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입원(入院) 한달 뒤 닥칠 일
개인적으로 병원(病院)에 입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의사가 입원(入院)을 좋아하지 않는다"니 이상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세상에 입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안 아프고 입원할 일 없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다.
하지만, 암(癌) 환자가 되면 좀 달라진다. 처음 외래(外來)에 오자
마자 "입원(入院)부터 시켜 달라"고 하는 환자들도 많고, 처음 외래
(外來)에서 30분이면 끝나는 항암(抗癌)치료를 입원(入院)해서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사정하기도 한다.
좋아져서 퇴원하라고 해도 퇴원하지 않으려는 환자도 있다.
퇴원 후 집으로 가는 대신 요양병원으로 가겠다고 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고령의 암(癌) 환자들을 둔 경우가 그러하다.
이들의 사연(事緣)은 다양하다. "자식들이 맞벌이어서 집에서 돌봐
줄 사람이 없다. 집은 불안하고 병원은 안심이 된다. 근처 요양병원이
시설이 잘 되어 있다" 등등….하지만, 어르신들 특히 팔십 중반의
어르신들이 요양차 병원에 입원(入院)하게 되면, 입원(入院)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빠지는 일이 허다 하다. 병원에 입원함으로써 명(命)을
재촉해서 돌아가시는 일도 허다하다. 이유는 이러하다.
병원에 입원하면 우선 공간이 제한된다. 집에 계시면 그래도 살살
집 밖에도 나가보고, 거실도 왔다 갔다 하고 소파에도 앉아 계시고,
화장실도 다니고, 식사하러 부엌까지 오는 등 소소한 활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하면 아무리 1인실이라고 하더라도 공간여유가
없다. 특히 다인실(多人室)이면 공간이 침대로 국한되니, 침대에 누워
있는 일밖에 딱히 할 일이 없게 된다.
노인(老人)분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못 하게 되다 보니 병원
내에서 복도를 걸으며 산책하는 일도 잘 안 하려 한다.
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으면 할 일도 없고 심심하다. 가족이나 친구
들도 만나지도 못하니 우울하게 된다.
누워만 있으니 소화도 안 되고 입맛도 떨어지고 식사량도 자연스레
줄어들게 된다. 딱히 할 일이 없이 그냥 침대에 누워만 있으면 다리에
근육이 빠지게 된다.
원래 보통의 젊은 사람들도 침대에 2주 만 누워 있으면 다리의 근육이
다 빠져서 못 일어나게 된다. 노인(老人) 들은 근육 빠지는 속도가
빠르고, 한번 빠진 근육을 다시 만들기가 무척 힘들다.
병원에 입원한 노인(老人) 분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대부분 종아리가
팔처럼 가늘고 흐느적거린다.
근육이 빠지면 모든 측면에서 다 나쁘다. 균형 잡는 능력도 떨어지고
우리 몸의 신진대사(新陳代謝) 능력도 다 떨어진다.
일어나는 것도 천천히 일어나게 되고, 걸을 때 휘청하게 된다.
그러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다가 침대에서 넘어진다.
병원에서 낙상(落傷)을 하면 환자 안전 문제 때문에 병원이 곤란해진다.
그러면 병원에서는 낙상(落傷) 위험이 높으니 침대에서 내려오지 말라고
한다. 침대에 누워서만 지내면 낙상(落傷)은 안 하겠지만 대소변을
침대에서 봐야 하게 된다.
졸지에 화장실도 못 가게 되고, 사람들이 와서 소변줄을 꽂고 기저귀를
채워 놓고 가버린다. 기저귀를 차고 침대에 누워서 대변을 보는 일은
참 곤혹스러운 일이다. 누워서 대변 보려면 배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대변을 치워야 하는 간병인에게도 참 미안한 일이다.
특히 설사를 하면 난감해진다. 항문을 누군가에게 내보이고 대변을
물티슈로 닦도록 하는 시키는 일은 여간 자존감이 떨어지는 일이 아니다.
내가 완전히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온몸의 근육이 다 빠져버리기에 꿀꺽 삼키는
근육도 기능이 떨어져 식사할 때 사레가 걸리게 된다.
그러면 폐렴(肺炎)이 생기게 되고, "앞으로는 입으로 먹으면 안 된다"고
하며 콧줄을 꽂는다. 콧줄이 들어와서 목을 계속 자극하니 목이 답답하고
아프다. 그러다 자다가 무의식적으로 콧줄을 잡아 빼게 되는데, 그러면
의사가 와서 "또 콧줄을 뺐느냐"고 타박을 하고, 콧줄을 다시 꽂으면서,
이번에는 콧줄을 못 빼도록 손발을 묶어 놓는다.
졸지에 소변줄, 콧줄, 기저귀를 찬 채 사지를 결박당하면 정신이 온전해
질 리 없다. 그러면 "나 좀 풀어 달라"고 소리를 지르게 되고, 사람들이
와서 '섬망 증상'이 생겼다고 하면서 '섬망약'을 준다.
'섬망약'을 먹으면 사람이 기운 없고 축 처져서 잠만 잔다. 정말로 헛것이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드러눕기 시작하면 한두 달을 못 버티고 돌아
가신다. 특히 팔순 중반의 노인분들은 아무리 잘 케어를 해도 그렇다.
끔찍하게 들릴 수 있어도 현실이 그러하다.
그나마 중환자실 안 가면 다행이다. 이 모든 사달의 발단은 입원이다.
병원에만 입원(入院)하지 않았어도 그럭저럭 지냈을 분들이 요양차
병원에 입원(入院)해서 누워 있음으로 인해 명(命)을 재촉하게 되는 것
이다. 당연히 의료진은 최선을 다했고, 가족들도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어르신은 돌아가셨다. 그런데 이게 과연 의료이고 이게 과연
효도인가?
가족들은 이야기한다. "한 달 전 만해도 멀쩡하셨다"고. 당연하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노쇠(老衰)하긴 해도 집에서 그럭저럭 지내셨다.
그런데 병원에 입원(入院) 하시더니 순식간에 이렇게 되었다.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고, 병원마다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다르니
병원마다 차이가 있다. 섣불리 일반화해 이야기하기 어려운 점이 있고,
안 그런 경우도 많다. 위에서 든 사례가 조금 과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흔히 보는 일이고, 의료진들은 이런 결과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쩌라는 거냐, 대안(代案)이 뭐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정말 집에서는 돌볼 수가 없어서 입원(入院)을 하는 수밖에 다른 대안
(代案)이 없는 분들도 있다.
무턱대고 입원(入院) 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일 또한 현명하진 않다.
다만 병원이라고 마냥 좋은 곳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결국은 최대한 스스로의 일상생활(日常生活)을 유지해야만 한다.
적어도 먹고, 씻고, 용변 보는 일은 마지막 순간까지 최대한 유지를
해야 한다. 정말 노쇠(老衰)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스스로의 생활이
어려워지는 순간이 오면 그때는 병원 입원도 고민해 봐야겠지만,
이제는 노인분과 작별할 순간이 오고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고 병원
으로 모셔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의 인간 다운 존엄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해
의료진과 미리 상의를 해야 한다. "우리 가족은 콧줄은 안 할 겁니다.
우리 가족은 중환자실은 안 갈 겁니다. 피검사는 안 할 겁니다."
이런 것을 미리 정해 놔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의료진이 뭐라 한다. "치료를 왜 안
받으려 하느냐, 그럴 거면 다시 집으로 모시고 가라" 이런 이야기도
듣게 된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렇게 미리 논의하는
가족이 환자를 포기하는 가족이 아니라 정말 환자를 위하는 가족이다.
팔순 중반의 어르신들은 최대한 병원에 (入院)하지 않으시도록
집에서 자꾸 부축해서 걷는 연습을 시키고, 천천히 꼭꼭 씹어서
식사를 드실 수 있도록 하고 대소변 잘 보시는지 체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병원이 마냥 좋은 곳은 아니더라...
[출처]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전문의 "김범석의 살아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