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 박명숙
클래식과 교회 음악 테이프를 들으며 태교했던 덕분일까? 노래 좋아하는 남편을 닮아서일까? 아니면, 하나님이 거저 주신 선물일까? 아이 울음소리가 얼마나 우렁차고 카랑카랑했던지 주변에서 신생아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며 다음에 크면 노래 잘하겠다 했다. 어른들의 직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예견대로 딸은 그렇게 자라 갔다.
세 살 때로 기억된다. 어른, 학생, 남자와 여자가 뒤섞인 무대 위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행사장에 참여하게 됐다. 처음에 갈 때는 구경꾼으로 관중석에서 박수로 응원만 하려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음악이 나오니 딸이 그 많은 사람을 비집고 들어가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느린 선율에서는 천천히, 빠른 곡에서는 흥을 감추지 못하고 작은 엉덩이를 씰룩쌜룩 마구 흔들어 댔다. 어린아이가 어른들 틈 사이에 서 있는 것만도 용기가 대단한데 온몸으로 발산하는 그 끼는 더 놀라게 했다. 완전 무대 체질이다. 딸의 어린 시절은 이처럼 감동하는 사람이 있어 행복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갑자기 소년소녀 합창단에 들어가고 싶다며 졸랐다. 오디션과 면접을 거뜬히 통과하고, 소원대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단원 최종 나이까지 다니고 마쳤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집 가까운 곳으로 다녀도 되지 않겠냐며 설득해도 성악을 공부하려면 일반 고등학교보다 예술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가 더 빠른 길이라면서 딸은 기어이 예술고로 갔다.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져 힘든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도 노래가 좋아서 잘 견뎌 냈다. 무대에 익숙해지는 경험을 늘리고, 실력도 검증 받으려고 대회에도 자주 나갔고, 상도 많이 받아 왔다. 이날은 별말 안 해도 딸은 괜히 예민해진다. 눈치채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 했는데 딸에게 가는 말이 항상 2퍼센트 부족했는지 그때마다 아이는 자신감이 떨어졌다. 심사위원은 잘했다고 상을 주는데 부모는 왜 양이 안 차는지, 칭찬에 인색한 못된 부모다.
덜 고생하고, 근거리에 있는 국립대학교에 갔으면 하는 부모 생각과는 다르게 치열한 경쟁을 해 가면서도 수도권의 사립대학교 음악과에 입학했다. 꿈을 향해 한발짝 다가선 듯하여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목 아프게 소리 질러 가며 열심히 준비해 연주회와 발표회를 열었을 때 아무리 바빠도 다른 일 제치고 올라가서 응원했다. 공연을 마치고 나서 칭찬만 듣고 싶은 아이에게 부모는 참고하라며 꼭 한 가지 부족했던 걸 찾아서 그만 말하고 만다. 잘했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딸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 고질병을 고치기 힘들다.
딸의 연주를 듣고 난 사람이라면 꼭 물어본다. 누굴 닮아 그토록 노래를 잘하냐고. 그때마다 망설이지 않고 남편이라고 대답한다. 내게는 그런 유전자를 물려줄 만한 흔적을 도무지 찾기 어려워서다. 노래 듣는 건 좋아해도 흔히 말하는 음치와 박치여서다. 그러다 보니 부르는 걸 끔찍이 싫어한다. 남편은 목소리도 좋고 노래를 잘해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성악을 전공해보란 말까지 했는데, 가난하여 레슨비가 없어서 꿈을 접었다며 지금도 자기 자랑한다. 다른 건 몰라도 노래는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 그 말에 맞장구친다. 그래서,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것 보고 반해서 내가 결혼했다고.
성악을 전공한 딸이 있어서 호강한다. 소프라노 음색이 맑아서 듣는 사람의 마음도 깨끗해지는 소리라고 전문가들은 극찬한다. 고음으로 부를 때는 전율이 느껴진다며 양팔을 감싸 안으며 부들부들 떠는 사람도 있다. 입장료가 비싼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공연에도 비록 조연이지만 딸이 출연한 덕분에 잘 보이는 좌석에서 관람하는 행운도 누렸다. 음악에 무지한데 아이 덕분에 클래식을 듣게 되면서 아는 곡도 늘었다. 출연했던 오페라 ‘라보엠’, ‘유쾌한 미망인’, ‘라 트라비아타’공연을 보면서 이제는 내용의 흐름도 살짝 알 듯하다.
꿈에 부풀었을 때는 이렇게 기쁨을 주던 딸이었다. 그런데, 요즘 원하던 시립합창단 정단원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노래에 쉼표를 찍으려는 말을 비치고 있어서 딸만큼이나 마음이 아프다. 부모의 고약한 고질병 때문에 꿈이 사그라들고 있나 싶어 미안하다. 더 잘했으면 하는 욕심이 앞서 듬뿍 칭찬하지 못한 걸 후회한다. 어렸을 때처럼 감동의 불씨를 다시 피워야겠다.
딸의 노래가 언제, 어디에서 쓰일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성경에 나오듯이 딸이 두드리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다. 남에게 없는 재능을 선물로 받았다. 아직 희망이 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러면 발견할 것이다. 두드려라, 그러면 문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첫댓글 다들 노래 실력이 출중하시네요. 엄마의 유전자도 받았겠지요. 박명숙 선생님 말처럼 반드시 쓰임 받을 때가 있을겁니다.
고맙습니다.
따님이 어렸을때 처럼 감동의 불씨를 꼭 피울거예요.
멋지게 성공하길 기원합니다.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힘들지만 도전해 보라고 하면 어떤가요?
요즘 경연 프로그램에요.
딸을 응원합니다.
재능기부하며 노래는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응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제목 처럼 하면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응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포기하지 마시라고 응원합니다. 따님의 노래를 좋은 곳에 쓰실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선물로 받은 재능을 주신 분의 뜻에 맞게 잘 쓰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