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야수
박지원
이런 나쁜 놈이 그 동안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야당
원내총무,이번에는 통합민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다니 우리국민들과 통합민주당에서 어떻게 이런놈이 활개칠 수 있게 놔두는지?
(지금은 국민의
당에서 가벼운 입놀림을 하고있으니 너무도 한심하다)
“저는 힘이 연약한 홀로 사는 한
여성입니다.
단지 평범한 여자가 되지 못하고 세상에 제 이름이
알려질까 두려워서 이글을 진작 올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과거에 유명 연예인 이였습니다.
제가 미국에 1977년 이민을 가서 그곳에서
N.Y. 한인회 회장이였던 박지원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1978년경)
그분과 동거를 하면서 저희는 양가 가족들의 후원
받으면서 지낼수 있을 정도로 그분은 저를 사랑했습니다. 한데 몇 년이 흐른 후 그의 가정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부인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저는
헤어질 것을 결심한 후 다른 사람과 선을 보도록 권유를 받고 선을 봤습니다.
박지원 청부
살인업자 보내 최여인 죽이도록 교사하기도
그 사실을 알게 된 박지원씨는 사람을 시켜 청부 살인을
하려고 계획하고 어느 날9시경 내가 경영하는 스타꽃집에 괴한 최모씨가 들어 왔습니다.
살인 청부업자인 최모씨는 가게 문을 걸게 만든 후 총을
들이 대며 죽인다고 말하고 지하실로 끌고 내려가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고 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차라리 나를 먼저 죽이고 딸을 데려
가라”고 최씨에게 애원하며 호소하며 매달렸습니다. 그러니까 엄마의 호소에 최씨는 우리 모녀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고 엄마의 모습에 감동되어 저의
목숨을 구해 주었습니다.
그 후 그 청부 업자는 또 다시 박지원부인의 부탁을
받고 저를 또 다시 처치해야 되는 처지가 되어 (2천불) 저의 가게로 왔으나 그때도 제 약한 처지를 깊히 알고 동정을 하게 되어서 오히려 우리
모녀를 보호 하는 입장으로 바뀌었지만 저는 늘 불안 속에서 공포에 질려서 박지원씨의 노예 마냥 끌려가며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최정민 서울로 도망,
탈출 했는데
박지원 다시 찾아와서 성폭행, 동거
그러다가 85년 말 한국에서 영화 출연교섭이 와서 저는
그와 헤어질 수 있는 기회라고 한국에 나와 삼촌 집에 거처하고 그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박지원은 자신이 꿈꾸던 정치의 길이 보이자 나를
과감히 버리고 그 길을 택하려고 저가 급히 하던 모든 작품을 중단시키고 미국으로 들어가서 뉴욕서 멀리 떨어진 서부 쪽으로 이사를
보냈습니다.
저를 설득해서 아무런 위자료 없이 헤어지지 않은 것처럼
위장해 저를 동부 쪽에서 서부로 쫓아냈습니다.
못난 저는 매일 매일 찾아 줄 것을 기다리며 차 사고를
내는 엄청난 시련을 겪으며 그를 기다렸지만 매정하게 버림을 받고 저는 세월이 흘러 88년경에 N.Y.에 다시 가서 까페를 경영 했는데 그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1996년 4월
10일 부천신문에 보도된 최여인대한 증언기사를 보자.(앞글 참조)
“증언에 따르면 박
대변인은 77년부터 미국에서 동거하던 C씨와85년 말경에 헤어 졌다가 88년 국회의원 도전에 실패로 돌아간 후 다시 가끔 만났지만 89년 박
대변인이 한국으로 완전 귀국함에 따라 완전히 헤어 졌다는 것이다.
영화 ‘미뭐도
다시한번’에서 주연으로 출연한 최정민씨와 자신의 인생을 기록한 편지
하지만 박 대변인은 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최씨가
한국에 온 것을 알고는 최씨가 살던 서울 송파구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단지의 한적한 곳에 소나타 승용차를 대놓고 최씨를 불러낸 뒤 운전기사를 차
밖으로 나가게 하고 차 뒤 좌석에서 최씨를 강제로 성폭행 SEX를 했다는 것이다.
또한 최씨가 반항하다 더 이상 견디다 못해 성폭행을
당한 뒤에 박 대변인에게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자 박 대변인은 오히려 큰 소리치며 반문 했다는
것이다.
최씨 측근은 기자에게 “박 대변인은 국회의원 배지를
상당히 경시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 후 최씨는 정신적 충격을 받아 3년 동안 어느 선교회에서 집사로 일하며 살아왔고 박 대변인으로부터
위자료로 3억원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증언했다.”고 보도 했다.
이기사의 보도 때문 이였는지 선거 중반 까지 우세했던
박후보는 선거에서 실패 했으며 당시 언론들은 “박지원후보가 낙선된 것은 불법 유인물과 불법 유인물을 보도한 언론 때문인 것 같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부천신문 취재팀에게 증언을 해준 최씨의 친척은
최여인이 쓴 진정서 가운데 중요한 몇 부분을 빠뜨리고 증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최씨는 70년대 인기스타 최정민씨 아시아 영화제 주연
여배우 상 받아
그러면 문제의 최여인은 누구인가?
그는 지난
70년대 안방극장 TV와 영화 스크린에서 인기절정을 누리던 스타 최정민씨. 당시를 살아온 지금 5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사극의 여왕으로 까지
불리던 여배우였다.
그런 인기 스타가 1977년경 어느 날 갑자기 TV와
스크린에서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다. 당시에는 “미국 교포에게 시집을 갔다”하는 소리와 함께 당시 초년생 가수였던 T모씨와 스캔들 때문에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최씨는 지난 1971년 당시 19살의 나이로 TBC
TV 8기생으로 합격 브라운관에 얼굴을 선보였다.
그녀는 데뷔 한 후 얼마 되지 않아 TV 연속극 사상
최대의 시청률을 올린 인기 드라마 ‘아씨’에서 기생 홍도역을 맡아 남성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그녀의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 오르고 있었다.
30여 편의 드라마에서 주연을 한 그녀는 영화배우로
전환 ‘사랑의 학교’ ‘마부’등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며 73년 영화
‘미워도 다시한번’은 한국 영화사상 최대 히트 작품을 만들어 냈다.
50여 편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한 그녀는
76년 ‘이 밤이여 영원히’로 아시아 영화제에서 주연 여우상을 받을 정도로 튼튼한 인기 있는
여배우였다.
그녀가 77년 별 다른 큰 말썽도 없이 스크린에서 사라
졌는데 그녀의 측근들에 의하면 “인기 있을 때 은퇴해야 한다”는 주변 어른들의 충고에 따라 라스베가스에서 꽃집을 경영하는 이모 초청으로 미국
여행길에 올랐다고 한다.
라스베가스에서
뉴욕으로 박지원 만나 비밀 동거생활
최씨의 어머니 증언에 의하면 어머니가 서울에서 꽃꽂이
작가로 활동 하였기 때문에 최정민은 어릴 때부터 꽃을 좋아하고 꽃집 경영을 바랬다고 한다.
그래서 라스베가스 이모 꽃가게에서 머물며 기술을 익힌
후 뉴욕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때 박지원을 만난 것으로 확인 됐다.
당시 박지원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가발 장사를 하고
있었으며 돈을 잘 번 젊은 사업가로 한인회 회장으로 활동 하고 있었다. 여기서 부터는 최여인의 진정서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보자.
그래야 더욱 진실감이 있고 실감이 나기
때문이다.
(이하 최여인 진정서 -
위에 수록했으므로 생략 : 지워짐)
그러나 박지원의 협박과 회유에 넘어간 탓인지? 아니면 사랑의 힘에 노예가 됐던지 최여인은
박지원과 다시 만나며 서울 친척집에 머물고 있었으나 결국 박지원의 배신에 치를 떨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불러내어 자동차안에서 반
강제적으로 CAR SEX를 당한 후 “박지원이 같은 인물이 정치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매몰진 마음으로 진정서를 써서 선거 때 뿌렸던
것이다.
박지원 최여인 죽이겠다고
혈안, 박지원 친척이 나서 최여인 미국보내
박지원은 선거에서
낙선 한 후 정신병자 같이 행동했다.
최여인을 죽이겠다는
말을 하고 다녀 생명의 위험을 느낀 최여인은 다시 미국으로 도망쳤다.
그때 박지원의 고종 사촌 형이 되는 사람이 여러 가지로
위로를 했다고 한다.미국으로 탈출한 최여인은 샌디아고에 숨어서 미장원을 경영 하다가 98년부터 스타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언론인들에게 노출되어 박지원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서 다른 지역으로 피신한 것으로 측근 가족들이 말했다. 또 “결혼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언론에 보도 되면 안
된다”고 가족들이 언론 보도를 한사코 만류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와 최여인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그리고 박지원이 공직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박지원의 마수와 같은 더 나쁜 몇 가지는 보도 하지 않고 자제해
왔었다.
그러나 이제 최여인이 결심을 하고 새로운 인생 출발을
준비 하고 있으며 박지원이 공직에서 물러났기 때문에(그 시절) 그의 정체를 모두 드러내 국민들에게 알려 줌으로써 김대중 대통령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 나라를 망쳤는가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
2007년 12월22일
출처 야수박지원과 최정민과의 스캔들 전모
첫댓글 목사라는 분이 지지리도 할일이 그렇게도 없나요
요즘 목사라는 분들 도대체 왜 이렇게 됐는지
차라리 난 그네 골수 추종파라고 한다면 좀더 솔직해 보이겠는데
이런걸 퍼오는게 목사 할짓인가요
이런걸 퍼오면 성도들의 영혼이 살찌는가요 아니면 매말라 가는가요?
골수 우파들 하는짓이 몇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는짓이 똑같아
몇년전에 써먹은걸 거짓으로 들어나면 다른걸 써먹고 몇년지나면 또다시
같은걸 들고 나오고 더러운 정치 알바들이야 밥벌이를 위해서 그런다 치지만
본을 보여야 할 목사라는 사람이 이렇게 하면 어떻합니까?
그렇게도 지역 감정 유발 시켜서 영호남이 완전히 쪼개지기를 바라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