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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 분석이 매우 중요합니다.
낙(樂)은 幺 + 白 + 幺 / 木 의 단어들이 결합하여 풍류(음악,악기) / 즐겁다 / 좋아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합된 단어들을 검토해보면 좀더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무척 쉬운 단어로 연결되어 있지만 의미를 파악하기까지 꽤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幺 : 요는 갓난 아이의 모습을 본뜬 글자입니다. 그래서 작다 / 어리다 / 어둡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구요.
白 : 백은 밝다의 뜻입니다. 은유적으로 쓰인 경우가 많은데요. 여기에서는 귀인 혹은 왕을 뜻합니다.
木 : 목은 나무입니다. 여기서는 잔치상의 탁자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구요.
그래서 낙(樂)을 정리하면 "귀인(왕)이 아이 2명을 안고 잔치를 벌이고 있는 풍경"이 됩니다.
돌잔치를 떠 올리십시오.
음악이 들리고, 음식을 먹으며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광경을요.
그런데 굳이 아이 2명이라고 표현했는지는 다음 글자인 랑(浪)과 관계가 있습니다.
랑(浪)은 水 + 良이 결합하여 있는데요.
良 : 량은 양쪽에 통로가 나 있는 혈거, 성 위에 난 길을 통과하는 성루, 회랑이 통과하는 정당을 말하는데, 막히지 않고 뚫려 있어서 순탁하게 통하니 좋다는 뜻입니다.
좋다의 의미가 이해되십니까?
길이 있는데 옆 면이 막혀 있는 일방향 길입니다.
이곳을 벗어나려면 전방에 있는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만약, 문이 닫혀 있으면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데, 다행히 문이 열려있어서 아주 좋다라는 뜻입니다.
良에 水가 붙은 랑(浪)은 물이 막히지 않고 통해서 좋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배가 거침없이 통과를 하니 물결이 찰랑댄다는 뜻이 파생되어 덧붙여졌구요. 어떤 사람이 자기 맘대로 행동하는 바람에 이쪽저쪽에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킨 경우를 빚대어 방자, 방종 허망 터무니없다 등으로 의미가 확장됩니다.
내용을 정리하면, 낙랑은 관문 역할을 하는 바다 교역로를 뜻합니다.
관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곳을 통과하지 못하면 낭패를 볼 수 있는 지리적 특징을 가진 곳을 말합니다.동력선이 없는 시대, 배가 다니는 항로에는 일정 거리 안에 항구가 있어야 합니다.
항구 사이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조난을 당할 수가 있고, 안전성도 크게 떨어지니까요.
그리고 바닷길에서 관문 역할을 한다는 의미는...
대략 100km 이상 거리 안에 있는 3~4개의 항구들이 연달아 놓여져 있어야 하고,
이 항구들을 군사적으로 모두 통제할 수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앞에서 낙(樂)의 의미에 집중하라고 하였습니다.
낙(樂)은 관문을 가지게 되어서 즐겁다는 것입니다.
아이 둘을 안고 있는 것은 양손에 떡을 들고 있다는 의미의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쉬울 것입니다.
위만조선이 교역로를 막아버려 조공을 못하게 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랑(浪)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낙랑의 의미를 이해하였다면 그 위치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먼저, 항구를 찾으세요.
육지로 들어가면 절대로 안됩니다.
바닷길을 막는 관문이니까요.
그리고 육지와 적당히 떨어져 있는 곳에 섬이 있는지 찾아 보세요.
관문의 역할을 하려면 육지에서 최대한 먼바다까지 살펴 볼 수 있어야 하고, 봉쇄도 가능해야 하니까요.
섬은 낙랑의 위치 비정에 꼭 필요한 조건입니다.
지도를 살펴보면 낙랑이 될 수 있는 위치가 2곳이 있습니다.
하나는 한4군의 낙랑이구요. 다른 한곳은 최리의 낙랑입니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백제 북쪽에 말갈이 있고, 동쪽에 낙랑이 있다고요.
북한산쪽에 백제를 두고 말갈과 낙랑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림처럼 초기 백제(십제)를 요동반도에 두었습니다.
요동반도에 초기 백제를 집어넣은 이유는 그곳이 공지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한4군이 설치된 후 국경지역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토군이 옥저땅에서 밀렸다면 요동반도 쪽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다만 전투가 자주 벌어지는 국경지대이다 보니 사람들이 다 떠났을 것이고...
비어있는 땅에 온조가 들어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요동반도의 동쪽을 살펴 보았습니다.
대략 현 압록강에서 청천강 남쪽까지가 낙랑에 해당합니다.
물론 한4군의 낙랑은 아니고요.
최리의 낙랑으로, 32년에 고구려에게 흡수된 낙랑입니다.
고구려와 최리의 낙랑 사이에는 100Km에 달하는 거리에 산들이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고구려가 군대를 이끌고 원정을 가기에는 어려운 곳입니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를 통해 양국간 혼인을 통한 군사동맹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낙랑은 백제와 전쟁중이었습니다.
말갈과 연합하여 요동반도에 있었던 백제의 위례성을 불태웠을 정도였으니까요.
백제의 왕 온조는 위례성이 불타기 전에 백성들을 한강 이남으로 이주시켰는데요.
한강 이남, 전쟁의 영향이 없는 곳에서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백제는 지속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됩니다.
반면 낙랑은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힘들어집니다.
전쟁은 경제를 잡아 먹는 하마니까요.
할 수 없이 혼인 동맹을 통해 고구려를 끌여들이게 되는데요.
그런데 낙랑을 지원하기 위해 보낸 고구려 군대가 창을 꺼꾸로 들어버린 것입니다.
꿀꺽! 낙랑을 집어 삼킨 것이지요.
낙랑을 청천강 유역으로 놓고 보니 조나와 주나의 위치도 좀더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는 것 같구요.
예전부터 주나를 장산곶 주변이라고 동그라미를 쳐 놓고 있었거든요.
그동안 고구려의 영토 확장 관계를 2차례에 걸쳐 정리를 했는데요.
최근에 다시 리셋을 했습니다.
한반도쪽으로 백제와 최리 낙랑을 정리하고, 한4군의 낙랑군을 세부적으로 정리를 했더니
고구려의 확장 관계를 수정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아마 스스로에게 만족할 때까지 계속 수정 작업은 진행될 것입니다.
참고로, 한사군 낙랑을 지도에 비정해 보았습니다.
단, 영동7현의 경우는 일정 거리를 두고 그냥 기록된 순서대로 나열하였습니다.
그래서 실제 위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밝힙니다.
그림을 설명하면.
그림의 낙랑군은 한사군을 설치되고 국경지역이 모두 안정화된 중후반기의 낙랑입니다.
25개 현은 적정 거리 30~40km 내외로 두고 배치를 하였구요.
현재의 행정구역도 대청산을 경계로 나뉘어지고 있어서 대청산을 분려산으로 하였습니다.(단단대령)
단단대령 동쪽으로 영동7현을 두었구요.
그림의 패수는 한나라 낙랑군의 국경을 의미하고요.
연의 패수와 진의 패수, 위만 조선이 망하기 전의 전한의 패수는 요동군에 위치해 있었을 것입니다.
열수의 의미를 말씀드리면...
列은 칼로 사람의 목을 벤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위만조선과 한나라가 격전을 벌인 강을 의미하는데요.
열수는 2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요동태수와의 전투지이고요. 다른 하나는 조선의 왕이 있던 곳의 전투가 될 것입니다.
강마다 댐들이 너무 많이 건설되어 있어서 강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하지 않으려고 노력중인데요.
열수를 연결해 보니 대략 기록에 등장하는 길이와 얼추 비슷한 것 같아서 표시를 했습니다.
조선현의 위치를 알 수 없어 그냥 중앙에 뒀는데요.
아마 열수 인근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증지는 퇴적되어 쌓인 땅으로 강 하구에 위치해 있어야 하므로 해당 지역에 놓았구요.
해안가에 있어야 할 지명은 모두 그림대로 표시했습니다.
영동7현은 고구려와 피터지게 싸운 곳으로 생각됩니다.
동천왕이 패전했을때 고구려가 빼앗겼던 곳이구요.
남소성 700리 땅이기도 하구요.
증지부터 열구까지 관문 역할을 하는 항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곳을 통과하려면 반드시 한 곳 항구에 머물러야 합니다.
현도군은 옥저땅에서 있다가 고구려의 서북쪽으로 이동하게 되는데요.
고구려의 서북쪽과 국경이 닿는 형태는 그림대로 밖에는 없더군요.
그냥 기록을 최대한 충실히 반영한 것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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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