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屹九曲詩 -제7곡 만월담(滿月潭)
정구(鄭逑, 1543~1620)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1543∼1620). 본관: 청주(淸州). 자: 도가(道可). 호: 한강(寒岡). 시호: 문목(文穆). 이황과 조식에게서 성리학을 배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도록 선도하였다. 광해군 때에 대사헌이 되었다. 성리학에서 의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저작을 남겼다. 충주 운곡서원에 제향되었다.
七曲層巒遶石灘칠곡층만요석탄
風光又是未曾看풍광우시미증간
山靈好事驚眠鶴산령호사경면학
松露無端落面寒송로무단락면한
일곱째 굽이 겹겹 산봉우리 돌 여울을 두르니,
이런 풍광 또한 일찍이 보지 못하였네.
산신령도 호사가라 잠든 학을 놀라게 하는데,
무단이 솔잎에 맺힌 이슬이 얼굴에 떨어져 차갑구나.
層巒(층만): 겹겹의 산봉우리. 石灘(석탄): 돌 많은 여울.
未曾看(미증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山靈(산령): 산의 신령. 好事(여사): 일을 좋아하여 장난스럽게 개입함.
眠鶴(면학): 잠자는 학. 松露(송로): 소나무에 맺힌 이슬.
落面寒(락면한): 얼굴에 떨어져 차갑다.
제7곡 만월담(滿月潭)은 현재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의 수도계곡에 있습니다. 무흘구곡 가운데 제7곡부터 제9곡까지가 이 증산 수도계곡에 속한다.
다만 만월담의 정확한 지점은 오래도록 잘못 알려진 곳과 최근 재비정된 곳이 서로 다르다. 경상북도에서 발간한 「성주·김천 무흘구곡」 자료에 따르면, 종래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만월담으로 알려졌던 곳은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623번지이다. 그런데 정우락 교수 연구팀의 조사에서는 이곳보다 상류로 약 450m 올라간 평촌리 642번지 일대를 본래의 제7곡 만월담으로 비정하고 있다. 이곳은 너럭바위와 여러 크기의 바윗돌이 펼쳐진 물굽이로, 옛 경관의 특징이 더 잘 남아 있다고 한다.
특히 이 위치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무흘정사(武屹精舍)이다. 한강 선생이 1604년에 세운 무흘정사는 제7곡 만월담과 제8곡 와룡암 사이에 있었으며, 연구에 따르면 와룡암보다 만월담에 훨씬 가까웠다. 현재 한강 무흘강도지는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 298, 평촌리 670번지에 있다.
제7곡은 깊은 산속에서 만나는 빼어난 풍광과 청정한 분위기를 노래한 작품이다. 겹겹의 산봉우리가 돌여울을 감싸고 있는 모습은 처음 보는 듯 새롭고 신비롭다. 산신령이 잠든 학을 깨우기라도 하듯 소나무 이슬이 얼굴에 차갑게 떨어지는 마지막 두 구에서는 깊은 산중의 적막과 서늘한 기운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속세에서 멀어진 무흘의 깊고 그윽한 자연 속에서 시인이 느낀 신선한 감흥을 잘 보여준다.
주희의 제7곡을 참고해 보면
七曲移舟上碧灘 칠곡이주상벽탄
隱屛仙掌更回看 은병선장갱회간
却憐昨夜峰頭雨 각련작야봉두우
添得飛泉幾道寒 첨득비천기도한
칠곡 푸른 여울 배 띄워 거슬러 오르며
은병봉 선장봉을 다시 돌아보네.
어젯밤 봉우리 적신 비가 못내 정겨워
몇 줄기 폭포 되어 서늘함을 더하네.
隱屛(은병): 제5곡 부근의 대은병봉(大隱屛峰),
仙掌(선장): 선장봉(仙掌峰)
제7곡까지 올라온 뒤 이미 지나온 봉우리들을 回看(돌아보는)하는 장면이다.
飛泉은 전날 밤 비로 물이 불어나 절벽에서 힘차게 흘러내리는 산천·폭포.
특히 마지막 두 구는 경치 묘사라기보다, 밤비가 지나간 뒤 더욱 맑고 차가워진 산수의 기운을 포착한 대목이라 제7곡의 청량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