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입구에서 돌을 옮겨야 양에게 물을
(창세기 29장 1-10절)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귀를 덮었다가 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그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는 우물 아귀 그 자리에 다시 그 돌을 덮더라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하란에서 왔노라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아노라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이르되 평안하니라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서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본즉』
야곱이 길을 떠나는 것은 발을 뻗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발의 의미는 분리되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을 향한 발이다. 발을 뻗어나아가는 행동은 성령 하나님과 말씀 하나님을 가지고 동방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동방(케뎀)은 에덴의 동쪽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태초의 말씀이라는 의미가 있다. 케뎀은 이루어진 말씀으로 그 말씀의 때와 장소 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로부터 분리되어져 나와 세상에 나온 그 때와 장소를 의미한다. 동방 사람(벤)은 아들이라는 의미다. 하나님 나라를 떠나 세상에 온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인 것이다.
『본즉』하나님이 아브라함, 이삭을 야곱을 통하여 보는 것이다. 야곱이 세상을 바라본 즉 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떠나 세상에 온 아들들의 모습을 본 것이다. 무엇을 본 것인가?
『들(싸데)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베에르)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싸데는 창세기 2장 5절에서 나오는 들을 의미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경작하지 않는 들(땅)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첫사람 아담을 경작하라고 보낸 곳이 들이다.
창세기 3장 18절에서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싸데)의 채소인즉』밭이 바로 위에서 말한 들이다. 들을 경작하여 밭이 된다. 하나님을 떠난 탕자들이 자기의 일을 열심히 경작하는 그 땅을 의미한다. 우물은 성악을 알게하는 나무, 즉 율법의 말씀을 상징한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말하는 우물은 브엘세바, 즉 맹세의 우물이라고 말했는데, 우물에서 먹는 양떼는 율법에 의해 살아가는 자들이다. 세때의 양들이 누워 있다(라비츠). 안식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원한다.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귀를 덮었다가 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그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는 우물 아귀 그 자리에 다시 그 돌을 덮더라』
목자(후)들은 누구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서 보이는 세상에 온 하나님 이라는 의미다. 그 우물에서 세 떼(무리)가 안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야곱이 보니 돌을 옮겨서 양에게 물을 먹이고 다시 돌을 우물에 덮는 모습을 본다. 이 물은 하나님 나라의 생명의 물이다. 아버지(하나님)와 아들(그리스도)과 하나가 된 자(성도)만이 이 물을 양들(하나님을 떠난)에게 물(생명의 말씀)을 먹일 수 있다.
큰 돌이 우물을 덮힌 것은 큰 돌로 말미암아 생명이 감추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우물이 덮힌 상태의 돌은 율법을 상징한다. 율법에 감추어진 말씀이 생명(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양들이 우물의 물을 먹기 위해서는 돌(율법)이 옮겨져야만 한다. 이 양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이 깨달아진 양들을 의미한다. 이 양들(에베르)이 잃어버린 양(쩨온,촌)들이다.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 잃어버린 양이 되었라고 믿는 사람은 생명의 물을 먹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십자강서 죽게 했다. 율법이 끝나고 문이 닫혀져 버렸다. 이는 돌을 다시 우물에 덮허버리는 모양이다. 이와 같은 모습이 세번 반복되어 양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 첫번째 양들은 이스라엘이고, 두번째는 영적 이스라엘이고, 세번째는 남은 자들을 의미한다.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하란에서 왔노라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아노라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이르되 평안하니라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쩨온)을 몰고 오느니라』
형제들은 하나님의 분리된 말씀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하란은 하나님의 울타리에 분리된 말씀으로 생명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 즉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에 온 자기의 일을 하는 자들이다. 히브리 원어에는 나홀의 손자가 아니라 아들로 되어있다. 야곱이 라반을 아느냐 라고 물었다. 라반의 의미는 말씀으로 성전된 자가 세상의 생명으로 온 사람을 의미한다.
『아느냐』라는 말은 야다 라고 한다. 평안하다라는 말은 샬롬이다. 샬롬은 평화라는 말 외에, 내재된 의미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이 생명들에게 주어져 안식을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하나님과 관계회복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내면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인사말로 변질되었다. 양(쩨온)은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을 깨달은 생명들이다. 라헬이 데리고 오는 양떼들은 이스라엘 중에 구원받는 자들(첫번째 양떼)이다.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미크네)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해는 욤(하루, 낮, 때)이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진 자들이 거두어들이는 그 때가 아직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목자가 와서 돌을 옮겨야 한다고 말하나, 야곱은 물을 먹이고 풀을 뜯게 하라는 것이다. 낮 동안이라는 말은 율법 속에서 율법이 성취되어서 그 속에서 빛(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양에게 생명을 먹이라고 하는데, 율법에 가로 막혀 있는 사람들은 계속 율법 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자들을 상징한다.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서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돌을 옮기고 물을 먹이는 것은 메시야가 오셔서, 생명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라헬이 데리고 오는 양들은 물을 먹기 위해 오지만 돌을 옮겨줄 수 있는 야곱(그리스도)을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양들은 말씀을 깨닫고 생명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에게로 오는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