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더군다나 열세 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구원의 손을 내밀까. 당황스럽고 가슴 한 곳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제 막 출근하여 바이어 들의 전문을 챙겨보고 있는데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큰형님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 “동생, 나 용돈 좀 주면 안 될까?” 형님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고 있었다. 형님이 갑자기 왜 이러시지. 칠 남매의 막내인 나를 무척이나 아끼고 보살펴 준 큰형님이기에 염치없다는 생각보다는 근황이 염려스러웠다. 약속 장소로 나갔다. 성의를 다하여 준비한 봉투를 건네받자마자 “동생 미안하네.” 한마디 하고는 바람같이 사라지신다. 수치심을 조금이라도 단축시키려는 심정이었을 게다. 멀어져 가는 형님의 뒷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하루 종일 마음이 뒤숭숭하였다.
형님은 상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해병대 간부 후보생으로 입대하여 소위로 임관하였다. 해병대 장고 복장을 한 형님은 정말 근사했다. 빨간 줄무늬가 새겨진 장교 복에 금테 모자를 눌러 쓰고 짚 차에서 내리면 사방에 섬광이 비쳤다. 그렇게 멋진 모습은 여심(女心)을 여지없이 흔들어 놓기도 했다.
초등학교 오학년,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놀고 있는데 형님이 학교로 나를 찾아오셨다. 금테 모자를 눌러쓴 해병대 장교가 짚 차에서 내리더니 절도 있는 걸음으로 교무실로 간다. 나와 공놀이하던 아이들이 “누구야? 누구야? 멋있다.” 야단법석이다. 형님의 손을 잡고 교무실로 들어가니 처녀 선생님 두 분이 퇴근 준비를 하고 계셨다. 형님을 보는 순간 선생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형님은 여 선생님 두 분의 배웅을 받음 짚 차에 오라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가시고 나는 친구들과 공차기를 계속했다. 해 질 무렵, J 선생님이 내게로 와 형님한테 전해달라며 편지 한 통을 주셨다. 이런 낭패가 있나. 형님은 그대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었는데…. 벚꽃 축제 때 진해로 놀러 가도 되겠느냐는 J 선생님의 손편지. 어머니는 당장 찢어 버리라고 호통을 친다.
월요일 점심시간에 J 선생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형님의 반응이 무척 궁금하셨나 보다. “형님 장가갔냐.” 라고 묻기에 대뜸 “장가 갔는데요.”했더니 선생님의 안색이 돌변한다.
해병 중위와 시골 학교 여 선생님과의 로멘스는 그렇게 삼 일 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선생님의 순정을 흔들어 놓고 가버린 형님이 야속한 듯 그날 이후로 선생님은 나를 못 본 체했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눈길을 피했다. 해병대 장교를 형님으로 둔 것이 죄였을까. 선생님이 미웠다.
직업군인에게는 계급 정년 제도가 있다. 위관급에서 영관급으로 올라가려면 일정한 기간 내에 진급을 하여야 한다. 형님은 군수물자를 관리하는 보급 장교였다. 그때만 하여도 군수물자 부정 유출이 난무했고 상납 문화가 만연했다. 양심을 저버릴 만큼 진급에 연연하지 않아 결국, 대위로 군대 생활을 마감했다. 제대 후의 고달픈 삶을 생각하면 차라리 양심을 배반하고 시류에 몸을 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제대 후에 직업전선으로 뒤어 들었으나 거친 세파를 헤쳐나가기에는 형님의 성향은 너무 선비였다. 올곧은 성품에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수모는 결국 당신의 삶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퇴근 시간이었다. 형수님의 다급한 음성이 곽을 찢는다. “형님이 각혈을 심하게 한다.”고 식도정맥류, 고위험군 간경변증이었다. 삼알을 넘기지 못했다. 그렇게 54년 인생길을 마감하셨다. 당신에게 얼마나 힘든 세상이었으면 그렇게도 빨리 눈을 감고 싶었을까. 살아생전, 내게 주신 형님의 사랑이 너무 깊어 닭동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던 기억은 지금도 가슴을 울컥하게 한다.
삶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막네 동생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쳤을까. 형님의 고단한 삶을 진즉에 에아리지 못한 뉘우침에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형제간의 우애를 하늘같이 받들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유훈이 아스라이 귓전에 맴돈다.
고향산천 부모님 산소 곁으로 형님을 모셨다. 하늘나라에는 제발 부정한 상납 문화도, 고달프고 역겨운 일들도 없기를 두 손 모아 빌고 또 빌었다. 꽃상여가 언덕길을 영차영차 힘들게 오를 때 그 길이 마치 고달프게 살아온 형님의 인생역정 같아 상두꾼 어깨걸이에 지폐 한 장을 꽂아 넣는다. 영결종천(永訣終天), 이승의 온갖 시련 내려놓고 편히 가시라는 혈육의 정도 함께 언덕을 넘는다. 이승의 온갖 시련 내려놓고 편안히 잠드소서.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