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생활의 말에 '간뎅이가 부었다' '간담이 서늘하다' '간이 콩알만해졌다' 또는 허파에 바람 들었나, 쓸개 빠진 놈, 비위(脾胃)를 거스르지 말라. 애가 타도록, 애(창자)간장 녹는다.
담대(膽大)하다, 신간(腎肝)이 편치 않다. 등은 우리몸의 내장기관을 총칭하는 한의학 용어다.
진(晉:東晉, 317∼420) 나라의 환온(桓溫)이 촉(蜀) 땅을 정벌하기 위해 여러 척의 배에 군사를 나누어 싣고 양자강 중류의 협곡인 삼협(三峽)을 통과할 때 있었던 일이다.
환온의 부하 하나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아서 배에 실었다.
어미 원숭이가 뒤따라왔으나 물 때문에 배에는 오르지 못하고 강가에서 슬피 울부짖었다. 이윽고 배가 출발하자 어미 원숭이는 강가에 병풍처럼 펼쳐진 벼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배를 쫓아왔다.
배는 100여 리쯤 나아간 뒤 강기슭에 닿았다. 어미 원숭이는 서슴없이 배에 뛰어올랐으나 그대로 죽고 말았다. 그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너무나 애통한 나머지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애가탄다, 애간장이 녹는다는 말이 그냥 섣부른 소리는 아닌 것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지나치게 행동하는 사람을 간뎅이가 부었다고 말하고, 간이 콩알만해졌다는 말은 두려움으로 마음이 쫄아든 상태로, 실제로 간이 건강한 사람은 매사에 용감하고, 적극적이다. 한의학에서 간은 몸밖에서 들어오는 독소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는 수문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여 간을 장군과 같은 기관이라고 표현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서양 사람들 역시 간이나 담을 적극, 대담, 활달 등의 기질로 해석한 점이다. 고대 서양에서 '담즙질' 유형은 의지가 강하고 불같이 화를 잘 내는 사람을 가리켰다.
담(쓸개)은 간 바로 밑에 위치해 마치 간에 달라 붙은 듯하다. 기쁘면 담즙의 농도가 약해지고 슬퍼지면 진해지며, 화를 내면 담도가 막혀 담즙이 혈관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인간이 무슨 일을 꾀하거나 궁리하는 것, 판단력은 담의 강약 뿐만 아니라 간의 기능과도 관계가 있다. 담(膽,쓸개)을 제거하면 판단력이 흐려져 자기주관이 뚜렷하지 못하다. 이런사람을 두고 쓸개빠진 놈이라고 하는 것이다. 맹장은 원래 소장의 열을 식혀 대장으로 음식을 보내는 작용을 하는 부위다. 소장은 원래 뜨겁다. 소장은 본래 음양오행중 火다. 맹장을 제거하면 신체의 균형 감각이 깨져서 평형 감각이 떨어짐을 느낄 수 있다.
편도선은 기관지, 폐, 심장에서 나는 열을 대기와 접하면서 식혀 주는 역활을 한다.
벅찬 감격을 맛볼 때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비통한 일을 당하면 가슴이 쓰라리며, 무서운 공포를 느낄 때는 가슴이 섬뜩하다 등의 모든 정서적 감정반응이 바로 심장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심장의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처음 접하는 일에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 사소한 일에도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심장은 정신이 머무는 곳이라고 했고, 일체의 정신적인 작용은 심장에서 한다고 했다.
예전에 심장 이식을 받고 댄스 퀸(Dance Queen)이 된 수녀의 이야기가 방영된 적이 있었다.
유럽에서 있었던 일로 성당의 수녀가 심장이식수술을 받은 후로 경건해야 할 수녀로서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음악소리가 들리면 자신도 모르게 춤을 추게 되니 수녀로서는 너무나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다른 원인을 생각할 수가 없어 수술을 집도한 의사에게 전후사정 알아보니 심장 제공자가 프로댄서Pro Dancer였다는 것이다.(mbc 서프라이즈 2002년 5월 5일)
인간의 생명현상을 단순히 물질적 수준에서 밖에는 이해할 수 없는 서양의학으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현상인 것이다. 서양문화에 세뇌된 우리로서는 정신작용은 당연히 뇌의 작용으로 알고 있는데 동양의학에서는 일체의 정신작용은 5장 6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도 뇌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뇌는 척수의 바다(腦爲髓之海)'라고 하는 것은 뇌가 신경 중추라는 것이요, '머리는 정신이 밝은 곳 (頭者精明之府) '이라고 하는 것은 정신 작용이 머리와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육체가 정신에 영향을 준다.
육체가 건강하면 정신이 건강하다. 성격이 좋지 않다는 것은 5장6부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나쁜 성격은 나쁜 건강의 표출이다.
장부(臟腑)가 약해지면 마음이 약(心弱)해진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오장육부(五臟六腑)의 불균형이 인간의 감정조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간의 마음의 작용이 오장육부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간이 약하면 짜증을 잘 내고 화를 잘 낸다.
심장이 약한 사람은 실없이 웃는 일이 많다.
비장이 약한 사람은 생각이 너무 많아 병이다.
폐가 약하면 늘 우울해져 조그만 일에도 슬퍼하게 된다.
신장이 약하면 무서움이 많아 놀라기를 잘한다.
오장육부의 내부상태와 보고, 듣고, 말하고, 동작하는 것까지 내몸의 외부에 나타난다. 간(肝)과 통해 있는 것은 힘줄(筋)이다. 간(肝)의 상태는 눈에 나타나고, 간의 건강은 손톱으로 알 수 있다. 간(肝)에 병은 양쪽 겨드랑이에 나타난다. 간(肝)이 실(實)한 사람은 분노하기 쉽고 간(肝)이 허(虛)한 사람은 원한이 많다.
심장과 통해 있는 것은 혈맥이다. 심장의 상태는 혀에 나타나고, 심장의 건강은 얼굴의 색(色)으로 알 수 있다.
심장과 소장의 관계를 살펴보면 소장에서 영양분과 수분, 찌꺼기를 분리하여 각 장기로 보내는 것이나 심장이 영양분을 동맥혈을 통하여 온몸에 분배 시키고 심장은 정맥혈을 폐에 보내고 소장은 소장 안에 있는 내용물을 대장에 보낸다.
심장은 임금을 나타내는 군화(君火)로서 서양에서는 태양을 상징한다. 담은 심장(君火)의 불을 보조하는 정승과 같은 불(相火)이다. 한의학에서 간을 혈해(血海)라고 하고 간장혈(肝臟血)이라고 해서 피에 관련된 장기다.
간장의 분비물인 담즙은 강한 쓴맛을 지닌 액체인데, 쓴맛은 심장의 흥분을 가라앉힌다. 심장은 전혀 쉴 수 없으므로 그 일하는 상태를 조절해서, 흥분되면 가라앉히고 피로하면 회복시켜야 하는데 이 책임을 맡은 것이 간이다.
간의 작용이 모두 심장을 돕는 역할을 하니, 이로써 나무는 불을 낳는다(木生火).
한의학에서 심장은 임금 불(君火)이요, 담(쓸개)은 신하 불(相火)이며, 담(쓸개)은 심장에 대해 재상이 임금을 보필하듯이 해로운 것은 오는 대로 없앰으로써 심장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한다.
담즙과 췌액은 서로 대립되어 있는데 담즙은 간에 속하고 췌액은 비장에 속한다. 담즙은 산성이요, 췌액은 알칼리성이다. 한의학에서는 산성 소화액은 모두 간에 속하고 알칼리성 소화액은 모두 비장에 속한다.
비장(脾)과 통해 있는 것은 살(肌肉)이다. 비장의 건강은 입술(脣)로 알 수 있다.
비장과 위장의 관계를 살펴보면 위는 음식물을 받아들이고 비장은 음식물의 소화작용과 영양물질을 전신에 운반하는 작용을 한다. 비장(脾)에 병은 두 넓적다리에 나타난다. 비장에 병이 생기면 사지를 쓸 수 없게 된다.
폐(肺)와 통해 있는 것은 피부(皮膚)다.
폐는 수분을 발산하는데, 피부에서도 땀을 흘러서 수분을 발산한다. 피부에서도 소량의 산소를 흡수하고 탄산을 배출한다.
피부에 찬 기운의 영향은 폐로 간다. 폐(肺)의 상태는 코(鼻)에 나타나고, 폐의 건강은 피부로 알 수 있다.
폐(肺)라는 글자를 살펴보면은 고기 육(肉/月)변에 시장 시(市)자가 들어 있는데, 재물과 연관이 있다. 시장은 물건을 팔고 사는 곳이다. 절묘하게도 폐경락의 엄지손가락 끝의 경혈 명칭이 소상(少商)이다, 즉 "소규모 상인"이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엄지로 흐르는 수태음폐경이 발달하고 엄지 아랫부분이 두툼하면 재산 복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사업하는 사람들 중에 폐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표리부동한 행동 때문이다.
폐와 대장은 金기운으로 폐에는 공기(天氣)가 출입하고 대장에는 음식물(地氣)이 출입하니, 대장은 지기(地氣)로부터 기운을 흡수하여 전하는 기관이다.
폐와 대장의 관계를 살펴보면, 폐는 탄산가스를 몸밖으로 배출하고 대장은 대변을 배출한다. 또 폐는 수분을 발산하고 대장은 수분을 흡수한다.
그리고 폐는 공기를 호흡하고 대장도 때때로 가스를 배출한다(방귀). 그 밖에 폐에 열이 있으면 변비가 되고 폐의 활동이 약하면 설사가 난다. 폐(肺)와 심장(心)의 병은 양쪽 팔굼치에 나타난다.
폐(肺)가 튼튼한 사람은 성미가 가파르지 않고 도량(度量)이 넓으니, 일을 신중히 처리하는 사람, 물욕이 적고 고상한 사람이 대개 여기에 속한다. 폐(肺)가 약(弱)한 사람은 대단치도 않은 일에 까닭 없이 애달아하고 초조해 한다.
신장(腎)과 통해 있는 것은 뼈(骨)이다. 신장(腎)의 상태는 귀(耳)에 나타나고, 신장의 건강은 머리털(髮)로 알 수 있다. 신장(腎)에 병은 무릎의 양괵 즉, 두 오금에 나타난다. 신장(腎)이 실(實)한 사람은 용감(勇敢)하고 신(腎)이 약(弱)한 사람은 비겁(卑怯)하다.
육부에서 소화된 것 중 정(精)한 부분은 오장으로 간다. 오장은 정기(精氣), 신기(神氣), 혈기(血氣) 혼백(魂魄)을 간직하며, 생명을 유지시키고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 된다.
간은 생기가 비롯되는 곳이며, 심장은 정신이 깃드는 곳이며, 비장은 기와 혈을 만드는 곳이며, 폐는 호흡을 맡는 곳이며, 신장은 정력과 생식을 맡는 곳이다.
정精은 기氣를 낳고, 氣는 신神을 낳는다. 정精에 나는 병은 五味子오미자, 百伏令백복령, 鹿茸녹용이 좋으며, 氣의 병은 인삼, 생강, 陳皮진피와 사람의 젖이 가장 좋고 神의 병에는 黃連황련, 牛黃우황, 인삼이 좋다.
얼굴에는 이마를 천정天庭이라 하고 염통과 맺어져 있고, 턱은 지각地閣이라 하며 콩팥에 응하고, 코는 얼굴 가운데 있으니 지라와 연해 있고, 왼쪽 볼은 간에 응하고 오른쪽 볼은 허파에 응하고 얼굴색으로도 오장의 병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아주 작은 눈동자는 콩팥이 주관하고, 주위에 둘러싼 검은 눈동자는 肝간이 주관하고, 흰자위는 허파가 관장하고, 눈의 양끝은 염통이 관장하고, 아래 눈썹 나는 살을 위가 관장하고, 위의 눈에 난 윗눈썹은 지라가 관장한다.
터럭(毛髮모발)은 콩팥(腎신)에 모두 맺어져 콩팥이 전부를 맡고 있으나 머리털(髮발)은 염통에 맺어 머리에 나고 눈썹(眉미)은 간에 맺어져서 눈두덩이에 나고 턱밑의 수염(鬚수)은 콩팥에 맺어서 턱밑에 나고 귀 앞 볼 옆에 나는 털(髮발)은 지라와 맺고 코밑의 윗수염(髭자)은 허파와 맺어 있는 것이다.
오장은 병의 반응이 전부 구부리는 근육 쪽에 나타나고 육부는 그 반응이 펴는 근육 쪽에 나타난다.
심장,폐, 비장,간장,신장 오장은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는 쉴새 없이 움직이는데, 위,소장,대장,방광,담낭 육부는 음식물이 들어와야 움직인다.
생리학적으로 우리 몸의 기능은 삼초(三焦)로 나누어진다. 폐, 심장, 머리가 상초(上焦)이고, 비위 중심의 소화기관이 중초(中焦), 방광, 신장 등 배설, 생식하는 기관이 하초(下焦)다. 즉 상초(上焦)에는 신神이 작용하고, 중초(中焦)에는 기(氣)기 작용하고, 하초(下焦)에는 내 몸이 생명활동을 하는 에너지의 근원인 정精이 자리잡고 있다.
한의학에서 정기신(精氣神)이 만들어 지는 과정을 정능생기(精能生氣), 기능생신(氣能生神) 정精은 기氣를 만들고 기氣는 신神을 만든다. 신(神)은 심장(心)이 집이고, 신神은 내몸의 주인이다(神爲一身之主) 정기신(精氣神)을 촛불에 비유하면 초는 정(精)에, 불꽃은 기(氣)에, 빛(광명)은 신(神)에 비유할 수 있다.
모든 동물이 사용하는 신경(神經)조직을 통한 정보전달 신호는 전기신호다. 사람이 죽게되면 귀신(鬼神) 또는 신명(神明), 천지신명이라 하는데 神은 밝기 때문에 밝을 명明자를 붙여서 신명(神明)이라 한다.
정기신(精氣神)에서 신(神)이 생성되는 힘의 근원이 정(精)이다. 정(精)과 신(神)이 내 몸 속의 천지(天地)다. 인간의 정신(精神)에서 정精은 곧 땅이요, 신神은 하늘이다. 인간은 몸 속에 하늘과 땅을 지니고 사는 것이다.
간에는 혼(魂)이, 심장에는 신(神)이, 비장에는 뜻[意]이, 폐에는 백(魄)이, 신장에는 정(精)과 지(志)가 담겨 있다.
심장이 신(神)의 작용을 통하여 오장육부의 활동을 지도하는 주재자(主宰者)이기 때문에 심장이 상(傷)하면 신(神)이 떠나 버리고, 신(神)이 떠나면 죽음이다. 심장은 오장 육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라는 뜻으로 예로부터 심장을 군주지관(君主之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심장은 임금과 같은 기관이라는 것이다. 갈홍(葛洪:283∼343)의 『포박자』에서는 "한 사람의 몸은 한 나라의 형상(抱朴子曰, 一人之身, 一國之象也.)이라고 했다.
자연과 인간, 문명의 근본을 깨닫는 팔괘의 이치로 바라본 지구촌의 명당, 열매자리 간방(艮方)에 위치한 대한민국
나무 한그루의 생명 운동을 알면 자연의 춤사위, 팔괘가 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나무 전체를 보면 뿌리와 줄기가 있다. 뿌리와 줄기가 음양 짝이 된다. 땅 밑에 들어가 보이지 않는 ‘뿌리’가 ‘손(巽)괘’이고 뿌리에서 쭉 뻗어 올라오는 ‘줄기’는 ‘☳ 진(震)괘’다.
‘진震’은 봄기운이다. 양 기운으로 쭉 뻗쳐 올라온다. 진震의 성질이 그렇다. ☳ 진괘를 보면 두 효는 음이고 제일 아래에 양효가 있다.
음이 꽉 누르고 있어 반발을 하며 뻗는 양의 힘이 가장 강한 것이다. 그게 목(木)기운이다. 그걸 뇌성벽력으로도 얘기하고, 제우스 신화에서는 번개로도 얘기했다. 사람으로는 ☳진괘를 장남, 손괘를 장녀로 비유한다.
그 다음에 이파리가 있고 꽃이 핀다. 줄기에서 뻗어 나온 꽃과 열매가 음양 짝이 된다. ‘꽃’은 ‘☱태(兌)괘’, 꽃이 피고 나면 맺는 ‘열매’가 ‘☶ 간(艮)괘’다. 간艮은 열매다. 형상으로 말하면 자연계의 산(山)도 간艮이다. 간艮은 음 기운이 딱 멎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 아래에 음효가 두 개 있고, 위에 간상련(艮上連)으로 양 기운이 음에 묶여 있다.
가장 정적이면서 무언가 거대한 생명의 약동이 느껴지는 것이 산이다. 그리고 ☱ 태(兌)가 꽃인데, 간태(艮兌)가 합덕하여 간艮은 막내아들(小男), 태兌는 막내딸(小女)이다.
뿌리에서 줄기가 뻗어 올라와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 나아가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는 생성의 전 과정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음양의 두 요소가 있다. 즉, 나무의 모든 변화를 이끄는 근원, 나무를 존재하게 하는 생명의 근본이 있다. 바로 ‘물’과 ‘불’이다.
불은 태양에서 온다. 그 태양 불이 ‘이(☲離)괘’다. 그 다음에 땅속에 있는 물 기운은 ‘감(☵坎)괘’다. 이 물과 불이 생명의 중추 작용을 한다. 사람으로는 중남(中男),중녀(中女), 차남 차녀다. ‘감(坎)’은 물인데, 하늘에서는 달(月)이다. 그리고 불[離]은 태양(日)이 근원이다. 감리일월(坎離日月)
나무의 뿌리와 줄기, 꽃과 열매는 일월(日月)의 물과 불 기운을 받아 생성된다. 물과 불을 받아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이렇게 해서 여섯 괘다. 이 여섯 괘를 사람으로 말하면 한 아버지 어머니 밑에 있는 3남 3녀다. 이 모든 생명은 하늘과 땅에서 태어나 하늘과 땅의 변화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지를 뜻하는 ‘건곤(乾坤)괘’가 있다.
뿌리와 줄기 ‘진손(震巽)’, 꽃과 열매 ‘간태(艮兌)’, 그리고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물과 불 ‘감리(坎離)’, 천체로 말하면 일월(日月), 이 여섯은 건곤(乾坤), 천지부모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전부 팔괘다. 이처럼 나무 한그루에서 팔괘의 이치를 쉽게 배울 수 있다.
※「동방삭(東方朔, BC154~ BC92)은 한무제 시기 태중대부(太中大夫)까지 지냈던 인물이다.
字는 曼靑(만청)으로 평원군(平原郡) 염차현(厭次縣) 사람이다. 동방삭에 관련된 서적《한서》 권65 〈동방삭전(東方朔傳)〉에는 그의 저술로 "답객난(答客難), 전상백주(殿上柏柱), 비유선생지론(非有先生之論), 봉태산(封泰山), 책화씨벽(責和氏璧), 황태자생매(皇太子生禖), 병풍(屛風), 평락관부렵(平樂觀賦獵), 팔언칠언(八言七言), 종공손홍차거(從公孫弘借車) 등이 언급되어 있다.
《한서(漢書)》의 〈동방삭전(東方朔傳)〉
한나라 무제(漢武帝)는 동방삭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침식을 취하고 있는 대궐 처마에 구리 종(銅鐘)을 매달아 놓았는데, 이상하게 한두 달 전부터 아무도 종을 치지 않음에도 스스로 울려 괴상망측한 생각이 드는데, 왜 우는지 그 까닭을 알 길이 없어 선사를 부르게 된 것이오." 라며 근심어린 어조로 말했다.
듣고 있던 동방삭이 임금에게
"그렇다면 종을 만들 때 그 구리는 모두 어디서 구하셨사옵니까?" 라고 묻자 한무제는 구리산이라는 곳에서 캐어다 만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동방삭은 "구리종이 우는 것은 구리산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자 한무제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신하를 불러 구리산이 과연 무너졌는가를 알아보도록 명하였다. 그러고서, 한무제는 다시
선사의 말대로 구리산이 무너진 게 사실이라면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러자 동방삭은 "본래 땅의 기운(地氣)이란 사람으로 비유하면 어머니와 아들과 같은 이치라 이를테면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구리산이 무너졌기 때문에 아들 격인 구리종이 따라서 울게 된 것입니다. 라고 하자
한무제는 "그러면 인간은 그 뿌리를 시조(始祖)라고 하는데, 산에도 인간과 같이 그런 뿌리가 있는 것이오?" 하고 묻자 동방삭은
"산이란 것도 우리 인간들의 혈맥과 같이 풍수학(風水學)에서 용(龍)이라고 일컬어 부르는 혈(穴)이란 것이 있어서 산에는 가장 근본이 되는 조종산(祖宗山)이란 것이 있고, 그 다음에는 주산(主山)이 있사온데 그 하나하나를 따져보면 인간의 혈맥과 조금도 다름이 없사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한무제는 동방삭에게 "그러면 선사께서 말한 대로 인간이나 땅이 한결같이 그 근본(뿌리)이 있다면 온 천하(세계)에도 반드시 그 근본 뿌리가 있을 텐데 천하의 뿌리는 어디가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동방삭은 "세상 모든 사물에 음양(陰陽)이 있듯이 온 세상이 만들어진 과정도 반드시 시작 즉, 발원성지(發源聖地)가 있사온데, 바로 그 발원성지는 이웃나라 해동국(海東國)이옵니다." 라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한무제는 "왜 하필이면 해동국이란 말이오?" 하고 묻자 동방삭은 "주역에 시어간 종어간(始於艮終於艮)이라고 적혀있는데, 그 뜻은 모든 만물의 시작과 끝이 간방(艮方)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간방은 지구 중심부에서 볼 때 바로 해동국이 있는 위치라고 하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리 해가뜨는 곳 울산 간절곶艮絶串은 간방(艮方)이 끝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해돋이 명소로 알려져 있는 곳은 호미곶(虎尾串)과 함께 동해안 최고의 일출 여행지로 꼽히는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에 ‘간절곶(艮絶串)’이 있다. 그런데 동해안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 바로 간절곶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간절곳 명칭의 유래는 어부들이 먼 바다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긴 간짓대(대나무로 된 긴 장대)처럼 보여 간절끝(艮絶)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절곶의 한자를 그저 간절하다 할때의 간절인줄 안다. 그런데 실제 간절하다 할때의 한자는 간절(懇切)이지 간절곶의 간절(艮絶)이 아니다.
간절곶을 알려주는 교통 표지판에는 한자가 정확하게 나와 있다. 그런데 간절곶의 실제 유래는 더 심오하다.
그러면 간절곶艮絶串의 실제뜻은 무엇일까?
간절곶의 간(艮)은 간방(艮方)을 뜻한다.『주역』「계사전」을 보면 간(艮)은 東北之卦也니 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이니 故로 曰成言乎艮이라, 간艮은 동북방을 가리키는 괘이니, 만물의 끝과 시작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고로 성인의 말씀이 간방(艮方)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대한민국이 바로 동북東北 간방(艮方)이다.
간절곶(艮絶串)이란, 간艮이 끊어지는 곳, 여기가 간방艮方의 끝이라는 뜻이다. 옛날 선인들이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이다. 간(艮)은 日과 氐(근본 저)의 합성어로 일출지근(日出之根, 해가 뜨는 근원 자리)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 민족의 정서라고 하는 한(恨)이라는 글자를 보면 간방(艮)의 마음(心)이라는 뜻이다. 간(艮)이라는 글자의 형상을 아기가 자궁에서 자라는 모습으로 보기도 한다. 이는 지난 해 여문 열매가 봄이 되어 새싹을 내는 것과 같다. 간괘(艮卦)는 이렇게 마침과 시작, 열매, 새싹을 상징한다.
본래 지리학은 한(漢)나라 때 청오(靑烏)라고 하는 분이 처음 제창했다. 그 후 여러 사람을 거쳐서 오늘날까지 전해졌으나 다만 국지적(局地的)으로만 얘기한 것이다.
과거에는 ‘산지조종(山之祖宗)은 곤륜산(崑崙山)이요, 수지조종(水之祖宗)은 황하수(黃河水)라’고 했었다. 지구의 축(軸)이 곤륜산(崑崙山)이라는 말이다. 알기 쉽게 이 지구의 뿌리가 곤륜산이라는 말이다. 수레바퀴가 둥글어 갈 때 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지구에서 수레바퀴의 축에 해당하는 곳이 히말라야에 있는 곤륜산이라는 것이다. 지구상의 산줄기가 전부 곤륜산에서 비롯되어 다 뻗어 내려갔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봐도 동,서양의 산이 곤륜산을 모태로 해서 갈려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산맥이 구부러지고 틀어진 것이 그냥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니다.
지리를 모르면, 산천(山川)이 제멋대로 구부러지고 틀어지고 길쭉하고 모가 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리(地理)를 알고 보면 글자 쓰는 것과 같다. 하늘 천(天)자를 쓸 때, 일정한 법칙에 따라 글자를 쓰듯, 지리도 그렇게 규칙적으로 되어 있다.
산(山)의 줄기 하나 내려간 것도 조금도 어긋남 없이 글자 쓰듯이 나타난다.
들판이 생기려고 해도 들판이 형성되어 나온 주산(主山) 마디가 있다. 한 마디가 10 미터 되는 것도 있고, 100 미터가 되는 것도 있다. 마디가 있으면 반드시 들판이 만들어지게 되어 있다. 그것을 용절(龍絶)이라고 하는데 용절을 재어 보면, 어디쯤에서 들판이 생긴다는 그런 법칙이 나온다.
곤륜산에서 뻗은 여러 산줄기 중 하나가 우리나라로 뻗어 들어와 백두산을 일으켰는데, 그 중간에 큰 들판이 있다. 그것을 만주 요동 칠백 리라고 한다. 기차를 타고 그곳을 지나가 보면, 워낙 들판이 넓어 하루종일 가도 갈대와 하늘이 맞닿아 있다.
지리는 워낙 호호탕탕하고 틀이 커서 오히려 천문(天文)보다도 더 어려운 것이라서 옛날 사람들이 ‘난지자(難知者)는 지리(地理)라’ 알기 어려운 것이 지리라고 했다. 지리는 그냥 아무렇게나 생긴 것이 아니다.
서울의 지리형세
세상만사가 다 순(順)해야 되는데 지리만은 역(逆)해야 된다.
서울의 청계천 물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역(逆)하여 흐르다 중랑천에서 합쳐져 한강 본류로 빠져 나간다.
북악산의 오른쪽에 친 인왕산 줄기를 타고 내려오면 사직터널에서 부터 산줄기가 내려와 서대문, 서소문이 생기고 남대문까지 와서 그 줄기가 남산을 치켜올렸다. 그래서 서대문, 서소문, 남대문쪽 물은 청계천으로 빠지고 반대쪽 인왕산줄기 서쪽 물은 용산쪽으로 빠져나간다.
인왕산 줄기 안쪽 물과, 북악산과 남산 골탱이의 서울 장안의 안쪽 물은 전부 청계천으로 모여들어 거꾸로 치올라가 중랑천으로 빠져나간다. 청계천 물이 흐르는 방향은 한강 물줄기가 흐르는 방향과 정반대다. 한강은 동에서 서로 김포와 강화도 쪽으로 흐르지만, 청계천 물은 묘하게도 서에서 동으로 역(逆)하며 거꾸로 흐른다. 그러니까 서울에 도읍터 하나 만들기 위해 청계천 물이 그렇게 역(逆)을 했다는 말이다
북한강과 남한강 물이 양수리에서 합해져 서쪽으로 빠지는데, 서대문 서소문 남대문 남산 안쪽 물만 거꾸로 치올라간다. 지리는 이렇게 역(逆)을 해야 터가 생기는 것이다. 집터도, 묘자리도 다 그렇다. 그렇게 되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다. 이렇게 역(逆)을 하지 않으면 절대 자리가 안 생기는 것이다.
북한산, 인왕산, 남산으로 둘러싸인 4대문 안쪽 물은 모두 청계천에 모여들어 불과 몇km를 역(逆)하면서 흐르다 중랑천으로 빠져 나간다. 청계천이 역수(逆水)하는 거리가 얼마 안되지만 1392년에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래, 오늘날까지 600년이 넘게 도읍터의 생기를 발하고 있다. 청계천이 역(逆)하면서 흐르는 거리는 몇 키로 될 뿐이다. 서대문 남산 경복궁, 그게 얼마 안 된다. 그렇게 좁아터진 데다. 그래도 그 기운 가지고 조선왕조 500년을 끌고왔다.
그리고 노량진에서 제일한강교를 넘다보면 가운데 중지도라고 있다.
이런게 왜 생겼느냐 하면 한강물이 빠지는데, 중간에 중지도가 있어서 서울의 땅 기운이 빠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밤섬이 있다.
홍수가 밀려오면 잘잘한 밤섬같은 것은 그냥 쓸려가 버리고 말 것 같은데, 여러 천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또 그런가하면 그 밑에 여의도가 있다. 또 조금 더 내려가면 난지도가 있고, 강화도에 가면 ‘손돌목’이라는 곳이 있어서 강이 기역자로 구부러져 있다. 그것이 다 설기(洩氣)되는 기운을 차단하기 위해 그런 것이다. 그런데 왜 손돌목이라고 이름을 붙쳤나?
태조 왕건이 세운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당시 천도(遷都)를 할 시에 도읍지를 계룡산 신도안으로 하느냐, 한양으로 하느냐, 공론이 분분했다. 신도안에 가보면 그때 나라의 사령탑을 짓는다고 깎아 놓은 주춧돌이 지금도 남아 있다. 터 닦던 데를 파 보면 볏짚 한 켜 깔고 다시 황토를 한 켜 깔고, 그렇게 정토(淨土)를 해 놓았다.
이성계가 거기를 내던지고 서울로 천도를 하고 나서 그 터에다 절을 지었는데 그 절 이름이 정토사(淨土寺)다. 그런데 높은 벼슬아치들이 거기를 버리고 한양으로 갈 때, 강경에서 배를 타고서 갔다.
배가 김포 손돌목을 접어들어 가는데, 거기가 기역자로 구부러져 버렸다. 서해안은 하루에도 물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간만의 차가 있어서 배가 썰물을 따라서 쏜살같이 앞으로 올라가는데, 배에 탄 높은 벼슬아치들이 보니까 배가 지나갈 틈이 없다. 그냥 가다가는 절벽에 탁 부딪혀서 배도 깨지고 몰사하게 생겼다.
그래서“저놈 죽여라. 저놈이 우리를 다 죽이려고 한다”며 뱃사공을 죽이라고 했다.
그 뱃사공이 장가도 못 간 떠꺼머리 총각이었다. 그 뱃사공은 바가지를 물에다 띄워 주면서“이 바가지 가는 대로만 따라 올라가면 됩니다” 하고서 죽었다. 그런데 거기서는 배를 돌이킬 수도 없다. 너무 좁아서 배 하나 간신히 지나가면 그만이다. 하는 수 없이 뱃사공이 말한대로 들물에 떠밀려서 올라가 보니, 기역자라고나 할까 니은자라고나 할까 그렇게 각이 졌다.
그때 죽은 사공이 밀양 손(孫)가다. 장가도 못 간 손도령이 죽은 곳이라 해서 손돌목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또 그 사공이 죽은 날이 음력 시월 스무날인데, 조선 5백 년 동안 이날만 되면 보통 추운 게 아니었다.
그것을‘손돌이 추위‘라고 한다. 그래서 손돌이 추위가 오기 전에 김장도 해야 되고, 이엉을 엮어서 지붕 해 이는 것도 그 안에 다 해야 했다. 손돌이는 손도령이라는 말이다. 장가도 못 들고서 너무 억울하게 죽어서, 그 원한 때문에 그렇게 날이 춥다는 것이다. 물이 빠지는 곳을 학술용어로 파(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파(破)는 손돌목처럼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런데 이 지구상에서는 물 빠지는 파(破)가 중국 대륙과 대만 사이에 있는 대만해협이다. 그게 땅 속으로 이어져 있는데, 높은데는 필리핀과 같은 섬나라도 있고 깊은 데는 물속에 묻혀버렸다.
그래서 구슬을 꿴 것 같다고 유구열도(琉玖列島)라고도 했고, 노끈 모양으로 연결이 되어져 있다고 해서 충승도(沖繩島)라고도 했다. 금문도(金門島)니, 조종도(祖宗島)가 있는 곳, 아주 협소狹小한 데다.
왜破 파는 그렇게 협소하게 되어져 있느냐 하면, 그 안에 있는 광활한 생기(生氣)가 빠져나가 버리면 안되기 때문이다.
알아듣기 쉽게 남자의 양물, 자지 구멍은 오줌을 눌 때나 조금 벌어지고 늘 붙어 있다. 또 분문(糞門)이라고, 똥 분 자, 문이라는 문 자, 똥 나오는 구멍 문이 있다. 그것도 항상 닫혀 있다.
또 여자한테는 구슬 옥 자를 붙여서 옥문(玉門)이라고 한다. 그 안에는 아기를 잉태해서 기르는 궁전, 자궁(子宮)이 있다. 이 자궁도 필요에 의해서만 벌어지고 항상 딱 붙어 있다. 거기는 샐 설(泄) 자 기운 기(氣) 자, 설기(泄氣)가 되면 안 된다. 생물이라면 100%가 다 그렇게 되어져 있다. 파(破)를 설명하느라고 하는 말이다.
다시 좀 더 설명을 하면, 강원도 금강산의 중심이 비로봉이다. 거기서부터 비롯한 물이 한강으로 다 흘러내려 온다. 충청북도 속리산 남쪽 물은 금강으로 내려오고 속리산 서북쪽 물은 남한강으로 내려간다. 양수리에서 북한강 물과 합류를 하기 때문에 양수리(兩水里)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대전(大田)의 형국
서울과 비교할 때 대전의 형국은 진안, 무주에서부터 추풍령, 속리산 물이 전부 거꾸로 치오른다.
우리 나라 대세가 전부 위에서 아래로,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려 가는데, 이쪽 물은 거꾸로 남에서 북으로 거꾸로 오른다. 추풍령, 무주, 진안, 장수가 다 남쪽이다.
금강이 공주에 고마나루까지 물이 거꾸로 올라가서, 거기서 부터는 부여쪽으로 구부러져서 장항 군산쪽으로 순(順)하게 내려간다. 지구에서 자리가 이렇게 된 곳이 없다. 서울의 터는 대전에 비하면, 손바닥만 한 것이다.
대전이 서울터의 몇 백배에 해당한다. 속리산쪽에서 부터 장수, 진안, 무주로 해서 공주까기, 우리 나라 중심부 절반을 역(逆)을 한 곳이다. 지리학상으로 볼 때 지구의 혈이 바로 남북한을 통털어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 중에서도 오직 대전이 자리한 중부지방 이곳만이 지구의 혈이다. 본래 천지가 형성 될때 혈자리가 정해진 곳이다.
우리나라 주변의 지리를 보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길게 감싸주고 있는 형상인데 그 형상을 내청룡(內靑龍)이라고 한다. 쉽게 얘기하면 일본이 혈穴인 우리나라의 담장이고 성곽인 셈이다.
일본의 구주 같은 데는 부산 태종대에서 날씨 좋은 때 보면 어렴풋이 보일 정도로 가깝게 있다.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은 외청룡(外靑龍)이고, 중국 대륙에서부터 싱가포르까지가 내백호(內白虎)다.
중국을 보면 아주 첩첩이 에워싼 만첩백호(萬疊白虎)다. 그것이 다 내백호다. 아프리카 대륙은 외백호(外白虎)다.
청룡은 비상飛上하고 즉 청룡은 나는 것 같이 보이고, 백호는 순복順服하고, 순하게 엎드려 있는 것 같아야 지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호주 뉴기니아 앞쪽은 우리나라의 안산(案山)이다.
기운이 빠지는 곳, 즉 물이 빠지는 파(破)는 대만해협이다. 언뜻 보면 구주에서 부터 대만까지가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연륙되어 있다. 다만 높은 데는 물로 드러나고 얕은 곳은 몇 백 미터씩 물밑에 잠겨 있을 뿐, 사실은 대만까지가 전부 다 붙어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게 점점이 이어진 섬을 유구열도(琉玖列島)라고 한다.
만주에서 부터 요하, 난하, 황하, 양자강 물이 전부 황해로 쏟아져 나와 대만해협을 통해 빠져나간다. 그런데 그 기운이 설기(洩氣)되는 것이 아쉬운데, 대만해협에 금문도(金門島)와 조종도(祖宗島) 라는 섬이 있어서 물 빠지는 입구를 아주 협소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동해와 서해는 내 명당수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지구의 기운을 우리나라에 다 몰아놓은 것이다.
알고보면 구부러지고 틀어진 지구의 산천이 전부 혈穴자리를 옹호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구의 오대양 육대주가 전부 지구의 혈자리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곤륜산에서 부터 지맥이 뻗어 나와 우리나라 요동 칠 백 리 만주 땅에 결인(結咽)을 하고(결인이란 지리학상의 술어로 맺을 결(結)자, 목구멍 인(咽)자다), 백두산을 일으켜 들어왔는데, 백두산에서부터 금강산으로 해서 뻗은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이 사람으로 말하면 24척추와 같다.
우리나라의 산줄기가 백두산에서 비롯되는 산줄기 체계와 바다로 빠져나가는 강줄기 체계를 보게되면. 특이하게도 오직 금강錦江 줄기만이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거의 절반을 역(逆)하면서 흐른다. 이렇게 크게 역(逆)을 하여 생기를 모으는 지세는 전세계를 통틀어 오직 태전(大田)을 에워싸고 있는 금강 수계 뿐이다.
사람에게도 앞뒤가 있듯, 산에도 앞뒤가 있다. 곤륜산 중에서 우리나라 쪽은 산 앞이고 곤륜산의 뒤, 구라파 쪽은 산 뒤다. 산 뒤는 덤으로 있는 것이어서 뒤쪽은 따질 것도 없다.
만유의 생명체란 알기 쉽게 말하면 다 군신좌사(君臣佐使)로 조직되어 있다.
꽃으로 말하면 꽃 이파리가 열 개고, 스무 개고 있지만 그게 다 꽃 속, 꽃 중심에 있는 화심(花心)을 위해서 붙어 있는 것이다.
‘탐화봉접(貪花蜂蝶)이라고, 꽃을 탐하는 벌과 나비를 보면 꽃 속 가운데 있는 화심(花心)에만 가서 앉아서 기다란 침을 꽂고서 꿀을 빨아먹는다. 그 중심, 핵核, 그게 화심이다.
지구가 한 송이 꽃이라면 우리나라가 바로 꽃 속 화심이다.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처럼 24절후가 똑바른 데가 없다. 춘하추동 사시가 똑바르고, 기후도 삼한사온으로 고르고, 물맛도 지구상에서 가장 좋다.
지구상에 이렇게 생긴데가 없다. 풀도 우리나라 땅에서 자란 것이 약효가 가장 좋다. 우선 인삼 하나를 예로 들어봐도, 우리나라 인삼 한 뿌리면 중국 인삼 다섯 뿌리의 약성에 해당한다. 중국 인삼 다섯근을 먹어도 우리나라 인삼 한 근 턱도 안 되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사람도 또한 그렇다. 민족성이 비뚤어졌든 어떻든 두뇌가 가장 영특하다. 우리나라가 바로 지구의 혈자리, 지구의 핵이다.
수도修道의 궁극의 목적은 세속적인 말로 도통道通이다. 불교의 도법은, 오로지 견성見性을 하려고, 부모형제도 세상도 다 등진다. 도통을 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수행이란 자기가 자기 심법을 연마하는 것이다. 명칭이야 참선이라 하든, 수도, 수련이라고 하든, 뭐라고 명명하든지 간에 다 一心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직 일심으로써만 참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민족 고유의 수행법인 태을주 수행을 해보면 알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왜 그런지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 난다. 잡념을 버려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잡념을 버리기는커녕 엄마 젖 먹을 때 생각까지 다 나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다 잊어버렸던 게 정신이 아주 말쑥해져서 더 많이 생각나는 것이다. 열 배 스무 배 더 난다. 그러다 차차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게 없어진다. 그게 마치 뭐와 같으냐 하면, 물 한 동이 떠다가 하루고 이틀이고 놔두면 물 찌꺼기는 가라앉고 아주 맑은 물만 남는 거와 같다. 그것과 같이, 수도할 때는 세속적인 혼탁한 생각이 다 가라앉아야 한다.
화식火食, 불로 익힌 밥을 먹고 세상 사물을 접하면서 여러 십 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정신이 혼탁해지는데, 물 찌꺼기 가라앉듯이 잡념이 없어져야 한다. 지속적으로 수도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망형망재’가 된다. 나의 형상도 잊어버리고 나의 존재도 잊어버린다.
망형망재가 되면 ‘물아物我가 구망俱忘’이다. 사물도, 나라는 것도 함께 다 잊어버린다. 아무 것도 없다. 자연하고 내가 합치되어 하나가 돼 버린 것이다. 그렇게 되면 훤하게 다 보인다.
광명이 어느 정도까지 열리게 되느냐 하면, 1년 중 가장 밝을 때가 가을인데, 말쑥한 가을하늘처럼 환하다. 다시 얘기하면, 저 십 리 밖의 소나무에 송충이가 솔잎 갉아먹는 것까지 환하게 보인다. 그렇게까지 광명이 열린다. 그러면서 자꾸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다른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경계까지 간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은 수도를 하다 보면, 기혈 순환하는 데 따라서 신체의 온도가 40도 이상이 되기도 한다. 그 때 손으로 살을 대면 껍데기가 벗겨져 버린다. “그러면 생리학상으로 큰일나지 않습니까?” 이렇게 물을 수도 있지만, 괜찮다. 그렇게 해서 다른 차원의 세계에 들어가면 몇 시간이고 있을 수 있고, 그런 경계를 넘어서면 수행공부가 금방 된다.
그런데 수도 공부를 하려고 보면, 쉽게 얘기해서 무슨 마魔라고나 할까, 그런 게 자꾸 낀다. 공부하다가 잘못되는 사람이 숱하게 많이 나오는데, 그래서 올바른 공부를 하려면, 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사수師首가 있어야 한다. 수도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첫째 심법이 발라야 된다. 간혹 공부하는 사람들 중엔 공부도 못 하고, 입 삐뚤어지고 눈 삐뚤어지는 구안와사口眼喎斜 같은 병도 걸리는 사람이 있다.
또 수도라는 걸 잘못하면 귀신한테 홀려서.”살살 꾀어내면 그냥 넘어가 사도邪道, 곁길로 빠지는 사람도 그렇게 많다. 한 백 명 공부하면 90% 이상은 곁길로 빠져 버린다. 그게 왜 그러느냐?
세간에 사람 뚜겁을 쓰고 나온 사람 쳐놓고 원억을 맺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 원한 맺힌 신명들이 원한을 풀지못해서, 무슨 코만 있으면 달려붙어 삐꾸럭길로 끌고 가는 것이다.
하나 예를 들어 과거에 일주일을 한도로 해서 수련공부를 하는데 한 닷새쯤 되어서 박선경이라는 사람이 공부하다 말고 “왁!”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나자빠진다. 그러니 여러 사람이 “왜 그랬냐?” 하고 물으니 이런 얘기를 한다.
그의 큰아버지 얘기다. 강원도 산골짝에 갈 것 같으면 나무뙈기로 얽은 삽짝문(사립문)이 있어서 밤에는 그냥 지쳐두고 낮에는 열어 놓는다. 그게 문 닫고 여는 것이다. 거기는 도적도 없다.
하루는 그 큰아버지가 볼일을 본다고 어디를 갔다. 그 일정이 거리로도 그렇고 한 사흘 걸려야 일을 마치고 돌아오게 됐다. 그런데 그날은 얼마 가다가 아는 사람도 만나고 해서 술 몇 잔 먹다가 시간이 없어서 못 가고, 얼큰하게 술에 취해서 밤중에 집으로 들어왔다.
그가 제 집에 돌아와 보니까 토방에 자기 마누라 신발하고 알 만한 동네 사람의 신발이 나란히 있다.
그걸보고 그 사람이 눈이 뒤집어져 버렸다. 그래서 욱 하는 생각에 헛간으로 달려가 도끼를 들고 연놈을 찍어 죽인다고 뛰어 들어갔다. 하니까 벌써 그 마누라는 뒷문으로 도망가고 동네 사람만 그 도끼에 찍혀 죽어 버렸다. 이유야 어떻든지 그의 큰아버지는 사람을 죽였으니 철창엘 갔다. 그런 사실이 있었는데, 그때 박선경이 도통을 하려고 하니까 그 죽은 신명이 도끼를 가지고 찍으러 달려붙더라는 것이다.
사실은 자기가 유부녀 보다가 도끼 맞아죽었으니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다. 제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죽었기 때문에 복수를 하려고 한다. 신명세상도 그렇고 인간 세상도 저 잘못한 것은 전혀 생각을 안 한다. 그런 것이 척(隻)이다. 여러 백 대 내려오면서 그런 크고 작은 척신들이 달려붙어서 보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예를 들어서, 인간세상에서는 다시 찾아볼 수도 없는 그런 미인이, 옥 같은 것으로 만든 좋은 술상을 차려놓고, 빵긋빵긋 웃으면서 한 잔 대접한다고 했다고, 그런 좋은 걸 봤다는 것이다.
왜 그런 게 보이냐 하면, 그가 본래 그런 걸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정신 자세가 그렇게 되어져 있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그가 신명에게 코를 내준 것이다. 사람이나 속지 신명은 속지않는다.
신명神明은 인간의 정신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 신명이 보니까 고놈 정신이 꼭 그렇게 되어져 있더란 말이다. 하니까 그런 여자 신명이 달려붙어서 자기가 뜻하는 행위를 하려고 한 것이다.
신명神明은 육신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행위를 못 하고,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이 동조해야만 행위를 할 수 있다.
요새 무슨 잡신 같은 것에 붙잡힌 선무당들을 보면, 귀신이 먹으라고 하면 먹고, 가라면 가고, 자라면 자고, 그가 하라는 대로만 한다. 그렇잖으면 아파서 못 배긴다. 그러다 앓아 눕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잡신한테 생포당해 가지고, 무슨 산신에 붙잡혔네, 무슨 동자신에게 붙잡혀서 점을 하네 하는데, 그런 게 세상에도 수두룩하다.
또 명도明圖에 붙잡혔다는 사람도 있다. 마마 걸려 죽은 여자 아이 귀신을 명도라고 한다. 이 명도에 붙잡힌 무당은 으레 꽃송이 같은 걸로 신단을 차려 놓는데, 점을 하려면 거기서 획 하고 휘파람 부는 소리가 나기도 한다.
그게 명도가 들락날락하는 소리다. 그래 점을 치면 명도가 금세 현장에 가서 조사해 가지고 와서 점괘를 알려준다. 그런 걸 보면 ‘참 신명이 저런 것이다.’ 하는 것을 누구도 다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명도라고 이름 붙인 여자 아이 신이 그저 대여섯 살 내지 열 살 전후해서 죽은 아이인데, 그애들이 세상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인간세상에서 살았던 날이 얼마 안 되는데. 그래서 점괘가 혹 맞기도 하고 안 맞기도 하고 그런 것이다.
수도修道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첫째 심법이 발라야 된다. 수도 공부하려고 앉은 사람이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내가 수도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 하는 그런 나쁜 생각을 가지려면 숫제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게 낫다.
간혹 수도 修道하는 사람들 중엔 수도修道도 못 하고, 입 삐뚤어지고 눈 삐뚤어지는 구안와사 같은 병도 걸리고, 병신 되는 사람이 있다.
또 수도라는 걸 잘못하면 귀신한테 홀려서 상제님도 배반하고, 자기가 신앙하는 길도 배척해 버릴 수 있다. 어떤 신이 달려붙어서 “야, 네가 잘 하면 하나님도 될 수 있고, 천자도 될 수 있다.” 하고 살살 꾀어내면 그냥 넘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전에 당진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자기 혼자 수도하다가 “자신이 하나님 딸이라는 것이다. 그거 참 기막힐 노릇이다. 그러다 신앙을 배반하다 못해 갖은 모욕을 다 한다. 그래서 그 가정이 다 망해 버렸다. 그러면 신앙 않고, 수도 공부 안 한 턱도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요즘은 신명 좀 보는 것보다는 열심히 수도해서 태을주 기운을 몸에 간직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 근자에 와서는 개안시키는 데에 힘을 쓰지 않고 있다.
개안(開眼)하는 방법을 참고로 얘기하면 앉아서 태을주 주문 읽고 수도하는데 어떻게 해야 개안도 하고 수도공부가 빨리 되느냐?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그냥 오래 앉아서 태을주를 많이 읽어야 된다. 그러다 무아경에 가면 어떻게 되느냐? 내가 없는 경지다. 망형망재다. 형상도 잊어버리고 나의 존재도 잊어버린다.’ 하는 것도 전부 그런 경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 경지에 도달하면 무엇인가 보인다. 그런데 그냥 뵈는 게 아니고, 각자 수도한 근기根氣에 따라서 환한 불이 보이는 사람도 있고, 저 개똥벌레 불처럼 새파란 게 반짝하고 보이기도 한다. 그게 나무 이파리만큼 보이기도 하고, 더 환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개안이 돼서 떡 하니 밝아지면 어떻게 되느냐?
일 년 중에 가장 밝은 때가 가을인데, 아주 참 호호晧晧하게 밝은 가을날처럼 아주 환하게 광명이 열린다. 세상에 그렇게 밝을 수가 없다. 전기 여러 백 촉 켜놓은 것만큼 밝다. 그렇게 밝아지면 예를 들어, 저 건너 보이는 산, 여기서 거리로 따지면 약 4킬로미터쯤 되는 보문산인데 위에 소나무에 송충이가 앉아서 솔잎 파먹는 것까지 보인다. 눈 떡 감고 앉아서 그걸 보면 송충이에 껄이 있는데 그 껄까지도 환하게 볼 수 있다. 광명이라는 게 거기까지 몰고 간다.
과거에 한 일주일을 한도로 해서 수련을 시켜보면, 어지간하면 사흘이면 다 개안開眼이 됐다. 열 개開 자 눈 안眼 자, 개안은 신명神明세계를 보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선조들은 그걸 ‘개안開眼’이라고 했다.
개안이 되면 신명을 본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유체이탈을 하여 어느 누구의 가정도 찾아갈 수 있다. 개안이라 하는 것이 도통하는 첫 관문이다.
그런데 개안시키는 게 원 목적은 아니다. 잘못 개안시켜 놓으면 게중에는 틀림없이 허튼 사람이 나온다. 개안이 되면 신神의 세계를 보니 참 요지경 속이다.
학을 타고 천상 구경도 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마음 약한 사람들은 잡신한테 걸려든다. 사람이 어디 좋은 사람만 있는가? 젊은애들은 연애도 걸고 싶고, 그걸 표현 못해서 그렇지, 그러면 그런 신명이 달려붙어 버린다.
또 나만 잘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겐 역신逆神이 붙는다. “네가 잘하면 하나님이 된다. 네가 교주도 하고, 네 방식대로 하면 구제중생도 할 수 있다. 판 하나 차려라.” 하고 홀리기도 하고, 별스런 일이 다 생긴다.
개안시켜 놓으면 관리하기도 어렵고, 그러다 잘못되면 사람을 버린다. 그런데 한 가지 좋은 점은 있다. 신명을 보기 때문에 ‘야, 정신세계라는 게 이렇구나. 이건 참 절대적이다.’ 해서, 삐꾸러지지만 않으면 새사람이 될 수도 있다.
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데, 신계神界에 다녀와서 옛날 고고학을 줄줄 내리꿰는 사람도 있다. 그런 걸 보면 참 신기하다. 자기 성명도 못 쓰는 사람이 주역, 시전, 서전을 다 읽는다. 그게 사람마다 천태만상으로 나타나지만, 예를 들면 인간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풍모도 잘 생기고 인자하고 위대해 보이는 분을 접촉하게 되는 수도 있고, 또는 자기 조상님들을 만나기도 한다.
잡념이 없고 바른 기운을 갖고 사는 사람은,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있을 때에는 그 기운이 보여지기도 한다. 미래상황을 볼 수도 있고, 또 어느 경지까지 가면 자기의 전생도 볼 수 있다. 그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여러 가지를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것에 너무 집착하면 못 쓴다. 그러다 잘못 되면 삐뚤어진다. 또 거짓말로 보여지는 것도 있다. 그런 데에 속아넘어가면 안 된다. 수도는 천지신명과 더불어 하는 것이다. 무형인 정신은 그렇게 되는데, 체질적으로는 어떤 변화가 오느냐?
첫째로 사람 인체 구조라 하는 것은 수화水火로 되어져 있다. 사람은 물기운과 불기운, 두 가지 기운을 가지고 산다. 사람의 콩팥이 양쪽으로 하나씩 붙어 있는데 콩팥 하나는 물(水)을 맡고 있고, 하나는 불(火)을 맡고 있다.
그런데 본래 물水은 밑으로 내려가려 하고 불火기운은 올라가려는 성질이 있다. 수화水火의 성질이 그렇다. 그렇건만 시간적으로 앉아서 수도를 하다 보면 수승화강水昇火降이 된다.
수화水火 기운이 뒤집어져서 물기운은 올라오고 불기운은 내려가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수승화강이 더 잘된다. 제대로 하자면 물기운은 올라오고, 불기운은 아주 착 가라앉아서 다 꺼져야만 된다. 그래야 체질변화가 완전히 된 것이다. 며칠 수련해서는 그렇게까지 될 수 없다. 그건 시간이 필요하다.
수승화강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수기水氣가 척추를 통해 올라온다. 그러면서 이 얼굴에서 만의회집지상萬蟻會集之像이 일어난다.
만의회집지상이란 일만 마리의 개미가 모여드는 현상을 말한다. 만의회집지상이 되면 개미가 얼굴에 기어다니는 것처럼 섬섬대서 못 배긴다. 그런데 이건 피부 밖에서 그러는 게 아니고 피부 속에서, 살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가려워서 도저히 못 배긴다.
그게 바로 수기水氣가 순환循環하느라고 그런 것이다. 만의회집지상은 아주 미세한 세포에까지 수기가 올라오면서 기혈이 작용할 때 생기는 현상이다. 몸의 수분은 기氣가 끌고 다닌다. 기氣가 생동해서 수분을 끌고 와 수기水氣가 상승하는데, 그게 얼마 지나면 완전히 수승화강이 돼서 체질 개선이 된다. 그 경지에 가면 그런 현상이 다 없어져 버린다.
그렇게 되면 아주 피부도 말쑥해지고, 눈도 유리알보다 더 반질반질하니 광채가 난다. 수도하는 사람은 눈을 보면 안다. 또 한편으로는 인당印堂이 얼음을 갖다 얹은 것 모양 시원하다. 또 백회 부분을 정문頂門이라고도 하는데, 거기서 아주 맑은 기운이 뻗쳐오른다. 정문은 또 삼리三離라고도 하고, 이궁離宮이라고도 한다.
이궁離宮은 남쪽을 뜻한다. 턱 아래쪽이 북쪽이고, 위쪽이 남쪽이다. 기운은 정문頂門을 통해 내려온다. 그래서 정문을 쥐구멍이라고도 하는데, 수련을 하면 이 쥐구멍으로 기운이 오르고 내리는 걸 느낀다. 심령으로 통을 하고 육체적으로 수승화강이 돼서 체질이 완전히 변화되면, 청명한 맑은 기운이 하늘까지 꽨다. 체질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변화한다.
수도되는 과정을 좀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질·량·시·리·변質量時理變, 다섯 단계를 거쳐야 한다. 질質은 바탕 질質 자, 양量 자는 헤아릴 량量 자다. 또 때 시時 자, 이치 리理 자, 변할 변變 자, 이렇게 다섯 단계가 있다.
질質이라는 것은 바탕이다, 예를 들어 십리밖에 있는 물주전자라고 하면, 그 물주전자가 실물 그대로 보이는 게 질質의 단계이다. 또 량量의 단계라고 하면 물주전자가 어느 때時, 어떻게理 변變하게 되느냐 까지를 알 수 있는 그런 다섯 단계를 파악할 수 있게 되면 그게 도통이다. 그렇게 되면 미래도 알 수 있다.
묶어서 자연섭리하고 내 정신이 합치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섭리를 통투할 수 있다. 그걸 문자로 “상투천계上透天界하고”, 위로는 하늘 경계를 뚫어볼 수 있고, 또 “하철지부下徹地府”, 땅 밑바닥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그런 경지를 간다.
그래서 사람이 불학이능문장不學而能文章하고, 배우지 않고도 문장이 되고, 부점이지길흉不占而知吉凶하고, 점치지 않아도 좋고 그른 것을 안다. 도통은 신통神通이다. 인간이 신통을 하게 되면, 인간과 신명이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식이 부족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큰 공덕을 쌓으면, 그 공덕에 걸맞는 대신명이 응기하여 신통이 열리기 때문에, 사람이 그 대신명의 지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되어 경우에 따라 대문호도 될 수 있는 것이다(神人合一).
우주가 펼쳐진 형상을 수(數)로서 나타내는 조감도, 하도(河圖)
선천 봄여름우주의 자기극복 과정, 상극의 우주질서를 수(數)로서 나타내는 낙서(洛書)
지구촌의 모든 정보가 보관되어 있는 도서관(圖書館)
『 태백일사太白逸史 』<소도경전본훈> 88쪽을 보면 ‘『천부경(天符經)』’ 의 유래가 나와 있다. 천부경은 “천제환국구전지서야(天帝桓國口傳之書也)”라. 천부경은 환국(桓國)에서 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한 글이라는 것이다.
환웅천왕의 배달국 때 신지혁덕(神誌赫德)에게 명해 녹도문(鹿圖文)으로 기록하게 하셨는데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선생이 신지(神誌)가 남긴 전고비문(篆古碑文)을 보고 작첩(作帖)을 복원해서 전어세자야(傳於世者也)라. 세상에 전하게 된 것이다.
환국 시대부터 전수되어 내려온 『천부경(天符經)』,여기에는 우주론을 바탕에 깔고 하늘과 땅과 인간의 일체관계에 대한 인성론의 문제가 담겨있고, 환국 다음에 배달국의 개창자 배달환웅이 열어주신 우리 한민족의 신관, 신학의 원전 『삼일신고(三一神誥)』가 있다. 그리고 고구려 재상 을파소를 통해 내려온 366가지 인간이 지켜야 될 윤리덕목을 기록한 『참전계경(參佺戒經 )』 이것이 우리민족의 3대 소의경전이다.
음양오행 문화는 역사성으로 보면 2, 3천 년이나 4, 5천 년 전에 나온 것이 아니다. 흔히 음양론의 원 뿌리, 연원을 하도河圖, 낙서洛書로 말하는데, 그 근원을 추적해서 들어가 보면, 최소 1만 년 전까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음양론이 정리된 첫 작품이 『천부경天符經』이다.
선사시대 때의 유물이나 사람들이 살던 주거 터, 동굴 벽화를 분석해 놓은 자료들을 보면, 태고시대의 사람들이 음양적 사고를 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천부경』이 음양론의 출발점이며, 실제 그것을 문명화한 진리의 원본이 5,500년 전, 태호 복희씨가 삼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받아 내린 하도(河圖)다. 그 하도河圖에서 팔괘 문화, 주역 문화가 나온 것이다.
천부경을 보면 1, 2, 3이 나오고, 운삼사運三四(3, 4) 나오고, 성환오칠(成環五七)에서 5, 7이 나오고, 生七八九 생 7, 8, 9가 나오고, 일적십거(一積十鉅)에서 10까지 해서, 수의 원리가 1에서 10까지 다 드러난 것이다.
1만 년 전에 1에서 10의 수의 체제를 가지고 있었단 말이다. 이 지구촌 인류문화사상 처음으로 1에서 10수의 자연수를 발명을 한 것이다. 이게 무슨 아라비아인들 또는 중동 인도 유럽에서 처음 나온 게 아니다.
인류문명은 하도(河圖)와 낙서(洛書) 두 장에서 나왔다. 하도낙서의 근원은 천부경.
龜馬一圖今山河여 幾千年間幾萬里로다
귀마일도금산하 기천년간기만리
胞運胎運養世界하니帶道日月旺聖靈이로다
포운태운양세계 대도일월왕성령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판도로 벌어진 오늘의 산하(山河)
수천 년 동안 수만 리에 펼쳐져 있구나.
가을개벽의 운수 포태(胞胎)하여 세계를 길러 왔나니
변화의 도(道)를 그려 가는 일월(日月)이 성령(聖靈)을 왕성케 하는구나.
산하(山河): 자연을 통털어 이르는 말
하도(河圖)와 낙서(洛書): 천지만물의 생성(生成) 변화하는 순환 원리를 상제님께서 신교(神敎)로 내려준 것으로 음양오행 원리의 기본이 된다. 도서(圖書)라는 말도 하도, 낙서에서 유래했다.
지금의 동지, 소한, 대한, 입춘, 우수, 경칩... 24절후와 해시계 규표를 태호복희(BCE 3528 ~ BCE 3413)씨가 처음 발명한 것이다. 이것을 시간 공간의 구성 원리로 다시 한 번 계시를 해주신 것이 무엇이냐 하면 도서관(圖書館)이라는 말의 어원이기도 한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다. 시간과 공간의 원리에 의해서, 1에서 10수의 구성 원리를 보는 것이다.
『낙서(洛書)』에는 1에서 9까지 수가 배열되어 있는데 2 7 6, 9 5 1, 4 3 8, 이것을 서양에서는 마방진魔方陣magic square이라 하며 교과서에도 나온다.
미국의 수학자 프랭크 슐츠F.Swetz는 『낙서洛書의 유산Legacy of the Luoshu』에서 ‘낙서洛書는 비단길을 통해 동서양을 왕래한 아랍인들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 인도, 동남아, 중동, 유럽 문화 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하였다.
서양 문명의 뿌리를 추적해 봤더니 이슬람 문화권에도 낙서洛書가 전달됐고 유대문화에도 낙서洛書가 들어 있더라는 얘기다. 2,500년 전 그리스 수학자 피타고라스도 이것을 받아 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피타고라스가 자연수의 체계에 눈을 뜬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오늘의 서양 과학문명은 끊임없이 피타고라스로부터 영감을 받아왔다고 했다.
서양문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피타고라스는 “모든 것은 수(數)에 의해 규정된다(All things are ruled by numbers).”는 유명한 얘기를 하였다. 결론적으로 동서양 문명의 뿌리가 바로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라는 얘기다.
낙서洛書의 수(數)를 그대로 옮기면 3차 마방진이 되는데, 가로·세로·대각선의 합계가 모두 15가 된다. 마방진은 한마디로 숫자 속에 숨겨진 우주의 질서와 균형을 의미한다.
낙서(洛書)는 4,300년 전, 중국에서 9년 홍수가 일어나 우(禹) 임금이 치수공사를 하던 중에 물 속에서 나온 거북이 등에 있는 무늬를 보고 낙서洛書를 그리게 되었다. 당시 단군 성조의 맏아들 부루(扶婁) 태자가 아버지 단군 성조의 명을 받고 우(禹)에게 치수 비법을 전해주었다. 그 사실이 중국 역사책 『오월춘추』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책을 보면 ‘창수사자(蒼水使者)’가 나온다. 창수(蒼水)는 지금의 황해 바다 북쪽에 있는 대진국,발해(渤海)다. 그런데 꿈에 받았다고 왜곡시킨 것이다.
사자使者가 대진국,발해를 건너가서 금간옥첩(金簡玉牒), 금옥과 같이 아주 잘 만들어진 함에다가 치수비법을 넣어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오행원리로 되어 있어서 ‘오행치수지법(五行治水之法)’이라고도 한다. 그렇게 해서 우(禹)가 9년 홍수를 다스리고 요순시대를 이어 하(夏)나라를 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태호복희씨가 받아 내린 하도(河圖)와 우(禹)임금이 받아 내린 낙서(洛書)가 중동과 그리스 지역에까지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로 인해 서양에서 2,500년 전에 수(數)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서양의 근대 과학 문명과 오늘날 컴퓨터 문명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서양에서 이진법은 17세기초에 고안되어 나왔는데,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주역(周易) 이론에 이진법이 함축되어 있는 것을 보고 체계를 정립시켰다. 그는 1697년 ‘파리 과학 학술원’에서 「이진법 정수론 주해」 라는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그리고 그 역사적인 논문의 부제가 ‘고대 동양의 태호복희의 괘상에 나타난 이진법 산술이 갖는 의미와 그 효용성에 관한 고찰’ 이라는 것이다.
그는 “나의 불가사의한 이진법의 새로운 발견은 5천여 년 전 고대 동양의 복희왕이 발견한 철학서이며 문학서인 주역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라고 고백하게 된다. 그리고 1709년에 복희팔괘와 함께 이진수를 나타낸 분석표를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면서, “주역은 모든 과학의 열쇠이다.” 라는 말을 한다.
결론은, 음양론은 인류 문화의 원형인 신교(神敎, 以神說敎)의 우주론이다. 다시 말하면 음양오행법칙은 신교神敎의 우주관이다.
크래머Kramer 박사는 현 서양문화의 뿌리요, 기독교 문명의 모체인 수메르 문명(BCE 3500~BCE 1950)을 건설한 사람들은 '동방에서 왔다' 고 주장하였다.
일본 학자 우에노上野景福는 수메르에서 사용한 설형楔形 문자가 태호 복희의 팔괘 부호와 흡사하다고 지적하였다. [대영大英 백과사전]에는 수메르어와 한국어는 같은 교착어로서 그 어근語根을 같이한다고 하였다. 고든 Gordon 박사는 수메르인이 중근동中近東에 들어서기 전에 고대의 문자 기호를 가지고 온 듯하다고 하였다.
그러면 수메르 문명과 기독교의 관계는 무엇일까?
수메르 문명은 서양 문명의 시원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대다수 학자의 공통된 의견이다. 단적으로 [창세기]에 나오는 저 유명한 바벨탑(수메르의 지구랏) 이야기를 통해서 성서에 끼친 수메르 문명의 영향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에덴동산과 노아의 홍수 신화도 수메르 신화에서 기원한다. 뿐만 아니라, 신교神敎 경전인 [삼일신고(三一神誥)]에 나오는 삼신일체三神一體 신관과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관은 혼동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유사하다.
수메르 문명이 기독교 문화에 끼친 영향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기독교(유대교) 문화의 뿌리가 되는 유대족의 조상 아브라함이 본래 수메르의 갈데아 우르Ur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에는 수메르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12환국桓國의 열두 나라 가운데 우르(虞婁, Ur)국과 수밀이(須密爾, Sumer)국이 있다. 이 두 나라가 환국 말기에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지금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세운 문명이 수메르 문명이다. 수메르인은 스스로 ‘검은머리' 사람이라 했다.
특히 수메르의 종교 신앙 가운데 '하나님의 산' 혹은 '하늘 언덕' 이라 불린 지구랏Ziggurat은 제천단 유적으로서, 신교神敎의 삼신신앙과 제천 문화가 여전히 환국의 후예인 수메르인의 삶과 신앙 의식 속에서 제1의 중핵 자리를 점하고 있었음을 명백히 보여 주는 증거라 할 것이다.
불교가 고구려 소수림왕 372년 이 땅에 들어오기 전, 이미 불교의 원형이 있었다는 사실도 여러 곳에서 밝혀졌다.
[화엄경]에서 “해중(海中)에 금강산이 있는데 옛적부터 모든 보살이 그 산중에 살고 있다. 현재도 법기라는 보살이 1,200명의 보살 무리를 거느리고 금강산에 상주하며 불법을 강설하고 있다.” 라고 하였는데, 이는 ‘불교의 종주국이 바다 건너 금강산에 있는 나라’ 라는 말이다.
[삼국유사] [아도기라] 등 여러 서적에 전불(前佛)시대 절터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석가모니가 탄생하기 3000여 년 전에 이미 한국에 불교의 원형이 있었다는 말이다.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인간과 신명이 소통하였고, 수행을 통해 인간을 완성시키는 가르침을 역사상 처음 열었던 것이다. 제사는 유교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수천 년 전부터 우리 민족이 행해왔던 신교 문화의 예식인 것이다.
한민족의 시원 역사의 핵심은 제천문화다. 하느님을 받드는 문화다. 이문화의 일반적 정의는 하늘 땅, 천지부모와 인간이 하나되는 의식이다. 제천문화는 동서양의 종교와 하나님 문화의 원형, 원조가 한민족의 제천행사다.
제천문화의 유적지가 마리산에 있다. 고대 한민족은 1년에 두 번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3월 16일 대영절은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 삼신상제님을 맞이하는 천제를 올린 민족 대축제의 날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 잃어 버렸다. 문화의 근원이 말살되었다.
사마천의 사기 봉선서(封禪書)에서 ‘관중(管仲)이 말하기를 고대(古代)에 태산(泰山)과 양보산(梁父山)에서 하늘에 제사지낸 왕은 72명이었다. 제왕이 창업을 하고 상제님께 신고식을 올리는 것이 인생 일대에 영광스러운 순간이라고 했다. 소위 봉선제(封禪祭)이다.
배달국의 건국일인 10월 3일에는 백두산에서 천제를 올렸다. 그런데 지금은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한 개천절로 왜곡이 되었다. 해마다 대영절이 되면 강화도 마리산에 가서 제물을 바쳐 경배하고 10월 3일에는 백두산에 올라가 천제를 올렸다.(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이것이 왜곡되고 뿌리 문화가 단절되어 전혀 모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국 도교의 시조를 황제헌원과 노자[黃老]라 한다. 중국 한漢족의 시조인 4,700년 전 황제헌원은 신농씨의 아버지인 소전少典에서 갈라져 나온 유웅씨(웅족) 계열의 동방족이다.[삼한관경본기]
번한의 역대 부단군 이름과 통치 기간이 기록되어 있는 [번한세가番韓世家] 하편을 보면 노자에 관한 놀랄 만한 내용이 한 구절 보인다.
■ (번한의 60대 왕인) 도을道乙이 즉위하였다. 계미癸未(BCE 518)년에 노나라 사람 공자가 주나라에 가서 노자 이이李耳에게 예를 물었다. 이耳의 아버지는 성이 한韓이고 이름이 건乾인데, 선조는 풍이족 사람(風人, 태호복희씨와 같은 풍이족)이다. (道乙立. 癸未, 魯人孔丘適周, 問禮於老子李耳. 耳父姓韓, 名乾, 其先風人)
노자는 단군조선 말기의 인물로 본래 성은 한韓씨이고, 동이 구족 중 풍이족 출신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노자의 사상적 근원은 배달의 동방사상(신교 삼신문화)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면 노자는 왜 자신의 성과 이름을 이이李耳로 바꾸었을까?
신교神敎의 선맥仙脈을 이은 자하선인은 [신교총화(神敎叢話)]에서, 노자는 비록 서쪽 땅에 살고 있지만 자신은 본래 동방 사람이기 때문에, 이를 후세에 남기려고 성을 '동방[木]의 아들[子]' 이라는 뜻으로 이李라 하였다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헌원과 노자는 배달의 혈통을 이어받은 정통 동방족 출신이며 동방의 신교神敎를 서방에 전파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갈홍의 [포박자抱朴子]와 [관자]에는 황제헌원이 배달국에서 선도仙道를 전수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역대신선통감]에서는 "황제가 홀로 동북의 장백산長白山(백두산) 아래에서 도를 닦아 날이 오랜 뒤에 성공했다” 라고 하였다.
고대부터 신선 사상의 중심지로 숭앙되었던 삼신산三神山은 바로 동방의 백두산을 가리킨다. 고대 중국인들조차 신교神敎 삼신 사상에 따라 이름 붙여진 삼신산(三神山,삼신상제님께서 머무시는 곳)을 신선 사상이나 신선의 성지로 인식하였다.
[사기]를 보면 제齊의 위왕威王·선왕宣王과 연燕의 소왕昭王을 비롯하여 진시황, 한 무제 등이 모두 장생불사를 갈망하여 동방[海東]에 사람을 보내 삼신산을 찾아 불사약을 구해 오도록 하였다.
중국에서 신선 사상이 만주 ·한반도와 근접한 연燕·제齊나라 지역(하북 · 산동성)에서 비롯되고 널리 성행하였다는 사실은 시선을 끈다. 이들 지역은 배달 · 조선에 속한 강역이고, 중국 내에서도 신교의 삼신 사상이 가장 먼저 보급되고 뿌리 내린 곳이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도교문화는 동방 한민족 신교神敎의 삼신상제) 사상의 아류亞流에 지나지 않으며, 신교神敎가 점점 쇠퇴하면서 다른 3대 종교와 더불어 역수입된 것이라 해도 결코 빈말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 4대 종교를 탄생시킨 뿌리가 바로 인류 문화의 시원인 신교神敎이며, 이 4대 종교는 모두 환국과 환국의 정통 장자족인 한민족의 신교에서 흘러 갔다가 다시 한민족의 현 근거지인 이땅으로 흘러들어 왔음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1만 년 전부터 꽃핀 동방 문화는 5천여 년 전에 서방으로 전파되었다. 송호수 교수의 다음 지적과 같이, 지구를 두루두루 돌고 돌아 제 뿌리를 향해 찾아든 모습은 다양하다.
■ 불교는 삭발 · 장삼에 불경을 끼고 되돌아 왔고, 유교는 유건儒巾 · 도포道袍에 사서삼경을 싸서 되돌아 왔다. 도교는 오두미五斗米를 갖고 무위자연하면서 구름을 타고 들어 왔고, 기독교는 노란 곱슬머리와 파란 눈에 붉은 신·구약을 끼고 들어왔다.
이러한 모습을 과연 과거급제해 금의환향錦衣還鄕한 위풍威風으로 보아 주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아무래도 이 가문家門[조국]에 대한 공과로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의 세대는 최인 선생이 우리 민족에게 남긴 다음 유훈遺訓을 깊이깊이 새겨 보아야 하리라.
■ 오늘의 한국은 새 역사를 창조할 때이다. 새 역사를 창조하자면 새 역사를 알아야 한다. 한국의 재발견은 본래의 한국을 발견하는 일이다. ([한국의 재발견])
시간의 소주기와 대주기, 초목농사 짓는 지구 1년과 인간농사 짓는 우주 1년
대자연을 향한 신비 탐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우주가 생겨나 변화하는 창조이법에 대해 깨치는 것이다. 과학에서도 자연의 질서를 설명하는 <;;통일장 이론: unified theory of field>;;을 얘기하고 있다. 이것을 흔히 만사형통의 원리('theory of everything')라고 한다.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라는 말이다.
자연 속에는 두 가지 전류 변화가 있다. 양전기, 음전기, 이것이 음양의 이치다. 우주 만유, 사물에는 두 가지 변화의 얼굴이 있다.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음적인 게 있으면 양적인 게 있다. 그 변화의 이치가 바로 음양의 원리다. 우주론의 결론으로 말하면 그 통일장의 원리가 바로 생장염장(生長斂藏)이다.
하루의 낮과 밤, 그리고 지구 1년을 관통하는 시간 질서, 우주변화의 기본이법이 곧 생장염장이다. 하늘과 땅 · 역사와 문명 · 극미의 원자와 극대 우주, 그리고 인생의 섭리에 대한 모든 것을 이 생장염장의 틀로 설명한다. 이것을 알기 쉽게 얘기하면 봄生-여름長-가을斂-겨울藏의 사계절의 변화다.
이 우주 만물은 순환한다. 지구의 자전운동, 우리 몸의 기혈 순환운동, 호흡운동 등 모든 것은 순환을 함으로써 변화가 지속된다. 하루도 낮과 밤이 계속 지속되고, 지구 1년 사계절도 생장염장(봄生여름長가을斂겨울藏)으로 순환한다. 이 우주의 법칙, 대우주의 기본 틀이라는 것은 순환의 도(道)로 둥글어간다. 이 순환의 질서, 우주변화의 도(道)가 '생장염장'이다.
우주의 변화법칙인 생장염장에 의해서 천지는 만물을 낳아(生) 기르고(長) 거두고(斂) 폐장(藏)하고 쉰다. 그렇게 해서 겨울에 쉬는 시간을 넘어 다시 또 봄이 온다. 이 우주에 또 다른 봄이 오고 인간이 또 창조되기 시작한다. 천지만물은 시간이라는 거대한 하나의 물결에 휩쓸려,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이 시간에 대해 깨는 것은, 천지 자연과 생명의 본성에 대한 깨달음의 근본이다. 철학의 문제도, 종교의 문제도, 결국 시간의 문제로 귀결된다. 시간에 대한 인식 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다. 인생사 모든 게 시간의 문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우주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우주는 왜 생겨나고, 인간은 왜 태어나며,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인생의 참된 가치는 뭐냐? 이 모든 문제가 시간과 연결돼 있다. 그러면 시간이란 뭐냐? 진정 시간이란 있는 거냐?
『시간의 목소리 Voice of Time』라고, 시간에 대한 논문을 모아 놓은 20세기 명저가 있다. 거기 보면, 우리들이 쓰는 언어라는 게 전부 시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이야기도 ‘언제부터 언제까지 한다.’고 시간을 전제로 하고 있다. "내일 보자", "나중에 만나자.""지금 어디로 가고 있다." 등등, 인간 활동의 밑바탕에는 항상 시간 의식이 깔려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진화론에서 배운 건 직선 시간관이다. 약 3백만 년 전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있었다느니 하는 게, 전부 직선 시간관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그렇게 직선적으로 흘러가 버리는 게 아니다.
시간의 밀도를 한번 생각해 보자.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마다 시간의 밀도가 다르다. 또 아주 바쁜 낮의 시간대와, 집에 돌아와서 다리 씻고, 편안한 마음으로 텔레비전 보면서 가족들과 대화하는 저녁 시간대의 밀도를 비교해 보라. 같은가? 다르다. 또 잠잘 때는 어떤가? 깊은 잠에 빠지면, 시간의 흐름을 전혀 인식 못 한다. 카오스적이다. 이게 우주 내면 질서의 신비다.
이 세상 모든 진리의 핵심 명제는, 결국 이 시간이 무엇인지, 시간의 비밀을 푸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에 대해, 아주 성숙한 얘기를 한 사람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이다. 그는 『확실성의 종말(La Fin des certitudes)』에서 이렇게 말했다."시간은 시작이 없다." 이게 무슨 말인가?
최근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결과, 이 우주는 이전에 측정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백억 년 전에 열린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폭발(Big bang)로 천지가 원시 개벽된 시점 이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곧 천지개벽도 우주가 탄생한 하나의 사건일 뿐이라는 것이다. 시간은 영원히 멈추지 않는다. "시간의 시작은 없다!" 이 말은 우리의 닫혀있던 의식을 참으로 시원스럽게 해방시켜 주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만일 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을 것 아닌가. 끝은 죽음이다. 일찍이 동양사상사에서 그런 멍청한 말을 한 사람이 있는가? 일리야 프리고진의 말대로,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이 항상 열려있다. 이 사람은 기존의 서구의 시간론을 다 뒤집는다. 우주에는 시간의 물결, 변화의 현상은 있으나, 시간의 실체는 없다. 과거는 흘러가서 없고, 현재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으며, 미래는 오지 않았다. 그러니 시간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사실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자연 변화의 속성은 순환이라는 걸 깨달았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이 자연에 대한 변화를 들여다보고 깨달은 주제를 한마디로 말하면,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곧 음양론이다. 한 번은 음(陰)운동을 하고, 한 번은 양(陽)운동을 하는 것! 그 가운데 가장 작은 음양의 변화는, 하루 낮과 밤[晝夜]이 바뀌는 것이다. 지구촌 어느 곳에서도, 주기만 좀 다를 뿐이지, 낮과 밤은 어김없이 바뀐다.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한 번 음 운동, 한 번 양 운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 변화하는 게, 자연의 근원 질서[道]라는 말이다. 낮과 밤의 지속적인 반복, 그것이 순환(circulation)이다. 서양의 철인들도 하루 낮과 밤의 순환을 인식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우주 1년으로 확대 인식하지 못했다. 물론 수천 년 된 고대 그리스문화를 보면, 그들도 우주의 큰봄, 큰여름, 큰가을, 큰겨울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지금 과학에서는 지구 탄생 이래로 빙하기가 다섯 번에서 일곱 번 있었다고 하고, 또 지구의 남극과 북극이 뒤바뀌어지는 큰 변화가 자그마치 2백 회나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 남극대륙의 빙하에 3,623m나 되는 구멍을 낸 러시아, 미국, 프랑스의 공동 탐사팀은 빙하에 남겨진 기록으로부터 335,000년 245,000년 13만5,000년 간격으로 빙하기와 간빙기 사이의 전이를 발견하였다. (Bernhard Stauffer. "Climate change: Cornucopia of ice core results". Nature 399. 1999. 412쪽)
● 가장 널리 인용되고 있는 2만에서 2백만 년 전 플라이스토신기(更新世)의 빙하량 변화를 조사한 SPECMAP(Spectral Mapping Project) 시간 척도는 지난 해빙기 중심을 12만7,000년으로 보고하고 있다. (J. Imbrie. et. al. Milankovitch and Climate. edited by A. L. Berger et. al. Reidel. Dordrwcht. 1984. 269쪽: J. Imbrie. et. al. "On the structure and origin of major glaciation cycles: I. Linear responses to Milankovitch forcing". Paleoceanography 7. 1992. 701쪽)
● 더욱이 산호층 단구의 연대는 12만8,000 ~ 12만2,000년 전 해수면이 최대 정점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C. H. Stirling. et. al. "Timing and duration of the Last Interglacial:Evidence for a restricted interval of widespread coral reef growth". Earth and Planetary Science Letter 160. 1998. 745쪽)
과학에서 밝히는 시간의 큰 주기(Cosmic Year)
천지만물은 시간이라는 거대한 하나의 물결에 휩쓸려,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이 시간에 대해 깨는 것은, 천지 자연과 생명의 본성에 대한 깨달음의 근본이다. 철학의 문제도, 종교의 문제도, 결국 시간의 문제로 귀결된다.
시간에 대한 인식 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다. 인생사 모든 게 시간의 문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그뿐이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구조로, 어느 정도의 시간 간격을 두고 오는지를 몰랐다. 더욱이 중동의 사막문화에서는, 환경적으로 순환 체험을 전혀 못 한다. 그래서 그 곳 사람들은 직선 시간관 의식이 강하다. 지구 1년을 보라.
지구는 하루에 360도 자전한다. 하루의 주야 동정(動靜)은 모든 변화의 기본이다. 이 만물 생명의 기본 변화인 동정의 리듬을 만드는 어머니 지구가, 1년 동안 360회 자전을 지속하면서 태양을 안고 공전하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면 지구 1년 4계절 생장염장의 변화가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구 1년 4계절이 열려서, 봄이 되면 초목에서 새싹이 나와[生], 여름이면 잎과 줄기가 자라서 하늘을 덮었다가[長],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면서 열매를 거두고[斂], 겨울에는 쉰다[藏]. 그러고 나면 또 다른 지구 1년이 열리고, 봄이 오는 것이다. 지구 1년의 순환도수는, 자전360도, 공전360도 순환 반복하므로 360°×360° = 12만9천6백 도다.
인간의 몸도 음양으로 변화한다. 즉 맥[陰]이 뛰고 호흡[陽]을 한다. 맥이 뛰는 건 혈맥(血脈)이고, 호흡은 기맥(氣脈)이다.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두 맥을 합치면, 하루에 12만9천6백 도수이다(하루의 혈맥 수:72×60×24=103,680, 하루의 기맥수:18×60×24=25,920, 도합 129,600).
이 12만9천6백 수는, 천지와 인간 생명 변화의 기본 사이클을 이루는 도수인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오묘한 생명의 창조 주기로서, 대단히 중요하다. 천지와 만물의 생성 변화의 수수께끼를 푸는 핵심 비밀이 이 우주 1년의 주기에 있기 때문이다.
12만9천6백 년! 이 수는 중국 송나라 때, 5현賢 군자 소강절邵康節과 장횡거張橫渠, 주염계周濂溪,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 이 다섯 인물 중, 소강절(1011∼1077)선생이 백원사百源寺에서 들어가 40년 동안 주역을 공부하고 나서 하루[一日]라는 짧은 시간의 마디를 가지고 찾아낸, 천지 변화의 기본 순환 주기이다.
소강절은 『주역』을 한평생 공부하고 "이 천지 밖에 또 천지가 있으면 모르려니와 차천지내사(此天地內事)는 이 천지 안의 모든 일은 내가 모르는 바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천지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변화를 깼다.
우주의 변화는 참으로 신묘하기 그지없다. 밤하늘을 보라. 별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일천억 개의 별이 모인 게 은하수다. 맑은 날 은하수를 보면, 마치 우유를 뿌려놓은 듯하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밀키 웨이(milky way)라고 한다. 일본사람들은 그것을 하늘의 개천(天の川)이라고 한다.
천지의 변화운동으로, 끊임없이 만물이 생멸한다. 최근 화성 탐사 결과, 화성에 물줄기 흔적이 있고, 화성에도 생명이 살고 있다고 주장을 하는데, 하늘은 하늘대로 생명체가 많고, 우주의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한 혹성인 지구에도, 수많은 생명의 종이 살고 있다. 인간만 해도 81억이다.
바다는 또 어떤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체들이 현란하게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생명계의 변화의 이법은 결국 단순한 네 글자인 것이다. 생장염장生長斂藏! 생장염장, 낳아서生, 길러서長, 거두고斂, 휴식藏한다. 그런데 세 번째의 ‘거둔다!’고 하는 염(斂), 여기서 모든 종교와 인간 역사의 총 결론이 나온다. 이 우주에서 인간의 삶을, 인간의 생명을, 인간의 역사를 거둔다! 이것이 우주의 가을 소식이다.
우주는 봄여름을 넘어 가을이 있고 겨울(빙하기)이 있다. 이것이 우주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소식이요, 우주 1년 선천과 후천 소식이다. 또한 이것이 소위 인간 농사짓는 우주 1년 소식이다. 이 우주는 인간을 낳아 길러서 가을에 성숙시킴으로써 우주의 이상을 실현한다. 즉 우주는 인간을 통해, 인간의 손을 빌어 천지의 꿈과 이상을 건설한다. 이것이 우주의 존재 목적이다.
이 선후천 우주 1년을 오늘날 과학 용어로 말하면 ‘시간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우주의 1년 12만9천6백년을 한 주기로 볼 때, 봄여름 선천 5만 년이 지난 뒤에는 반드시 가을이 온다. “우주 1년은 필연적인 우주의 법칙이다.” 하루, 지구 1년, 우주 1년 사계절의 창조 법칙, 그것이 바로 생장염장의 이법이다.
이 우주 1년 4계절을 전기 후기로 나누어 봄여름을 선천(先天, the early heaven), 가을겨울을 후천(後天, the later heaven)이라고 한다. 우주 1년 12만9천6백 년에서, 선천개벽으로 처음 인간이 태어나 살 수 있는 기간이 선천 5만 년, 또 생명 활동을 쉬는 겨울(빙하기)이 올 때까지, 인간의 생존기간이 후천 5만 년이다.
인간이 탄생하여 성장하는 과정, 인간이 자기계발하는 영성의 성장 과정이 선천 봄여름 5만 년이고, 인간이 완전한 깨달음의 진리를 통하여 성숙한 가을 인간으로 살아가는 과정이 후천 가을이 5만 년이다. 우주의 겨울 빙하기 약 3만 년은 휴게기이다.
대자연의 창조 이법(理法), 이理란 문자 그대로 이법(理法, principle)이다. 우주가 어떻게 태어났는가, 우주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가 하는 만물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이치를 말한다. 리(理)는 이법, 섭리, 우주의 창조 법칙이다. 곧 자연과 인간이 태어나고 살다 죽는 대자연의 이법을 말한다.
우주는 어떻게 창조되었으며,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태어나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인류의 기원과 인간의 삶의 목적, 인류의 미래 등 모든 것이 이 이법理法 속에 들어 있다. 이법理法을 알아야 무지로부터 해방된다. 이법을 제대로 깨야 사람이 밝아진다. 자연 속에 있는 숱한 이치를 찾아내는 것, 이것이 역사의 과정이요, 문명의 과정이다. 그렇게 해서 자꾸 밝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인간은 밤이 되면 불을 켤 줄 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바로 그 이법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이법(理法)의 첫째가 앞에서 말했듯이 이 우주에는 인간 농사짓는 사계절이 있다는 것이다. 즉 우주가 인간을 낳아 길러서 그 뜻을 이루는 우주 1년 사계절의 순환 법칙이 그것이다. 우주 1년은 129,600년에서 인간이 생명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선천 5만 년, 후천 5만 년이다. 그리고 나머지 29,600년은 우주의 겨울로, 과학에서 말하는 빙하기다.
지금 우리는 우주 1년의 봄여름이 끝나고 가을우주로 넘어가는 문앞에 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인간의 문제는 바로 이 우주의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하추교역夏秋交易의 문제이다.
빙하가 대량으로 녹아내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봄여름 우주의 주역(周易)세상에서 가을우주의 정역(正易)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앞에 와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번 우주 1년에서 인간이 지금까지 살아온 천지의 이법理法이 상극相克이라는 것이다.
선천 봄여름에는 지구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서 하늘과 땅의 관계가 삼천양지(三天兩地)로 되어 있다. 즉, 양(陽)인 하늘은 셋이고, 음(陰)인 땅은 둘이라고 하는 불균형 때문에 기울어진 지축을 중심으로 양기가 훨씬 강하게 작용한다. 이런 자연의 불균형 부조화, 음보다 양이 훨씬 강한 천지의 구조 속에서 상극의 운(運)이 조성된다.
원리적으로 상극의 현상을 이해를 할 때는 서로 상(相) 자 이길 극(克) 자, ‘두 사물 사이에 서로 극한다’는 의미로, 본래 뜻은 한쪽이 상대를 물리친다, 제압한다는 말이다. 순수한 자연의 봄여름의 법칙, 대자연의 이법으로서의 상극을 영어로는 조정한다, 제어한다는 의미인 뮤츄얼 리스트레인(mutual restrain)으로 번역을 해야 한다.
자연 속의 상극(相克)은 투쟁 전쟁 죽음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 순수한 음양(陰陽)의 상극으로 ‘서로를 제어한다’는 의미다. 이 극의 이치가,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균형되고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음과 양 상호간의 작용을 조정 제어하는 조화의 법칙이 된다.
이 상극의 이법적 환경속에서는 그 상극 기운의 영향을 받아 서로 경쟁하고 전쟁을 하는 등 상호투쟁을 하게 된다. 문명 속에서 일어나는 이 때의 상극은 영어로 뮤츄얼 컨플릭트(mutual conflict)로 번역을 해야 맞다. 이렇게 자연의 상극과 문명의 상극이 의미가 다르다.
우리가 인간의 문명속에서 상극(相克)을 쓸 때는, ‘정말로 극이 너무 많아’ ‘장애가 너무 많아’ ‘넘어서야 될 장벽이 너무 많아’ 라는 의미로 쓸 때는, 인간 세상에서 터져나오는 모든 비극과 수많은 재앙들, 자연재해, 하루도 쉬지 않고 터지는 교통사고, 수많은 인간들끼리의 분쟁과 같은 그러한 비극의 근원적 원인으로서 상극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순, 갈등, 죄악, 전쟁, 모든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들이 여기에 다 들어간다.
이 자연의 상극과 문명의 상극 속에 기독교의 원죄(原罪) 문제,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무명(無明)과 업장의 문제가 다 들어간다. 선천문화권에서 인간론에 대해 언급한 숱한 문제들이 ‘상극(相克)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았다’는 그 한마디 말씀으로 다 풀어지는 것이다.
상극의 이치란 자연의 이법으로서 하늘땅이 만물을 다스리고 길러내는 생성, 창조의 법칙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한 이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길러내므로 인간의 역사, 문명속에서는 이 상극이 하루도 싸움 그칠 날 없는 비극적 세상을 만들었다.
선천은 상극의 이법이 인간 역사속에서는 상쟁(相爭)이 돼서 피비린내 나는 상호투쟁, 대결, 생사를 판가름 짓는 전쟁 전란으로 화해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웠고, 어찌할 수 없는 상극의 자연이법, 상극의 운수로 인해 선천의 모든 인간과 만물은 원한을 맺고 사는 상극적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상극相克의 천리가 인사人事로는 원한으로 맺히기 때문에, 인간역사의 뿌리깊은 원한의 갈등은 인간의 도덕적 교화만으로는 전혀 풀릴 수 없는 문제다.
선천 봄여름에는 인간의 모든 고통과 비극의 원인은 단순히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온 환경이 문제라는 것이다. 상극의 이치 때문에 조화와 균형이 깨져 있는 선천의 자연환경 자체가 비극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지금 지구에는 물, 마실 공기, 식량, 에너지 등이 부족하다. 언론에 공개된 미 국방부 비밀보고서를 보면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선천은 하늘과 땅과 인간과 신들의 세계조차 상극의 지배를 받으며 태어나고 살아왔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우주의 전 역사과정은 선천 우주의 봄여름천지가 만들어낸 하나의 연출이었다.
선천개벽으로 봄여름이 열려서 인간이 태어나 자라는 과정에서는 상극(相克)이 우주의 근본 질서가 되어 현실역사가 둥글어간다. 즉, 음과 양이 만물을 낳아 길러 분열하는 쪽으로 우주의 생명 질서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지구상에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상극이 인간역사의 경쟁원리가 되어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를 계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꺼꾸러트려야만 했다. 이것이 전쟁으로 확대된 것이다.
특히 종교전쟁의 역사를 보라. 얼마나 참혹한가. 거기에 무슨 신이 있고, 믿음이 있고, 정의가 있는가. 오직 독단과 죽음밖에 없다. 올바르게, 정의를 위해, 진리의 이름으로 행하려고 했으나 결국 서로 충돌하고 싸우고 죽였다. 여기서 세세연년 원과 한이 맺히고 쌓여온 것이다.
미국의 지성인 캔 윌버가 한 불교 승려에게 물었다.
“중국의 불교 역사에서 깨진 자가 얼마나 됩니까?” 이에 대해 승려가 “크게 잡아도 천만 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캔 윌버가 다시 “그럼 일본 역사에서는 얼마나 됩니까?” 하자 “낫 모어 댄 어 더즌(Not more than a dozen).” 이라 했다. 기껏해야 한 여남은 명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천종교 역사의 현주소다.
앞으로 오는 우주의 가을은 자연의 질서가 상생相生이요, 인간 역사의 질서도 상생이 바탕이 된다. 상생이란 무엇인가? 상생은 정음정양(正陰正陽)의 도수(天度地數)다. 하늘땅을 중심으로 말하든, 남녀의 인권문제를 얘기하든, 아니면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신의 관계가 됐든, 모든 음양의 부조화가 정正도수로 바로잡히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천지 이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은 왜 고통 속에 사는가?
기독교에서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었다고 한다. 구렁이로 상징되는 사탄의 꼬임에 빠져서 하나님처럼 똑똑해지려고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대가로 세세토록 인간들이 원죄의 씨를 안고 고통 속에서 산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양의 깨달음과는 잘 안 맞는 얘기다.
불교도 십이인연에서,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감각세계에서 근본무지인 어둠에 휩싸여 있다고한다.‘근본무명fundamental ignorance’에 휩싸여, 온갖 죄를 짓고 악업을 받고 육도윤회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와 그 근본 틀이 같다. 또 이 죄업이니, 악업이니, 윤회니, 하는 것이 선천의 상극 판에서는 어느 정도 맞는 얘기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설명할 수가 없다.
모든 인간의 고통과 불행과 비극의 문제는 어디서 오는 거냐?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선천이 상극의 운運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천에는 천지부모의 몸이 동북방, 양의 방향으로 23.5도 기울어져서 만물을 쏟아냈다. 동과 서가 부조화하고, 남과 북이 부조화하고, 남자와 여자, 모든 사물들 사이에 조화가 깨져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고 갈등을 하고 남을 죽이고 그러면서도 또 용서하면서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발전을 해 온 것이다. 선천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요, 정복의 역사다.
16세기에 남미의 인디언들 8천만 명이 스페인 정복군들에 의해 참혹하게 죽어 인디언들이 거의 다 멸망을 당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런 전쟁사가 너무도 숱하다. 미국에 정착한 백인들이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아프리카의 흑인 5천만 명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먹고, 짐승처럼 부리고 학대하고 죽였다.
천지의 질서가 바뀐다. 천지의 질서가 봄여름은 분열, 가을철은 통일이다
초목농사로 얘기를 하면, 봄에는 뿌리에서 기운이 발동해서 쫙 올라가 줄기를 향해서 뻗어나간다.
앞마당의 단풍나무를 보면 겨울철에는 이파리가 죽어서 아무것도 없었는데 3월이 돼서 봄비가 한번 내리니까 며칠 사이에 버찌가 줄기마다 나온다. 그러다 며칠 뒤에 보니까 이파리가 나와서 일주일 후에는 하늘을 다 덮어버렸다. 봄여름의 기운은 그렇게 발동하는 것이다.
기운이 하늘을 향해서 뚫고 올라간다. 그렇게 분열 생장을 하다가 가을이 되면 어떻게 되는가? 성장이 끝나면서 모든 기운이 뿌리로 내려가고 그 과정에서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 인간도 성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뿌리로 돌아가야 된다. 가을에는 근원으로 돌아가야 살아남는다. 이 가을개벽의 정신을 원시반본原始返本이라고 한다.
뿌리로 돌아가야만 인간으로서 열매 맺는 천지의 기운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와 나의 뿌리가 뭐냐? 부모와 조상이다. 원시반본의 가을 정신 때문에 나의 뿌리인 부모와 조상을 잘 위하지 않으면 열매 맺는 기운을 못 받는다. 생명이란 뿌리로부터 모든 기운을 받는다. 뿌리로부터 큰 기운을 받아야 큰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인생은 나 홀로 사는 게 아니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 아버지, 내 조상이 있다. 몇 십 대 몇 백 대 조상이 있다. 선천 봄여름, 내 조상의 모든 삶의 자취가 이번에 나에게 와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조상을 잘 받들어야 한다. 조상이 나의 생명의 근원이고, 내 생명의 힘이고, 모든 것을 극복하게 해주는 인생의 활력이다.
천지에서 인간을 내면, 인간은 자연 속에 문화를 창조하고 문명을 건설한다. 즉, 자연이 변화하는 길과 인간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역사의 과정, 즉 문명의 발전과정이 일치하는 것이다. “자연섭리라 하는 것은 천리가 성숙됨에 따라서 인간의 역사도 함께 성숙한다”는 말씀이다.
지금 역사가들은 천지의 큰 틀, 천지의 이법를 모르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라는 건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다. 시간의 대주기, 우주의 1년에서 천지의 계절이 지금 우주의 봄인지, 여름인지, 우주의 가을인지를 모른다. 시간의 소주기인, 하루 낮과 밤, 지구의 1년 사계절 변화 밖에 모른다. 이 우주에서 나를 내서 길러내는 천지부모의 손길을 모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