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조현묵
10월 마지만 주 단풍이 한창 절정인 날을 잡아 1박 2일로 비봉초등학교 8회 졸업생 동창회가 열렸다. 새로 산지 얼마 되지 않은 은빛 소나타를 몰고 가마소 펜션으로 달려갔다.
동창회 회장이 둥글 봉 쪽으로 계속 갔는데 초행길이라 멀게 느껴졌다. 옛날보다 길도 좋아지고 가보지 않은 곳이라 경치도 좋고 산과 들도 예쁘게 옷을 단장하고 맞이하는 것 같아 기분이 아주 좋았다. 하도 먼 것 같아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 길가의 낚시터라고 쓴 곳 까지 왔다”
라고 말을 하니까
“너무 지나 왔어요, 다시 돌리셔요?”
다시 돌려오다 보니 아닌 것 같았다.
원래 길 찾는데 어리 벌이했다.
또 전화를 했다. 이곳이 하룻길 펜션이라고 했다. 그 곳에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다.
한참 있으니까 카니발을 타고 제자 두 명이 왔다 반가워 악수를 하고 제자의 차를 따라 가마소 펜션으로 향했다. 이곳이 양구의 비경이라고 소개를 했다.
제자들이 가마소 펜션 앞 깊고 넓은 산골짜기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장어구이와 삼겹살을 구우며 소주한 잔씩 나누며 담소를 하고 있었다.
반가워하며 악수를 했다. 봉광근 제자가 현재 어부라서 선생님을 위해 특별히 자연산
장어를 잡아왔다는 것이다. 아주 큰 놈으로 말이다.
잘 구워 소주 한 잔에 장어 한 토막을 안주 삼아 먹으니 그 맛이 정말 별미였다.
앞에는 깊은 골짜기에 두 손으로 떠먹어도 좋을 만큼 깨끗하고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앞산 뒷산에는 단풍으로 뒤 덮여 있고 그 옆으로는 긴 파로호가 자리를 잡고 있다.
얼마큼 먹다 배도 부르니 보트를 타러가자고 인호가 제의를 했다
10명이 자가용을 타고 광근이가 기거하는 뱃터로 갔다.
보트 두 대를 준비해 놓았다. 한 대는 광근이가 몰고 한 대는 같이 일하는 석호가 몰았다. 나는 명화, 영숙이,인호,운환와 함께 5명이 탔다.
넓고 시퍼런 호수를 달리니 바람에 머릿결이 휘날리며 가슴으로 파고드는 칼바람은 살을 에이 듯 했다. 제자들과 팔을 꼭 잡고 좌우로 넘어 질듯 달리는 스릴을 만끽하면서 소리소리 질러가며 기분을 낼 수밖에 없었다. 친구 보트가 갑자기 우리 보트 앞을 내지르며 달려갔다. 물결 이는 곳을 가로질러 달리니 배는 한 층 더 출렁거렸다. 우리 보트도 그 보트가 지나가자마자 그 출렁이는 물결위로 달려가니 보트가 공중으로 튀어 올라갔다 내려올 때의 스릴로 쭈뼛쭈뼛 섰다.
그래도 잘 왔구나 하고 보람을 가졌다
돈 받고 하는 것은 잠깐인데 우리는 꽤 멀리 갔다 오기도 하고 쇼도 하여 장시간 태워 주웠다.
다시 가마소 펜션으로 돌아왔다.
김옥순이는 서울에서 선생님 얼굴보고 싶어 남편과 같이 왔다. 10분도 안되게 나와 잠깐의 옛이야기를 나누고 서울로 올라갔다. 정말 선생님 얼굴 보기 위해 서울서 이 골짜기까지 왔단 말인가. 대단한 성의다. 하기야 내 영향이 컸던 제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런가하면 윤 은주는 사정이 있어 선생님을 뵙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용돈을 친구 편에 십 만 원이나 보내왔다. 윤은주는 탁구도 특별히 나에게서 배우고 그 때 T.V 에서 ‘우리들 세상’이라는 여고생의 프로를 흉내 냈던 제자이다
그 때 은주의 활약이 대단했다. 그것이 앨범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석 인호는 양구 개인택시 사무장이라서 꽤 수입이 괜찮은 모양이다. 술이 좀 취 했는지 선생님이 해달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말씀만 하시면 다 해줄 수 있다고 큰 소리쳤다.
슬그머니 나가더니 더덕 술 담근 것 한 병을 들고 와서
“선생님! 20 만 원짜리 더덕 술입니다. 기념으로 드립니다.”
라고 했다.
술이 좀 취하니 선생님 했다, 선배님 했다, 형님 했다. 혀 꼬부라진 소리를 계속하며 웃겼다. 밤이 늦도록 웃기다 그만 밥상 옆에서 잠들어 버렸다.
저녁을 막 먹으려고 하는데 박상도와 조영숙이가 들어왔다.
나를 보더니 와락 껴안으며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선생님 저 남편하고 같이 왔어요.”
하는 것이다.
박상도와 조영숙은 6학년 때 짝이었다.
그 때는 책상 가운데 줄을 그어 놓고 남자가 주로 여자를 때리는 때였다.
그런데 지금은 남편이라고 부르면서 잘도 부려 먹는다.
대전에 사는 데, 서울 조카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볼일을 다 보고 상도에게 전화해서 결혼식장에서 만나 양구 동창회가자고 제의를 해, 재미나는 옛날이야기 하면서 왔다고 한다.
“오다 보니 벌써 왔노라고 옛날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상도가 나한테 꼼짝 못해요.”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6학년 때도 키가 컸지만 지금도 훤칠하게 큰 편이다. 피부가 아주 하얗고
깨끗했다.
15명 모였는데 그중에 여자는 3명이였다. 2번 째 모임인데 첫 번째 모임은 40명이 모였다고 한다. 춘천에서 친구 식당에서 모였는데 그때도 초청을 해서 갔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대화가 1반 2반 선생님의 가르치는 스타일이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1반은 새마을 선생님이라 피마자 재배하는 일 등 농업에 관한일 웅변 입상한 일 위주
였다고 한다. 새벽에 학교 일찍 와서 책 읽는 일, 시조나 시를 또는 급훈을 작곡해서 가르친 일, 태권도 지도, 탁구지도, 이렇게 다양한 수업을 했던 일들이 참으로 좋았다고 나를 추켜세웠다. 1반은 몇 명오지 않은데다 선생님까지 오시지 않아 서운한 모양이었다.
1시가 넘어서 식당에서 숙소로 자리를 옮겼다.
여자들로 남은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 남자 숙소에 합석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벽 2시 30분 쯤 돼서야 대충 이야기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여자 제자들은 자기들의 숙소에 들어갔다.
제자들이 47세라고 했다. 같이 늙어 가면서 제자들의 인생경험도 매우 다양했다. 한편의 수필이고 시였다. 내가 못한 경험들이 갖가지 직업에서 배어 나왔다.
다시 갖고 픈 보람 있는 날이다.
첫댓글 아주 즐거운 시간을 가지셨군요. 제자들과의 모임이라...생각만해도 가슴 뿌듯해지는거 같습니다.
부러운 현장을 눈으로 보는 듯 합니다. 그 중에 실 눈에 꽂혀 특별히 다시 몇 번 읽은곳이 '이십마넌짜리 더덕술'입니다.
동창회해서- 끼리끼리 동창회만 인줄 알았더니 스승님 모신 사은의 동창회였군요. 참으로 흐믓하고 보람있는 자리이셨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도록 글속에 [시온산님]의 즐겁고 행복하신 모습과 표정이 생생하게 흘러 넘치는군요. 기쁨이 넘치는 싱싱한 표현이 보는 사람도 감염(?)시키는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시온산님![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2.gif)
겁고 행복한 모습이 눈에 선 합니다. ![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