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대 목회자 맨토링 시간에 참여한 목사님들이 앞으로 일년 동안 동행일기를 쓰고 나눌 나눔방을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일년 동안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고 순종하였는지 스스로 점검하고 서로 두우며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와 목회 현장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확인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한 목사님이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교인들도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들이 예수님과 동행하도록 만들수 있을까요?” 그 목사님에게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이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좋아지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교인들이 반응을 하든 안하든 목사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이 누려지니까요? 그리고 교인들도 주님과 동행할 수 있음을 알게 되고,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교회를 세우려면 목회자 자신이 예수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면 됩니다. 여기에 우리의 깊은 좌절이 있습니다. “난 안돼” “더 이상은 못해” “안되는데 어떻게 해” 하는 자신에 대한 좌절이 있습니다. 더 깊은 좌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좌절입니다. “왜 역사해 주지 않으시나!”
여기에 오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역사하지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순종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행 5:32) 죽을 것 같고 망할 것 같고 조롱받을 것 같고 버림받을 것 같기에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훈련하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교회 공동체를 세우기 전에 목회자들이 먼저 예수님과 동행하는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에 공동체가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선한목자교회에서 부목사들과 동행일기 나눔을 시작했던 이유는 부목사들을 예수님과 동행하도록 돕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저 자신이 지속적으로 주님과 동행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며 온전히 순종하기로 결심하여도 서로 연합하지 않으면 다시 모일 때 패잔병으로 모이게 될 것입니다. 혼자 힘으로는 꾸준히 예수님과 동행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서로 서로가 필요합니다. 주님만 바라보며 살게 될 때까지 서로 돕고 지탱해 주는 이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모임은 그저 신세 한탄이나 하고 위로받고 교제하기 위하여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얼마나 성장하였는지 자랑하기 위하여 모이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은 서로에게서 주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저 목사님 안에 역사하시는구나!” “예수님께서 저 목사님을 통하여 말씀하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