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키색의 유래]
오늘날 ‘카키색’이라는 말은 군복이나 모자, 가방처럼 거친 야외 활동에 어울리는 색을 떠올리게 한다. 회색빛을 머금은 황토색, 혹은 누렇게 빛바랜 녹색을 뜻하는 이 단어는 원래 영어 khaki에서 왔다. 그런데 이 영어 단어는 사실 영국 본토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19세기 인도에서 복무하던 영국군의 현실적인 필요에서 태어났다.
1840년대, 인도에 주둔하던 영국군은 여전히 본국의 전통 복장을 고수했다. 붉은색 튜닉과 하얀 바지를 입고 행진하는 모습은 제국의 위엄을 과시하기에는 좋았지만, 열대의 강렬한 햇볕과 먼지 바람 속에서는 불합리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펀자브 지방처럼 건조하고 황토 먼지가 심한 곳에서는, 눈에 띄는 빨간 군복은 은폐·엄폐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한 젊은 영국 장교 해리 번넷 럼슨(Harry Burnett Lumsden)은 이런 문제를 절감했다. 그는 병사들의 유니폼을 더 실용적으로 만들기 위해 현지에서 구한 면직물에 흙과 식물 즙을 섞어 물들이는 실험을 했다. 그렇게 나온 색이 바로 인도어(정확히는 페르시아어에서 차용된 힌두스탄어) khākī, 즉 ‘흙색’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럼슨이 시도한 ‘흙색 군복’은 곧 펀자브 경비대의 상징이 되었고, 1848년 제2차 시크 전쟁에서 그 실용성이 입증됐다. 황토빛 유니폼은 먼지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 은폐 효과를 발휘했고, 무더운 날씨에서도 비교적 편안했다. 이후 1857년 인도 반란(세포이 항쟁) 때 영국군은 전역에 걸쳐 이 색을 채택했고, 결국 카키색은 식민지 전쟁에서의 ‘실전 색상’으로 굳어졌다.
카키색의 군사적 효용성은 인도에서만 국한되지 않았다. 1898년 보어 전쟁,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전장 속에서 영국군뿐 아니라 전 세계 군대가 차례로 이 색을 받아들였다. 미군도 20세기 초 필리핀 전쟁과 멕시코 국경 작전에서 카키색 군복을 착용했으며, 이후 ‘올리브 드랩’과 같은 변형 계열로 발전했다.
흥미로운 점은, 카키색이 원래 단순히 ‘흙색’을 뜻하던 지역어였다는 사실이 오늘날 대부분 잊혀졌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카키’는 특정한 색채 견본이나 패션 용어로 느껴지지만, 그 뿌리에는 먼지 날리는 식민지 전장과, 실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니폼을 염색하던 장교의 발상이 있었다. 한마디로, 카키색은 제국주의의 그림자 속에서 태어난 ‘실용의 색’이자, 전장의 먼지를 머금은 이름인 셈이다.
그런데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카키색’에 대한 흥미로운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 위키트리에 실린 온라인 퀴즈, “어느 쪽이 카키색일까?”라는 질문에 한국인의 99%가 진한 녹색 계열을 고른다. 하지만 정답은 황토빛에 가까운 색이다. 독립군과 광복군이 입던 군복이 원래 황갈색 카키였지만, 해방 이후 국방색으로 불린 진한 녹색 군복이 보급되면서, 많은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서 카키는 ‘녹색’으로 자리 잡아 버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카키색은 군복을 넘어 패션의 세계로까지 흘러들었다. 전역 군인들이 그대로 입고 다니던 실용적인 옷차림은 전후 사회에서 ‘터프함’과 ‘실용성’의 상징이 되었고, 1960~70년대 히피와 반전운동 속에서는 또 다른 저항의 아이콘으로 쓰였다. 이후 디올이나 지방시 같은 패션 하우스가 런웨이에 밀리터리 룩을 올리면서, 카키는 더 이상 전장의 색이 아닌 세계적 패션 코드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야상 재킷과 트렌치코트, 모자와 가방에 흔히 쓰이는 카키색은, 원래의 ‘흙빛’에서 ‘군복색’, 나아가 ‘스타일의 색’으로 끊임없이 변주된 결과다.(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