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기억은 두고두고 아름답고 아련하다.
그것은, 그 시절이 다시는 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요, 그 때의 흔하던 것이 이제는 아예 없어지거나 아주 귀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의 두 가지, 종달새와 개구리 이야기를 해보련다.
보리가 누렇게 익는 요즈음 – 현충일 전후, 망종 때 (이런 이름은 몰랐지만) - 어른들은 낫으로 보리를 베고, 아이들은 덩달아 즐겁다.
까끄럽게 찔리는 보리가 싫어도, 밭골을 따라 가다보면 대여섯개의 노란 참외 무더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똥 참외다.
지난 해 여름 아이들이 먹은 참외의 씨가 거름이 되어 지난 가을에 밭에 뿌려졌다가 이듬해 봄에 거기서 싹이 나와 보릿골에서 가만히 자란 것이다. 그리고 보리가 익을 때 쯤 그 참외도 익어서 노란 것이 입맛을 자극한다.
크기는 아이들 주먹보다 조금 더 크고 줄기에 달린 참외가 대여섯 개는 된다.
먹을 게 귀하던 시절 그것은 참 별미였다.
이제는 약에 쓰려 해도 없는 그 개똥 참외는,
요즘 개들은 먹을 게 많아서 아이들 똥을 먹지 않을 뿐 아니라, 농부들도 인분을 거름으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개똥 참외는 간질환에 효과가 좋다고는 하나, 달 가운데 계수나무 오른 쪽 세 번 째 가지처럼 어디 구할 수가 있어야 써 보기나 하지. (그 가지가 만병통치 약이라 한다.)
개똥참외 뿐이랴?!
보릿 고랑을 따라 천천히 가다보면 갑자기 새 한 마리가 총알처럼 날아서 수직비행을 하여 공중에서 종알종알 거린다.
종달새다!
알을 품던 종달새는 자기 몸은 하늘로 피했지만 두고 온 알들이 걱정이 되어서 다른 곳으로 가진 못하고 그 하늘 꼭대기에서 제자리 비행을 한다.
그러니 종달새가 뜬 곳에는 반드시 그 알둥지가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그걸 놓칠 리가 없다. 알록달록한 알을 주워서 갖고 놀기는 했으나 먹지는 않았다.
그렇게 둥지가 쉽게 발견되는 습성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어디에도 종달새는 없다.
70년대 우리 입에 무던히도 오르내렸던 뷰티풀 썬데이(Beautiful Sunday)는 이렇게 시작한다.
‘Sunday morning up with the lark’
일요일 아침 종달새(lark) 소리에 일어나...
많이도 불렀던 노래다.
그런가 하면, 우리 고시조에도,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치는 아이 놈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
그 예쁘고 작은 종달새(또는 종다리), 노고지리(종달새의 다른 이름)는 다 어드메로 갔는고?
노고지리 본 지가 60년은 된가 보다.
여름날 개천에서 멱을 감으면 배가 빨리 고파졌다.
‘개구리 잡아먹자~!’
회초리를 갖고 풀숲을 툭 툭 치다보면, 펄쩍 하고 개구리가 뛴다. 몇 마리쯤 잡은 일은 같잖은 것이었다.
몸통을 떼고 뒷다리 껍질을 벗기면 맑은 속살이 드러난다. 엉덩이 부분은 제법 살점이 많다.
소금이 없으면 어떠랴?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너럭바위 위에서 꼬쟁이에 끼운 개구리를 굽는다.
맛은 말해서 무엇하나? 그 허기진 배에!
이 추억의 개구리 조차 없다.
겨울철 잠자는 개구리를 지렛대로, 혹은 공사판 포크레인으로 바윗돌을 다 들춰 잡아냈기 때문이다. 혹은 농약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개구리는 올챙이적 부터 모기유충을 잡아먹는 등 해충구제에 일등 공신이다.
개구리가 되어도 날쌘 혓바닥을 이용해서 모기등 날벌레를 잡는 선수다. 이 유익하기 그지없는 개구리를 왜 멸종위기로 만들었나?
중국에서는 식용 개구리를 양식한다.
우리도 양식을 하면 될 것이다.
토종 개구리는 아주 멸종하기 전에 농촌진흥청등에서 양식으로 증식하여 전국 저수지나 하천에 방생하고 그 포획을 엄격히 금지하면 충분히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초여름 농촌 저녁 날 시끄럽게 울어대던 개구리의 그 울음소리도 그립다.
맹꽁이며 두꺼비는 또 어디로 갔나?
맹! 맹! 매앵!
보리가 익어가는 癸卯年
芒種節에
豐 江
첫댓글 풍강이 내 기억을 되살려주네!
종달새! 중학교 1학년때 우리집옆 남원천에서
종달새가 어디에서 우는가를 확실히 보고
뛰어가 주변을 살펴보면 종달새집을 찾을수 있고 그 안에 있는 3~4개의알을 발견할수 있었지....
맞아....왜 지금은 종달새소리를 들을수 없는가??? 정녕 멸종하였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