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와 호박 사이
박경선
- 모과나무에서 미인 대회가 열렸다./네모 모과, 동그란 모과 모두 참가했다.
대상은 오랑우탄을 닮은 울퉁불퉁한 모과/잘생긴 모과는 그저 그런 모과였다.-
이정인 선생의 동시집을 펼치자마자, 한바탕 웃고 말았다. 모과의 진수를 이보다 더 명쾌하게 꿰뚫어 볼 수 있을까.
본래 모과의 이름은 열매의 모양이 참외와 닮아서 '나무에 달리는 참외'라는 뜻의 목과(木瓜)에서 비롯되었다. 어쩌면 그 이름마저 투박한 탓일까. 세상은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과실 망신은 모과가 다 시킨다'는 속담을 빌려, 모과를 못생긴 과일의 대명사처럼 낙인찍어 왔다.
하지만 모과를 찬찬히 들여다본다면, 그런 말을 함부로 들을 존재가 아니다. 봄이면 은은한 분홍빛 화관을 쓰고, 가을이 깊어지면 가지마다 울퉁불퉁한 노란 소행성들을 매단다. 오랜 세월 비바람을 견뎌낸 나무껍질은 거칠고 투박할지언정, 그 속에는 생명의 단단한 근육과 당당한 세월이 축적되어 있다. 경남 의령 충익사, 곽재우 장군의 사당 곁을 280년 동안 말없이 지켜온 모과나무를 보라. 그 묵직한 세월의 위엄을 어찌 세상의 얄팍한 척도로 '못생겼다' 한마디로 깎아내릴 수 있으랴.
모과의 진면목은 껍질의 결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어나는 향기에 있다. 차가운 방 안, 혹은 자동차 속 바구니에 담긴 모과는 눈을 사로잡으려 요란을 떨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 안에 품었던 은은한 향기를 공간 깊숙이 스며들게 풀어낼 뿐이다.
시골 마당에서, 혹은 찻집 장식장 위에서 노랗게 익어가는 모과를 만날 때면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마음이 다 차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 반드시 코로 향기를 맡는다. ‘흠 흠’ 코로 향기를 빨아들여봐야 온전히 만나보는 맛이 난다. 그런 모과가 성스럽게 도를 닦는 도인같이 느껴질 때, 사람을 바라보는 내 생각도 모과를 닮아간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겉모습과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가. 사람의 진가는 처음 만난 순간보다 함께 지내는 시간 속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모과의 향기처럼 오래 곁에 머물러야 비로소 알게 되는 아름다움!
울퉁불퉁한 모과를 마주할 때마다 묘한 안도감과 함께 웃음이 터지는 것은, 어쩌면 그 못난 열매 속에서 어린 날의 내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내 별명은 유독 내 얼굴을 타박하던 '목대기', 곧 모과였다. 언니들이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갈 때면 다른 동생들은 한 번씩 데리고 가면서도 나만은 한 번도 데려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크게 기가 죽거나 서운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런가보다 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내가 충격받은 일은, 수녀님이 엄마 등에 업힌 내 얼굴을 보고 한마디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부터였다. ‘이 아기는 얼굴이 못생겼으니, 공부를 시키세요. 그래야 잘 살겠어요.’ 했다는 그 말이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내 마음에 꽂혔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어 노력해왔다.
자라면서 모과를 볼 때마다 은근한 향기에 위안을 얻었다. 못생겼지만 향기가 깊어지는 열매. 모과는 내게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은밀하게 일러주었다. 남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보다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도록 따뜻하게 남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모과는 나의 어린 시절을 위로해 주었고, 살아가는 동안 마음에 새길 작은 기준이 되어주었다.
교대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을 때, 아이들을 처음 마주하는 순간마다 탤런트 같은 얼굴이 아니라는 사실이 묘한 미안함으로 다가오곤 했다. 그래서 새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나를 낮추는 유쾌한 주문을 준비했다. 성씨 박(朴)을 짓궂게 비틀어 '경상도에서 가장 신선한 호박'이라 풀이해주었다. 내가 먼저 호박임을 자처하면 아이들의 아쉬움도 웃음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내 예상보다 훨씬 기발했다. 미술 시간에 학급 표지판을 그리라고 했더니 커다란 호박 한 덩이 아래에 애호박 여러 개를 조롱조롱 매달아 놓았다. 그러고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반은 선생님이 호박이라서요. 우리는 애호박들이에요."
아이들은 그 그림을 들고 다른 교실까지 원정을 다니며 자랑질을 해댔다. 애호박이 된 것이 무슨 큰 자랑거리라도 되는 듯이 신나 하면서… . 못난 외모를 감추려던 선생의 의도가 아이들과 함께 즐기는 학급 놀이가 되어갔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담임의 외모를 평가하는 대신, 선생과 함께하는 놀이를 즐겼던 것이다. 어쩌면 교육이란 잘나고 못남을 평가하기에 앞서,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겠다.
졸업한 뒤에나, 어른이 된 뒤에도 아이들은 나를 잊지 않았다.
"호박 선생님, 길을 가다가 호박을 보니 선생님 생각이 나서 엽서 보냅니다.“
그 짧은 문장에 오래도록 마음이 따뜻해진다. 길가에 놓인 호박 한 덩이가 옛 선생을 떠올리게 했다니, 그보다 더 반가운 기억이 어디 있을까. 세월이 흘러도 호박을 볼 때마다 선생을 떠올리는 아이들이 있다면, 우리는 서로의 삶에 작은 향기 하나씩 나눠 담고 살아가는 부자가 된 셈이다. 세월이 흘러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푸근한 호박 한 덩이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생이 거둔 가장 눈부신 수확이 아니겠는가.
가을이 깊어가는 시골길, 식당 어귀에 투박하게 쌓여 있는 누런 호박들을 쉽게 만난다. 건강한 대지의 숨결을 품고 옆으로 넉넉하게 퍼져 자란 몸집으로 밥상을 따뜻하게 채워준다.
모과가 영혼을 채우는 '향기'라면, 호박은 남김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살뜰한 쓰임새'다. 생김새는 서로 달라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세상에 보탬이 되는 방식으로 존재의 이유를 증명한다.
인간의 삶 역시 이와 다르지 않겠다. 화려한 재능이나 눈부신 미색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가진 온기로 누군가의 하루를 밝힐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인생은 이미 충분히 찬란하리라. 이제 나는 안다. 내 삶의 자리마다 아이들과 나누었던 웃음과 눈물, 그 진심 어린 온기가 차곡차곡 쌓여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영혼의 부자로 살고 있음을. 외모의 아름다움은 계절처럼 스쳐 지나가지만, 영혼의 온기는 기억의 깊은 곳에 오래도록 머문다.
윤동주의 「서시」를 품어 안는 가을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소망했던 시인의 곧은 마음처럼, 나 또한 스스럼없이 자문해 본다.
”나는 얼마나 따뜻하게 살아왔는가.”
모과는 투박함 속에 제 향기를 잃지 않고, 호박은 거친 땅 위에서 기꺼이 밥상의 온기가 되어준다. 이제 나는 세상의 잣대 대신 스스로의 마음으로 나를 위로한다. 인간의 진정한 미덕은 타인의 눈에 비친 환영에 갇힐 것이 아니라, 자신이 품은 생명의 온기를 기꺼이 나누며 살아가는 데에 있다고.
모과와 호박 사이, 그 넉넉하고 향기로운 여백의 자리에서 나는 오늘도 나다운 아름다움으로 피어나고 싶다. (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