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과 여행이 어떻게 다를까요? 지금 여러분 머릿속에 어떤 차이가 느껴지실 것입니다. 그 차이와 제가 최근에 경험한 차이와 같은지 한번 비교해 보시죠.
지난 9월 10일부터 17일까지 평소 알고 지내는 오지 여행가 도용복 회장을 따라 우즈베키스탄을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두 달 전 어느 모임에 도 회장을 모셔 오지 여행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가슴 설레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제가 그의 여행경험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자 그는 9월에 SBS와 촬영차 우즈베키스탄을 가는데 동행하지 않겠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와의 여행도 특별하고 방송사와의 동행도 특별하여 만사 제쳐놓고 오케이를 하였습니다. 여행일 이 다가오자 10일을 회사를 비워야 하는 데 대한 심적 부담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여행길에 나섰습니다.
그 특별한 경험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겪게 되었습니다. 짐을 찾는 곳에서 도 회장은 어느 우즈베키스탄 젊은이와 통성명을 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일하다가 귀국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이 통성명은 결국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하는 인터뷰로 이어졌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도 회장은 그에게 그의 집에 가보고 싶다고 제안하였고 그는 흔쾌히 '예스'하였습니다. 그의 전화번호를 받고 공항을 빠져나왔습니다. 저는 이 광경을 카메라를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쯤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그 다음 날 고속철도로 옛날 실크로드의 주요 도시인 부하라와 사마르칸트를 방문하였습니다. 카메라에 담을 장면을 위해 이곳저곳 명소들을 다니며 촬영하였습니다. 그야말로 관광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도 회장에게는 이런 관광이 불편해 보였습니다. 그가 원하는 여행은 아닌 듯했습니다. 유적지 관광 중에도 그의 관심은 오로지 어제 만난 우즈베키스탄 젊은이와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화번호가 잘못되었는지 그와의 전화는 결국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일행은 마지막 관광지로 사마르칸트의 레기스탄 광장을 찾았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지폐에 그려져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이 광장에는 멋진 건축물들이 3면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땅거미가 질 무렵 도착한 이곳은 밤이 되자 화려한 조명으로 빛의 제전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건축물이 너무도 신기하여 이리저리 다니며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도 회장은 이곳을 자주 방문하였기 때문인지 유적지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습니다.
그는 광장에서 어느 지역 전통의상을 입은 50-60대 여인 댓 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환한 미소를 띠고 그들에게 다가가 'Hello'를 외친 다음 'Where are you from?'을 던졌으나 그들은 그저 미소로 답할 뿐 아무 말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옆에 우즈베키스탄 가이드가 있기는 했지만 그의 역할은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도 회장은 그녀들에게 'Beautiful'을 연신 외쳤고 그들이 서서히 호응하자 노래를 부르며 춤으로 그들의 흥을 돋구었습니다. 그녀들도 따라 춤을 추기 시작하였고 갑자기 광장에서 작은 춤판이 벌어졌습니다.
도 회장은 그녀들에게 같이 사진 찍을 것을 제안하였고 그녀들은 흔쾌히 그를 가운데 두고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광경이 신기하였지만 끼어들 엄두는 나지 않았습니다. 도 회장은 저를 불러 그녀들과 사진 찍게 해주었습니다. 어색한 미소를 띠며 간신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런 한바탕 소란을 벌이고 있는데 어느 우즈베키스탄 젊은 여자가 우리 일행에게 다가와 "한국에서 오셨어요.'하고 한국어로 인사를 해왔습니다.
그녀는 KOICA(한국국제협력단)가 사마르칸트에 세운 직업훈련학교의 한국어 선생님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도회장의 제안에 따라 그녀와 그녀의 남동생을 데리고 같이 저녁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저는 그 자리가 불편하였습니다. 낯모르는 사람들과 저녁을 먹는다는 것이 제 상식으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인사만 나누는 것으로 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식사 내내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아무튼 식사는 재미나게 진행되었고 식사 끝에 도 회장은 그녀에게 내일 그녀의 집과 직장에 가 볼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흔쾌히 '예스'하였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짧게 박물관 관광을 마치고 그녀가 사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녀가 사는 동네에 접어들었을 때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동네는 매우 가난한 곳이었습니다. 동네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짓다가 만 시멘트 브로크 집이 군데군데 있었고 담이 무너진 집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 사는 그녀는 어떻게 손님을 초대할 엄두를 내었을까? 만약 저라면 절대로 손님을 초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사는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녀의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자모라'라는 이름을 가진, 작년에 결혼하여 임신 2개월인 그녀는 점심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도 회장은 점심이 준비되는 대로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자고 하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돌아보고 말 것 할 것도 없는 그저 그런 동네였습니다. 제 호기심을 끄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행들은 도회장을 따라 이곳저곳을 누볐습니다. 큰 카메라를 맨 일행들이 동네를 돌아다니자 동네 꼬마들이 신이 났습니다. 집에서 나와 신기한 듯 쳐다봅니다.
어느 집 문 앞에 꼬마 댓 명과 여자 한 분이 서 있었습니다. 도 회장은 그녀에게 다가갔습니다. 아마도 그 집에 들어갈 생각인 듯했습니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뒤를 따라다니던 현지 가이드가 도 회장을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남의 집에 들어가시면 안됩니다. 여기 문화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지에 발길을 멈출 도 회장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환하게 미소를 띠며 몸짓으로 들어가 볼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역시 몸짓으로 들어오라고 하였습니다. 일행들은 그를 따라 그 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그 장면이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남의 집에 그것도 인테리어가 화려하여 볼 만한 것이 있는 집이 아닌 구질구질한 집을 무엇하러 들어가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도 회장은 이것저것이 신기한 듯 집 안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가이드도 제지를 포기하고 통역을 시작하였습니다. 한참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의 집 구석구석을 살피고 나오려는데 그녀가 집 마당에서 딴 포도 한 송이를 대접하였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불쑥 들어간 집에서 포도를 대접받다니.
서로 사진을 찍고 아쉬운 작별을 하고 그 집을 나와 도 회장은 어슬렁거리다가 또 다른 집 앞에 있는 우즈베키스탄 할머니에게 똑같이 집구경을 시켜달라고 몸짓으로 요청하였습니다. 가이드가 이번에는 더 크게 제지를 합니다. 그러나 소용이 없습니다. 일행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도 회장을 따라 그 집에 들어갑니다. 이번에는 안방까지 들어가 보았습니다. 다 구경하고 나오려는데 그 할머니는 그냥 보낼 수 없다며 큰 멜론을 가지고 나와 깎아 줍니다. 이들의 인심이 가슴에 전해 옵니다.
동네를 누비고 다니는 사이에 자모라의 점심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그녀는 취재진에게 아침 7시부터 준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임신 중이라 몸도 불편할 텐데 낯모르는 사람들에게 점심을 준비해준 그녀의 마음씨가 고마웠습니다. 여행을 와서 현지인을 만난 본 것도 처음이고 더더욱 식사를 대접받기는 제 인생에 처음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도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도 회장에게는 익숙한 장면인 듯하였습니다. 도 회장이 이번 SBS 취재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이런 장면인 듯했습니다. 저희 일행은 맛있게 그녀의 마음이 담긴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녀가 차창밖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할 때 도 회장은 혼잣말을 내 뱉었습니다. "아이고 심장이야. 딸내미 두고 가는 기분이네. 마음이 따뜻하다."
무엇이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였을까요? 도 회장은 영어를 할 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의 소통 수단은 환한 미소와 몸짓이었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하였습니다. 먼저 다가서면 가슴으로 통했습니다. 그는 노래도 하고 춤도 추었습니다. 도 회장과의 여행은 내내 이런 식이었습니다. 4일간의 취재 여행에서 만난 현지인들이 열 팀도 넘었으니까요? 소통의 수단을 언어라고만 여기고 있던 저로서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하였던 여행에 점점 익숙해질 무렵 SBS 취재팀은 먼저 출국하였습니다.
도 회장과 저는 며칠 더 묵었습니다. 마지막 전날 그는 좋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자고 제안하였습니다. 다이어트를 한다며 끼니마다 샐러드만 시켜 먹는 제가 안쓰러웠는지 제대로 된 식사를 제안한 것입니다. 전통음악 연주가 있는 식당에 갔습니다. 마침 저희 두사람이 앉은 자리 옆에는 5명의 일행이 이미 자리를 잡고 식사 중이었습니다. 저희가 주문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데 옆 좌석에 작은 케이크에 촛불이 켜졌습니다. 누군가의 생일인 모양입니다.
저는 평소 저답지 않게 그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Birthday" 이렇게 시작한 대화는 결국 합석을 하게 되었고 1시간 반 동안 그들과 영어로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들은 독일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장동료들이었습니다. 독일인, 아르메니아인, 인도인, 우크라이나인, 우즈베키스탄인 등 다양하였습니다. 특별한 주제 없이도 매우 재미있게 영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였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들이 따라 준 보드카와 함께 취해가고 있었습니다. 11시경 우리는 내일의 일정을 위해 아쉬운 작별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에 와서 계산을 하려는데 주인이 이미 계산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저희는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누가 계산을 해준다는 말인가? 그때 같이 놀던 일행 중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계산한 것입니다. 우리는 영문을 몰라 그에게 왜 계산을 하였냐고 물었더니 그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You are our guest"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어안이 벙벙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다 생기는구나. 수십 년간 여행을 하였지만 한 번도 제대로 현지인을 만난 적이 없었고 더군다나 현지인으로부터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는데 모든 경험을 한꺼번에 한 것입니다. 도 회장은 빙긋이 웃으며 "이것이 오지 여행의 매력이지요." 라고 한마디 건넸습니다. 그 말에서 제가 SBS 취재팀과 한 인터뷰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이번 여행을 통해 관광과 여행이 어떻게 다른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관광은 Sightseeing입니다. 관광은 사물과의 만남입니다. 좋은 경치, 멋진 건축물, 유서 깊은 박물관 등 생명이 없는 것들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그런 관광을 여행이라고 알고 해왔습니다. 그러나 여행, 즉 Travel은 사람과의 만남인 것 같습니다. 현지인과 만나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느끼는 것이 바로 여행의 진정한 의미일 것입니다. 저는 수십 년간 여행을 하였지만 한 번도 진정한 현지인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그동안 여행이 아닌 관광을 한 것입니다."
도 회장과의 여행은 저에게 여행의 참 의미를 알려주었습니다. 관광을 하면 제가 찍은 사진과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이 똑같습니다. 느끼는 감정도 비슷하지요.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여행을 하면 제가 찍은 사진에는 사물이 아닌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사람이 등장하는 이번 여행 사진은 저만의 특별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도 회장과의 특별한 경험은 지난 토요일(9월 23일) 아침 SBS 뉴스토리에 소개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추석 연휴에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신가요. 혹시 해외여행을 계획하신 분들도 계신가요. 사물을 만나는 관광도 하시고 나아가 현지인을 만나는 여행도 해보시면 어떨까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7.9.25.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