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난다'. 이 말은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서 대다수 부모에게 희망의 메시지였다. 당신은 못 배우고 배불리 먹지 못하더라도 열심히 일해 자식을 공부시키면 잘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계층이동에 대한 사회적 믿음은 압축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중산층은 우리 사회의 버팀목이었다.
세계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이 말은 더는 통용되지 않는다. 갈수록 중산층이 무너져 양극화가 심해지고, 사회구조도 굳어져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국민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위로하며 살아간다.
조준현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이자 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은 중산층이라는 착각에서 우리나라 양극화 쇼크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꼬집는다. 저자는 "대한민국 중산층의 몰락과 양극화는 개인의 노력과는 상관없는 구조적인 문제"라며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절대로 양극화의 함정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중산층 붕괴에 관한 책은 적지 않게 나왔지만, 이 책은 신문기사를 인용하며 경제학 지식이 없는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쓴 게 장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중산층은 어떤 모습일까. 한 연봉정보사이트에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우리나라 직장인은 부채 없는 아파트 99㎡(30평), 월급 500만 원 이상, 2000㏄ 이상 중형차, 예금잔고 1억 원 이상, 해외여행을 1년에 한두 번 다니는 사람을 중산층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은 꿈 같은 이야기로 들린다. 대한민국의 2012년은 '푸어(poor)'의 시대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워킹푸어, 하우스푸어, 베이비푸어….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고, 돈이 없어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포기하고, '투잡'을 뛰고, 굽은 허리로 폐지를 줍는 인생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 먹고 살기 어려워 자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중산층의 붕괴가 심각한 문제가 되는 까닭은 중산층은 경제·사회적으로 한 사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붕괴는 경제위기로 이어진다. 중·하위층은 한계소비성향, 즉 소득이 늘어날 때 소비가 늘어나는 비중이 높고 반대로 상위층일수록 그 비중이 낮다. 따라서 경기 침체로 중·하위층의 소득이 줄면 소비가 상대적으로 더 큰 폭으로 감소하고 경기는 더 침체하게 된다. 경기 침체의 결과 고용이 줄어들고 실업률이 상승하면 중·하위층의 소득은 더 감소하고 다시 소비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제도 확대, 조세정의 실현을 통해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모두 조금 덜 풍족하더라도 함께 잘 사는 길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상황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