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海霧) 상습지역이 고속도로와 동일 규정?
영종.인천대교 속도기준 적용 부적합... 영종대교는 안전시스템도 ‘미비’
영종대교 사고 현장. 이 사진의 우측 상단에 보면 승용차가 높이 들어올려진 것을 볼 수 있는데 당시 사고의 충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11일 오전 9시 45분 경 발생한 영종대교 100중 추돌사고의 최초 사고는 관광버스와 승용차의 추돌로 밝혀졌다. 이러한 가운데 상습 해무 발생지역인 영종대교와 인천대교 등의 속도기준이 이들 환경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인천서부경찰서는 12일 오후 브리핑을 열고 “영종대교 서울방향 도로의 사고는 신 모(57)씨가 운전하던 관광버스가 바로 앞에서 달리던 검은색 승용차와 추돌한 것이 최초 사고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경찰은 “사고 구간의 최전방에 있던 차량 10여 대의 블랙박스를 확인하면서 최초사고와 관련된 영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첫 사고 이후 추돌한 검은색 승용차가 1차로로 튕겨나가면서 서울 택시를 들이받았고, 이 여파로 서울택시가 앞서 나가던 경기택시까지 추돌하며 사고가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같은 경찰의 조사 결과 발표로 일단은 사고지점 최전방의 차량들이 안개 속 상황에서 감속하지 않고 오히려 가속을 한 정황이 드러나게 됐다. 정지 상태에서의 가시거리가 50m(그러니까 달리고 있는 차량의 가시거리는 10m가 채 안 된다고 할 수 있음) 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차량들이 속력을 냈다는 이야기다.
영종대교에 표시된 최고 및 최저속도 표지판. 최저 50km 이상 주행하라는 규정을 표시하고 있다.
한편 사고가 발생한 영종대교를 비롯해 지난 2010년 가시거리 미확보로 인한 사고가 있었던 인천대교 등의 최고 및 최저속도 기준이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일각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영종대교와 인천대교 등이 고속도로와 동일한 최고속도 100km, 최저속도 50km를 적용받고 있는 부분은 재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이들 도로는 과속을 해도 문제지만 50km 이하로 서행을 할 때는 속력을 내라는 재제가 들어오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지나는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이러한 사항들을 인지하고 운행한다. 공항에 직장을 두고 있어 승용차로 인천대교를 이용해 출근한다는 시민 오모씨(40, 연수구)는 “고속도로 기준을 적용받는 구간이라 90km 정도로 속력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라 말했다.
물론 이들 대교는 눈비 혹은 안개 시 감속을 해야 하긴 하는 구역이긴 하다. 그러나 두 대교 모두 평상시 고속도로와 같은 적용을 받는 도로임을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했을 때 현실적으로 안개나 눈비 등 상황에 적극적으로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오모씨는 “매일 인천대교를 지날 때 안개나 기상이 좋지 않을 때가 있음에도 고속도로라 인지하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속력을 내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 대교들이 일반적인 안개가 아니라 바다의 특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해무’라는 점에 있다. 도심지역 등의 일반적인 안개는 전반적으로 동일한 감도로 유지되지만, 해무는 그렇지가 않아서 어느 구역에서는 진하게, 어느 구역에서는 옅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 지역과 인근서 자주 발생하는 해무는 과거 인천공항이 건설 부지를 확정했을 당시 지역사회가 “공항으로 절대 적합하지 않다”고 반발했던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이런 환경에서 최근 문제제기가 됐던 안개특보 등이 완벽하게 운영됐다 해도 해무에 대한 문제 및 조치가 제대로 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때문에 일부 운수업자나 시민들 사이에서는 상습 해무지역에 최저속도 50km의 적용을 하고 특보 등으로 이를 조정하는 것보다, 해당 구간의 최고 및 최저속도 기준을 아예 모두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영종대교와 마찬가지로 '상습 해무 발생 도로'인 인천대교의 최저속도 표지판. 역시 최저속도 50km 이상을 표시하고 있다. 참고로 인천대교의 다른 표지판에는 '고속국도'로 표시돼 있다.
영종대교를 지나는 한 버스노선 소속의 운전기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어제 영종대교의 경우 기사의 눈앞에서 앞서 있던 차량이 겨우 보였을 정도로 해무가 진했는데 그럴 경우 한 30km 정도로 달려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이어 “이곳의 해무는 날씨에 상관없이 굉장히 자주 발생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고속도로와 같은 속도적용을 하는 것이 무리라고 본다”는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실제 이 기사의 의견은, 11일 영종대교 사고 시 20km 정도까지 서행했던 택시 운전자까지 사고를 당했다는 진술이 복수의 매체를 통한 보도 내용으로도 뒷받침된다. '안개 및 해무 지역에서의 가속 위험성'에 대한 일종의 타당성을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는 셈이다.
물론 고속국도로 지정된 도로에 지나친 속도제한을 두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소수 시민들의 의견도 있다. 시민 이모씨(39, 서구)는 “맑은 날에는 굳이 속도제한을 둘 이유가 없고, 특히 영종대교의 경우 아예 ‘인천공항고속도로’에 포함된 구간이기에 아예 원천적으로 속도를 내지 말라 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일 수도 있다”고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참고로 인천대교 역시 경우 진입지점 등의 표지판을 통해 ‘고속국도’임을 표시하고 있어 영종대교와 같은 경우다.
해무와 과속이 사고의 원인이라지만, 그렇다고 운전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도 없는 일이다. 영종대교는 ‘신공항하이웨이’라는 민자 운영사가 있는데, 이 운영사는 기후를 체크하고 운행 속도를 상황에 맞게 지정하는 가변 속도 제한 시스템 등 환경에 적합한 시스템을 영종대교에 갖춰놓지 않았다. 일반 고속도로보다 높은 수준의 통행료를 받는 도로가, 일반 고속도로보다 안전하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사고 직후 일부에서는 운영비를 아끼려고 이러한 시스템을 구비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경찰은 “사고 현장에 대해 목격자와 최초 사고자 등을 상대로 조사를 하는 동시에 영종대교 운영사인 신공항하이웨이를 상대로 안전조치가 적절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조사할 계획”이라 전했다. 이어 “부상자는 어제보다 열 명이 늘어난 총 73명이며, 사망자 수는 어제와 동일한 2명으로 총 사상자는 75명”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