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원로회 서신 233호 ☆
- 신세대 숨바꼭질 -
■ "누가 죽인 것 같아요?" "뭐가요?"
의자에 앉자마자 흰 보자기를 목에 두르면서, 가위를 들기도 전에 묻는 말이어서 잠깐 어리둥절했다. 묻는 말에나 찔끔찔끔 대답하던, 평소 말수가 적은 미용실 사장님의 말이어서 더욱 그랬다.
변호사비 의혹 제기 후 서울의 한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람이라는 설명이 따른 후 셜록 홈즈의 추리소설 스토리는 이어졌다.
"이번에 죽은 사람의 경우를 보니까 저번에 죽었던 사람들도 누가 죽인 것 같아요." "대장동 사건에 관련되어 자살한 사람들 말이에요" "세 사람 다 누가 죽였을 것 같아요" 쉬지 않고 말하는 통에 '음' '음' '음'으로 하던 대꾸를 멈추고 "지금부터 음, 음, 음, 하지 않을 테니 계속 말하세요"라고 했다. 그녀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서워요. 대통령 되기도 전에 저렇게 사람을 죽이는데 대통령에 당선되면 어떻겠어요? 군대나 경찰까지 동원해서 죽일 사람은 죽이지 않겠어요?" 이 대목에서는 한마디 해야 했다. "누가 죽였는데요?" "아니에요. 저는 누가 죽였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무섭다는 거지."
맞다. 그녀는 이재명이 죽였는지, 윤석열이 죽였는지, 안철수가 죽였는지, 특정인을 거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손님들은 여론조사도 거짓이라며 이 정권이 무서우니 바뀌어야 한다고 이구동성 말한단다. 민초들도 요령껏 진화하고 있다.
"신랑 친구 아버님이 백신을 맞았는데 이번에 고환을 잘라냈데요. 암이라고 해서 수술해 보니 피가 통하지 않아 괴사 상태였다고 해요." 진화의 불이 백신으로 옮겨붙었다.
"신랑 성격이 꼼꼼한 편이라 여러 가지를 연구한 것 같더니 백신을 안 맞았어요. 저도 알레르기가 있어 안 맞고요."
"남편이 똑똑하시네요." 계속 '음음' 만 하기가 뭐 해서 이 말 한마디 거들었는데 이젠 더 이상 꼬깃꼬깃 이 선량한 부부의 신상 털이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머리는 그리 우수한 편은 아니다. 제주 애월이 고향인 신랑은 밭뙈기 한 마지기 없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포항공대를 나오고 올해 서울대 박사 코스를 마쳤다. 교회에서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자기는 전문대 원예과를 나와 나무 가지치기하는 대신 사람 머리를 자르니 신랑에 꿀릴 것도 없다. 약간 여유 있는 서울 집안에서 자란 자기는 그러지 않는데, 없는 집안에서 커온 탓인지 신랑은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삐딱했다.
그러던 신랑이 직장 때문에 성격이 바뀌더란다. 약품이나 특수성분 분석을 주로 하는 식약처 같은 곳에서 사용되는 독일제 기계를 수입하는 회사의 일반 직원에서 책임 있는 부사장이 되더니 사주의 입장으로 남편이 달라져 무조건 좌파로 분류되던 73년생 출신인데도 지금은 동갑내기인 자기를 따라 좌파라 하면 도시락 싸들고 말리는 자생적 우파로 변신했다. 언젠가 들었던 가물가물한 기억이 드디어 또렷하게 떠올랐다. 진실이다.
신랑은 (그녀는 계속 신랑이라고 했다) 어느 의사가 백신을 배양해 보고 그 속에 미생물체가 있다고 폭로했는데 만약 거짓이라면 의사 노릇을 더 이상 못할 리스크가 있을 텐데 더군다나 여자가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하겠느냐고 백신의 위험성을 주장하며 주변에도 못 맞게 한다는 것이다.
머리를 감기러 세면대로 이동시키면서도 처음 듣는 수다는 멈추지 않았다. 전라도 말을 하는 손님들도 있는데 대부분은 박근혜 대통령이 나와서 좋다고 하더란다. 그중 양재천 산책로에 작품까지 게재되었다는 60대 중반의 광주가 고향이라는 여류 시인은 역대 대통령 중에 이처럼 훌륭한 대통령이 어디 있냐고 말해 저것들이 쉽게 정권을 내놓겠느냐 하는 두려움마저 든다고 했다.
신랑이 3.9에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허경영 당의 추천으로 참관인을 하게 될 거라는 귀띔과 함께 국민의힘 당에 전화했더니 불친절하게 받아 죄 없는 휴대폰에 침을 튀겼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머리 손질도 끝났다.
■ " '딸 아들 결혼하는 거 볼 때까지는 절대로 자살할 생각이 없다'라고 했답니다. 그런 의로운 사람이 이렇게 번번이 죽어 나가는 걸 빤히 보면서도 기다리라는 말입니까?"
김 동지의 거친 말이 심장을 때렸다.
옆에 있던 고 동지도 나섰다.
" '이재명 반대 운동에 나선 분들이 서로 생사 확인한다고 분주하다'라고 했던 이병철 씨가 자살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도 무언가 보여줘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저놈들의 살인은 계속됩니다. 무서울 것 없다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기은주는 무거운 침묵으로 그들을 눌렀다.
김정은이 극초음속 미사일 최종시험에 성공한 것을 참관한 뒷모습이 크게 찍힌 사진이 신문마다 1면 기사에 실렸다. '선제타격'을 해법으로 내놓은 야권 후보 대응책에 "선제타격? 마치 화약고 안에서 불장난하는 어린이를 보는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라고 이재명이 받아친 기사까지 머리에 떠올리며 은주는 길을 나섰다. 생각이 많을 때 홀로 찾는 곳으로.
■ 숨바꼭질은 한 사람의 술래가 숨은 사람 여럿을 찾아내는 놀이로 '라떼'는 장독대 뒤는 기본이고, 울타리, 골방, 마루밑은 다반사였다. 냄새 지독한 변소간 거적떼기 속도 마다하지 않았다. MZ의 숨바꼭질은 확실히 다르다. 그것도 정반대라는 것이다. 숨은 사람은 한 명인데 술래는 여러명이다.
대장동 담당 김태훈 술래는 운동권 전대협 출신으로 조국수사를 강행한 당시 검찰총장을 찾는데 앞장섰고, 백현동 담당 박은정 술래는 당시 총장징계에 관련한 감찰담당관, 변호사비 의혹사건 신성식 술래는 징계위원, 거기에 숨은 사람의 고문변호사였던 김오수 술래 대장까지 있다. 그러고도 술래들은 '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달이지면 숨바꼭질은 끝나는데.
종로구 효자로 97번지. '무궁화동산'이라는 푯말과 함께 안내판이 붙어있다.
<안가(안전가옥)를 헐어내고 조성한 곳>.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소위 궁정동 안가로 외할아버지 염동진이 白衣社 사무실로 쓰던 곳이다. 할아버지처럼 물리력을 행사했을 때 반응의 역효과를 추산하느라 꼼지락거렸다. 지난 3년을.
"시국이 뒤숭숭하고, 사람이 죽어 나가고, 요새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어제 미국에서 걱정하느라 보내온 카톡도 생각났다. 세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숨바꼭질의 현실을 개탄한다. 하늘이 파랗다. 바람도 차다. 은주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2022년 1월 14일
야, 머리카락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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