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아주 지팡이는 무뎌지고 외 1편
- 調信이 꿈속에서 부른 네 번째 노래
김준기
봄날의 하루는 바쁘다
흐드러진 꽃구경도 하려니와
동백 그늘에 평상을 내놓고
설핏 든 낮잠 속 꿈도 요긴하다
지독한 병과 가난에서 나를 건져 줄
관음보살님 계시다는 들녘을
진눈깨비에 몸을 실어 헤매다가
한숨 끝에 바라본 하늘에
불현듯 하롱하롱 날리는 저 꽃잎들은 또 무에냐
웃음과 눈물로 짜낸 한 자락 비단 위에
어설피 핀 저 꽃송이들을
철없던 한철 지은 미처 헤아릴 수 없는 업으로
내 가꾸고 피웠으려니와
눈물겹다
산집 부연끝 풍경 소리에 꿈에서 깨니
하마 꽃은 다 져서 흔적도 없고
마당 한가득 서리맞은 나뭇잎만 수북
끝이 무뎌진 명아주 지팡이 하나
평상 한구석에 놓여 있다.
간재미 보살(菩薩)
대천항 건어물전 좌판에
나란히 누운 간재미 형제들
배알이 찼던 자리를
저렇게 말끔히 비우기도 쉬운 일이 아니지
카누푸스 단지는 어이없고
간 쓸개 다 빼내어
갈매기 떼 아침 공양으로 내어준 후
죽어서도 눈웃음이 참으로 곱다
선사의 다비가 끝난 후
사리를 수습하는 학승처럼
선창가를 서성이다
바라 본 서쪽 바다
보아라
보름사리 황금 노을
저 바다가 내 전신 사리이다
속삭이는 간재미
*카누푸스 단지 : 이집트의 파라오를 미라로 만들 때 내장만 따로 보관했다는 단지
김준기
1994년 오늘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반나절의 꿈 간재미 보살. 한국시학상 등 수상.
한국시학 편집위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