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시, 곽도경 시인의 낭독입니다
오월이 저리 푸르다
밤 깊어 세상 사물들 잠이 들면
무논을 빠져나온 개구리 울음
추억이란 말은
논둑처럼 그리움을 가둔 울타리이기도 해서
서러움의 또 다른 울음보로 부풀곤 해서
모두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고 울음으로 일으켜 세우는
그리움으로 간절해서
밤하늘엔 별 뜨고 달은 또 저리 밝아서
축하 연주 무대입니다. (과수원길 외 한 곡)
이혜성 선생님과 허나연선생님이 플룻 연주를 해주셨습니다
노종섭 시인님의 낭독입니다
봄날의 반가사유
봄의 꼬리엔 몇 개의 시샘이 따라다닌다
다 부러워서 그러는 것
눈앞이 뿌연 것도
바람이 갈지자로 걷는 것도
동진강 물결이 반짝이는 영농조합법인 앞마당
색색깔 옷을 입은 몇 대의 트랙터
나란히 가부좌를 틀고 꽃과 눈을 맞추고 있다
저 덩치들을 불러낸 것도
떠받치고 있는 것도
연두가 밀어올린 노랑이려니
냉이꽃이 돌멩이를 떠받치고
유채꽃은 트랙터를 떠받치고
세상을 떠받치는 힘이 작고 여린 것에서 나온다는
아주 시적인 순간을 사적으로 지나가는 유혈목이
멈칫 물러선 걸음 위로
참새 몇 마리 포르르,
보리밭 쪽으로 날아가고
박경조 시인님의 낭독입니다
절룩
절룩절룩 책 부치고 오는 길
접질렸던 왼발에 무게가 더 실려요
시든 장미 옆으로 유모차가 지나가요
쌍둥이 중 한 아기가 손가락을 빨아요
나의 절룩과 아기의 손가락 사이엔 결핍이라는 말이 있어요
소공원 벤치에 노인 몇 나란히 앉아
폭염보다 더 뜨거운 고독을 뜯어내는 중이에요
고독은 삼각형, 꼭짓점은 무엇이든 끌어당겨요
어디선가 달려온 소낙비 한줄기 넘어지고
절룩이 모여 여름을 견디는 풍경이라고나 할까요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면
절룩을 감추고 하나도 안 아픈 사람처럼 걸어요
아직 꺼내놓을 용기가 내겐 없는 거죠
절룩을 앓기 전엔 누구의 절룩도 보이질 않았어요
나의 절룩을 내가 읽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절룩이라는 문장이 완성된다는 걸
수많은 절룩 속에서 깨닫는 오후예요
화단의 치자꽃이 마지막 향기를 토해요
잠시 절룩을 잊고 그 옆에 쪼그려 앉아요
김명희 낭송가님의 낭독입니다
다음 역은 사월입니다
사월을 생각합니다
단물 덜 빠진 껌을 꿀꺽 삼켜버린 아이처럼
치약은 삼켜버리고 맹물만 뱉어낸 표정으로
꿀꺽 삼켜도 될까요? 모서리가 많은 사월을
난간에 매달린 기억을 더듬어 추억을 건져내는 일은
토끼풀 속에서 토끼를 찾아내는 일보다 어려워요
봉급날이 다가오면 출석카드가 바닥으로 흩어지곤 했죠
백이십여 장의 타로카드로 점치는 사람처럼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 시절엔 그랬어요
나갈 돈이 많다는 표현으로도 쓰였던 시절
그조차도 추억이 된다니 우습지만
예고 없이 올라오는 예초기 소리
추억은 깎아내지 말아요
하마터면 사레들릴 뻔했잖아요
평화는 아득한데, 오긴 오나요
불만이 불만으로 자라나지 않은 건 다행스러운 일
키 큰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딱 햇살 받은 만큼만 자랐어요
해가 뜨기 전 노을을
해가 다 저문 후 다시 쓰는 하늘의 이치를
사월에 다다를 즈음에 알았어요
사월 다음 내릴 역은 미정입니다
첫댓글 많이 바쁜 시간에도 불구하고
팔 아프게 찍고 올리고...
수고 많으셨네 우리 글라디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