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탄삼보하옵고
탄산 거사님
그는 고아원에서 성장했다. 성장 과정에서 살기가 힘들어 거리에 쓰러진 적도 있었다. 가까스로 군대에 가서 운전을 배웠다. 제대 후 큰 차의 조수 생활을 하다가 영업용 택시를 몰게 되었다.
나는 어려서 절에 와서 중이 되어 먹고 사는 중노릇을 했다. 군역을 마치고 선방을 거쳐 강원에 가서 이력을 마치고 다시 선방에 다니면서 가끔 은사스님의 일을 조금씩 돕던 때가 있었다.
하루는 은사스님이 하시던 의과대 학생 지도법사를 물려받아 법회장소를 물색하느라 부산의 어느 절로 가는데, 그의 택시를 타게 되었다.
우리의 첫 만남은 그렇게 해서 이루어졌다. 차 안에서 서로 대화를 하는데, 그가 택시운전을 하기 전에 살아남으려고 온갖 일을 다하면서 지내는 중에, 한때는 산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제사 음식을 날라주는 일을 하면서 연명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는 중에 접신이 될 뻔한 조짐이 있어 ‘아 이래선 안되겠구나’하고 나름 팔양경과 고왕경을 읽어 왔다고 했다.
글자를 몰라 녹음 테이프와 책을 사다 놓고 새벽마다 기도드리면서 한글을 터득해 가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되느냐고 하길래 참으로 잘 한다고 해주었다.
그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스님한테 뭘 묻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했었다.
나는 “무사찰 무조직 무주상을 가지고 주는 불교를 하고 싶어서 보현행원 사상을 이념적 근거로 선재회라는 모임을 이제 막 시작했는데, 함께 동참하시면 내가 매월 회신을 보내니까 서로 인연을 지속할 수 있다” 했더니 아주 흔연한 마음으로 가입을 하면서 주소와 전화 번호를 적어 주었다.
모 의대 불교 학생회는 여름 겨울 두 차례 무의촌 의료봉사를 다녔는데, 내가 몇몇 회원에게 받은 회비와 선방에서 받은 해제비를 모아서 약값의 일부를 거들곤 했다.
그날 이후로 30년 동안 나와 탄산 거사의 인연은 지속되었었다.
그를 그는 산동네 하꼬방 월세 집에서 아내와 어린 아들, 딸, 네 식구뿐인 삶을 살면서 오직 성실성과 인내로서 자기 삶에 충실했다. 한 가정의 가장 역할이 어떤 것인지 나는 그를 통해 배웠다. 20년 전 위암 수술로 위의 3분의 2를 잘라내고 7일 만에 퇴원해서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다. 그러한 삶의 고난을 신심으로 견디며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서 개인택시, 아파트 입주, 아들 딸 시집 장가보내고, 손 자녀 보고 소박한 서민의 삶을 다 성취하신 분이다.
택시 운전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고 하니까 자기는 돈 안 되는 쪽으로 하니까 돈이 되더라고 했다. 짐을 가지고 차를 잡으려고 하는 사람, 취객, 병원 가는 환자, 골목길, 접근성이 어려운 곳에 사는 승객을 거절하는 일 없이 늘 태워 다녔다고 했다. 노름 안하고, 술 담배 안하고, 남보다 한 두 시간 더 노력하고 조금씩 자투리 돈을 모아서, 불서를 사서, 말이 통하는 승객에게 보시하면서, 내생에는 면무식해야겠다 하면서 산다고 했다.
어쩌다 쉬는 날이면 부산에서 여기까지 나를 찾아와서 나 먹으라고 콩가루와 불전에 보시금을 두고, 그간에 공부하다가 미진한 무제들을 탁마하고 가곤 했다. 그는 운전을 통해서 자기 삶에 성실한 예비 수행을 착실히 하면서 계정혜를 터득한 오늘날 보기 드문 재가불자였다. 특히 무아에 대한 견해가 확고하니 틀림없이 입류에 들었으리라 믿는다.
내가 이뻐하던 강아지 사띠와 이틀 상간에 가셨으니, 당신도 가끔 쓰다듬어 주던 녀석이라 혹여 보거들랑 상좌처럼 잘 거두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탄산 거사님 오늘 당신의 49일을 맞아 평소처럼 차 한 잔 나누며 지난 일을 돌아보니 크게 나무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족들에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너희끼리 초상을 치르고 49재도 지내지 말라고 했다 하니, 고인의 뜻에 따라 그렇게 했으니 그 아버지에 그 아내 아들 딸인가 합니다. 닷새 후, 5년 전에 써놓은 유서에 모든 일 마무리 되거들랑 보리행 보살님과 스님께 내가 갔다고 전하라고 해서 알린다 하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지난 가을 나를 찾아와서 헤어져 갈 때 봄에 온다 하고 둘이 손을 흔든 것이 마지막이었지만, 평생 중노릇했어도 그것이 다시 볼 수 없는 마지막 이별인 줄도 모른 바보 중이 뒤늦게 합장합니다. 늘 선열식을 잡수며 사신 한 생애이시니 어디에서나 편히 머무소서. 우리 사띠도 꼭 챙겨 주시고...
그리운 탄산 거사, 보고 싶은 사띠
흐릿한 날씨에 비 조짐이 보이더니 추녀 끝에 낙숫물 소리가 정겹다. 옛말에 ‘인연취산 금고여연’이라더니 인연이 있어 만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헤어지는 것은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역시 헤어짐은 서운하고 만나면 반가운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탄산 거사 그리고 사띠를 영영 이별한 것은 슬프지만 오랜 도반을 만난 것은 반가웠다.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겠지...
단월 가족 여러분들 오래 사시고 멋지고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온 숲에 내리는 비가 푸르름을 더해주는 맑고 넉넉한 오후다.
2018년 7월 1일 지리산 연암난야에서 도현 합장
출처 : 도현 스님 / 조용한 행복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