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보위, 록시 뮤직, 듀란 듀란 등 여러 아티스트들은 물론, 카밀라 왕비 등의 옷을 디자인한 앤서니 프라이스가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가 18일 보도했다. 고인이 사망한 것은 지난 16일이었는데 원인이나 장소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프라이스는 조각 실루엣과 연극적인 스타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파스텔 수트는 록 밴드 듀란 듀란의 뮤직비디오 'Rio'에 등장했다. 밴드는 소셜 미디어에 그를 "비전가"이자 "친절하고 지적이며 통찰력 있는 친구"로 기억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프라이스는 30년 만에 런던에서 최신 컬렉션을 공개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눈을 감았다. 당시 가수 릴리 앨런은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입었던 검정색 벨벳 '복수(revenge) 드레스'에서 영감을 받은 드레스를 입고 런어웨이를 거닐었다.
1945년 3월 5일 요크셔에서 태어난 프라이스는 1960년대 초 런던으로 이주해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공부했다.졸업 1년 뒤 그는 스털링 코퍼에서 남성복 디자인을 시작했고, 1969년 롤링 스톤스의 '기미 셸터' 투어에서 믹 재거 경이 입었던 몸에 딱 맞는 단추 달린 바지를 설계했다.
그는 1979년에 자신의 브랜드를 설립했고, 1년 후 첫 패션쇼를 열어 모델 제리 홀의 룩으로 컬렉션을 시작했는데, 제리 홀은 프라이스와 재거 경의 결혼식을 위해 디자인한 드레스도 입었다.
데이비드 보위와 오래 협력했던 프라이스는 1986년 보위가 입었던 재킷을 디자인했다. 남성복과 여성복을 조화롭게 융합하는 그의 시그니처 능력과 몸에 꼭 맞는 스타일을 만드는 기술적 숙련도는 그를 "진정한 오리지널"로 만들었다고 영국 패션 위원회는 말했다.
1990년대에는 콘월 공작부인 카밀라를 위한 작품 작업을 시작했으며, 그녀의 미국 투어를 위한 여러 앙상블도 포함했다.
50년이 넘는 경력 끝에, 프라이스는 지난달 패션 브랜드 16Arlington과 협업해 런던에서 마지막 쇼를 열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브닝 웨어와 정장으로 잘 알려진 프라이스는 디자이너이자 동시에 '이미지 메이커'로 각인됐다. 앞의 인물 외에 로버트 팔머, 아이바 데이비스, 스티브 스트레인지, 브라이언 페리, 타라 팔머톰킨슨, 패치 켄싯, 안젤리카 휴스턴, 제리 홀, 다이애나 로스, 멜라니 그리피스, 야스민 르 본, 버레스크 공연자 디타 본 티즈 등이다.
타임스의 패션 편집자 프루던스 글린은 '트렌드세터스'에서 그를 주요 신인 패션 인재로 소개하며 '앤서니 프라이스는 뛰어난 재단가이며, 가장 캐주얼한 옷 스타일링에도 많은 노력과 고민을 쏟는다'고 썼다. 그는 1979년 사우스 몰턴 스트리트와 킹스 로드에 매장을 열어 자신의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그는 1980년대 '에보니'라는 가게도 운영했다.
프라이스의 브리지 크러치 바지는 남성의 사타구니와 엉덩이를 강조하는 새로운 구조를 발명한 기술적 기량을 뽐냈다. 그는 록시 뮤직의 초기 여덟 장 앨범과 루 리드의 '트랜스포머'(1972) 앨범 뒷표지의 스타일리스트였다.
1983년, 프라이스는 런던 캠든 팰리스에서 '패션 엑스트라바간자'를 개최했다. 이듬해 그는 런던 하포드롬에서 패션과 록 음악을 결합한 또 다른 '패션 엑스트라바간자'도 열었다. 프라이스는 1998년에 "나는 록과 패션의 결합에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면서 "내가 시작할 때 록 사람들은 패션 사람들을 속물이라고 생각했고, 패션 사람들은 음악 산업을 더럽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스타일리스트 데이비드 토마스는 프라이스의 영향에 대해 "그가 로큰롤을 만들었다. 그는 영국 패션계에 후원자가 없던 시기에 시작했다. 슈퍼스타 디자이너가 등장하기 전의 시대였다. 그들은 모두 그를 쫓아왔다. 그럼에도 그는 비전가였다. 그는 군대스럽고 멋지고 섹시하며 독특한 남성 룩을 만들어냈다. 그는 로큰롤 패션을 창조했다"고 지적했다.
프라이스는 1998년 자니 베르사체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후계자 가운데 선두주자로 널리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