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유현준 지음 『공간이 만든 공간』
이 책은 무엇을 담고 있나
내가 이 책을 어디서 봤더라. 한참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냈다. 몇 년 전 <책익는마을> 회원분들과 안동 고택 답사를 갔다 온 후에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 호기심이 생겨 여러 권의 책을 읽었는데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번 달 독서토론 책으로 다시 만났다. 나는 가끔 책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읽어보면 다시 읽히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그저 우리나라의 전통 방식이 궁금해서 그것을 중심으로 읽었고, 이번에는 저자가 건축을 대하는 철학에 집중해 보았다.
『공간이 만든 공간』은 건축이 만들어낸 공간이 어떻게 문화와 생각을 만들고, 변화시키고, 융합시키는지 역사적, 과학적, 지리적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또한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와 교류가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새로운 기술과 가상공간이 미래의 문화와 공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살펴본다. 동양의 공간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중시하여 유기적이고 상대적이고, 서양의 공간은 수학적 규칙과 완전함을 추구하기에 일방향적이고 절대적이다. 이런 차이는 동양은 세상을 관계의 집합으로 보고, 서양은 절대자가 만든 수학적 규칙의 조합으로 보는 철학에서 기인한다. 이 책은 공간을 중심으로 인류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다양한 학문 분야를 통합하여 인간과 문화의 변화를 다루는 ‘빅 히스토리’ 책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공간이 만든 공간의 의미
공간은 물리적인 공간과 사유의 공간으로 나뉠 수 있다. 공간은 인간의 환경적 제약을 해결하려는 노력과 지혜의 흔적이고, 인간의 문화와 생각을 반영하고 영향을 주는 매개체이다. 그런 측면에서 공간은 인간의 문화와 생각을 반영하여 만들어졌고, 인간은 그 안에서 또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동기를 얻는다. 물리적 공간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사유의 공간. 그것이 바로 공간이 만든 공간의 의미인 것 같다. 요즘 새로운 사유의 공간의 대표로 가상공간을 빼놓을 수 없다. 책의 마지막에 소개되는 가상공간의 내용은 지금의 시대를 잘 보여준다. 가상공간은 인터넷이나 SNS와 같은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가상공간은 개인적 공간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가상의 개인적 공간은 실제 공간에서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과의 소통을 자유롭게 만들 뿐 아니라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며 정체성과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특히 가족과 사회의 다양한 역할과 책임으로 자신의 취향, 꿈과 열정을 표현하고 실현하기 어려운 중장년층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인간은 어떠한 형식으로든 자신만의 개인적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감정을 표현하고, 성장의 잠재력을 키우며 삶을 더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중장년층을 위한 디지털 역량에 도움을 주는 디지털 튜터로서 한 업무 공유 플랫폼에서 80명의 사람들과 일한다. 우리는 한 팀으로 같은 업무를 전국 각지에서 수행한다. 이 중 단 한 명도 실제로 만나 본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소속감을 가지고 한 팀으로써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업무를 차질 없이 해내고 있다. 가상 공간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차이와 융합 그리고 기술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책의 부제다. 책을 다 읽고 제목과 부제에 감탄하며 그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단순히 건축을 중심으로 동서양의 문화와 생각의 차이를 분석하지 않는다. 이 둘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교류하고 융합하여 새로운 창조를 이끌어 내는지 추리한다. 인간이 모여 살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차이가 생겨나고 차이는 충돌을 일으켰다. 이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융합을 하고 융합은 새로운 창조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이 과정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가 직면하는 다양한 문제와 과제는 이제 단일 학문이나 분야로 해결할 수 없음은 상식이 되었다. 게다가 지속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지금의 시대는 더욱더 새로운 생각과 가치를 요구한다. 그리고 차이와 융합에 이어 기술이 더해져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도 힘든 지경이다.
이러한 변화와 속도에 뒤처질까 조바심을 내며 얼리어답터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가끔은 숨이 차서 아날로그가 그립기도 하다. 아날로그적 문화와 디지털 문화를 차례로 겪고 있는, 좀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산업혁명을 겪고 있는 세대로서 그 중심을 잡기가 여간 쉽지 않다.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게 싫어 기계를 불태웠던 시대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아무리 거부해도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고 붙들어 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에서 나는 또 어떠한 공간에서 나만의 공간을 창조해 내고 충만한 삶을 살 것인지를 고민하며 행복한 상상을 해보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본다.
책익는 마을 유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