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이민 2기 254. 병원 이야기 (6)
화요일, 휴대전화를 들고 병원 밖으로 나와 길을 건너 멀리까지 간다.
시그널은 좀 잡히는데 대로변이라 달리는 차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태양빛에 액정은 보이지도 않는다.
골프 약속도 있고 저녁 약속도 있는데 예정된 모든 일들을 취소하려니 연락하기가 참 어렵다. 아무리 신호가 가도 안 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쪽 전화기 충전이 안 되었거나 그쪽 시그널이 나쁘거나, 뭐라고 영어 멘트가 나오면 실망이다.
어떤 건 도저히 통화가 안 되어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이 분께 좀 연락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약속을 그냥 안 지킬 순 없으니까.
그러다보니 자연히 온 사방에 입원 사실이 알려지고 있다.
옆 집 교수 내외가 찰밥을 해 가지고 병원엘 들렸다. 엊저녁에는 먼저 갔던 따가이따이 병원까지 가서 우리를 찾아다고 한다. 너무나 고맙다.
한 나절이 지나자 여기저기 서로 연락이 되어 많은 분들이 찾아와 준다. 모두들 이게 웬 일이냐고 걱정들이다.
작은 냉장고가 밥과 반찬과 과일들로 가득하다. 서로 겹쳐서 앉을 자리도 없다.
죠셉은 잠시 기분이 좋아져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열이 조금 오르기 시작하면 지치는 모습이다.
나이 먹은 우리는 이젠 오나가나 무능하기 짝이 없다. 시그널이 안 터져서 전화조차 못 하는데 병 문안을 온 최원장이 그걸 해결해 준다.
일부러 밖에 나가 500페소짜리 로드를 새로 사다가 뭔가를 조작해서 3G로 호환했다고 한다. 병실에서도 전화를 받을 수 있다.
이 작은 일에 행복해 진다.
그런데 잠시 후 돈보스코에게 전화를 거니 안 된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no more balanse 라고 하는 것 같다.
방금 500페소 로드를 충전했는데 발란스가 없다니....알고보니 로드 글로브끼리는 한 달간 사용이 무제한이고 로드 스마트와는 별도의 충전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 복잡하고 힘겹다. 우리같은 늙은이에게는 매사가 생소하고 이해하기도 힘들다.
글라시아가 이 번엔 야채 죽을 만들어 왔다. 쇠고기에 버섯을 널고 견과류가 약간 씹히는데 환상적인 맛이다.
이걸 먹으면 정말 힘이 나고 환자가 벌떡 일어날 것 같다.
그런데 간호사가 보더니 못 먹게 한다. 버섯의 검은 조각들이 변에 보이면 혈흔과 구분이 안 된다는 것이다. 민감한 시기라고 한다.
나는 정말 너무나 미안한데 천사같은 그녀는 미처 그 생각을 못 했다고 되레 미안해 한다.
그 맛있는 걸 멀쩡한 나 혼자 실컷 먹고 두었다가 또 먹는다.
남의 도움으로 세 끼를 먹고 지내자니, 보호자로 나선 글라시아가 제일 고생을 한다. 빨리 나아서 퇴원하는 길만이 신세를 덜 지는 건데.
둘째 날은 정말 정신없이 지나는 것 같다.
첫댓글 한국에서라면 좀 덜 고생되었을 상황까지
겹쳐서 고생 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