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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북한의 인권 문제
ㆍ북한 인권의 심각성
ㆍ북한 인권에 대한 유엔총회의 결의문
ㆍ미국의 북한 인권법
ㆍ한국의 반응
ㆍ한국 교회의 역할
(1) 북한 인권의 심각성
북한 인권에 관한 소식은 그 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오고 있다. 예컨대 체제에 위협적인 인물은 재판도 없이 공개처형을 받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져 고문과 중노동으로 죽고, 화학무기 개발을 위해 사람이 생체실험대상(화학치사실험도구)으로 이용되고, 수많은 탈북자가 비참한 도피생활을 하거나 강제 북송되고, 1990년대 이후 300만 명 이상이 기아로 사망하고,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것 등이다.
① 공개처형
ⅰ. 북한 인권단체인 ‘좋은 벗들’에 의하면 북한에는 최근에도 공개처형이 빈번하다고 한다. 공개처형은 일반군중에게 공개된 장소에서 범죄자를 처형하는 방법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국제적인 비난 대상이 되고 있다. 공개처형방법으로 총살이 알려져 있지만 과거에는 교수형이 일반적이었고 ‘화형’까지 있었다고 한다.
ⅱ. 공개처형의 의도는 당의 지시를 어긴 사람을 단죄하고 국가의 방침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대(對)주민 선전에 있다. 또한 주민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북한 사회 내부에서 공포를 유발시킴으로 북한 체제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다.
ⅲ. 2013.12.12, 김정은의 고모부이자 김영희의 남편인 장성택의 공개처형 장면이 공개되었다. 특별군사재판에서 사형 판결 즉시 집행되었다. 죄목은 '국가전복음모'로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공개처형 방식은 나무기둥에 묶은 뒤 얼굴에 흰 보자기를 씌우고 기관총으로 난사했다고 한다.
② 수용소
ⅰ. 강철환은 자신의 수기 ‘수용소의 노래, 평양의 어항’에서 북한의 요덕수용소(함경남도 요덕군 조선인민군 경비대 제2915부)에서 먹을 게 없어 지렁이ㆍ쥐를 잡아먹으며 10년을 연명했다고 밝혔다. 그만이 아니라 그의 할머니ㆍ아버지ㆍ삼촌ㆍ동생도 함께 수용소에 잡혀와 그렇게 살았다. 재일동포 북송 때 제 발로 북한에 간 그의 할아버지 일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할아버지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른 채 온 가족이 생지옥에 갇혀 지냈다고 한다. 북한 정권은 그 생지옥을 ‘혁명 교화소’라고 부른다.
ⅱ. 2006년 탈북한 신동혁은 북한 내에서도 최악이라는 평안남도 개천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그의 수기인 “북한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세상 밖으로 나오다’에서 그는 수용소에서 태어나 24세가 되도록 김정일을 몰랐다고 한다. 그 정도로 외부와 차단된 채 살았다. 탈출하다 붙잡힌 어머니와 형이 그의 눈 앞에서 교수형과 총살을 당했다. 고문으로 다리가 부러진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데도, 그는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14세이던 그도 화형(火刑)을 당해 두 달 만에야 몸을 움직였다. 수용소에선 상 받을 만한 일을 해야만 결혼 기회가 주어졌다. 아이들은 덧셈 뺄셈 정도만 가르치고 노동 노예로 내몰린다. 자녀들은 물론 부부라도 같이 살지 못하고 노동 종류에 따라 수용소 내 농장과 공장, 탄광으로 흩어져 산다.
③ ‘요덕스토리’
ⅰ. 탈북자 출신 정성산 감독은 개성에서 군 복무를 하면서 1994년 라디오로 KBS사회교육방송을 듣다 잠에 빠진 사이 발각돼 황해도 사리원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됐다. 13년형을 선고받은 그는 한 달 후 호송차가 산길에서 구르는 틈을 타 탈출, 중국ㆍ베트남ㆍ홍콩 등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 그는 수용소에서의 자신의 실제 경험과 요덕수용소를 경험한 탈북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뮤지컬 ‘요덕스토리’로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ⅱ. 죽음보다 무서운 삶이 있는 수용소에서 수인(囚人)들은 “거기 누구 있다면/ 이 비명 소리 듣고 있는지/ 거기 누구 있다면/ 제발 우릴 구해주세요…”라고 절규하고 있었으며, 하늘을 향해 “우리 아버지 남조선에만 가지 마시고 이곳 공화국에도 찾아오소서” “아버지, 요덕을 잊지 마시고 아버지 나라가 요덕에도 이루어지소서” “일용할 양식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우리를 즉결심판대에 세우지 마시고 다만 이곳 수용소에서 구하소서”라고 울부짖고 있었으며, “요덕을 잊으면 안 돼요. 요덕을 잊으면 안 돼요”라고 몸부림치며 호소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불과 몇 시간만 달리면 있는 곳에서 배고파서 감자를 훔쳐 먹은 아이의 손목을 작두로 자르고, 살아남기 위해 아들이 아버지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돌멩이가 아까워 몰매를 줘 사형을 집행하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ⅲ. 수용소 경험자들은 ‘요덕스토리’가 요덕의 지옥 가까이도 가지 못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정 감독은 기자 회견에서 북한의 비참함에 대해 “북한 인구가 2200만-2300만 명이었는데, 지금은 1700만-1800만 명이다. 더 이상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 21세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④ 탈북자들의 구원 호소
ⅰ. 2007.4.7,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 근교 구치소에 억류된 세 명의 탈북 청소년이 구치소 철조망 너머로 현지의 후원자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내보냈다. 17세 최향미 양은 굶주림 속에 어머니와 함께 탈북했지만 중국에서 어머니는 인신매매범에게 팔려갔고 남동생과도 헤어졌다. 14세 최향, 12세 최혁 남매는 북에서 어머니가 굶어죽은 뒤 다른 고아들과 함께 떠돌다 탈북했다.
ⅱ. 편지 내용은 “조선(북한) 대사관 사람이 왔습니다. 너무 무섭고 떨렸지만 악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소리치구 나는 죽으면 죽지 북한은 안 간다. 나는 한국 사람이라구…”, “아저씨, 북한만 안 간다면 지옥이라도 가겠습니다.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와서 욕하고 소리치고 당의 배려가 어떻다 하면서…그 당의 배려 전 안 받을 겁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을 북한에서 알고 있습니다. 구해주시면 이따가 커서 은혜를 갚겠습니다.” 등이다. 가장 어린 12세 최혁 군은 편지에서 “미국 아저씨”를 부르며 “구해 달라”고 매달렸다. 이들의 사정을 공개하고 구명을 호소한 사람은 일본의 탈북자 지원단체 사무국장이다.
⑤ 아리랑 공연.
ⅰ. 북한은 수령의 생일을 빛내게 하기 위해 매년 ‘아리랑’(북한의 체제선전용 집단체조)을 공연한다. 북한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2002년 탈북한 오영희씨는 북한의 ‘아리랑’ 공연에 대해 “아리랑에는 10만 명가량의 학생들이 동원된다. 기계처럼 움직이자면 엄청난 체벌과 고통이 뛰 따를 수밖에 없다. 나는 1999년부터 6-14살 어린아이들에게 6개월여 동안 리듬체조를 가르쳤다. 전혀 해보지 않은 아이들을 몇 개월 안에 선수 수준으로 훈련시키는 것이다. 한 겨울에 야외에서 온종일 회초리를 들어가며 굳은 허리를 문어처럼 만들어야 한다. 얼어 갈라터진 발바닥에서 핏물이 나와 우는 아이들을 집에 보내지 않고 계속 훈련을 시킨다. 한 여름 훈련은 더 혹독하다. 장시간 햇볕에 노출돼 일사병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식량난으로 밥을 제대로 못 먹으니 영양부족으로 쓰러지는 아이들도 허다하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이다. 행사 한 달 전부터는 전체 예행연습을 하는데 대기시간부터 행사가 끝나는 시간까지 3시간이 넘는다. 화장실을 자주 가지 못하게 물을 주지 않는다. 가고 싶더라도 금지다. 때문에 남자아이고 여자아이고 그냥 서서 참다가 배설을 한다. 연습장엔 악취가 진동할 수밖에 없다. 연습장 뒤에서 이런 자기 자식들의 모습을 보며 흐느껴 우는 부모들의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라고 말한다.
ⅱ. ‘아리랑’의 내용은 ‘김일성 민족’과 ‘선군(先軍)정치’에 중점을 두고 있다. ‘김일성 민족’은 민족의 100년사(김일성이 태어난 만경대 패밀리를 중심으로 본 북한 역사)가 태양 김일성에 의해 이뤄졌다는 김(金)의 혁명 생애를 강조한다. 김일성은 민족을 해방시켰고, 북침한 국군과 미군을 무찔렀으며 지상천국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어 김정일 후계자의 정통성과 위대성을 선군 정치의 이름으로 표현한다. 선군의 목표는 무력통일이다. 북한은 ‘아리랑’이 핵무기보다 더 위력적인 사상적 무기라고 강조한다. 과거 노무현 정권의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아리랑’에 대해 “북에서 만든 자랑스러운 공연작이다”, “서정적이고 장엄한 내용으로 보고 받았다”, “체제선전으로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인권학대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인권은 환경과 특성에 따라 다르게 해석돼야 한다”며 옹호했다.
⑥ 결핵환자들
ⅰ. 북한에는 120만 명가량의 결핵환자가 있으며 이 중 어린이가 30만 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 결핵환자를 오랫동안 돌보아 온 ‘유진벨재단’은 북한의 성인 인구 100명당 5명이 결핵균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면역 방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어린이의 결핵감염 실태는 더욱 나쁠 것이라고 한다.
ⅱ. 결핵은 못 먹어 생긴 병으로 통한다. 못 먹다 보니 결핵에 잘 걸리고 치료도 되지 않아 다른 아이에게 병을 옮기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북한 보건성 당국은 1997년 남측 ‘유진벨재단’에 결핵 퇴치사업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ⅲ. 유진벨재단은 구한말 선교사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로 전라도 선교의 대부)의 사위인 린튼 선교사(한국명 인돈 : 한남대학 설립자)의 3대손으로 전남 순천에서 자란 스테판 린튼과 그 형제들(인요한 등)이 1995년 세운 의료재단이다. 한편 종교ㆍ시민단체 원로들은 2007.10.29, ‘북한결핵어린이돕기범국민운동본부’를 출범시켰다. 본부 측은 “한 가정에 3만 원을 내면 6개월분의 치료제와 영양제를 보낼 수 있다”고 한다.
ⅳ. 결핵은 성인의 경우 허파에 침범하여 이른바 폐결핵 증상이 주종을 이루지만, 어린아이는 폐결핵 이외에도 결핵성뇌막염, 골수염 등으로 연계되고, 영구성장장애라는 치명적인 후유증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결핵 아동의 치유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결핵은 쉽게 공기로 감염되고 약을 먹어 낫는 듯하지만 잠복해 있다가 다시 발병한다. 결핵균은 약에 내성이 생겨 재발하면 더 강한 약으로 치료해야 한다. 보통 1-2년, 심하면 10년 넘게 약을 먹어야 한다. 결핵을 치료하는 약품은 생각보다 저렴하다. 북한 전역에 있는 결핵 아동 모두에게 필요한 결핵약을 투여하더라도 재정적 부담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인도적인 도움이 가능하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한 해 3만 명씩 결핵환자가 생겨난다. 워낙 보균자가 많았던 데다 젊은이들이 입시나 다이어트에 매달리면서 몸에 무리가 가고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인구 10만 명당 결핵환자도 96명에 이른다.
⑦ 중국에 채류 중인 탈북 여성들.
ⅰ. 조선일보 취재팀은 2007.5부터 10개월 동안 중국, 러시아, 라오스, 태국 등 세계 9개국을 돌아다니며 탈북자들의 삶을 취재했다. 중국에 체류 중인 탈북자들의 인권은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 숨어 사는 탈북자는 4만-1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70-80%가 여성이고 상당수가 팔려온 경우다. 북한의 인신매매 브로커는 “20-24세까지는 7000위안, 25세는 5000위안(약 68만원), 서른이 넘으면 3000원”이라며 정액제를 강조한다. 이들 여성들은 식구들이 꿔다먹은 ‘강냉이, 콩, 쌀’ 같은 곡식 빚을 갚기 위해 제 몸을 내던지는 ‘두만강 심청’들이다.
ⅱ. 북한 여성들은 탈북자라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아무렇게나 강간당하고 윤간 당해도 하소연할 곳도 없다. 중국 농촌에 팔려간 여성들은 남편의 매질과 성적 학대에 인간 이하의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산다. 밥 먹는 대가로 중국인 한 집안 전체 성인(成人) 남성의 성노리개로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중국인 남편이 함께 살던 북한 여성을 옆집에 팔아넘기기도 한다. 짐승 같은 또는 짐승보다 못한 처지의 탈북 여성들이지만 그들은 그래도 붙잡혀 복송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한다. 남녀차별이 극심한 북한에서 보위부(경찰) 앞까지 끌려가게 되면 “여자는 인간이 아니다”는 뼛속까지 느껴야 하는 모진 닦달을 당한다. 모두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이다.
ⅲ. 평양의 당 간부나 외화벌이 일꾼 집 여성들은 남한 여성들 이상의 생활을 한다고 한다. 뉴욕 필의 평양 공연장을 메운 여성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여성들은 경제가 붕괴된 사회에서 몸으로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한다. 집안일도 그들의 몫이다. 그런 이중고 삼중고 속에서도 북한 여성의 가정 폭력 경험은 90%에 달한다는 것이 탈북자 조사 결과다. 한 탈북 여성은 “중국에서 남한 영화를 보고서 사랑이란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고 한다. 두만강을 건너다 얼어 죽은 채 두 달 이상 방치된 북한 여성의 시신은 지금 북한 여성들이 당하는 고난의 상징이다.(조선.2008.3.3)
⑧ 영양실조 아이들
ⅰ. 지난 40년 동안 남한 청소년의 평균 신장은 8-9cm 커진 반면, 북한에서는 인구의 60% 이상에서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체격이 오그라지는 ‘세대간 역(逆)성장’ 현상이 일어났다.
ⅱ. 남ㆍ북한 7세 어린이만 비교해 보면 북한 어린이가 20cm 작고 10kg 적다고 한다(제임스 모리스 유엔 세계식량계획 사무총장). 언젠가 한반도에 통일이 오는 그 날 남인(南人)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체구에 부실한 이목구비를 갖춘 이들을 북인(北人)으로 보면 될 것이다. 또한 평균 수명은 우리보다 10년 짧고, 6살이 되기 전에 죽는 어린이들이 100명 중 5명이라고 한다. WFP(세계식량기구)는 북한의 6세 미만의 어린이 3분의 1이 영양실조로 발육이 멈췄다고 보고했다.
ⅲ. 조선일보의 다큐멘터리 ‘천국의 국경을 넘다’에선 중국 사람들이 압록강 복판에 있는 북한 섬에 배를 타고 다가가 소시지를 던져주고 북한 주민들은 그걸 받아먹는 것을 구경하는 게 1인당 200위안(약 2만8500원)짜리 관광코스가 돼 버린 기막힌 일을 전한다.
ⅳ. 나진-선봉을 방문한 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보다 비 오는 날이나 추운 날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기가 더 괴로웠다”고 했다. 북한의 공개처형 광경 등 생생한 화면을 담은 동영상에는 발가락이 모두 잘려나간 두 발을 드러낸 채 평양소주병을 끼고 광장을 기어 다니는 누더기 차림의 아이들, 풀이 무성한 철길 위에 굶주림에 지쳐 죽은 듯이 너부러진 꽃제비(어린 부랑자) 소년ㆍ소녀들도 보인다고 한다. 청진의 한 고아원에 수용됐던 탈북자 김혁(24)은 원생 76명 가운데 23명이 영양실조로 사망했다는 증언을 했고, 북송 탈북자 박선자(30)는 신의주 도(道)집결소에서 수감생활을 할 때 영아 살해 현장을 목격했다는 증언과 함께 북한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여성 학대에 대해서도 고발했다.(유석렬/모퉁이돌선교회)
⑨ 식량 부족
a. 2010.2.1자 북한 노동신문
ⅰ. 2010.2.1자 북한 노동신문은 이례적으로 김정일의 탄식 섞인 식량사정 실토를 안팎에 알렸다. “우리 인민이 강냉이밥을 먹고 있는 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 이제 내가 할 일은 흰 쌀밥을 마음껏 먹게 하는 것”이라며, 김일성의 ‘흰 쌀밥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 유훈(遺訓)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ⅱ. 북한 독재체제에 변화가 없다면 북한 동포의 비애와 고통은 더 깊어질 것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불구대천의 원수는 미국이나 남한이 아니라 현대사에서 가장 악독한 북한 정권이다. 오늘날 북한 권력 집단은 한 마디로 범죄 집단이다. 그들은 화폐를 위조하고, 마약을 제조하여 외화벌이를 한다. 수많은 주민들을 굶겨 죽이면서도 체제 강화를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쏜다. 북한 독재체제에 변화가 없다면 북한 동포의 비애와 고통은 더 깊어질 것이다.
b. 탈북 시인 장진성의 시집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에 나오는 시(詩)들.
ⅰ.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그 종이를 목에 건 채/ 어린 딸 옆에 세운 채/ 시장에 있던 그 여인은/ 그는 벙어리였다/ 팔리는 딸애와/ 팔고 있는 모성을 보며/사람들이 던지는 저주에도/ 땅바닥만 내려보던 그 여인은…그는 어머니였다/ 딸을 판 백 원으로/ 밀가루 빵 사 들고 허둥지둥 달려와/ 이별하는 딸애의 입술에 넣어주며/ 용서해라! 통곡하던 그 여인은”(‘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ⅱ. “누구는 먹지 못해 죽었는지/ 해골이 보이는 얼굴이고/ 누구는 얼어서 죽었는지/ 온 몸이 둥그렇게 굳어지고/ 누구는 병들어 죽었는지/ 구더기가 욱실거린다// 이렇게 죽든 저렇게 죽든/ 그들의 마지막 얼굴은/ 신통히도 하나같다/ 살아 있는 우리보다/ 훨씬 편안한 모습”(‘그들의 마지막 얼굴’)
ⅲ. “세계여/ 이 땅에 쌀을 보내며/ 구제미(救濟米)라 말하지 말라/ 그 빨간 십자가에/ 우리의 피가 맺혔다// 차라리 못 봤다면/ 쌀을 보지 않았다면/ 없는 것을 참으며/ 없는 것을 나누며/ 불쌍한 사람/ 불쌍해도 살아가련만// 구제미(救濟米)로 와서는/ 굶주린 눈앞에서/ 구걸하는 곁을 지나/ 선군(先軍)이란 그 곳으로/ 군인들이 모조리 실어가니// 그렇게 쌀이 갈 땐/ 쌀만 가지 않는다/ 마지막 허기까지 도려내며/ 빈속의 한숨마저 남기지 않고/ 폭풍 쳐 휩쓸어간다/ 목숨들을 흔들며/ 무너뜨리며// 그 쌀로/ 군대들을 늘이고/ 포신들을 만들고/ 남으면 그 쌀로/ 열병식 무력시위/ 먹은 힘 보여주는 선군…독재자의 숨통만 구제하는/인도주의의 배신/적십자의 기만이다// 하건대 세계여/ 보낼 쌀이 있으면/ 차라리 우리의 머위 위에/ 맨주먹인 우리의 머리 위에/ 아, 포격을 해 달라!”(‘구제미라 말하지 말라’)
ⅳ. “옛날에도/ 아버지 눈을 위해/ 쌀 삼백 석에 몸을 던진/ 인당수가 있었다지만// 꺼져가는 목숨 위해/ 쌀 세 말에 죽고 싶어도/ 죽고 싶은 인당수가 없어/ 효도를 못하는 이 나라 딸들에겐…”(‘인당수’)
ⅴ. “밥이라면/ 시퍼런 풀죽으로만 알던 아이/ 생일날 하얀 쌀밥 주었더니/ 싫다고 발버둥 치네/ 밥 달라고 내 가슴을 쥐어뜯네”(‘밥이라면’)
ⅵ. “우리의 밥은/ 쌀밥이 아니다/ 나무다/ 나무껍질이다// 우리의 밥은/ 산에서 자란다/ 바위를 헤치고 자라서/ 먹기엔 너무 아프다/ 우리의 밥은 그것도 밥이라고/ 그릇에 담기라고/ 우리는 나무를 빚는다/ 한숨 속에 밥을 빚는다…”(‘우리의 밥은’)
ⅶ. “꿈속에서/ 아이는 무엇을 보았기에/ 간밤에 밖으로 달려 나갔을까// 꿈속에서/ 아이는 무엇을 보았기에/ 총을 쏘는 군대도 무서워하지 않았을까// 꿈속에서/ 아이는 무엇을 보았기에/ 손에 그것을 꼭 쥐고 죽었을까// 그 꿈은/ 죽으면서도 놓지 않는 그 꿈은/ 작은 옥수수 하나”(‘아이의 꿈’)
⑨ 북한 인권 문제의 핵심.
ⅰ. 오늘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의 햇볕정책 또는 퍼주기정책은 북한 주민들의 수난을 외면하고 북한 정권의 실리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다. 북한의 개혁ㆍ개방에 대해 말도 꺼내지 못하고 무조건 퍼주는 대북정책은 사회주의 체제의 강화가 되었다. 한국이 북한의 체제를 강화시키는 원조국이 된 것이다.
ⅱ.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가장 훌륭한 대비책은 “북한 민심을 장악하는 것이다”고 말하며 전폭적 대북 식량지원을 강조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햇볕정책 아래 분배투명성 없는 ‘묻지 마 식량지원’은 주로 권력자와 군부에만 혜택을 주었으며, 그 때문에 북한 주민의 민심을 얻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성을 샀다는 비판도 많다. 햇볕정책이 북한주민에게 햇볕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과 수난과 암흑과 죽음을 더 연장시킨 셈이다. ‘우리 민족끼리’는 북한 정권의 실리가 아니라 북한 주민의 실리를 위한 것이 되도록 연구해야 한다.
ⅲ. 제9회 북한 인권ㆍ난민 국제회의(호주 멜버른ㆍ2009.3.20)에서 요안나 호사냑은 2001-2008년 북한을 떠난 탈북자 50명을 심층 조사한 결과, 남한이나 국제사회가 지원한 쌀을 받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대신 ‘대한민국’ ‘유엔’ ‘적십자’ 마크가 찍혀 있는 곡물 자루가 시장에서 팔리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탈북자들은 “남한이 원조한 식량은 군대에 우선 제공되며 나머지는 시장에서 (돈이 있는)군대나 당원들에게 팔린다”며 “일반 국민에게는 적은 양만 시장 가격보다 조금 낮은 가격으로 분배된다”고 했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동안 255만 톤의 쌀과 20만 톤의 옥수수가 북한으로 건너갔지만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유엔이 아동과 임산부들을 위해 지원한 육류ㆍ생선 통조림의 경우, 2001-2007년 동안 이를 직접 받았다거나 본 적이 있다는 증언자는 50명 중 한 명도 없었다. 독일과 스위스가 준 냉동 쇠고기는 50명 중 2명이 실제 먹어봤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를 먹은 사람도 “국제 원조 요원의 인터뷰에 대비해 사전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ⅳ. 북한은 많은 돈과 식량을 민생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폐쇄체제의 유지와 인민통제의 목적을 위해, 그리고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 확보와 군사력 증강을 위해 사용하였다. 또한 정권유지 차원에서 주민들로 하여금 바깥 세계를 보고 듣고 경험할 기회를 철저히 차단하였다. 다른 한편 북한 지도자는 개인적으로 화려한 궁전에서 프랑스산 최고급 포도주와 남쪽의 자본주의 문화를 즐기고, 수많은 동상과 기념물을 세우고, 스위스 은행에도 상당히 많은 돈을 비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ⅴ. 누가 북한 주민들을 이토록 참혹한 지경으로까지 이끌었는가? 원흉은 그들의 지도자이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인권침해’라기보다 ‘인간말살’ 수준이며 그것은 생존권의 문제이다. 북한 문제의 핵심은 ‘민주화’와 ‘인권회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