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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그 품안에 담고 있는 각양각색의 자연조화 속에 자기 수양과 온갖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고찰이나 옛날 어른들의 풍부한 가르침이 쌓여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가 살
다가 나오면 높은 지혜를 얻게되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나온다고 하여 <지혜-지(智)>
<다를-이(異)>를 써서, "智異山"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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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월면 성산마을은 흥부탄생지로 알려진 곳인데, 24번국도로 팔령재부터는 함양이다.
▲ 남원시 인월면 성산마을 바로 이웃한 팔령마을부터는 함양군 함양읍이다.
▲ 인월에서 24번 국도를 따라 함양읍으로 향하여 가다가 함양읍 구룡삼거리에서
1023번 지방도로 후회전하면 지안재를 넘어서 지리산조망공원으로 가게 된다.
지리산조망공원(智異山眺望公園)이 있는 오도재(悟道嶺)를 함양이나 인월쪽에서 가려면
먼저 지안재(蹄閒峙)를 넘어 휴천면 월평리로 가서, 다시 오도재로 올라가야 한다.
▲ 팔령마을에서 24번국도를 따라 함양을 향하면 계속 가면 죽림, 구릉을 지난다.
조동삼거리에서 1023번지방도로 우회전하여 구불구불 도로를 오르면 지안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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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안재에 오르는 이 구불길은 건설교통부 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
▲ 지안재를 지나 오도재를 오르는 곳인 휴천면 월평리에 있는 산골마을 집들
지리산 마천면 삼정리 영원사(靈源寺) 도솔암(兜率庵)에서 수도하던 청매 인오조사(靑梅
印悟祖師 : 1548~1623/서산대사의 제자)가 이 고개를 오르내리면서 득도(得道)했다고 하
여 붙은 이름이다. 이 오도재(悟道嶺)에는 청매선사(靑梅禪師)의 <십이각시(十二覺時)>
라는 시비(詩碑)도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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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도재를 설명하는 석조표지판(悟道嶺 : 해발 773m - 함양군)
오도재(773m)는 삼봉산(1,187m)과 법화산(992m)이 만나는 지리산의 마지막 쉼터로 옛
날 가야의 마지막 왕이 은거 피신을 할 때 중요한 망루지역이었고, 임진왜란 당시는 서산
(西山大師/법명 休靜. 법호 淸虛 또는 西山. 속명 崔汝信 : 1520~1604), 사명(四溟大師/
법명 惟政. 법호 四溟堂 또는 松雲. 속명 任應奎 : 1544∼1610), 청매(靑梅) 등 승군(僧軍)
이 머물렀던 곳으로 영남학파의 종조인 김종직(金宗直/호: 점필재 佔畢齋/1431~1492)선
생을 비롯하여 정여창(鄭汝昌/호 일두 一蠹: 1450∼1504), 유호인(俞好仁: 1445~1494),
김일손(金馹孫: 1464~1498) 등 많은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이 걸음을 멈추며 지리산을 노
래했던 곳이다.
▲ 오도재를 함양군 마천면 쪽에서 바라본 모습 - 오도재는 마천면과 휴천면의 경계지역이다
오도재에는 담을 쌓아 담벼락 위의 다락문에는 <智異山第一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이 오도재는 벽소령과 장터목을 거쳐서 지리산을 넘어온 남해, 하동지역의 소금과 해산물을
운송하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이 고개를 지나 전라북도, 경상북도, 충청도 지방으로 운송된
육상 교역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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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도재의 유래와 <지리산제일문>을 설명해 두고, 함양관광지 8경을 소개해 두었다.
▲ 오도재의 지리산조망공원 오르는 곳에 청매선사의 <十二覺時>시비가 있다.
<十二覺時> 청매선사
覺非覺非覺 (각비각비각)
覺無覺覺覺 (각무각각각)
覺覺非覺覺 (각각비각각)
豈獨名眞覺 (개독명진각)
깨달음은 깨닫는 것도 깨닫지 않는 것도 아니니,
깨달은 자체가 깨달음 없어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네.
깨달음을 깨닫는다는 것은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니,
어찌 홀로 참 깨달음이라 이름 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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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조망공원 입구에 있는 정자이름이 <智得亭>이다.
지리산조망공원(智異山眺望公園)에 있는 지득정(智得亭)주위에는 지리산과 관련된 옛
사람들의 한시(漢詩)의 원문과 번역시를 함께 돌에 새겨두었는데, 거기에는 우리 문중
여러 선조들의 시문(詩文)이 적혀 있다. 다음 기회에 더 많은 내용을 소개하고, 오늘은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 : 1424~1483)선생의 시(詩) 두 편을 싣는다. 이 시(詩)
의 원출처는 사숙재집 제1권(私淑齋集卷之一)에 실린 칠언절구(七言絶句)이다.
▲ 사숙재 강희맹(1424~1483)선생의 시 <내고향(吾鄕)>이란 시비가 보인다.
<吾鄕> 사숙재 강희맹
智異山高萬丈長 (지이산고만장장)
山藏古郡號咸陽 (산장고군호함양)
花長舊刹嚴川路 (화장구찰엄천로)
翠竹茅茨是故鄕 (취죽모자시고향)
지리산(智異山) 높이 솟아올라 만 길이나 거대한데,
그 산 속엔 묻힌 옛 고을 함양(咸陽)이라 이르네.
화장사(花長寺) 옛 절터 지나서 엄천(嚴川)으로 가는 길에
푸른 대밭 띳집 있는 곳 거기가 내 고향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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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도재의 지리산조망공원에 걸려있는 지리산 조망 봉우리 이름
▲ 오도재의 다락에 걸려있는 <지리산제일문>의 현판.
칠언절구(七言絶句)는 주로 4.3으로 번역하는데, 순치(順置)와 도치(倒置)가 있다.
智異山高(지이산고)는 그대로 내리 번역하면 된다. 즉 "지리산이 높이 솟아(있네)".
그 다음 장(丈)은 옛날 우리 동양에서는 '한 사람의 키를 한 길'이라 하였으니 萬丈은
"만 길"이 되는데, 長은 <긴-장>혹은<어른-장>이란 훈을 안다면, <크다, 많다, 오래
다, 장엄하다, 웅대하다>는 뜻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萬丈長(만장장)은 ‘만 길이
나 되어 웅대하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래서 智異山高萬丈長(지이산고만장장)을 내
리 번역하면, "지리산이 높이 솟아, 만길이나 되니 웅대하다"로 번역된다.
山藏古郡號咸陽(산장고군호함양)에서 藏은 <감출-장>또는 <곳집-장>이 되어 ‘감추
다, 숨어있다, 저장하다’ 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산속에 감추어진 옛 고을’ 까지가 주
어구가 되어, 號는 <부를-호>이니 이 구 전체의 술어가 된다. 그리고 여기서 咸陽
(함양)은 빈어(賓語)가 되어 “산속에 감추어진 옛 고을을 함양이라고 부른다”가 된다.
<부를-호(號)>는 "~이라 부르다" 또는 "~이라 일컫다" 이다.
花長舊刹嚴川路(화장구찰엄천로)에서 앞의 花長舊刹은 "화장사(花長寺)라는 옛 절"
이란 뜻인데, 花長寺(화장사)는 유림면과 휴천면 경계의 화장산(花長山: 586.4m)
에 신라때부터 있었다고 전하는 절인데, 지금은 절터만 있다. 嚴川(엄천)은 전북
인월에서 흘러온 광천과 산내면 만수천이 합해져 함양군 마천면에서 휴천면을
흘러 유림면과 생초면 경계에서 경호강에 합해질 때까지의 강이름이다. 그래서
붙여서 해석하면, "화장사 옛절을 지나서 엄천으로 가는 길이다"가 된다.
翠竹茅茨是故鄕(취죽모자시고향)은 둘째구절처럼 翠竹茅茨(취죽모자)가 주어구가
되고, 그 다음 是가 술어, 故鄕이 보어가 된다. 翠는 <물총새-취>라는 훈으로 '물
총새 암컷'을 말하고 '물총새 수컷'은 翡(비)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翠는 "비취색
즉 푸른 색깔"을 말한다. 茅는 <띠-모>이고, 茨<가시나무-자>인데 이 두 글자 모자
(茅茨)란 "띠로 지붕을 덮고, 가시나무를 엮어 만든 집으로 일반 백성의 집"을 가리킨
다. 그래서 翠竹茅茨가 주어구가 되고, 是가 술어가 되어 “푸른 대밭 띳집(평범한
집)”이 있는 곳이 나의 고향이다. - 로 번역된다.
▲ 오도재에 오르는 길은 산 속 나무숲에 난 길로 운전을 조심해야 한다.
▲ 오도재 의 지리산 조망공원은 지리산의 여러 봉우리를 볼 수 있는 넓은 마당이다.
참고로 필자는 진주강씨(晉州姜氏) 박사공파(博士公派) 27세인 錫(석)자 항렬이고, 강희
맹(姜希孟) 강희안(姜希顔)형제분은 박사공파 9세로 직계선조(直系先祖)이다. 필자의 소
장서적(所藏書籍)에는 <사숙재집(私淑齋集)>도 있고, 다른 선인(先人)들의 글귀를 모은
책들도 가지고 있다. 기회가 주어지면 이런 내용도 써 볼 예정이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카페를 손보시고 올라오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