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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6:22-26 축복하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우리를 더 높은 믿음의 차원으로 싣고 올라가는
은혜의 마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통해 주어지는
복을 받고 산다면
틀림없이 건강하고 안전하며
번영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레위 지파 나실인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해야 할
축복의 내용입니다.
이것이 본문 22, 23에 나오지요.
하나님께서 나실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였습니다.
제가 서울 모 교회에서
부 교역자로 함께 사역하던 목사님이
계십니다.
나영석 목사님이십니다.
지금은 전북 김제 농촌 교회에서
사역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분에게 나실인이라는
큰 아들이 있습니다.
이름이 조금 특이하지요.
나씨 성이라서 나실인이라는
성경의 이름을 따라 지어준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가운데에서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국립음악대학에
유학을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저명한 작곡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2002년에는 중앙 음악 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큰 상이었든지
이로 인해 군 면제 혜택까지 받더군요.
그의 곡 중에 오페라 <나비의 꿈>이
유명합니다.
2018년에는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
소극장 오페라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나실인은 한국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본문은 나실인에 관한 규례입니다.
나실인이란 히브리 원어로는
나지르(נזיר)인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거룩하게 되는’ 또는 ‘분리된’이란
의미입니다.
레위 지파인 아론의 자손들이
이렇게 구별된 나실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타 지파와 다르게 살아야 했습니다.
이에 따라 나실인에게는
세 가지 규정이 있었습니다.
첫째, 포도주나 술, 독주를
마시지 말아야 했습니다.
둘째,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아야 했습니다.
셋째, 시체, 무덤 등에 의해서
부정을 입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평생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본문 22, 23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오늘날의 목회자도 구별된 면에서는
레위 지파 나실인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심지어 성도들과도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지금도 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살려고 하다 보니
하나님 앞에서 더 많이 회개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영적 결벽증을 앓으면서
가슴을 찢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제게 왜 이리 회개할 죄가 많은지요.
날마다 회개하는 삶은
올바른 목회자의 어쩔 수 없는 숙명입니다.
그러면서도 저에게는 축도권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성도들 가정을 위해 책임지고
축복 기도를 해줘야 합니다.
예배 마지막 순서에 축도가 있는데
이는 목사만 할 수 있는 고유 기능입니다.
그리고 제가 올리는 화, 목, 토요일
온 가족 축복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본문에 실린 이 축복의 말씀이
모든 성도님의 가정에
풍성하게 주어지길 바랍니다.
기도는 제가 하고 축복은
성도님들이 받습니다.
본문 24-26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1)‘여호와’(the LORD)란 표현이
본문 24-26까지 세 번이나 언급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는
복의 주체자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세상 누구도 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강아지를 보세요.
주인이 밥을 먹고 있으면
자기도 상 아래에 앉아 대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몸을 떨기까지 하며 간절한 표정으로
밥을 나눠주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복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저는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도
사람을 바라보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물론 예배의 자리에 있는
성도님들의 얼굴을 보면
얼마나 기쁘고 반가운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분이 복이시고,
그분이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온 마음을 집중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과 교제하면 그것으로 큰 복입니다.
2)‘네게 복을 주시고(bless you)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복은 이스라엘 백성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아낌없이 풍성하게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복의 근원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신정과 구정에 제가 카톡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대부분 목회자가 보낸 새해 인사입니다.
기분은 좋더군요.
저도 2023년 새해에 복을 많이 받길
소원합니다.
사실 저보다 우리 교회가
복 많이 받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경외하고 의지하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복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이렇게 큰 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복 받은 것을 감사하십시오.
우리가 이런 자세만 가지고 있으면
복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한 것도
풍성하게 채워주십니다.
3)’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keep you)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인간은 험난한 광야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 없이는
거친 이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가 우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우리 모두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1절만 부르시겠습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 아멘
이사야 43:1-3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4)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the LORD make his face shine
upon you)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얼굴은 의인화된 표현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과 전인격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시면
생명과 구원과 희열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시 27:1; 44:3).
제가 노방 전도를 한 지가
벌써 3년째이고 286회가 되었군요.
짐작하건데 1500명 이상은
전도한 것 같지만
굳이 1200명이라고 한 이유는
혹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숫자를 더하기가 싫어서였습니다.
차라리 낮춰잡는 게 제 마음이 편합니다.
그런데 전도를 할 때 마스크를 살짝 벗으면
불신자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얼굴색이 참 좋네요.”
물론 건강이 좋아서
얼굴색이 좋게 보이기도 하겠습니다만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얼굴색이 좋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사실 전도를 하려면
얼굴색이 좋아야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몸이 아플 때 야위고 새까맣던 얼굴이
이렇게 환해졌다고 말하며
간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는 마스크를 써서 잘 몰랐겠지만
이제 마스크를 벗으면
더 효과적으로 전도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의 얼굴이
은혜로 환한 얼굴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고
여호와의 얼굴을 보길 바랍니다.
우리가 복을 받으면
여호와의 얼굴빛이 우리의 얼굴에
그대로 반사됩니다.
지금은 우리가 예수님의 얼굴을
못 보고 있지요.
그러나 천국에 가면
빛나고 자비로우신 예수님의 얼굴을
뵙게 될 것입니다.
그날을 사모하며 기다리십시오.
복 중의 복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가서 예수님의 얼굴을 뵈옵는 복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어렵게 산다 해도
우리는 가장 큰 복을 받은 자입니다.
하지만 전도를 하다 보면
안타깝게도 교회를 다닌다는 분들 가운데
천국에 갈 확신이 있는 사람들은
불과 2, 30%밖에 안 됩니다.
70% 내지는 80%가 천국의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정말 가슴 터지게 아픈 일입니다.
천국에 갈 확신이 없는데
왜 교회에 다니는 겁니까?
아니면 교회에 다니면서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요즘은 강단마다 천국 설교가 많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영혼 구원 설교는
전하는 자나 듣는 자들에게
도외시되고 있습니다.
목사의 아들이었지만
의사로서 세상 쾌락에 취하여
방탕한 생활만 하다가
예수를 만나 병고침을 받고
천국과 지옥 체험을 한 후
30억 재산을 가난한 교회와 이웃에게
모두 나눠주고 목회자가 된 박보영 목사님도
오직 회개와 천국과 전도 설교만 합니다.
그러면서 한국 교회 강단에서
천국 복음이 없다며
목회자들을 강하게 질책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거의 그분의 설교만 듣습니다.
여러분도 유튜브에서
박보영 목사님의 설교를 많이 듣고
은혜 받으시길 바랍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천국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귀한 복 중의 복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천국의 상급을 위해
순교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다가
무서운 일이 발생하여
목숨을 바쳐도 좋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가장 열심히 전도하는 자가
가장 위험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성격이 과격하거나,
기독교를 극도로 배척하거나,
정신 이상자를 만나면
얼마든지 험악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20대 시절 서울 남산에서 전도하던
아주머니가 청년의 주먹에 맞아
콘크리트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그 청년을 향해
큰 소리로 나무랐더니
저도 죽이겠다고 하더군요.
그때 그 모습을 보신 하나님이
오늘날 저를 전도자로 사용하시는지도
모릅니다.
사도 바울도 전도하면서
얼마나 많은 위험을 겪었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그분을 위하여 목숨을 잃는 자는
다시 목숨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마 10:39).
전도자는 분명히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5)’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be gracious to you)라고 말씀하십니다.
은혜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조건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과 긍휼과
자비를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바로 이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왔고, 또한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엡 2:4,5).
페이스북에 이런 글이 실려있더군요.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참으로 가슴이 뭉클한 글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넘치지 않습니까?
역시 페이스북에서 우봉식 씨라는 분이
이런 글을 올렸더군요.
“믿음 안에서 산다고 말하면서도
감사가 없는 삶이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가 없는 믿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하며
오히려 불신자들의 조롱과 비판을
초래하게 됩니다. "
믿음은 감사이고 감사가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글을 올리신 분은 정형외과 의사로서
청주 아이엠 재활병원을 설립하시고
대한 의사협회 의료정책 연구소장으로
일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신앙도 아주 좋아서
페이스북에 열심히 글을 올리며
사람들과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의 글에,
그분은 제 글에 공감을 표하며
서로의 신앙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국회의원 원희룡 씨와도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분 역시 독실한 크리스천이시지요.
제주도지사 시절,
제주도 한라산신제 제사상 앞에서
절을 하지 않았던 사건이 유명합니다.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
믿음을 지켰던 사람입니다.
저는 가능한 대로 정치 이야기는 안 합니다만
언젠가 이분도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은혜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 은혜를 나누며
살기를 원합니다.
6)’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the LORD turn his face toward you)라고
말씀하십니다.
’향하여 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베푸심으로,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그 어떤 위협과 도전도
능히 극복할 수 있고
아울러 참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롬 8:31-39).
제가 지난주에 동탄 메가박스 영화관으로
전도를 하러 갔습니다.
직원에게 제 인생이
영화보다 더 재미있다고 하며
천국 복음을 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잘 받아들이더군요.
그런데 잘못해서 검표 직원이 없는 사이에
영화 상영관 입구까지 들어갔습니다.
출입문이 열려있었고
사람들이 상영관으로 들어가고 있더군요.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은
이게 웬 떡이냐 하면서
공짜로 영화를 봤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저를 지켜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생각하면
절대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요즘 제게 가장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제일 많이 보는 영화는
<아바타>라고 하더군요.
저는 하나님의 아바타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정하시는 대로
여기저기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싶었고
하나님의 아바타로 목회를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저는 전도사역을 하면서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칭찬은
책임을 지지 않는 칭찬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칭찬만이 책임지는 칭찬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칭찬으로 만족하기를 원합니다.
그분이 제 영혼을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칭찬만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7)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give you peace)라고 말씀하십니다.
’평강‘(샬롬, peace)은
’안전‘, ’행복‘, ’건강‘, ’번창‘, ’평안 등의
다양한 의미로 기쁨과 생(生)의 환희가
샘솟듯 솟아오르는
역동적인 평화를 의미합니다(사 55:12).
실로 하나님께서는 평화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셔서
죄와 불의를 멸하시고,
그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차고 넘치는
참 평강을 누리게 하셨습니다(사 52:7; 53:5;
행 10:36; 골 1:20).
가수 임재범 씨가 고백을 하더군요.
공황장애에 우울증이 심했답니다.
그런데 마음먹고 성경을 통독했고
그 과정에서 완전히 고침을 받았답니다.
지금은 예수 안에서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참 평강을 주실 줄 믿습니다.
레위 지파 나실인의 축복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복을 받았듯이
우리 교회 성도님들도
이 부족한 종의 축복 기도를 통해
민수기 6장이 말씀하는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성시를 묵상하겠습니다.
오늘의 시는 목회자인 제게 주어진
축도권을 생각하며 지은 글입니다.
<나의 축복 기도>
내게 주어진 고귀한 축도권
너는 여호와의 복을 받으라
여호와가 너를 지켜주시길 간절히 원하노라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시고
네게 평강 주시길 바라노라
성도를 향한 나의 축복 기도는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으리
흐려지는 말끝이 되지 않으리
추운 날 따사로운 햇살처럼
널리 널리 퍼져가리
우중충한 잿빛 인생도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하게 되리
이젠 차오른 눈물도 닦아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으로
평강이 넘치는 인생 되기를...
복에 복을 받기를...
성도를 향한 나의 축복 기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