 웃음소리를 담아오”게 하는 “희리산 자락 숲길”(「봄의 생태학」) 등 충남 서천 곳곳의 지명과 아름다운 풍광을 만나게 된다. 그곳을 찾아 배낭 메고 길을 나서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시이다.
3.
조순희의 이번 시집은 여성들의 삶을 공들여 그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1부에 등장하는 조선 시대 여성 시인들에 대한 시이다. 시의 기원을 탐색하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자신의 시 쓰기의 기원을 신부용당, 임벽당 김씨 같은 조선 시대 여성 시인들에게서 찾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그녀들은 충남 서천의 시인이니 말이다. 여성에게 글을 읽는 것은 물론 글쓰기가 좀처럼 허용되지 않았던 시절 여성 시인으로 이름과 작품을 남긴 그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앞당겨 본 것이겠다. 여성 시인으로서 시를 쓰는 것이 지니는 의미의 기원을 그로부터 찾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초록에 밑줄 긋는 사이
길섶 망초꽃 부용당을 수놓고 있다
그녀의 옛 숭문동에 이르러
풀물 배인 바람을 듣는 신발 두 짝
꽃신 자국인 듯 토끼풀 간간이 펼쳐있다
문향한 여백 너머 마주 오는 먼 눈빛 하나
이곳쯤이었을까
조카들 더불어 천진하게 시문에 젖던 곳
남쪽 강 물결지듯
산딸나무 흰 모시 쓰고 마실 가는데
어느 먼 여로에 뒤설레던 그녀
죽어서도 살아있는 삶 하나 꺼내 든다
봉인된 시간을 곰곰이 걷는 유월.
어느 집 낡은 담장 너머로 얼굴 내민 접시꽃
묻고 싶은 말 몇쯤 마음에 둔 채
오동나무 그늘 밀며 돌아오는 해거름
그녀 수틀 안 꽃들 길을 내고 있다
-「어느 집 낡은 담장 너머로」 전문
시의 1연에 등장하는 ‘부용당’에는 ‘충남 서천군에서 태어났던 조선 시대 여성 시인’이라는 주가 붙어 있다. 부용당은 조선 후기에 활발히 활동한 여성 한시 작가 신부용당(申芙蓉堂, 1732~1791)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신부용당은 신호(申澔)의 딸이자 윤운(尹惲)의 부인으로 당대 문장가였던 석북 신광수, 진택 신광하 등 남자 형제들의 문풍에 힘입어 일찍이 글을 익히고 다수의 한시를 창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정 형제들과 함께 묶은 문집 숭문연방집(崇文聯芳集)에 신부용당의 ‘부용시선(芙蓉詩選)’이 실려 있고 부용당집도 전한다.
신부용당에게 “옛 숭문동”은 남자 형제들과 함께 시문을 읽고 쓰던 혼인하기 전의 기억이 아로새겨진 곳이자 시인으로서의 최초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이 시의 주체는 “그녀의 옛 숭문동에 이르러/풀물 배인 바람을 듣는 신발 두 짝”을 마주 한다. 그곳에서 주체는 신부용당의 흔적을 찾는다. “꽃신 자국인 듯 토끼풀 간간이 펼쳐있”는 모습도 그에겐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고 “문향한 여백 너머 마주 오는 먼 눈빛 하나”를 느끼며 “조카들 더불어 천진하게 시문에 젖던” 부용당의 모습을 떠올린다. “산딸나무 흰 모시 쓰고 마실 가”며 “뒤설레던 그녀”를 짐작해 보며 “봉인된 시간을 곰곰이” 걸어 본다. 신부용당이 남긴 시문으로 인해 조선 후기 여성 시인으로 살았던 그녀의 삶은 “죽어서도 살아있는 삶”이 된다. 시의 주체 또한 신부용당과 하나 되어 “그녀 수틀 안 꽃들”이 내는 길을 걷고 있다.
곡선을 걸어요 오래전 당신이
길에 닿으면 은행나무 두 그루 마주 서 있어요
노랑들 온통 출렁이죠, 가을엔 나의 오랜-도 낙엽이 지지만요
들판에 척 걸쳐진 한가로운 노래 높은음자리표로 흘러요
이제 그녀를 만나러 가야 할 시간, 임벽당
어쩌면 은행나무 아래에서 오래된 바람을 방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아니면 선취정仙醉亭 뜨락을 거닐고 있을지도
(중략)
남당리에 가면 우물처럼 깊이 출렁이는 눈동자 있죠
그곳 도화동에서는 복숭아꽃도 화폭에서 사철 피고
흰 수틀 안에서 봄이 첫잠을 깨지요
방금 뒷산에서 들썩인 소쩍새를 베갯잇에 수놓는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
보이나요?
궁벽했던 오백 년 여필종부의 뜨락
청색의 시간 딛고 훅, 감겨오는 시의 성률
환히 전해와요 파란의
임벽당칠수고林碧堂七首稿가 가난처럼 다가와요
헤진 모시 적삼에 배꽃 가득 안고
꿈인 듯 생시인 듯 내게로 걸어오는 당신,
높이 뜬 달빛도 잘만 꼬아서 이으면 몇 필 모시가 될 수 있을까요?
오래된 시간 저쪽
짤깍짤깍 베 짜는 소리 후렴처럼 들려와요
-「오랜, 을 꺼내다」 부분
임벽당 김씨(1492-1549)는 조선 중종 때의 여성 시인이다. 부여에서 태어나 혼인을 한 후 남편 유여주를 따라 남편의 고향인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에서 살았으니 부여에서 태어나 서천에서 산 조순희 시인과 행적이 유사하다. 조선의 3대 여성 시인 중 하나인 임벽당 김씨의 흔적이 서천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각별했을 텐데 부여 태생이기도 하니 그 각별함은 더했을 것이다.
이 시에도 등장하는 옛 도화동 자리에는 청절사와 임벽당 시비가 남아 있으며 임벽당 김씨 부부의 묘도 남당리 청절사 가는 길에 볼 수 있다. 500년 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마을을 지키고 있고 임벽당 김씨가 살았던 집 근처에는 선취정과 임벽당이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 시는 임벽당을 만나러 가는 길을 묘사하고 있다. “곡선을 걸어” “길에 닿으면 은행나무 두 그루 마주 서 있”고 “노랑들 온통 출렁이”는 남당리에 이르게 된다. 그곳에서 시의 주체는 임벽당의 흔적을 감지한다. “어쩌면 은행나무 아래에서 오래된 바람을 방생하고 있”거나 “선취정 뜨락을 거닐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창호지에 비친 저 그림자”나 “밤하늘로 번지”는 “댓잎 사운대는 소리”에서도 임벽당의 모습을 발견한다.
“복숭아꽃도 화폭에서 사철 피”는 “도화동에서” 사대부가의 여인으로 “방금 뒷산에서 들썩인 소쩍새를 베갯잇에 수놓”기도 하면서 “궁벽했던 오백 년 여필종부의 뜨락”에서 “청색의 시간 딛고” 피어올랐을 “시의 성률”을 시의 주체는 온몸으로 느낀다. 임벽당이 남긴 것으로 전해지는 “임벽당칠수고”가 가난한 사대부가 여인의 삶 속에서 비롯된 것임을 아는 것이다. “헤진 모시 적삼에 배꽃 가득 안고/꿈인 듯 생시인 듯 내게로 걸어오는 당신” 임벽당에게서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운명을 엿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래된 시간 저쪽”에서 “후렴처럼 들려”오는 “짤깍짤깍 베 짜는 소리”야말로 임벽당에게서 시의 주체에게로 유전되는 시의 기원의 소리가 아니겠는가.
4.
<시인의 말>에서 조순희 시인은 “하늘이 감동하는 시까지는 멀다 할지라도/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고백한다. 이런 마음으로 쓰인 시들이 이번 시집에서는 눈에 띈다. 독거노인을 비롯해 낡고 늙고 버림받은 사람들이나 대상들이 조순희 시에 종종 모습을 드러낸다.
밤의 집에 침묵이 찾아오면 고요는 제 옆구리를 헐어
그림자를 내곤 하였다
이따금 문밖에선, 야윈 달이 대나무 그림자를 베고 누웠다
맨드라미가 태양을 켠 한낮, 방금 전보다 1g 더 소멸된 노파의 생이 애완견 등을 쓰다듬고
뒷산 뻐꾹새 소리보다 반 박자씩 늦게 당도하는 눈꺼풀 너머로 졸음을 여닫는 고양이
내일이 처음이 되는
세월의 이삭을 줍는 사이 그녀, 천천히 하나의 유적이 된다
그녀와 첫 만남을 꺼낸 것은 햇살 부스러지는 여름이었다
장마였을까
몸속 소화불량을 꺼내 시큼한 것들 울컥울컥 토해내고
여기저기 막히고 휘고 뒤틀린 퇴행성 징후들 개미처럼 기어 다니는
수심의 곡절 너머
독거가 가져온 고립을 세일 상표처럼 달고서 울컥 밀물지는 눈, 물을 찍어냈다
세상 모든 일몰들이 귀가할 곳은, 불 꺼진 창 밑이 제격인지
(중략)
노파 하나, 늙은 마루에 앉아
잔고가 얼마 남지 않은 가을볕을 자신의 독백 속에다
오래 퍼 담고 있다
-「햇살을 정산하다」 부분
대도시의 삶보다는 자연 가까이 지내는 시골의 삶에서 노인을 더 자주 마주치게 된다. 노동 인구의 상당수가 도시로 몰리는 요즘은 더욱 그러하다. “밤의 집에 침묵이 찾아오면 고요는 제 옆구리를 헐어/그림자를 내곤 하였다”라는 첫 문장의 묘사는 서천에서 오래 머문 시적 주체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겠다. 도시는 한밤중에도 좀처럼 고요를 경험하기 어려운 곳이니 말이다.
하루하루 더 소멸되는 “노파의 생”은 “애완견 등을 쓰다듬고” “뒷산 뻐꾹새 소리보다 반 박자씩 늦게 당도하는 눈꺼풀 너머로 졸음을 여닫는 고양이”를 돌보며 “천천히 하나의 유적이” 되어 간다. 반려동물 외에는 아무도 찾아들지 않는 독거노인과의 만남을 시의 주체는 기억한다. “몸속 소화불량을 꺼내 시큼한 것들 울컬울컥 토해내고/여기저기 막히고 휘고 뒤틀린 퇴행성 징후들 개미처럼 기어 다니는/수심의 곡절 너머”를 짐작하고 그 고립감에 공감의 눈길을 보낸다.
“노쇠한 근골”로 인해 “보행”이 “불편”해졌지만 “무료급식소 근처 온기 가득한 기억들”은 “아직 지우고 싶지 않”다. “식솔들”은 “대처로 쓸려나간 지 오래고” “일 년에 한두 번/손님처럼 건너가는 것이 고작이”다. 정기적으로 다녀가는 “목욕차”가 노인의 안부를 물을 뿐이다. “늙은 마루에 앉아/잔고가 얼마 남지 않은 가을볕을 자신의 독백 속에다/오래 퍼 담고 있”는 “노파 하나”의 모습은 우리네 시골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모습이다. 언젠가 누구에게나 찾아올 그 고립의 시간을 조순희 시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빈집의 내력을 읽는 일은 낡은 퇴적층 한 채 펼치는 일
오랫동안 닫아걸었던 문 열고 들어서니
헐벗은 마루가 풍경을 들여 앉혀놓고 있다
바람이 거미줄을 건드리자 툭, 쏟아지는 묵은 안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유산처럼 간직한 채
초인종 없는 대문이 낯선 방문을 경계한다
많은 식솔 거느리던 여러 개 가마솥과 입 큰 물두멍
장독대 배부른 항아리들과 두 개의 굴뚝이
사람들 제법 들락거리던 둥지였음을 말해주는데
나이 먹은 우물이 배회하는 햇살을 불러다 씻긴다
-「빈집」 부분
공간과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묘하게 닮아간다. 독거노인이 많이 사는 시골에는 그만큼 빈집도 늘어간다. 시의 주체는 “빈집의 내력을 읽는 일”이 “낡은 퇴적층 한 채 펼치는 일”임을 알고 있다. “오랫동안 닫아걸었던 문 열고 들어서”면 “헐벗은 마루가 풍경을 들여 앉혀놓고 있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유산처럼 간직한 채” 빈집은 거미줄에 둘러싸여 “낯선 방문을 경계”하고 있다.
“많은 식솔 거느리던 여러 개 가마솥과 입 큰 물두멍/장독대 배부른 항아리들과 두 개의 굴뚝이” 한때는 “사람들 제법 들락거리던 둥지였음을 말해”주지만 “옛사람 떠나고 자녀들 대처로 나간 지 오래”인 지금은 “유통기한 지난 시간들”이 “밀봉된” 빈 “고택”일 뿐이다. 시의 주체는 사람이 떠나 폐가가 되어 버린 빈집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묵은 안부”를 묻기도 하고 “망각 속으로 밀쳐졌던 기척들을 호명해 봉당에 불러 모으”기도 한다. 빈집의 흔적을 통해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내력을 읽”고 “낡은 퇴적층 한 채 펼치는 일”이야말로 시의 몫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다.
5.
첫 시집에 이어 이번 시집에서도 다채로운 꽃 이름이 등장한다. 시를 읽으면 조수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 수 있다고 했던 공자의 말을 조순희의 시는 지침으로 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시집에서도 자연 속으로 들어가 낭만적 소요를 하는 시적 주체의 모습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망초꽃, 산딸나무꽃, 복숭아꽃, 배꽃, 동백, 구절초꽃, 민들레, 제비꽃, 사과꽃, 냉이꽃, 맨드라미, 코스모스, 봉숭아, 카네이션, 무화과나무꽃, 백일홍, 감자꽃, 개망초꽃, 산수유꽃, 수선화, 용담꽃, 벚꽃, 살구꽃, 복수초, 덩굴장미 등의 꽃과 매화나무, 배롱나무, 감나무, 물푸레나무, 가시나무, 매실나무, 모과나무, 느티나무, 산사나무 등의 나무가 시집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산딸나무 한 그루 하얀 등불 켰다
숲,
환하다
해 저물어도 적막하지 않겠다
-「산딸나무꽃」 전문
“봄의 입구에”서 피어나는 “동백”을 보고는 “겨우내 발설하지 못한 눅눅한 그리움”(「향긋한 망명」)을 읽어내고, 봉숭아를 보고는 “오랫동안 닫아두었던 울음”(「봉숭아」)이 터진 모습을 연상한다. 인용한 시에서도 시의 주체는 산딸나무꽃에서 “숲” 전체를 “환하”게 밝히는 “하얀 등불”을 본다. 흔히 산딸나무꽃이라고 알고 있는 십자 모양의 크고 넓은 흰 꽃잎처럼 보이는 부분은 사실은 꽃싸개잎(포엽)이라고 하는데 아름다운 모습이 하얀 등불을 켠 것처럼 보여 눈길을 사로잡는다. 산딸나무꽃을 본 사람이라면 “해 저물어도 적막하지 않겠다”는 시적 주체의 발화에 공감할 것이다. 꽃과 풀과 나무의 생태를 잘 알고 있는 조순희의 시는 꽃의 비유를 통해 인생을 통찰한다.
꽃도 피우지 못하는 나무라고
말을 뱉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라지는
사람 있다
그 말 꿀꺽 받아 삼킨다
마음에서 가시가 되는 느낌표 하나
견디는 일쯤은 이골났다는 듯
침묵 딛고 그녀 몸속 여백에
피어난 꽃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꽃
피었다
-「무화과나무꽃」 부분
누가 저 여인을
아무 데서나 마음 여는 꽃이라 하였는가
아무에게나 마음 열어 웃고 있지만
아무렇게나 살지 않는
달갑지 않은 시선일랑 거두어 달라며
길섶 망초꽃 순절의 향기 뒤척인다
허공에 발목 묻고 노숙의 잠 삼키는 그녀,
위로받고 싶은 사연 심중에 담고서
백야의 밤을 건너고 있다
-「개망초꽃」 부분
무화과꽃을 향해 “꽃도 피우지 못하는 나무라고” 함부로 상처 내는 말을 내뱉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라지는/사람”이 있다. 살다 보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정작 자신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를 때가 많다. 상처를 입은 사람은 있는데 가해자는 없거나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셈이다. 상처 입은 이들은 상처 입고도 “그 말 꿀꺽 받아 삼”키고 “견디는 일쯤은 이골났다는 듯/침묵 딛고” 일어나 꽃을 피운다. 무화과꽃에서 시의 주체는 그런 인생사를 읽어낸다.
유월이면 길가에 흔하게 피어 있는 개망초꽃은 이름부터 ‘개’망초꽃이다. “흔들림에 익숙한 듯” “바람을 두른 소복 여인”처럼 흔들리며 서 있는 개망초꽃을 향해 “아무 데서나 마음 여는 꽃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입이 여기도 있다. “아무에게나 마음 열어 웃고 있지만/아무렇게나 살지 않는” 꽃이라며 함부로 말하는 입을 향해 시의 주체는 발화한다. “허공에 발목 묻고 노숙의 잠 삼키는 그녀” 개망초꽃에게서 흔들림에 익숙한 듯 세파에 시달려 온 비슷한 신세의 여성의 삶을 읽어낸 것이겠다.
조순희의 두 번째 시집은 팬데믹을 경험한 이후의 우리 삶에 대한 성찰과 여성 시인으로서의 자각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리고 여성 시인이자 팬데믹 이후를 살아가야 하는 기후 위기 시대의 시인으로서 시의 기원에 대해 탐색하고자 한다. “다 잃고 돌아왔어도 살아갈 날만 보아야 한다”고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마침내 깨달은 시인은 “오후 같은 생의 한 구절에/따뜻한 밑줄을 긋는”다. 살아가다 보면 허물어질 때도 있고 그럴 때 “무너져 내리는 건 순간의 일”임을 시인도 모르지 않지만 “장마 지난 후/허물어져 내리는 논두렁을 일으켜 세”우는 “포크레인”을 보며 “오래전 걸어간 누군가의 처음을 따라/살아갈 날의 마름질”(「마름질」)이 필요함을 깨달은 것이겠다. 조순희의 시가 긋는 따뜻한 밑줄에 독자들 또한 위로받으며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