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57-62
키스 맥팔랜드가 쓴 “브레이크스루 컴퍼니”라는 책이 있습니다.
성공적인 기업을 만드는 경영에 관한 책입니다. 그동안의 경영 서적이 토요타, 소니, GE와 같은 성공한 대기업을 연구한 책인데 반해,
이 책은 성공한 중소기업에 관해 연구한 결과를 밝히고 있습니다.
99%가 중소기업입니다. 전체 고용의 88%를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중 성공하여 두각을 나타낸 기업은 극소수입니다.
Breakthrough라는 말은 부수고 통과했다는 말입니다. 중소기업은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인력도, 조직도 부족합니다. 그 부족함을 극복하고 통과하여 성공한 기업이 될 수 있는 비결은,
모든 것이 부족한 개인들과 우리처럼 작은 교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큽니다.
이들, breakthrough company는, 전에 없던 획기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주목받지 못한 분야에서도, 이미 한 물 간 산업에서도 얼마든지 성공하였습니다.
또한 똑똑한 인재들이 모인 회사도 아닙니다. 작은 기업에 처음부터 인재들이 모일 리가 없습니다.
학력을 중시한 기업도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남이 하던 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 그들이 성공한 비결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고 내 자신과 또 우리 교회에 적용해 보도록 합시다.
1. 목표를 높게 잡는다.
그저 돈이나 왕창 벌자는 욕심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교회적으로 말하자면, 교인 숫자나 헌금 액수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 고객을 최우선으로 한다.
단순히 목사의 뜻이나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로 하여금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하여 진정한 행복을 누리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3. 조직 내에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는다.
목사나 특정 인물들을 특별대우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4. 리더는 명령을 내리는 대장이 아니라 코치 역할을 한다.
목사는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인들이 제대로 역량을 발휘하며 살 수 있도록 잘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5. 충성심이 높다는 이유로 눈감아 주지 않는다.
중요인물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고, 원칙에 입각해서 기업을 운영함으로 누구나 수긍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6. 직원들을 자발적으로 참여시킨다.
많은 기업들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창업주들이 회사가 아닌, 자기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한 마디로 기업을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회사고 교회고 간에 자신의 왕국을 만들려는 마음을 갖는다면 반짝하고 뜰 수는 있어도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강 목사님과 제가 포이에마 예수교회를 시작하면서 세운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교회 건물을 짓지 않으며, 헌금의 25%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또 다른 25%는 영적 인재 양성에 쓴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들은 우리들의 왕국을 건설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구제에 포커스를 둔 것은 한국 교회들의 이기심을 버리고 소외된 이웃 사랑을 실천하자는 뜻이고,
인재 양성은 자기 왕국 건설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각 분야에서 실현하는 리더들을 키우자는 뜻입니다.
이를 위하여 강목사님과 저는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음에 새기고 포이에마 예수 교회가 Breakthrough Church로서 진정한 예수의 몸이 되도록 함께 힘을 모아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입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와서 예수님께 이런 말을 합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예수님을 쫓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 9:58)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일까요?
예수님께서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을 왜 쫓겠다고 한 것일까요? 이 질문은 우리들은 왜 예수님을 믿는 것일까 하는 질문과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동안 엄청난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이 분을 따르면 나도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누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쫓겠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피하여 갈릴리 호수 반대편으로 가셨습니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예수님이 있는 곳으로 와서 말합니다.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쫓아다니는 목사라면 기분이 어땠을까요? 으쓱했을 것입니다. “이 놈의 인기는 어딜가나...”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안색은 전혀 좋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한 6:26-27)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아니 영원히 있는 양식이라니, 저것만 얻으면 부자로 살 수 있겠구나.”
그래서 얼른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것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을까요?
목사들이 모인 모임에서 한 목사님이 열심히 자기 자랑을 합니다.
모든 장로들을 각 부서 장을 맡게 하고 자신을 포함하여 1억 원 씩 나눠준다고 합니다.
그래야 서로 좋은 자리 앉겠다고 싸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썼는지 묻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자 거기에 모인 목사들이 모두 부러워하였습니다. 저만 빼고.
목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도 봉사 헌금 열심히 하면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해서 많은 목사들이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자기 아들에게까지 물려주는 것이 아닐까요?
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는, 십일조를 내가 원하는 곳에 주면 안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래서 십일조 헌금을 합니다.
그런데 그 헌금으로 목사 자신의 왕국을 짓고 있는 것이 뻔히 보입니다.
십일조 헌금을 하긴 해야겠는데, 목사 왕국을 짓는데 일조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몰려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는 그를 다시 살리리라.”(요한 6:54)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떻게 사람의 살과 피를 먹을 수 있는가?
그리고는 “심히 어렵도다.”는 말을 남기고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요한 6:68)
영생의 말씀을 떠나지 않겠다는 베드로는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요?
이 말은 곧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이 내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현실이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쫓겠다는 사람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뜻은,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마음으로는 결코 예수님을 쫓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셨다면 나도 그렇게 살겠다는 것입니다.
집도 교회도 없이 가난하게 살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내 왕국 건설이 인생의 목표로 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잘 살수도 없거니와 영생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조지 워싱턴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될 뻔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왕은 종신형이고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 줄 수 있습니다. 영국과의 8 년간의 전쟁으로 경제 파탄과 내부 갈등이 극에 달하자,
사람들의 입에서 우리도 왕을 세우자는 의견이 팽배했습니다. 당시 최고 사령관이었던 조지 워싱턴이 왕 1순위였습니다.
“우리들의 왕이 되어주십시오.” 그러나 워싱턴은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자기 자신보다 국가가 우선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지 와싱턴의 결단으로 최초의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이 땅에 세워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이상한 분입니다. 쫓겠다는 사람은 안된다고 하시고는 다른 사람에게는 “나를 쫓으라.”고 하십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쫓으라 하시니”
그런데 그 사람은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눅 9:60)
이 말씀을, 목사들은 아버지 장례보다도 전도가 더 중요하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사업상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교회의 중요행사와 겹쳤습니다. 이 때 목사는, “사업은 세상일이고, 교회 행사는 하나님 일이다.
하나님 일을 먼저 해야 사업에 복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교회 일을 먼저 했더니 사업에 복을 받았다는 사례들을 늘어놓습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얄팍한 의도로 말씀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무당처럼 정성을 쌓으면 복 많이 받는다는 뜻으로 하신 것이 아닙니다. 훨씬 더 본질적이며 근원적입니다.
사업가는, 사업을 하나님의 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자기 욕심을 채우면서 입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면서 하나님을 들먹이는 것과 똑같은 행태입니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는 말은 오직 살리는 일에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생명의 일에 집중하라는 명령입니다.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목표를 크게 하라는 하였습니다. 목표를 10억에서 1,000억으로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전혀 새로운 차원의 목표를 세우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더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것이면 구룡사에 가는 것이 낫습니다.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나눠주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하지 말라.
대신 저 넓고 끝없는 바다를 보여주어라.” 생텍쥐베리가 한 말입니다.
예수님은 태초의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 우리가 이기심과 욕심으로 보지 못하는 세계,
죄로 잃어버렸던 세계를 다시 보여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늘의 많은 교회들이, 배를 남보다 크게 만들라고 나무 자르는 법, 배 만드는 법, 더 큰 배를 만드는 법만 가르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끝없는 은혜와 사랑의 바다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친히 방주가 되어 주셨습니다. 어떤 풍파에도 끄떡없는 내 배를 타고 함께 가자는 것입니다.
저 은혜의 바다를 향해, 저 새로운 하나님 나라로 가자는 것입니다.
죽을 일, 내 왕국을 건설하여 과시하고 폼 잡고 으스대는 일을 멈추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서 내가 회복되고 제대로 신나게 사는 모습을 보이고,
낙담한 사람들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라는 당부입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5,000명 교인, 500억 짜리 교회를 세우기로 하였으면 그대로 밀고 가라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넓고 큰 은혜의 바다를 보았으면 앞으로 향하여 가라는 말입니다. 어떤 역경과 고난이 와도 영원한 나라로 향하라는 당부입니다.
심방비 도서비 푼돈에 연연하지 말고, 자기 왕국 건설에 집착하지 말고,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과 이웃 사랑에 최선을 다하라는 예수님의 간곡한 부탁입니다.
작은 이익에 연연하는 삶을 과감히 깨뜨리고 고난을 시원하게 통과하는 Breaktrough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