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 성 회 복
1996.04.30. 김준호 선생
열왕기상 17장 8절 말씀부터 보겠습니다. 과부의 집으로 피신하는 엘리야.
그릿 시냇가에서 더 이상 물을 마실 수 없게 되자 주께서는 엘리야에게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셨다. 너는 베네겟 지역 사르밧 마을로 가서 지내라. 네가 먹고 마실 것을 이미 내가 그 마을의 한 과부에게 부탁해 놓았다. 이리하여 엘리야는 160여km 먼 길을 걸어 사르밧에 이르렀다. 그곳은 시돈에서 남쪽으로 약 11km 지점에 위치한 해변의 마을이었다. 그가 성문에 이르자 어떤 여인이 나무를 줍고 있었는데 바로 엘리야가 찾던 과부였다. 엘리야는 그 과부에게 물을 좀 갖다 주시오. 하고 부탁하였다. 그 과부가 물을 길으러 성문 안으로 들어갈 때 엘리야는 그 등 뒤에 대고 떡도 좀 갖다 주시오. 하고 큰소리로 간청하였다. 과부는 엘리야에게 대답하였다. 당신의 여호와께서 확실히 살아계심을 걸고 맹세하지만 우리 집에는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 집에 남은 것 이라고는 항아리 밑바닥에 깔린 밀가루 한웅큼과 병에 뭍은 기름 몇 방울뿐입니다. 나는 지금 나뭇가지를 주어다가 그 남은 것으로 마지막 떡을 구워 아들과 나누어 먹고 함께 죽을 작정이었습니다. 아합은 이스라엘의 풍년을 위하여 베네겟의 바알신을 모셔 들였으나 그 대가로 이스라엘과 베네게가 다 같이 오랜 가뭄과 흉년에 휩싸이는 벌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엘리야는 과부에게 그 마지막 남은 것까지 또 아끼지 않는 희생을 요구하였다. 그런 걱정 하지 말고 우선 그 손에든 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집으로 가서 내가 먹을 떡부터 구워가지고 오시오. 그런 다음에 다시 들어가서 식구들이 먹을 떡을 구하시오. 이제부터 식량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가 다시 비를 내려줄 때까지 밀가루도 바닥이 나지 않고 기름도 마르지 않을 것이다. 하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이때부터 엘리야의 말대로 따랐다. 그러자 세 사람이 매일 충분히 먹고 살게 되었다. 주께서 엘리야에게 약속해 주셨던 것처럼 그 밀가루도 바닥이 나지 않고 그 기름도 마르지 않았다.
우리는 귀로 듣고 또 몇 분이 증언하셨습니다. 이 현필 선생님이 남원에 들렸을 때 물론 오 장로님이 맞이했지마는 그건 사람의 말이고 사람의 감정이고 그 영적 힘을 얻는 것은 갈보리 혹은 서리내 산에서 기도하셨다는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그때 이 선생님을 대접했던 분이 갈보리 어머니 이십니다. 갈보리 어머님들이 한분이 아니겠지요. 여러 과부들이 똑같이 협력하셨고 또 옛날에도 엘리야가 피난하시고 역경에 헤맬 때 어느 누가 도와준 것 아니고 가족하나 과부 밀가루 한주먹 기름 한 방울 먹고 이제 마지막 죽으려 했던 그런 땅에서 불쌍한 과부에게 도움을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셨다는 그런 역사 이야기가 참고 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공동체는 사람이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모여든 곳이 아니고 하루하루 살다보니까 현재가 되었지요. 또 하루하루 어른들 하나님을 섬기던 선생님과 어머니들이 하루하루 기도하다 보니까 현재식구들이 남아있는 것뿐이지 어떤 분이 머리로 이렇게, 이렇게 해서 모이자 그런 분이 한분도 없지요. 자연발생 이라고 합니다. 자연발생. 그런데 역시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때도 산입니다. 갈멜산 이지요. 그런데 이 세종 선생님이 누구한테 배운 것이 아니고 성경 한권을 들고 기도하시고 또 힘을 받으신 곳이 천태산이지요. 또 아울러서 말년에는 화학산 깊은 산골에서 임종하셨습니다. 또 콩을 심어놓으면 콩이 나는 것이고 팥을 심어놓으면 팥이 나듯이 또 이 세종 선생님의 감화를 받았던 이 선생님이 영적 힘을 얻은 곳이 서리내 산이고 갈보리 산입니다. 고기는 물에서 살고 새는 산에서 살지요. 그러니까 어제 밤에도 김 은연 어머니께서 다시 말하면 해명하셨지요? ‘우리 공동체는 교파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어떤 이단에 속한 집단도 아니라 건전하게 성경말씀을 보고 그대로 실천하고 살아가는 그렇게 순결한 단체다.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고 살면서 땅에서 버림받은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고 그렇게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해명하신 말씀이 있다는 것 그런 글을 써놓고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것은 어제 처음으로 정 건모선생님이 가져다 주셨기 때문에 봤어요. 그것은 우리들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죽기 전에 가졌던 문헌이 있기 때문에 그 글이 그대로 살면 생명이 있는 것이지요. 그럼 고대 한 수천 년 전에 글을 써놓고 죽은 것을 발견하신 분이 대세제자라고 합니다. 그럼 옛날에 우리 처음에 살았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렇게 살았는데 왜 근대 수도는 이렇게 난장판일까? 그리고 맨날 먼지가 탁탁하던 무슨 쪽지 하나를 발견해 가지고 개혁했답니다. 그 글을 누가 본 일이 없고 창고에 있었는데 그 글을 다시 찾아가지고 그대로 사신 것이 성 깔멜수도원 이랍니다. 우리들도 그렇지요. 살다보면 어딘지 모르게 떠내려갑니다. 그런데 옛 어른들이 썼던 글을 보고 다시 뜻을 찾아서 말씀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씨를 심어보시면 호박씨든지 혹은 고구마든지 쪼끄만 씨로 시작하지요. 줄기가 있고 또 나무 같으면 하늘이 캄캄하도록 크지만 이 나무가 왜 이렇게 어디서부터 컸는가 하면 뿌리가 있고 씨가 있다고요. 그러니까 상당한 나무라면 큰 나무입니다. 이 공동체가 나무가 크지요? 나뭇가지가 어디까지 뻗었느냐? 한 가지는 계명산 까지 뻗어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지금 진도까지 뻗어있지요. 함평 부안 그런데 그 역시 씨의 뿌리는 화학산입니다. 천태산이지요. 그래서 모든 생명이 근본으로 돌아가는 성품이 있답니다. 회기성 처음에 태어난 곳을 그리워하며 흠모한답니다. 그래서 고기가 어머니 배속에서 태어났던 물에 가서 또 낳지요. 시내 쪼끔 커가지고는 바다로 갑니다. 그럼 얼마나 고기들이 멀리 가냐 하면 북극 남극 가서 그 큰 바다 태평양 그 큰 바다로 가서 큰답니다. 그럼 수억 만리 이지만 죽을 때는 애기 때 자기 엄마가 낳아준 그 시내로 겨 올라온 답니다. 그렇게 죽어요. 그게 천리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자연현상입니다. 우리가 뜻 없이 도회지에 살지만 영혼이 갈급했을 때는 결국 우리 어른들이 심어 논 씨앗이 있어요. 영성이라는 거 영성 영적 은혜라는 것이 있어가지고 결국은 깊은 산에 가서 어른들이 살던 정신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느 영문인지 모르고 살지만 그런데 예수님 보십시오. 일은 예루살렘 복판에 가서 수만 명을 거느리고 말씀하시지만 밤이 되면 하나님이 그리우니까 산속으로 들어가세요. 반드시 그러십니다. 그렇게 해서 영혼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예수님도 피곤하지요. 그러니까 이아침에는 뜻을 찾는 시간이기 때문에 어제 서울서 계명산에서 냉수를 떠오셨어요. 누가 자셨는가 몰라요. 여기서 자셨습니다. 오늘 돌아가신답니다. 결코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마음만 있으면 천리도 지척이에요. 어제 종일 일하시고 도암면에서 밤에 오셨어요. 예배보시고 밤에 가셨어요. 마음만 있으면 도암면에서 예배드리고 가세요. 그러니까 꼭 여기 와서 좋다는 말 아니지만 아무리 식구가 멀리 있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 뜻만 있으면 곧 모여서 같이 의논해요. 그래서 앞으로 희망은 일은 커지고 가지는 넓어지는데 어떻게 정신은 모일 것이냐? 자연 법칙도 있지만 세계에서 제일 공동체를 잘 운영하는 곳이 인도에 있는 마더 테레사 공동체이랍니다. 그분들의 정신 질서 생명의 원동력은 어디서 일어났느냐? 새벽기도 시간입니다. 또 밤 기도시간이고 그분들의 생명의 총 재산은 아침저녁 기도시간 이랍니다. 그 기도를 하기 때문에 방대한 매일 들어오는 문둥이 환자를 길가에서 주워온 사람이 수십 명이예요. 그러면 수만 명이냐 그렇지 않아요. 항상 몇 천 명이에요. 왜 또 매일 죽어요. 매일 싣고 오다 죽고 하루 밤 자고 죽어요. 그러니까 거기 모인 수녀들은 문둥이 데려오면 목욕시켜 드리지요. 그리고 찬송 불러주지요. 곧 임종해요. 그러니까 매일 수십 명이 들어오지만 매일 땅에다 수십 명 죽어서 묻어요. 그런 곳이지요. 그러면 ‘제가 수녀 되겠습니다’. 교육 받을 시간이 없어요. 오늘 지망해요. ‘나 수녀 되겠습니다.’ 하면 그날 간호 복 입고 봉사해요. 길거리에 나가서 그냥 환자 자기 손으로 보듬고 와요. 자기가 체험 이야기해요. 자기가 부잣집 딸인데 나 평생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불쌍한 환자를 내가 돌보았다. 내가 몸을 씻겼다. 내가 고름을 닦았다. 아 내 영혼을 너무나 행복하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냥 수녀가 되어버려요. 아무 조직도 없어요. 근데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느냐? 아침에 모여서 기도하는 거예요. 총 직원이 또 밤에는 다 기도하고 주무세요. 그러면 그분들은 조직이 없고 무조건 모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지어준 건물에 있어요.
가사 북구청에 건물이 하나있고 동구청에 하나있고 사방 정부건물을 쓰고 있기 때문에 아침 기도회 보고 아침 잡수시면 모두 흩어져 버려요. 사방으로 흩어져 근무하는 거지요. 그럼 거기서 이틀 있으면 피곤하지요. 환자들하고 그니깐 쇳덩이라도 녹아나지요. 오래 계속 못하지요. 간호를 그러니까 오후가 되면 전부 차가 또 기도하고 아침 새벽기도하고 밥 싸가지고 전부 파송 나가지요. 병원으로 요양소로 고아원으로 그러니까 마더 테레사의 힘은 아침저녁 직원들이 모인 것이 총 재산이랍니다. 힘의 원동력이라 그럽니다.
이런 이야기는 수십 년부터 우리가 해왔어요. 우리들 공동체도 힘은 새벽기도다. 꼭 세시에 보셨지요? 옛날 어른들은? 그 전통은 역시 이공님으로부터 시작한 거지요. 꼭 새벽에 일어나서 찬물로 목욕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그거 하다가 의사들이 못하게 했지요. 체질이 찬물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찬물로 목욕하면 여자들은 병이 드니까 따슨 물로 하라. 그래 그건 중도에 말았지만 그 규례를 모습을 본받은 사람이 곡성 김 장로님이었지요. 돌아가신 분 임종하시기 전까지 꼭 찬물로 목욕 하셨어요. 꼭 세시에 일어나셨어요. 그게 이공님 이 선생님 서 집사님 김 장로님 지금 오 장로님은 안 하시지요. 나이가 늙으셔서 꼭 세시에 일어나셨어요. 꼭 찬 물로 목욕하시고 어머니 반도 그랬을 거예요. 옛날에 하늘나라 가신 어머니들 지금은 정신이 희미하고 삶에 바빠 못하시지만 결국은 복귀해야 해요. 그 정신세계 다시 말하면 습관 모든 행실, 행실이 그러면 희망은 정신입니다. 정신을 회복해야 해요. 우리 영성이 있단 말입니다. 우리 공동체의 영성은 이렇게, 이렇게 사는 모습이 있고. 그 영성을 회복해야 이 공동체가 백년 천년 오천년 후까지 계속되지요. 그 정신회복 못하면 이러다 말아버려요. 그러니까 이제 희망이 생긴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뜻하신 바가 있어서 재산들이 크니까 재산들을 정리해 가지고 늦지 않았으니까 한군데라도 직원 기숙사를 지어가지고 전 직원이 모이도록 기도하고 새벽기도 하시고 그리고 점심을 싸던지 하시고 전부 출장하세요. 각 병실에 각 요양소에 가사 농장에 차가 있으니까 마음만 있으면 도암면서 출퇴근 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하란말도 안 했어요. 여러분 아실런지 몰라도 다행히 남반이 떨어져 있으니까 길 가까운 곳에 땅이 거기밖에 없으니까 이 사업장과는 떨어져야 되어요. 그래야 기도가 되어요. 여기서 기도한다면 기도 안 되어요. 여기서 살고 있기 때문에 살고 있는 곳에서 떨어져야 해요. 마더 테레사가 그거지요. 수녀원이 따로 있고 사업장은 전부 밖에 있어요. 매일 출근합니다. 그래야 영혼이 힘을 얻지요. 그 예수님도 밤이 가면 산에 가서 주무세요. 낯에는 시내로 내려가세요. 복판으로 예루살렘 거리로 그 예수님께서 본을 끼치신 것이고 이 선생님이 그랬지요. 힘은 산에서 얻으시고 말씀은 남원 시내 와서 하시고 그렇게 하셨지요. 이 선생님 마지막 유언이 마지막 하신 말씀이 그겁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돌아갑니다. 나를 업고 가지요. 그게 지리산입니다. 본인 소원은 지리산에 가서 죽고 싶었어요. 하늘나라에 가시고 싶었거든요. 그 소원대로 지리산이 아니고 계명산에 가 죽으신 것이지요. 하늘나라 가신 것이지요. 그것이 우리 이 공동체의 영성이란 말이에요. 모든 새가 취향이 달라요. 습관이 참새 제비 까치 다 다르지 않습니까? 이 공동체의 영성은 다르거든요. 해방 전에 일본시대부터 이건 산중 파예요. 산중 파 해방 후에도 산중 파거든요. 산에서 기도하시고 힘을 얻으신 분들이 해방이 되고 육이오가 일어나니까 시내로 내려오신 거예요. 봉사하기 위해서, 그래 봉사가 끝나면 다시 들어가려고 그랬어요. 그 영혼의 성질이라고요. 영혼이 다시 말하면 새는 참새의 버릇이 있고 제비는 제비의 생활지위가 있어요. 제비는 흙을 물어다 집을 지어요. 참새는 털을 물어다 집을 짓고 생명을 유지하는 방법이 다르지요. 지금은 철이 없으니까 모여서 삶을 사나보다 그러지만 철이 들면 뜻을 찾아야지요. 앞으로, 그래 옛날 말에 다 있어요. 옛날에 우리 선배들은 다 얻어먹고 살았지요. 소유가 없으니까 문전걸식하고 사셨는데 우리 공동체 원 씨가 그래요. 그럼 인제 우리만 그런 것 아닙니다. 불교씨도 그렇게 되어있어요. 무소유입니다. 얻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불교 승려입니다. 승단이지요. 또 프랜치스코 수도회가 그렇지요. 프랜치스코 교단이 얻어먹고 사는 사람들이지요. 일체 자기 소유 없는 사람들이 그 정통을 이어가니까 지금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칠백년이 계속 되지요. 그 전통이 없어져 버리면 끝나버리지요. 껍질로는 지금 세계 제일 부자가 프랜치스코 수도회랍니다. 개인이 자기 것을 안 만들기 때문에 전부 공동체 살림은 커버려요. 그래 세계에서 제일 재산 많은 곳이 프랜치스코 수도원이에요. 칠백년 동안에 그럼 이 공동체도 프랜치스코 수도원의 영성과 같아요. 사유를 부인하지요. 공동체 재산을 인정하기 때문에 우리가 뭡니까? 거지들이 모였는데 우리 영적 아버지 영적 어머니들이 희생하고 가신 흔적이거든요. 절대 공동체 재산을 누가 없애지 않는단 말이에요. 그래 우리들도 세상을 떠나면 많은 재산이 남겠지요. 그래 우리들도 세상을 떠나면 700년 후에 세계에서 제일 재산이 많을 런지 몰라요. 그 이치가 그렇단 말입니다. 그게 좋다는 말은 아니지요. 불교도 개인재산 없어요. 세계에서 제일 부자에요. 불교가 왜 그건 공의지요. 공의의 하나님의 법칙이 개인이 다 먹어버리면 공동체는 없어져 버리지요. 개인들이 다 희생하고 가기 때문에 쳐진 것은 공동재산이 되지요. 결코 우리가 손해 본 것이 아닙니다. 안 쓰고 아껴놓은 것은 다 우리 자손들이 쓸 거예요. 영적으로 후배들이 손해 본 것이 아닙니다. 전부 저축이지요. 그러면 하늘나라 가보면 어떨까요? 전부 거기 우리재산이 있지요. 영적으로 예수님 부탁은 ‘너희들이 하늘나라 창고에 저축하라.’ 그랬지요. ‘너희들이 쓰고 싶은 것 안 쓰고 불쌍한 사람 나눠준다면 천국의 창고에 다 너희들의 곳간에 모아 둔다.’ 그러셨어요. 거기는 쥐도 없고 창고에는 좀도 없고 썩지도 않으니까 하늘나라 창고에 너희들이 재산을 다 저축하라 하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지요. 그렇게 우리 근본 영성을 생각하면서 그럼 엘리야 이야기를 했어요. 그 어른도 그러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종이거든요. 누가 도와줬느냐? 제일 불쌍한 과부가 도와줬어요. 돈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에요. 그럼 이 선생님을 도와준 제일 불쌍한 어머니들이었어요. 돈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그게 영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요.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을 통해서 일 하세요. 결코 재산으로 일을 못합니다. 격언이 있지요. 춥고 배고프면 하나님을 사모하지요. 병들어야 사모해요. 이상해요. 건강하고 배부르면 하나님을 배반해요. 하나님을 멀리 떠나지요. 그러니까 아직까지 이 은혜를 받은 것은 여러분들이 배고프게 살고 못 입고 산 것 뿐이에요. 그것이 이 공동체를 썩지 않게 하고 있지요. 지금 그 것 뿐이에요. 그럼 제일 부러운 것은 시작할 때 원복이 없다. 그건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검정치마에 흰 저고리 이 머리에 기름 조금 발랐어요. 이렇게 빠마하지 않고 그래서 우리 전통이 그건데요. 이공님이 시작할 때와 거기도 지금 어느 한분이 시작했지요. 그분이 언제나 같답니다. 거기도 오십년 육십년 간대요. 칠십년인가 우리들도 이공님부터 시작되면 70년 갑니다. 그렇지요. 해방 전 20년 전이니까 뿌리가 그 두 분 다 산에서 시작하셨어요. 그게 하나는 원복이거든요. 하나는 동광원인데 그래 우리도 이 정신으로 나가지 않습니까? 다시 뿌리가 살아나요. 때가되면 무엇으로 봐서 희망을 품느냐?
작은 자매회가 있지요. 작은 예수회 후코가 사막에 가서 죽지 않습니까? 그래 씨가 없어요. 제자가 없어서 그런데 50년 후에 그 책을 보고 일어난 것이 자매회거든. 작은 자매회 지금은 서울 쓰레기통에 막을 치고 사시는 그 수녀들, 그래 쓰레기 줍고 사시는 거 평복입고 껍질을 보면 전혀 수녀 아니에요. 그냥 코밑이 꺼매. 쓰레기 줍고 사느라고 종일 그거 줍고 살아요. 세계적으로 그 사람들이 소금이 되는 거지요. 예수교가 썩지 않도록 소금이 되었어요. 후코의 회원들이 이건 제가 하는 말이 아니지요. 반드시 다시 그리워집니다. 다시 복귀가 되어요. 앞으로 우리 후배들은 그럴 런지 몰라요. 검정 고무신 검정치마 흰 저고리 빠마하지 않고 까뭬 한 거요. 딱 뒤로 집고 원불교가 다른 거 없어요. 처음에 살 때 고대로 계속하는 겁니다. 지금 수녀 복이 수천 년 전부터 계속한 거예요. 결코 (끊김)
그 스승님이 입었던 옷 그대로 입는 거지요. 바지저고리 여자들도 머리 깎아 버리고 우리 전통은 왜 없어졌습니까? 희미해 진거지요. 어느 때 회복되어요. 앞으로 그럼 우리가 죽은 다음에 회복될 겁니다. 어느 때인가 그게 회복되면 이 영혼이 오래가요. 이 공동체 영성이 계속 될 겁니다. 획복 되지 않으면 말라버리겠지요. 회복이 안 되니까, 그럼 외모를 말 하는 게 아니지요. 외모가 상관없지요. 속에, 속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혼 영성 영적 성질이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래도 일명 동광원인데 동광원영성은 자비심이랍니다. 불교도 자비심이지요. 우리는 굶고 오신 손님은 그렇게 귀족같이 대접했어요. 거지가 오나 왕족이 오나 차별하지 않고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면 사랑이지요. 동광원은 사랑이다. 옛날에 어머니들 선생님들 사랑이 얼마나 질겼던가? 그건 육적 사랑은 아니지요. 영혼 사랑을 그렇게 진하게 하셨어요. 영혼을, 참 생명을 바쳐 사랑하셨어요. 그런 곳이 없답니다. 그런 곳이 없어요. 영혼을 그렇게 사랑한 곳이 없답니다. 아무 수도원을 가 봐도 너는 너, 나는 나지 영혼을 위해서 그렇게 아껴주고 사랑하는 곳이 없답니다. 우리는 한나 어머니한테 그걸 배웠어요. 영혼을 사랑하는 것. 이공님, 이 선생님, 다 그렇지요. 물론 다 같이, 분원장님이 정 원장님 또 은연 어머니 원장님, 다 영적 사랑이 충만한 분들이었지요. 또 누구 이름을 말하는 건 실례지요. 옛날 갈보리 어머니 영혼을 사랑 하실 줄 알았어요. ‘뭐 음식을 누구를 줬다’ 그 말이 아니에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사랑을 많이 주셨어요. 영혼을 그렇게 알뜰히 사랑하셨단 말이에요. 영혼을.
그러면 여기 쪼금 더 봅시다. 열왕기 엘리야의 승천입니다. 죽었단 말입니다. 스승은 죽고 후배가 다시 계승한다는 이야기지요. 2장 열왕기하 2장, 엘리야의 승천. 제가 읽지요.
여호와께서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 예언자를 하늘로 데려가실 때가 가까이 이르렀다. 엘리야가 벧엘에서 북쪽으로 15키로미터 지점에 있는 길갈에 머물러 있다가 길을 떠나려 하는데 엘리사가 따라 나섰다. 그러자 엘리야가 그에게 자네는 여기 남아있게. 나는 주께서 말씀하신대로 벧엘로 가겠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엘리사는 엘리야의 말을 듣지 않았다. 주께서 확실히 살아 계시고 선생님이 확실히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저는 결코 선생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이리하여 그들은 함께 벧엘로 내려갔다. 벧엘에 있는 예언자 공동체의 학생들이 엘리사에게로 와서 물었다.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님을 하늘로 데려가실 터인데 알고 계십니까? 엘리사가 대답하였다. 나도 알고 있으니 조용히들 있으시오. 엘리야가 다시 엘리사에게 자네는 여기 남아있게. 나는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리고로 가겠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엘리사는 이번에도 지난번과 똑같이 엘리야의 말을 듣지 않았다. 주께서 확실히 선생님이 확실히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저는 결코 선생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벧엘에서 남쪽 동남쪽으로 떠나 여리고에 이르렀다. 여기서도 예언자 공동체의 학생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물었다.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님을 하늘로 데려가실 터인데 알고계십니까? 엘리사가 대답하였다. 나도 알고 있으니 조용히들 있으시오. 엘리야가 세 번째로 자기와의 동행을 엘리사에게 만류하였다. 자꾸 혼자 가신다고 따라간다고 하지요. 자네는 여기 부디 여기에 남아있게. 나는 주께서 말씀하신대로 요단강으로 가겠네. 그러나 엘리사는 여전히 단호한 태도로 엘리야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는 수 없이 엘리사와 함께 요단강가로 걸어갔다. 그런데 여리고에 있는 예언자 공동체의 학생 오십 명이 뒤 따라오다가 두 사람이 함께 요단강가에 이르러 멈추어 서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게 되었다. 엘리야가 자기의 겉옷을 말아서 강물을 내리치자 물이 갈라져서 그 두 사람은 마른땅을 밟고 강을 건넌다. 그렇게 하여 요단강 건너편에 이르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물었다. 주께서 나를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자네를 위하여 무엇을 해주면 좋겠는가? 엘리사가 간청 하였다. 선생님께서 예언자들에게 나누어 주실 영역가운데서 제게는 두 몫을 물려주셔서 제가 맏아들처럼 스승님의 남은 사역을 수행하게 해주십시오.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자네의 요구는 내 권한 밖의 일일세. 하지만 주께서 나를 데리고 올라가실 때 그 광경을 자네에게 보여주신다면 아마도 자네의 요청대로 될 것이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자네의 요청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네. 그들이 이렇게 이야기 하면서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 말들이 끄는 불 수레가 달려와서 그들 사이를 갈라놓으며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에 휘감아 하늘로 데려갔다.
엘리사가 그것을 보고 외쳤다. 나의 아버지여 나의 아버지여 이스라엘을 지키던 전차와 마병이시여, 거기까지만 보지요. 하나님의 종들은 몸은 땅에 있지 않지요. 이분은 하늘나라로 승천하시고 그 정신을 주시라고 제자가 소원하지요. 그 영적 정신을 주십시오. 외적 물질은 없지 않습니까? 뭐 땅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엘리사가 엘리야가 가졌던 영성을 그 정신을 제게 주십시오. 배를 주십시오. 우리가 정신을 계승해야 공동체의 회원이지, 그 영혼을 영적 진리를 계승 못 받는다면 몸만 여기 있으면 뭐하겠습니까? 별거 없지요. 아무 뜻이 없어요. 그럼 인제 계시적이라 할까요? 이번에 도암면에 갔는데 오 목사 계시지요? 젊은 목사, 거의 밖에서는 동광원 이라는 공동체를 영적 등불로 축원해요. 동광원이 할 일이 그 것뿐이라고 막 추켜세워요. 무슨 말을 제가 들었냐하면 자기는 목사인데 장로교 목사 아닙니까? 예수회 신부가 경영하는 무언(無言) 말하지 않는 기도를 10일간 배워왔다. 그래 24시간 말하지 않고 골방에 앉아 있는 거예요. 지도만 받지요 신부한테, 그래 지도 신부사상이 아니에요. 옛날에 죽으신 이의 영성을 본받는 것인데 그런데 한 목사 10분이 그 지도를 받고 와서 생각해 보지. 아 이것이 우리 재산이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쓰겠다. 자기가 그것을 깨달았다는 거예요. 목사님들이 너무 교회에 시무하는데 바쁘고 정신이 없다는 겁니다. 살림이 바쁘고 그러니까 우리 목사들도 딱 일 끊고 골방에 앉아서 하나님을 만나보는 훈련을 해야 쓰겠다. 그런데 황송한 말씀이지만 어떻게 목사들이 자꾸만 신부한테 가서 교육을 받을 수 없다. 자기 교단 관계도 있고 하니까 동광원은 신부가 아니라 이거에요.
동광원영성이 무슨 수도원만 못하냐? 어느 신부만 못 하냐 그거에요. 여기도 다 이 공님 정신 이 선생님 정신이 있으니까 동광원에서 그렇게 해 주신다면 뭐 말을 해 달랍니까? 기도해 달랍니까? 골방 하나 주시고 기도하도록 가르쳐 주시면 많은 목사들이 동광원에와 기도하면 쓰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해요. 그러니까 화학산이나 이공님이나 이 선생님 고향에 자기들이 가서 보고 온 대로 이야기 하십디다. 깔멜 수도원에도 그거거든요. 사람하고 만나지 않게 하는 거거든요. 사람에 휘둘려 가지고 사람이 지쳐있지 않습니까? 그럴려면 대소변도 보려고 안 나가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잠깐 훈련을 하는데 혼자 사는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방이 있고 침실이 있고 변소 화장실이지요. 또 욕실 일체 방 하나에 다 있다는 겁니다. 그 수도법을 배우는 데는 사람을 만나지 않게 이 조석 예배는 같이 보지요. 공동으로 기도가 딱 끝나면 골방으로 들어갑니다. 그게 깔멜수도원 기도법이거든요. 그러니 동광원의 영성은 그거에요. 실상 혼자 하나님을 만나기로 하신 분들이 이 세종선생님 이 선생님이 이제 걸어가신 길이거든요. 그걸 흠모해 가지고 갈보리 어머니가 입산 했다지요. 초기에 가정을 그만두고라도 시작을 그렇게 했어요. 또 그렇게 사신분이 하늘나라로 가신 서 집사님 또 곡성의 김 장로님, 김 장로님은 무등산에 팔년을 혼자 사셨습니다. 기도실이라고 무등산 중턱이지요. 그 기도실을 계승받은 사람이 헐멜상가입니다. 정 목사가 김 장로에게 인계를 받았거든요. 밑으로 내려와서 하고 있어요. 나라에서 기도원을 폐쇄할 때 조건부로 지금 내려와 있지요. 그걸 본받은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면 어느 예수회 수도원에서 그 경건한 목사들을 모시고 무언의 기도 법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다른 목사들은 가서 동광원이 그걸 하라는 거예요. 동광원이 실력 있는 분들인데 왜 일을 안 하느냐? 막 눈물겹게 사정해요. 지금 우리에게 꿈같은 이야기지요.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불쌍한 사람들 데리고 사는데 이것이 한 가지에요. 동광원이라는 나무가 있으면 한 가지일 뿐이야. 또 계명산에 살지요. 또 도암면에 그렇게 살지요. 한 가지지요. 영혼의 뿌리는 똑같다는 거란 말입니다. 영혼은 엘리사와 같이 엘리야와 같이 하나님을 직접 만나서 하늘나라 가는 준비하는 곳이거든요. 일하려고 모인 곳이 아니에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서 땅에서 지극히 불쌍한 사람들을 나로 보고 섬겨라. 그러지요. 땅에서 버림받은 사람을 나 예수로 보고 사랑해줘라. 사랑하는 곳이지요. 사랑의 끄트머리에 와서 사랑하는 장소고 영혼을 닦을 곳은 산. 그래서 앞으로 직원숙소도 될 수 있으면 고요히 종일 사람들에게 시달려서 밤에 들어가면 혼자 기도하고 조석 합동 기도 올리고 근무하고 이 체계를 세웠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거 희망이지요. 누가 그렇게 한단 말도 아니거든. 책을 보나 소문을 들으나 다른 공동체의 거울을 보면 우리도 그렇게 해야겠다. 그걸 참고해 가지고 앞으로 이건 창조지요. 우린 아직 그런 일 안했지만 그런 희망을 품고 창조적인 희망을 품고 의논하면 쓰겠더라고요. 그래 계명산에도 오셨다고 가실 텐데 바빠서 개인 개인 말은 못하고 같은 직원이니까 들어보세요.
그럼 우리는 천년 이천년 후까지 이 공동체가 남을 것을 믿거든요. 그럼 우리는 죽어버리지만 흔적은 남아요. 우리가 먹을 재산은 아니지 않습니까? 늘 남거든. 먹고 나도 먹고 남고 땅에 떨어지는데 제가 한나 어머니의 인생 말씀을 거기 가서 했어요. 계명산에 가서 뭔 말씀을 했냐하면 한나 어머니는 남자가 싫어서 혼자 살았단 말입니다. 노골로 말하면 남자 없이 왜 못 사냐? 여자끼리 그래서 여자 공동체지요. 그걸 세웠어요. 계명산에 가서 남자 어른 이 선생님과 의논했다. 그것이 정신의 생명이요. 창조적인 생명이에요. 살아있는 정신이에요. 여자는 하나님의 자손이 아니냐? 여자도 하나님의 자손이다. 왜 남자만하냐? 나는 이 선생님과 의논 않고 예수님하고 하나님하고 의논하고 내 살길 찾아야겠다. 그리고 젊을 때 계명산에 들어가시고 빈 손들고 그냥 얻어먹고 사신 것 아니에요. 그 정신을 공명하신 분이 두 번째 어머니 희옥씨 어머니 두 분이 합심함으로서 공동체 여자공동체를 형성했다. 항상 어머니는 인간적으로 죄인이지요. 왜 선생님 허락을 안 받았으니까 자유 했단 말입니다. 항상 죄인이에요. 나는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고 혼자 살고 고집한다. 그러니까 그럼 이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머니를 존경하고 아주 성스럽게 여기시고 잘했다고 찬성하시고 세워드려요. 어머니 참 잘하셨습니다. 나와 의논하지 않고 혼자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신 어머님의 영성에 존경합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래서 죽으신 거예요.
탄생하시고 아 어머니 잘하셨어요. 잘하셨어요. 나와 의논하지 않고 예수님과 의논하신 것 잘하셨어요. 그 정신을 지지하고 보호하시기 위해서 돌아가신 것이거든요. 그거거든요. 어머니 한 것이 섭섭해서 안 가버리지요. 섭섭합니다. 왜 나와 의논하지 않고 이런 일을 했소? 꾸지람 하려면 안가지요. 그래 두 분 사이는 여자끼리 살 수 있는 공동체를 세우시고 이 선생님은 찾아가서 응원하시고 붙들어 주신거란 말이지요. 그 모습이 여자 수녀원은 절대 신부는 그 안에서 못살아요. 안 살아요. 남자니까 멀리 사시면서 규범 미사 집전 때는 잠깐 오시지요. 그럼 이 선생님은 광주사시나 잠깐 가보는 거지 영적으로 이 선생님이 살 곳은 아니지요. 그래 규범을 세우시고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것을 우리가 계시를 받들어 가지고 그를 만들어 살면 수도원이 되지요. 여자 수도원 또 남자 수도원이 되겠지요. 앞으로 그 아직 씨가 떨어졌으니까 곧 나려는지 소위 말하면 후쿠오 수도원 같은 건 50년 뒤에나 나오지 않아요? 여기를 찾아온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뛰어들어 가지고 그 질서를 지킬 사람이 이제 나온다고요.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란 말이에요. 하나님의 계획하시고 된 일을 하나님이 하시지 사람이 하려고 해도 안 되어요. 그래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이 하신일이지요. 그 깊은 산중에 지금이 올라가요. 땅값이 올라요. 그런데 어머니들이 못 먹고 허리끈을 졸라매고 그렇게 아낀 재산이 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그거 누구 개인이 쓰지 못하잖아요? 공동체 재산이기 때문에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그 어른들이 적게 쓰고 적게 사시느라고 집 한간이 반듯한 것이 없지 않아요?
그 어른들이 그렇게 살았어요. 흙집 짓고 그럼 후배는 어떻게 할 거냐? 그 어른들의 정신을 보호해 드려야겠다. 그러면 많은 재산이 있기 때문에 한쪽 재산을 정리해 가지고 그 정신을 보호할 수 있는 공동체 아까 어느 목사가 원한거지요. 이 독방 고요히 목사들이 와서 기도할 수 있는 독방을 해 주십시오. 그럼 독방이 12개이라고 합시다. 계명산에 다가 그럼 밥도 안 해도 되어요. 식당이 있으면 자기들이 해 먹어요. 자기들이 그럼 금식하고 가실사람은 금식하고 가시고 그럼 이걸 천주교에서 해도 좋지만 동광원에서 해라 이거에요. 동광원 어른들이 그렇게 살다 가셨으니까 그 일 해 주십시오. 그러면 거기다가 소위 말하면 이공님의 영성에 의해서 기도할 수 있는 기도원이라는 말은 우리가 안 쓰지요. 그럼 수양관을 만들어가지고 그게 큰일 아니에요? 뜻이 있으면 그 계획이 선다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가지 우리가 원하는 일이 생겼어요. 이 선생님이 어머니가 혼자 사셨으니까 찾아가셨단 말입니다. 2-3년 후에 아까 찬송 불렀어요. 노래,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다. 여자끼리 남의 땅에다가 적산이지요. 국유림에다가 막 한간 치고 사는 어머니들인데 자매들 남자가 왔다. 방이 있냐? 말이에요. 그것이 본 모습이에요. 그러니까 이 선생님이 이번에 들었네요. 3일 밤을 그 바위위에서 주무셨다고, 이슬 맞고. 그것이 우리 동광원의 정신이에요. 그렇게 시작하신 거예요.
남의 땅에 또 옛날에 산중 벌채하던 분들이 쓰던 옛 방에 불때가지고 막 이어가지고 그리고 자매들 아주 청춘 자매들이 그 이삼십 명 살 때 먹을 것 있습니까? 풀뿌리 캐먹고 감자 심은 것도 훗날 아닙니까? 그런데 이 선생님이 찾아갔어. 주무실 곳이 없어 노숙을 했어. 근데 그 자리는 국유림이었더라고요. 한나 어머니 막하고 이 선생님 주무신 자리가 아직 나라 땅으로 있어. 그러니 기회는 지금 있다고 그래요. 지금 잘 이야기하면 40년 이상 살면 국가에서 불하해 줘요. 국법이 있어요. 그래서 가서 사정한번 해보자 이거에요. 우리 선생 우리 어머니가 쓰시던 이 집 자리. 백 평이 될지 이백 평이 될지 또 옛날에 벌어먹던 땅 거기도 한 양지간도 한 백 평 되지요. 그 수십 년 벌어먹었으니까. 국가에서 팔아먹어 버리기 전에 우리에게 불하해 주십시오. 한번 사정해봐야 쓰겠다 그거에요. 우리는 거기 땅덩어리 많으니까 많이 살수는 없지요. 삼백 평이면 한 오천만원 되어요. 땅 금이 그렇게 땅 금이 올라가 버리더라고요. 그럼 우리가 여기서 돈을 빌려서라도 우선 그걸 사놓고 거기 땅 갚을 수 있잖아요? 아무 빚 없이 그러니 이 기회를 넘어가 버리면 재벌이 가져가 버리니까 큰 재벌이 불하해 가버리면 전부 호텔이 서버리든지 요각이 여관 같은 것이 서 버리겠지요. 그러니까 그것이 서기 전에 우리 어머니 우리 선생님들이 주무시고 이슬을 맞고 주무시던 바위덩어리 그걸 우리가 사서 그것이 아까 말하던 영성을 위해서 수도원이 있듯이 우리 수도원이 되는 거지요. 땅을 불하 받는다면 역사가 있으니까 옛날 우리 어머니가 여기서 이렇게 사셨고 우리 선생님이 여기서 주무시고 여기서 돌아가셨다. 이분들이 이렇게 사신 분인데 이렇게 하나님을 사모하고 깊은 산에서 기도하던 분들이시다. 그러고 지도자가 없어요. 신부가 가르친 일이 없고 목사가 가르친 일이 없어요. 스스로 깨달았다. 스스로, 그래 여기 맞아요. 아까 도암 교회 오목사가 원하듯이 여기에 정신이 있는데 우리가 구태여 천주교에 가서 배워야 합니까? 그거에요. 여기서 해야지요. 그래 도암면에도 땅 이천 평 사 놓았지요. 거기다 해달라는 거예요. 독방을 많이 만들어 주시고 우리 목사님들이 이 어른들의 훈김을 쏘이면서 그렇게 사신 어른들의 참 정신을 배우면서 우리들이 기도하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애원하더라고요. 그것이 다 하나님의 음성이지요.
우리가 재산이 없는 것 아니에요. 응용만 못한 것뿐이지. 빚 얻지 않아요. 땅 쪼금 팔아가지고 그런 집을 지어야지요. 그럼 교회 봉사되지요. 전교회 많은 목사님들이 와서 쉬어갈수 있도록 이 봉사 함으로써 이 자선사업도 살아나요. 자선사업도 보호가 되지요. 그러니 교회 봉사할게 우린 없지 않습니까? 전도사가 없지요. 전도를 못하지요. 그런데 전도하시는 목사님들이 오셔서 쉬어 가신다. 기도하고 가신다. 그러면 이제 서울에서 제일 유명한 교회 있지요. 그 목사님이 거기 와서 한 시간 예배보고 갔답니다. 그런데 그 계열에 목사가 수십 명이 다녀갔대요. 그들이 이 소문이 나서 계명산이 바로 예수 믿는다. 그렇게 인정이 되었다. 예배가 무슨 필요가 있냐? 이름뿐이라면 목사도 필요 없다. 이거에요. 거기는 예배당도 없고 목사도 없는데 예수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 목사님이 그러더라고요. 젊은 목사가 꼭 예배당이 있고 목사가 있어야 예수 믿는다는 거 이거 잘못 되었다. 예배당 없이 목사 없이 살면 된다. 이렇게 밥 벌어 먹고 새벽에 자기들끼리 기도하고 계명산에 가서보고 희망을 품었다. 그 목사님 이름도 몰라요. 큰 교회 목사라 합디다. 그런 목사님은 말씀이 아주 영력이 있는 분들이지요. 어떻게 해서 계명산에 찾아왔느냐 하면 엄 목사님 기도원에 가서 한 일주일 단식을 몇 년 동안 했대요. 거기서 방 하나 빌려주니까 금식하고 왔기 때문에 계명산 소식을 듣고 찾아가 봤다는 거예요. 과연 어떻게 사는가? 가서보니 목사가 없거든. 예배할 때도 그래도 이렇게 믿고 살아 어머니들이 야 이거다. 예수님이 이렇게 살기를 원하는 구나. 앞으로 이렇게 믿도록 길을 열어줘야 되겠다. 꼭 목사 있고 예배당만 있어야 예수 믿는 게 뭐냐? 생활 자체가 믿음이어야지. 그럼 계명산이 모본이다. 그렇게 생활 신앙을 생활화 하는 것. 그렇게 증언을 하시더라. 그래요.
큰 목사 어른이 근데 5년 전에는 그랬어요. 한번 와달라고 거기 모임이 있다고 우리 못 갔어요. 할 말이 있어야지. 가서 이 선생님도 안계시고 한나 어머니도 안계신데 누가 대리로 가서 어떻게 말해요? 계명산에서 사는 분들 가운데 한분 우리한테 오라. 목사들이 수백 명 모인데 쫌 말해달라고 저도 못 갔어요. 생활이 없는데 어떻게 무슨 말을 해요? 그런 일이 있거든요. 어찌되었든지 어제는 정 원장님을 기념하는 또 김은연 어머님을 기념하는 시간이었으니까 그 어른들이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셔서 왜 고생을 하고 가셨느냐?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고 그 영혼은 예수님께서 품으셨던 성령이지요. 성령을 받아가지고 일하시고 가셨는데 그 일이 계승되어야지요. 백년 천년 오래 계승 되려면 그 본 중심을 세워야 한단 말이에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목적 그 영성을 세우는 희망이 생겼단 말입니다. 처음에는 이 선생님과 정 원장님이 꼭 그렇게 하시고 싶어서 이렇게 큰 노트가 있었어요. 원장님 가방에 항상. 선교원을 세우시려고 그렇게 사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