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잔치 (창 43: 16-34)
(요약)
요셉의 베푼 잔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의 잔치에 들어가려면 여러 가지가 준비 되어야 한다. 먼저 하나님의 잔치에 들어가려면 마음에 예수님을 모셔야 한다. 예수님 없이는 천국은 한 발자국도 들어갈 수 없다. 다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의 공로를 믿어야 한다. 율법의 정죄 아래서는 죽음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죄악을 성령과 말씀으로 씻어야 한다. 칭의보다 성화가 더 깊은 은혜의 단계가 된다. 날마다 하나님께 예배하며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명에 붙들려 복음전도와 이웃 사랑에 충성해야 한다.
(강해)
오늘 본문은 요셉이 형제들을 만나 잔치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이 잔치는 요셉이 자기를 베일에 감춘 체 한 잔치라는 점에서 요셉의 감정 다르고 형제들 감정 다른 좀 독특한 잔치입니다. 그러가 하면 형제들을 차서대로 앉히고 참 신기함이 존재하는 잔치였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도 자기를 계시하실 때 우리의 영적 상태에 따라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더 많이 체험하고 그 은혜를 풍성히 받으려면 주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과 사랑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차서를 속일 수 없습니다. 신앙 수준에 따라서 은혜의 깊이가 다릅니다. 이것은 소성강이 그러하듯 은혜 체험의 깊이도 여러 수준이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의 잔치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우리 마음에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16절에 “요셉이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그랬습니다. 요셉이 잔치를 마련한 것은 자기 동생 베냐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냐민이 없었다면 어림없는 일입니다. 만나주기는커녕 애굽을 넘본 정탐이라 하여 잡혀갈 수밖에 없죠. 창43:3 보세요. “그 사람이 엄히 우리에게 경계하여 가로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하지 않았습니까? 5절에도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구원 받고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려면 필수적인 요건이 바로 마음에 예수님이 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 없이는 천국 가기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요, 예수님이 계셔야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 없이는 아무리 예물을 준비하고 공로를 쌓고 선행을 베풀어도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에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습니다.
2. 더 풍성한 은혜를 누리려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공로를 의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18절에 보면 형제들이 요셉을 의심합니다. 잔치에 참여시키다니 혹시 우리를 누명 씌어 노예 삼고 가진 것을 빼앗으려는 것 아닐까?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일 우리 자루에 넣여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를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의심했습니다.
이것은 형제들이 요셉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아직 요셉인지 알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잘못 될까봐 오해되지 않도록 돈이 자루에 도로 있었던 일을 자초지종 해명합니다. 그러자 요셉의 하인들이 대답하기를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위로합니다. 위로할 뿐 아니라 옥에 가둔 시므온까지 이끌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죄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알지 못하여 두려워하고 그 사랑과 용서의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다른 일할 때는 명랑하던 사람이 하나님을 생각하거나 교회에 나오면 마음의 정죄를 받아 우울해지고 답답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버지의 사랑과 복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십자가에서 담당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알 때 기쁨이 있습니다. 평안이 있습니다.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 심령은 보혈로 말미암아 양심의 평안을 얻기까지 결코 평안할 수 없습니다. 오해를 풀고 아버지 탕자까지도 받으시는 그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이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롬5:1-2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두려움의 감옥살이 그만하고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와 양심의 자유 얻으시기 바랍니다. 아직 복음 훈련 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 단계에도 이르지 못하고 대부분 머물러 있습니다.
3. 성령과 말씀으로 씻어야 받아야 합니다.
24절에 “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고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며 그 나귀에게 먹이를 주더라” 했습니다. 여기 발을 씻게 했는데 이 풍습은 근동 지방의 가장 기본적인 손님 접대법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만찬을 드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은혜의 잔치에 참여하려면 씻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칭함을 받았지만 우리의 남아 있는 죄성을 씻어야 인격적인 만남이 가능합니다. 용서와 씻음은 다릅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이라는 공식은 변함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씻은 후에 풍성한 은혜 주시지 그냥 주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국민이 되는 것과 예루살렘 성민이 되는 것은 다릅니다. 느헤미야서에 나오듯 예루살렘 성민은 여호와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고 원수의 침입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처럼 칭의를 노래하면서도 죄와 싸우고 세상과 싸우고 비진리와 싸우며 새롭게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깊은 새로운 은혜는 경험할 수 없습니다.
계22:14-15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했습니다. 진실로 행실을 빨지 않으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 믿어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의 영역에 산다고 할지라도 죄 씻음 받기 전에는 깊은 은혜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우리 체험도 그것을 증명합니다. 심령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듯이 하나님을 아무나 체험하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악을 성령으로 씻고 말씀으로 생활을 고친 만큼 임합니다.
4. 하나님을 열심히 경배해야 합니다.
26절에 “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그 집으로 들어가서 그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니” 이 말씀 역시 요셉의 꿈이 재차 이루어지는 장면입니다. 열 한 곡식 단과 해와 달과 별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의 성취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겸손히 예수님을 주로 부르고 왕 삼아 순복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극진히 경배해야 합니다. 예배생활 잘할 때 은혜를 받습니다. 기도와 찬송과 감사와 헌신과 충성이 부족하지 않을 때 은혜가 임합니다. 초대교회도 열심히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고 사랑할 때 성령충만 받았습니다. 이 일을 하나님 앞에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다.
천국에서는 우리의 모든 섬김이 다 기록되고 있습니다. 박용규 목사님이 잠시 병으로 죽어 천국에 갔을 때 주님은 다섯 가지의 질문을 하셨다고 합니다. ①너는 땅에서 성경을 얼마나 읽었느냐? ②너는 헌금을 얼마나 했느냐? ③너는 땅에서 전도를 얼마나 했느냐? ④너는 십일조를 어떻게 했느냐? ⑤너는 기도 생활을 얼마나 하였느냐? 우리는 성령이 충만하도록 충성을 다하여 감당해야 합니다.
다윗이 나라를 다스릴 때 가장 어려웠던 때가 무엇이었습니까? 수루야의 아들들 때문이었죠? 삼하3:39에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날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 스루야의 아들들이 누굽니까?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 세 사람입니다. 이들 없이는 용신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직무를 맡았고 목숨 건 충신이면서도 너무 자행자지해서 다윗에게 어려움을 많이 준 사람들입니다.
교회에서도 질서 안에서 충성해야지 교인들이 충성해도 어려울 때가 간혹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 사람은 우리의 지정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왕 삼았지만 우리 마음이 자행자지하니 문제라는 말씀입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5.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34절에 “요셉이 자기 식물로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오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요셉이 베냐민에게만 오배나 줍니다. 아버지가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혔듯 특별한 사랑의 표시입니다. 요셉이 형제들과 함께 살 때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 때문에 언제나 미움 받고 시기를 받았습니다. 그럴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형제들은 베냐민을 사랑하고 아끼고 위해주고 더욱 즐겁게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나중에 더 설명이 있겠지만 그래서 형제들과 요셉은 더욱 더 즐거운 잔치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더욱 온전한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려면 이웃 사랑을 가지고 예수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갈릴리로 가야 하듯이(막16:7) 우리는 예수님의 동역자가 되어 하나님 사역의 현장에 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 수고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구원 받고 하나님 사랑 받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주님의 남기신 것을 내가 지고 교회를 위해서 수고해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 핍박을 받을 때 스데반 집사와 같이 그 얼굴은 광채를 띤 영광스런 얼굴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은 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정오의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사랑의 넘치는 은혜의 잔치를 베푸시기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를 구주로 믿고,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공로를 믿고 마음으로 화평하며, 엎드려 죄악을 회개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열심히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전도하여 하나님께서 더욱 더욱 풍성한 은혜로 부어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