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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일기 2026.10.05. (월)
새벽기도회
(2026.08.07. 새벽기도회)
인도: 담임목사님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송 :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거룩한 생활]
1.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 되고
내가 늘 바라던 참 빛을 찾음도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후렴]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물밀듯 내 맘에 기쁨이 넘침은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2.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망령된 행실을 끊고
머리털보다도 더 많던 내 죄가 눈보다 더 희어졌네
3.
내맘에 소망을 든든히 가짐은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의심의 구름이 사라져 버림도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4.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다가 밝은 빛 홀연히 비쳐
저 멀리 하늘 문 환하게 보임도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5.
내가 저 천성에 올라가 살기는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천성에 올라가 주님을 뵈오리 그 기쁨 비길 데 없네
(엡 4:22-24)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성경 : 롬 12:2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2 Do not conform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ʼs will is—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말씀 : 담임목사님
https://www.youtube.com/watch?v=PhbMdL3byyE
제목 : 마음을 새롭게 하라
사람이 사실을 듣는다고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
설교를 많이 듣는다고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
순회전도자 (설교자가 없었던 시절) =>> 미국 교회 부흥의 역사를 이룸.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세대 :
- 세상은 '교만'하다.
=>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 교만이다.
=>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 없이 살아가는 것이 교만이다.
본받지 말아야 할 것
- 세상을 본받지 말라.
본받아야 할 것
고전 11:1
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본 받는다 : 스승의 글 위에 종이를 대고 그대로 따라 쓰는 것이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따라 써야 한다.
애굽 바로의 교만함 =>> 바로의 교만함으로 장자와 군대가 다 죽음
겸손의 왕 = 예수 그리스도
겸손 :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깨닫는 것
다윗 : 하나님 말씀 앞에 엎드림 (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빌리 그레이험 목사님
- 말씀에 능력이 있음
- 기이한 행동을 하지 않으셨다.
- 예의를 지키셨다.
- 교만하지 않으셨다.
세상을 본받지 않고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한다.
[나를 변화시킨 5권의 책]
-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이 변해야 한다.
-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으시다.
모든 새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내 마음을 돌보아야 한다.
- 영혼에 물을 잘 주어야 한다.
오늘도 우리의 영혼을 잘 돌보아야 한다.
담임목사님 기도
주기도문 --- 다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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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명성교회
구역성경공부교재
2026.10.02.(금)
고린도후서(31) :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사람
■본문
고후10:12-18
12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13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4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5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자랄수록 우리의 규범을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라노라
16 이는 남의 규범으로 이루어 놓은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역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12 We do not dare to classify or compare ourselves with some who commend themselves. When they measure themselves by themselves and compare themselves with themselves, they are not wise.
13 We, however, will not boast beyond proper limits, but will confine our boasting to the sphere of service God himself has assigned to us, a sphere that also includes you.
14 We are not going too far in our boasting, as would be the case if we had not come to you, for we did get as far as you with the gospel of Christ.
15 Neither do we go beyond our limits by boasting of work done by others. Our hope is that, as your faith continues to grow, our sphere of activity among you will greatly expand,
16 so that we can preach the gospel in the regions beyond you. For we do not want to boast about work already done in someone elseʼs territory.
17 But, “Let the one who boasts boast in the Lord.”
18 For it is not the one who commends himself who is approved, but the one whom the Lord commends.
■시작찬송가
455장(통507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제자의 도리]
■헌금찬송가
212장(통347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헌신과 봉사]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 말씀은 ‘누구에게 칭찬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거짓 교사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자랑하며 바울과 비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누가 더 수고했는지 서로 견주지 말고, 칭찬은 오직 주님께 받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해서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좋게 보시기 때문에 칭찬받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자기 자랑을 내려놓고 주님만 높여드리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서로 비교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고후 10:12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고린도 교회의 거짓 교사들은 계속해서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우리는 대단한 환상도 보고 은사도 많은데 바울은 별것 아니지 않느냐', '우리는 이렇게 먼 길을 와서 수고하고 있지 않느냐'며 자신들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잣대로 바울을 재려 했습니다.
이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그것은 애초에 비교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가 더 수고했는지, 누가 더 열심히 했는지를 서로 견주는 일 자체가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자기 자로 자기를 재고, 자기 기준으로 자기를 평가하는 사람들과 나란히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은 늘 바뀝니다. 아름다움의 기준도, 능력의 기준도 시대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신앙의 절대적 기준은 오직 하나, 하나님이십니다. 기독교는 내 느낌이 중심인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중심인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견주는 자리에서 내려와, 우리를 칭찬하시는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기 칭찬의 두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고후 10:12 하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자기 칭찬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첫째는 지나친 자기 자랑입니다. 내가 얼마나 잘났고, 얼마나 많이 알고,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를 끊임없이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랑이 강하면 오히려 자기 점수를 깎아 먹습니다. 하나님께 칭찬받는 주의 종이 되는 것이, 내 이름이 크게 알려지는 것보다 훨씬 귀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공로로 다투는 곳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수고했는데’, ‘내가 이 교회를 세웠는데’라는 마음이 들어오면, 정작 칭찬을 주시는 하나님은 사라지고 나의 공로만 남게 됩니다. 우리는 공로를 내려놓고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둘째 함정은 자기 판단입니다. ‘내가 잘한 것 같다’는 느낌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느낌은 맞을 때도 있지만 크게 틀릴 때도 많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며 ‘오늘은 별 감흥이 없었다’고 느낄 수 있지만, 여러분이 예배를 드렸다는 그 자체로 주님은 이미 칭찬하십니다.
기도실에서 삼십 분을 기도하고 나오면서 ‘무슨 기도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싶어도, 주님은 ‘참 잘했다’고 하십니다. 찬양을 부르며 오늘은 잘 안 맞았다고 느껴도, 주님은 ‘정말 좋았다’고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느낌으로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판단으로 칭찬받습니다.
▶ 절대적이며 상대적인 칭찬
칭찬은 절대적이면서 동시에 상대적입니다. 절대적인 것은 칭찬하시는 분이 오직 주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상대적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이 예배의 감격으로 수요 예배에 나오셨다면, 그것은 참으로 칭찬받을 만한 일입니다. 청년들과 중고등학생들이 수요 예배 자리를 지키는 것도 얼마나 귀합니까?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다 아시기에, 우리가 완벽해서 칭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우리가 연약해도 주님은 우리의 연륜과 형편에 따라 칭찬해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2023.03.22. 수요기도회 중)
[말씀다시보기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tZAvCxM-Rko
맡겨주신 분수와 범위 안에서 행합니다
고후 10:13, 15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자랄수록 우리의 규범을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라노라
여기 나오는 ‘분수’와 ‘범위와 한계’는 단순히 ‘네 수준을 알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회의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에게, 베드로는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사역의 영역이 정해졌습니다.
‘범위와 한계’로 번역된 헬라어는 ‘카논(κανών)’으로 규율, 정해진 척도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말은 이런 뜻입니다. ‘나는 고린도 교회를 세우느라 정말 수고했지만 그것은 자랑거리가 못 된다. 나는 그저 하나님이 내게 정해주신 분수를 따라 여기까지 온 것뿐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던지 하나님의 맡겨주신 것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바울은 결코 남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지 않겠다고 작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분수와 범위가 있습니다. 예배와 기도와 섬김은 우리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맡겨주신 몫입니다. 학생이 숙제를 하는 것이 특별한 칭찬거리가 아니듯,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을 자랑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자가 옳습니다
고후 10:17-18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예수님께서는 칭찬을 참 잘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첫 번째 이유는 모델링입니다. 누가 칭찬받는 사람인지를 보여주셔서 우리도 그렇게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마리아도 주님이 반드시 칭찬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를 좋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은혜란 곧 ‘좋게 보는 것’입니다. 사람을 밉게 보면 걸음걸이 하나까지 밉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면 같은 모습도 예뻐 보입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를 사랑하시고 좋게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칭찬받으려고 애태울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 잘 보이려 하기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 품에 안기고, 그 앞에 엎드리십시오. 나의 자랑은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 높여드릴 때, 우리는 이미 주님께 칭찬받는 사람으로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풍성한 나눔을 돕는 질문
1. 나도 모르게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며 신앙 생활한 적이 있습니까? 그때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2.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분수와 범위’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3. 주님께서 나를 좋게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내 신앙생활의 무엇이 달라질까요?
▶ ‘카논(κανών)’
하나님이 그어주신 선
카논은 본래 갈대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곧게 자란 갈대를 잘라 길이를 재는 자로 썼기 때문에, 이 말이 곧 측량하는 자(尺), 기준선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건축 현장에서 벽이 반듯한지 재어보는 잣대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 단어를 세 번이나 씁니다. 13절의 ‘범위의 한계’, 15절의 ‘우리의 규범’이 모두 카논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분수와 범위는 ‘네 주제를 알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재어주신 사역의 자리를 뜻합니다.
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에게, 베드로는 유대인에게 가기로 정해진 바로 그 선입니다.
흥미롭게도 훗날 교회는 성경 목록을 부를 때 이 단어를 그대로 가져와 ‘정경(Canon)’이라 불렀습니다. 성경이야말로 우리 믿음과 삶이 반듯한지 재어보는 잣대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얼마나 멀리 갔는지, 얼마나 많이 했는지가 자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어주신 그 선 안에서 신실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도 바울이 말한 카논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한마디 : 칭찬은 오직 주님께 받는 것입니다.
공동 기도 제목
1.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대통령, 안보, 외교, 통일 등)
2. 교회를 위해서(교회와 속한 기관 및 봉사자, 교역자, 선교사 등)
3. 해외선교지를 위해서(에티오피아 MCM, 캄보디아, 필리핀 등)
4. 국내선교와 기관선교를 위해서(안동성소병원, 소망교도소, 장학관 등)
5. 교회 안의 이웃을 위해서(군장병, 해외유학생, 환자 등)
6. 세상의 이웃을 위해서(새터민, 이주노동자, 노숙자, 소년소녀가장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