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모리스 자르가 지휘하는 <닥터 지바고>에 등장하는 음악과 그리고 명장면들
[ '추억의 영화음악 이야기' 연재를 시작하며 ]
음악도 근사하고 영화도 괜찮았던 <추억의 영화음악>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아니,지금 연재하는 <오페라 세상만사>는 이제 다 끝난 건가?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푸치니와 바그너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이들도 앞으로 기회 있으면 마저 끝낼 생각입니다.
사실은 제 본업이 클라식 음악보다는 영화 쪽인데 결국은 유혹에 못이겨 중간에 영화음악에 손을 대개 되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추억의 영화> 이야기는 5년 전 광주에 있을 때 100여편에 걸쳐 연재하면서 뜨거운 호응을 받았는데,이번에는 주로 영화에 나오는 음악을 중심으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 사이트가 명색이 <용음회> 방이니까요.
해서 앞으로 전개할 이야기도 시놉시스(줄거리)는 생략하고 영화음악 작곡가를 중심으로 기타 영화와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와 에피소드, 그리고 감독과 배우들 얘기 등으로 엮어갈 생각입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레집니다. 당장에 생각나는 것만도 오늘 게재하는 <닥터 지바고>로부터 시작하여 아라비아의 로렌스,태양은 가득히,시네마 천국,금지된 장난,역마차,황야의 결투,셰인,빅 컨츄리,리오 브라보,하이 눈,러브 스토리,벤허,삼손과 데릴라,늑대와 춤을,디어 헌터,플래툰,가을의 전설,미션,옛날 옛적 서부에서,라스트 모히칸,흐르는 강물처럼,여인의 향기,브룩쿨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대부,전쟁과 평화,스팅,애수,자이언트,에덴의 동쪽,사운드 오브 뮤직,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남태평양,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글래디에이터,사상 최대의 작전,콰이강의 다리,대탈주,황야의 7인,파리는 불타고 있는가,길,셸브르의 우산,남과여,지상에서 영원으로,철도원,슬픔은 어느 별 아래,제3의 사나이,해바라기,태양의 제국,내일을 향해 쏴라,라임 라이트 등등등...
멋진 음악을 들으며 함께 추억의 그 때로 돌아가 봅시다.

[ 영화 '닥터 지바고'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을 데이비드 린이 각색한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서사극이라 할 수 있는 <닥터 지바고>는 20세기 초 러시아 사회의 불안을 차례로 기록합니다. 1차 세계대전이 러시아에 미친 막심한 피해부터 구세계의 질서를 붕괴시킨 혁명 그리고 한 차례의 격심한 내전과 이후 계속되는 정치적 소요와 불안까지...
로버트 볼트의 각본은 <닥터 지바고>의 얽히고 설킨 복잡한 스토리를 명민하게 압축하여 경제적·사회적 변화가 이어지고 있던 1930년대의 시점에서 회상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지요.

<닥터 지바고>는 크리스티와 샤리프가 불운한 연인을 훌륭하게 연기해낸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몇 가지 장엄한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를테면 카자크인들이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검을 휘두르는 장면과 지바고의 가족이 전국을 누비며 끝없는 여행을 하는 장면, 지바고가 버려진 시골집에 있는 라라를 다시 만나기 위해 혹독한 겨울 풍경을 헤치고 가는 장면 등이 그렇습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노련한 거장답게 각국에서 데려온 유명한 배우들을 잘 조화시켰고, 또한 로드 스타이거 등 조역 연기가 특히 뛰어났습니다. 촬영감독 프레디 영은 러시아의 광활하고 거친 풍광을 생생하게 재현했고 모리스 자르의 음악은 스토리를 더욱 아름답게 보완해 나갔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강렬한 연기와 함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닥터 지바고>는 엄청난 흥행수익을 올렸으며 텔레비전 방영을 통해서도 지금도 계속해서 많은 관객을 만나고 있습니다.

[ 작곡가 모리스 자르 ]
작곡가이며 지휘자로 활동하며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군림하던 모리스 자르는 지난 2009년 3월 29일 밤 LA자택에서 타계했습니다. 향년 84세.

다수의 프랑스 영화음악 작업으로 시작된 그의 음악인생은 <아라비아의 로렌스> 등 영국영화와 <닥터 지바고>를 비롯한 헐리우드 고전영화를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습니다. 데이비드 린 감독과는 찰떡 궁합이었던지, 그의 세 작품 -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닥터 지바고(1965)>,<인도로 가는 길(1984)>에서 아카데미상을 받았습니다.
1924년 프랑스 리용에서 태어난 그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음악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원래 소르본느 대학 공대에 입학했지만, 자신의 길은 음악임을 깨닫고 파리 음악원으로 들어갔지요. 물론, 부친의 엄청난 반대가 있었지만요. 1951년부터 영화음악을 손대기 시작한 그에게 1961년 영화 제작자인 샘 스피겔을 만난 것은 인생의 중요한 전기가 되었습니다. 바로 <아라비아의 로렌스> 주제곡 작업을 맡은 것입니다.
[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는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모스크바 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이듬해(1914년) 처녀시집 <구름 속의 쌍둥이>를 내면서 시인으로 출발했습니다. 파스테르나크가 <닥터 지바고>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45년이었고, 1956년에야 완성되었습니다.
국내 출판이 여의치 않아 다음해 밀라노에서 이탈리어판으로 처음 출판된 후 1958년 노벨상이 주어지자 소련 정부는 그를 '인민의 적'으로 매도하면서 작가동맹에서 축출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수상을 사절했고, 2년 뒤인 1969년 침묵과 고독과 실의 속에서 죽었습니다.
고르바초프 정권이 들어서자 1986년, 시인 예프투세코 등이 서명운동을 벌여 그의 복귀를 요구했고, 이듬해 2월 작가동맹이 파스테르나크의 제명을 정식으로 취소함으로써 30년만에 복권되었습니다.
<닥터 지바고>의 여주인공인 라라는 파스테르나크의 애인이던 올가 이빈스카야가 주모델이라고 알려져있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46년, 올가는 두 아이를 가진 34세의 과부였고, 파스테르나크는 56세의 유명한 시인이던 때였습니다.
이 때부터 파스테르나크는 죽을 때까지 14년 동안 아내와 올가 사이에서 이중생활을 하게 됩니다.1948년 올가는 파스테르나크와의 관계 때문에 스파이 혐의를 쓰고 4년간의 옥살이를 했고 임신 중인 아기를 유산까지 하게 됩니다. 스탈린의 죽음으로 석방되자 두 사람은 재회를 하게 되지요.
노벨상 소동 때문에 파스테르나크가 동반자살을 권유했으나 올가는 이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시인이 죽은 후 올가는 다시 체포되어 4년간 시베리아에서 유형생활을 했습니다. 1978년에는 올가의 회상록 <시간의 포로-파스테르나크와의 나날들>이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올가는 82세의 나이로 1995년 모스크바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생전에 파스테르나크를 알던 친구들은 그를 "천재적이고 심플하고 델리킷하고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라고들 말했다고 합니다.
첫댓글 주옥같은 추억의 영화를 시리즈로 엮어 소개해 주신다니 엄청 기대됩니다.
라라를 찾아 설원을 누비는 지바고의 애틋한 모습등 명장면과 라라의 테마의 감미로움은 언제 듣고 보아도 좋습니다.
여주인공 '라라'가 처녀적에 유부남과 정을 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조금은 실망스런 장면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오마 샤리프'의 눌깔사탕?같이 큰 눈이 기억에 남는 러브스토리..ㅋㅋ
두대감이 앞으로 부지런히 들어올 예감이...위에서 언급한 영화 외에 떠오르는
영화를 추가해 보면,OK 목장의 결투,셰난도,알라모,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내일
을 향해 쏴라,아웃 오브 아프리카,용서받지 못한자,찰리 차플린의 라임 라이트,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머나먼 다리,빠삐용,희랍인 조르바,쇼생크 탈출,7인의
새벽,제3의 사나이,부베의 연인,여수,밴드 오브 브라더스 등의 음악이 근사한
영화들이지요.근데 뭐 니뭐니해도 여하이 동영상을 끄집어내느냐가 이 시리즈
의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送舊迎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