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재 너머로
시월 둘째 토요일은 한글날과 겹쳤다. 인적 드문 산기슭을 누비며 야생화를 탐방하려고 이른 아침 마산역 광장으로 나갔다. 올가을 들어 진전 둔덕에서 미산령을 넘은 바 있고 지난 주말은 진북 의림사에서 인성산 임도를 따라 부재고개를 넘어 미천마을로 내려서기도 했다. 이번엔 진북 서북동에서 감재를 넘어 여항산 둘레길을 걸어 봉화산 기슭으로 뚫은 임도를 걸어볼 참이다.
마산역 광장으로 오르는 노점엔 계절감이 묻어난 푸성귀와 과일이 가득했다. 대형 할인 매장에 진열된 상품보다 품질이 떨어질지라도 농부의 땀내와 산지의 흙내음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도토리에서 전분을 추출해 만든 갈색 윤이 나는 묵이 먹음직스러웠다. 손두부나 송기떡을 파는 할머니도 있었다. 소나무 껍질에 쑥을 넣어 콩고물을 묻힌 송기떡은 보릿고개가 연상되었다.
번개시장 들머리에서 김밥을 마련 구산과 삼진 방면 농어촌버스 출발지에서 73번을 탔다.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과 삼성병원을 둘러 마산 시내를 관통해 밤밭고개를 넘어 진동으로 갔다. 녹색 버스는 진동 환승장에 잠시 들렀다가 진북면 소재지에서 덕곡천을 따라 올라 금산과 학동을 거쳐 서북동 종점에 닿았다. 작은 절간이 두 개 있는 산기슭에서 서북산 허리로 난 임도로 올랐다.
길섶에 자생하던 산국은 생태계가 바뀌어선지 흔하지 않았다. 산국은 서리를 맞고도 노란 꽃송이를 달고 진한 향기를 뿜는다. 산허리 T자 갈림길에서 오른쪽 감재고개 방향으로 들어섰다. 여항산에서 서북산을 거쳐 온 낙남정맥은 감재에서 대부산과 봉화산으로 건너가는 고갯마루다. 봄날이면 산나물을 채집하느라 넘어간 감재였다. 편백나무 조림지 갈림길에서 감재로 올라섰다.
이맘때 감재 산마루에 점점이 피어나는 구절초와 쑥부쟁이 꽃이다. 화사하게 핀 꽃이지만 인적 드문 곳이라 누가 알아주는 이 없었었을 텐데 내라도 찾아가 그 존재 가치를 인정해 주었다. 구절초와 쑥부쟁이는 같은 국화과로 서로는 사촌쯤 되는 사이로 남부지방 산마루에서 가을을 대표하는 야생화다. 봄날에 어린 순을 뜯으면 나물로 활용하고 꽃과 잎줄기는 말려 약재로도 쓰인다.
감재를 넘으니 여항산 둘레길었다. 왼쪽은 폐사지로 묵혀진 법륜사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봉성저수지로 가는 임도가 길게 이어졌는데 그곳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길섶에는 참취가 피운 하얀 꽃들도 보였다. 노란 미역취도 한 송이 봤다. 이맘때 그늘진 응달에 흔한 보라색 꽃향유도 향기를 뿜어 벌들을 불러 모았다. 저 멀리 아스라한 봉화산과 여항산 정상부로는 구름이 걸쳐 있었다.
서북산과 여항산 일대에는 미국쑥부쟁이가 흔했다. 미국쑥부쟁이는 귀화식물로 잎줄기는 미끈하고 꽃송이는 참취처럼 자잘했다. 쑥부쟁이는 연보라색을 띠는데 미국쑥부쟁이는 하얗게 피어 달랐다. 지난봄 여항산 둘레길에 군락을 이룬 미국쑥부쟁이 잎줄기를 산나물로 채집하기도 했다. 봉화산으로 가는 이정표를 지나니 산림 당국에서 버드내로 내려서는 등산로를 개설하고 있었다.
아름드리 적송이 자라는 쉼터에서 김밥을 비우고 있으니 중년 부부가 지나가 인사를 나누었다. 뒤이어 건장한 사내 다섯이 감재로 향했다. 봉성저수지에서 올라온 이들은 봉화산으로 가든가 여항산 둘레길을 걸어 좌촌 주차장으로 갈 사람들이지 싶었다. 드물게 서북산을 오르는 경우도 있을 테다. 쉼터에서 일어나 굽이굽이 둘레길을 걸어 작년에 봉화산 허리로 뚫린 임도로 들어섰다.
청암으로 내려가는 이정표를 지나니 수종갱신 지구가 나왔다. 소나무를 잘라내고 참나무 계열 묘목을 심고 주변은 풀을 깎은 흔적이 보였다. 봉화산 임도는 봉곡마을 뒤에서 정현지구 임도와 합류했다. 함안군과 창원시가 경계를 이룬 진등재에 이르렀다. 낙남정맥 봉화산이 광려산으로 건너가는 곳이다. 대치나 한치로도 불리는 진등재에는 산국이 노랗게 피어 가을을 장식하고 있었다. 12.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