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 생활 에피소드 / 김석수
그와 나는 사이완호 근처 식당에서 마주 앉았다. 얼마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는 “교장 선생님,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나는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주어서 고맙습니다.”라고 응수했다. “이제 지나간 일은 다 잊어버리고 한잔합시다.”라고 내게 술을 권했다. 술잔이 두어 순배 오가자 “교장 선생님도 꽤 고집이 세대요. 모두가 학교 잘 되게 하려는 것으로 알고 내가 많이 참았소. 그동안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학교 운영하는 동안 학생 수가 많아졌으니 다행입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내가 해외 국제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한인회장이자 학교 이사장이다. 젊었을 적에는 유명한 축구 선수였다. 키와 손이 크고 체격이 우람하다. 머리는 스포츠형이다.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늘 뾰족하게 솟아 있다. 항상 작은 가방을 들고 다닌다. 음식이 좋아서 이곳 프로 축구 구단으로 입단에서 정착했다고 한다. 나이가 나보다 스무 살 더 많다. 술을 즐겨 마신다. 골프장으로 유명한 섬에서 살면서 배와 전철을 번갈아 타고 학교에 온다.
재외동포 자녀 교육하려고 우리 정부가 세운 해외 한국학교는 사립학교법을 따른다. 학교 이사회와 운영위원회를 따로 둔다. 이사회는 주로 교민으로 구성한다. 한인회장이 대부분 학교 이사장을 겸임한다. 학교 교직원은 교육부 파견 교장과 교사, 현지 채용과 초빙 교사로 나뉜다. 이사장이 교육부 파견 교원을 제외한 교직원을 채용하고 학교 회계에도 관여한다. 이와 같은 조직 구조로 학교장과 이사장은 갈등 관계가 가끔 일어난다.
내가 근무한 학교는 다른 나라의 한국 국제학교보다 구조가 더 복잡하다. 한국어와 영어 과정이 따로 있다. 한국어 과정은 우리나라의 7차 교육과정을 학교 실정에 맞게 편성해서 운영한다. 영어 과정은 교육과정이 영국의 지시에스이(GCSE) 시험 준비하는 프로그램 위주로 편성돼 있다. 학생 구성도 한국 학생과 국적이 다양한 25개 나라에서 온 외국 학생이 섞여 있다. 학생 수는 영어 과정이 한국어 과정보다 세 배 이상 많다. 학교 운영 경비는 등록금과 수업료, 교육부 지원금으로 충당한다. 학교 운영위원회 위원장이 회계 책임자로 되어 있다. 교장은 학사 운영만 한다.
부임해서 학교 상황을 파악해 보니 사정이 어려웠다. 한국어 과정은 학생 수가 적어서 곧 문을 닫아야 했다. 영어 과정도 학생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학교가 갚아야 할 빚이 많다. 쓰고 있는 건물이 낡아서 새로 집을 지으려고 은행에서 대출했기 때문이다. 행정 실장은 학교 수입이 적어서 매월 교직원 인건비 지출도 어렵다고 한다. 학교가 교민은 물론 학부모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교직원의 사기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학교의 어려운 문제에 부닥치자,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해외 학교 파견 근무를 지원해서 가족과 함께 이역만리 타향까지 온 내 신세가 한심했다. 며칠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어떻게 이 난국(亂局)을 돌파할 것인가?’ 고민이 깊었다. 마침내 이사장을 만나 학교 문제를 결판내기로 했다. 주말에 그의 집 근처에서 함께 등산하자고 연락했다. 지하철로 10여 분 간 뒤 ‘센트럴’에서 배로 갈아타고 그의 집이 있는 곳까지 30여 분 갔다. 그는 갈매기가 끼룩거리며 날고 있는 선착장까지 마중나왔다. 하늘은 푸르고 공기가 맑아서 산책하기에 좋은 날씨다.
우선, 그가 학교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가를 확인하고 싶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서 자연스럽게 학교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내가 알고 있는 학교 현황과 관련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 주었다.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보다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어떻게 하면 학교를 살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당신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했더니 눈을 크게 크게 뜨면서 “무슨 말인가요?”라고 말했다. 나는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인사권을 내게 주면 한번 해보겠다고 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그 문제는 혼자 결정하기 어려우니 이사들과 협의해서 알려 주겠다고 했다. 그는 학교 문제뿐만 아니라 한인 사회의 여러 가지 일을 내게 이야기했다. 학교를 정상화하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일주일 후 학교 운영위원장과 함께 교장실로 찾아왔다. “김 교장님이 열심히 하겠다니 인사권은 물론 학교 회계 운영의 전권을 드릴 테니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랍니다. 이전 교장은 학교 일에 소홀히 해서 서운했어요.”라고 말했다.
교직원은 매년 오월에 계약을 갱신한다. 대부분 큰 문제가 없으면 연장 계약을 한다. 2월 초에 부임해서 두 달 동안 학교 평가를 시행했다. 그 결과 72명의 교직원 중에서 29명을 계약 연장을 하지 않는다고 담당 영사가 참석한 이사회에 보고했다.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내가 주장한 대로 안건이 통과됐다. 40퍼센트 직원을 해고한 것이다. 그 지역의 유명한 일간지 사회면에 교직원 해고 소식이 주요 기사로 나왔다. 학교에 항의성을 띤 전화가 빗발쳤다. 영어를 잘못 알아들어서 영국 기자에게 말꼬투리를 잡혀 곤혹스럽기도 했다.
공관장이 불러서 갔더니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고 따졌다. 나중에 그는 이임 인사를 하면서 학교가 정상화된 것은 자기 공적이라고 치켜세우는 것을 보고 웃음이 절로 나왔다. 유능한 교사를 모집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다. 한국과 외국에 출장가서 우수한 교사를 찾아서 데려왔다. 교육과정도 학생 맞춤형으로 새롭게 만들었다. 재정 수입을 늘리려고 방치돼 있던 수영장을 외부 용역업자에게 임대해서 학생이 사용하는 시간 외에 일반인이 사용하도록 했다. 학교 홍보도 교민 사회는 물론 지역 언론에 적극적으로 했다. 아무튼, 시간이 흐르자 학교는 학부모와 교민의 신뢰를 받아서 서서히 정상화됐다. 1년이 지나자 학생 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개혁에는 부작용이 있다. 2년 반이 지나자 서로 갈등이 생겼다. 교장이 학교를 마음대로 한다고 이사장과 운영위원장에게 민원이 들어간 것이다. 운영위원장이 “교장 선생님, 학교 경영에 독선이 많다고 합니다. 과유불급이니 조심하세요.”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나는 “그래요? 구체적으로 알려 주세요. 잘못이 있다면 고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기분이 나빴다. ‘언제는 학교를 살려 달라고 그렇게 애걸복걸하더니 학교가 잘 돼 가니 이제는 상관 노릇을 하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장에게 화난 표정으로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했다.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한쪽 편 이야기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일이 있는 뒤로 우리는 한동안 서로 얼굴을 보지 않았다. 다정했던 관계가 서먹서먹하게 변했다. 3년이 지나 내 임기가 끝나갈 무렵에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귀국하기 전에 만났으면 한다는 것이다. 나는 흔쾌히 수락하고 그를 만나러 나갔다. 운영위원장은 나오지 않고 그는 다른 이사와 함께 왔다. 우리는 그날 서로 화해의 덕담을 나누었다. 지금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내년에 아내와 함께 그곳에 가보려고 한다. 연락해서 그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
첫댓글 해외 국제 학교까지 가서 능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셨군요. 대단하세요.
와, 두 배로 늘리고 40%나 인원을 줄이다뇨? 원장님 역량에 감탄합니다.
그 국제학교는 지금도 잘 되고 있겠지요?
정알 대단하시네요. 결단력과 해결력. 멋지십니다!!
어려운 국제 학교를 탁월한 경영 능력으로 정면 돌파 하셨네요.
그렇게 하신 원장님이 돋보입니다.
우와, 멋지십니다.
대의를 위한 일은 항상 어려움이 있겠지요. 잘 이겨내셨네요.
해외에서도 선생님의 재능이 빛났나 봅니다. 어려운 학교 경영을 잘 해내시고 갈등과 반목도 잠재워버린 김석수 선생님,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