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 부모님에게
일기 쓰기로 국어 공부를 시키지 않았습니다
일기글을 두고 틀린 글자를 하나하나 고쳐 주는 일은 일기 쓰기에 도움은커녕 커다란 방해가 됩니다. 글자가 틀리면 어쩌나? 띄어쓰기는 맞을까? 하는 걱정에서 훌훌 벗어나야만 자기가 겪은 일이나 생각을 거리낌없이 써 나갈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일기를 안 쓰고 있는 게 어디 글자를 몰라서 안 쓰나요?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가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특별한 일을 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일기는 특별한 일을 쓰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늘 겪는 이야기를 쓰도록 해야 아이들이 일기를 쓸 수 있습니다. 어른이건 아이들이건 특별한 일보다는 비슷한 일을 되풀이하는 날들이 더 많습니다. 이렇게 날마다 되풀이되는 이야기 가운데서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길게 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길게 쓰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세히 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말을 하든 자세하게 하도록 하는 것은 아주 좋은 교육입니다. ‘재미있었다.’ 가 아니라 재미있었던 일을 자세히 쓰게 하고 ‘꾸중을 들었다.’ 가 아니라 어떻게 꾸중을 들었는지 자세히 밝혀 쓰도록 해야 합니다.
잠자기 바로 전에 일기를 쓰게 하지 않았습니다
졸음을 참으면서 쓰는 일기는 지겨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래서는 일기에 재미를 붙일 수가 없지요. 우리 반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 오는 대로 쓰게 하는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또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 적어도 30분 넘게 지긋하게 앉아서 쓰도록 해야 합니다.
생활을 반성하는 것이 일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일기를 쓰는 그 일이 바로 생활을 뒤돌아보는 일입니다. 일기는 반성하는 글이라는 말을 굳이 해서 마지막에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 ‘다음부터는 잘 해야겠다.’ 이런 글을 쓰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설령 그런 말이 마음에 없는 거짓은 아니더라도 그런 글쓰기 버릇은 정직한 글쓰기를 방해합니다.
생각이나 느낌을 넣어 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일기는 어디까지나 사실을 적는 글입니다. 생각이나 느낌을 억지로 넣는다고 생각이 넓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 생각을 쥐어짜서 힘들게 쓰는 것보다 사실을 꾸준히 쓰게 하는 일이 더 먼저입니다. 생각이나 느낌을 쓰라고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써야 할 때는 씁니다.
열 칸짜리 보통 공책에 쓰도록 했습니다
일기장이라고 해서 특별히 틀을 만들어 놓은 공책은 절대로 쓰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런 틀은 아이들에게 커다란 부담을 주고 또 자칫 아이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일기장 내용을 두고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기 지도를 하려면 아이들 일기를 보지 않을 수 없지만, 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생각하고 일기를 봐야 합니다. 일기에 쓴 글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해서는 정직한 글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아이와 일기장을 보는 사람 사이에 단단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일기를 숙제로 쓰게 하지 않았습니다
일기는 숙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밥 먹는 일처럼 되어야 합니다. 숙제로 내는 일기는 억지 일기가 되기 쉽습니다.
그림 일기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림도 자기 표현이고, 글도 자기 표현입니다. 겹치기 표현을 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또 작은 사각형 안에 생활을 그려 나타내는 일은 그림 그리기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힘들어하기도 하고요.
절대로 부모님이 대신 써 주는 일이 없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일기를 왜 대신 써 줄까요? 그렇게 해 주면 국어 공부가 빨리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지요. 성급해서 그렇습니다. 어린아이가 말을 완전하게 배워야 비로소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서툰 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바른 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어른부터 일기 쓰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이에게 일기를 왜 쓰게 하나요? 일기 쓰기가 국어 공부의 수단일 뿐아라면 국어 공부가 어느 정도는 된 어른들은 쓰지 않아도 됩니다. 교육에는 지름길이 없다고 하지요. 어른들이 몸으로 보여 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교육입니다. 우리 아이가 일기를 잘 쓰기를 바란다면 당장 일기장을 사서 어른부터 쓰는 것이 차례입니다.
아이의 일기장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아이가 다 쓴 일기장을 가보처럼 소중히 생각해 보세요. 일기에 대해 아이가 생각하는 것이 당장 달라집니다.
< 1학년 한 반 아이들이 쓴 일기 모음 『내가 처음 쓴 일기』가운데, 1998년,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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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일기쓰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금이라도 아이와 함께 이렇게 해보자고 얘기해보려 합니다. (서로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요.) 작년부터 아이만 일기 쓰게하는게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어 저도 짧게 대충 일기를 쓰고 있는데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게 되네요. 소개해주신 책도 찾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흠. 안되는 부분이 많이 있네요. 제가 먼저 일기를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돼요. (노트를 사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