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나 설처럼 큰 명절을 앞둔 때가 되면 가족과 고향이라는 단어가 더욱 깊게 다가온다. 마음만 먹으면 고향에 갈 수 있는 사람들도 그러하거늘 실향민이야 오죽하랴. 고향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임시 정착한 곳이 삶의 터전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그리움이 어린 땅이 있다. 바로 물길 하나 사이에 두고 북녘땅과 마주한 강화 교동도. 실향민의 그리움이 켜켜이 쌓인 그 섬에서 보낸 하루!
사무치는 그리움을 품은 섬, 교동도
<추천 코스>
교동제비집 → (도보 2분) → 대룡시장 → (자동차 7분) → 망향대 → (자동차 29분) → 강화평화전망대
실향민의 땅, 교동도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여행지
“전쟁이 그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금세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교동도 실향민들의 한결같은 소회다. 교동도는 북한과 바로 인접한 작은 섬이다. 섬에서는 육안으로도 북녘땅,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이 내다보인다. 원래 교동도와 연백 주민들은 왕래가 잦았다. 양쪽 주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생활했는데 한국전쟁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전쟁통에 교동도로 잠시 몸을 피했던 연백 주민들은 휴전선이 놓이면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게 됐다. 그렇게 그들은 가족과 생이별하며 실향민이 됐다.
교동대교 개통 후 관광 명소로 거듭났다.
실향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교동도에 삶의 터전을 꾸렸다. 논밭을 일구고 자연스레 시장도 형성됐다. 연백의 시장을 닮은 대룡시장은 2014년 육지와 연결되는 교동대교 개통 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1960~70년대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복고풍 시장으로 유명해졌다. 민간인통제구역 내 섬이라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외부인의 접근이 쉽지 않았는데, 덕분에 시장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다.
실향민 흔적 가득한 대룡시장
교동도 대표 명소로 자리 잡은 대룡시장
이제는 국숫집으로 변신한 교동이발관
처음 시장을 이끌었던 실향민 1세대들이 대부분 돌아가시고 외지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도 늘면서 예전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실향민 후손들이 대를 이어 영업하는 가게도 꽤 남아 있다.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교동이발관이다. 실향민 1세대가 수십 년 동안 운영해온 오래된 이발관은 지금은 국숫집이 됐다. 아버지가 은퇴하면서 딸들이 이어받아 국수를 판다. 옛날 이발소 모습을 최대한 유지한 채 테이블 몇 개 놓고 국수를 말아낸다. 이발소 의자며 거울이며 머리 감는 곳까지 그때의 흔적이 그대로다. ‘아버지의 손때 묻은 흔적을 지우고 싶지 않다’라는 딸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현재 교동이발관 모습
옛 모습을 담은 사진
이발관 근처에는 황세환 시계방이 있다. 역시 실향민인 황세환 할아버지가 50년 가까이 운영하던 곳으로, 주인장이 작고하면서 시계방은 그대로 시장 속 박물관이 됐다. 그밖에도 1950년대에 문을 열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연안정육식당과 1960년대에 개업해 3대째 운영 중인 대풍식당도 빼놓을 수 없는 실향민 가게다. 두 곳 모두 백년가게 인증 식당으로, 연안정육식당에서는 질 좋은 한우와 돼지고기를, 대풍식당에서는 황해도식 냉면과 국밥을 맛볼 수 있다.
대를 이어 운영 중인 대풍식당
채수로 국물을 내 깔끔한 황해도식 냉면
시장에서 꼭 맛봐야 할 먹거리는 이름부터 흥미로운 강아지떡이다. 곡창지대였던 연백평야에서 나는 찹쌀은 품질이 훌륭했고 그 찹쌀로 만든 인절미 맛은 더욱 일품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군량미 확보를 위해 떡을 만들어 먹지 못하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떡을 먹이기 위해 어머니들이 기지를 발휘해 만들어낸 게 강아지떡이다. 원래 인절미 모양 대신 길쭉한 타원형 모양으로 떡을 빚었다. 안에는 팥소를 넣고 겉에 콩가루를 묻혔다. 얼핏 보면 갓 태어난 강아지 같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즉석에서 강아지떡을 빚어낸다.
갓 태어난 강아지를 닮은 강아지떡
청춘부라보에 가면 찹쌀로 즉석에서 강아지떡을 빚어내는 신기한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운이 좋다면 주인장이 내주는 뜨끈뜨끈한 맛보기 떡이 덤으로 따라온다. 찹쌀부터 팥, 콩가루 등 떡을 만드는 모든 재료는 교동도에서 난 농산물을 사용한다. 청춘부라보는 단순한 떡집이 아니다. 실향민들이 모이는 사랑방이자 그네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전하는 공간이다. 강아지떡 역시 실향민들의 이야기를 후대에 전하는 차원에서 판매하게 됐다.
실향민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청춘부라보
대룡시장에서 먹어야 할 또 다른 메뉴는 바로 쌍화차.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게 요즘 여행 트렌드라지만 레트로 감성 가득한 대룡시장에서는 다방에서 쌍화차를 먹는 게 국룰이다. 각종 견과류에 달걀노른자까지 동동 띄운 쌍화차는 ‘마신다’보다는 ‘먹는다’라는 표현이 좀 더 어울린다. 쌍화차로 유명한 곳으로는 교동다방, 궁전다방, 제일다방 등이 있다.
대룡시장에서 만나는 오래된 다방들
대룡시장에서 만나는 오래된 다방들
“예전에는 교동도에 사람이 많아서 시장도 번화하고 다방도 꽤 있었지. 장날이면 실향민들이 다방에 모여서 고향 얘기 나누고 그랬는데, 지금은 실향민들도 많이 돌아가시고 옛날 다방도 거의 다 문 닫고 몇 안 남았어.” 교동다방 주인장이 말한다. 경상도 출신 주인장은 실향민과 결혼한 언니를 따라 교동도에 정착했다. 교동다방의 50년 넘는 역사 중 20년 넘는 세월은 그가 담당했다. 숙련된 전문가의 손끝에서 완성된 쌍화차 한 잔에 세월의 깊이가 느껴진다.
달걀노른자 동동 띄운 교동다방 쌍화차
달걀노른자 동동 띄운 교동다방 쌍화차
대룡시장 여행을 추억할 기념품을 챙기려면 교동스튜디오와 송화칩스에 들러보자. 교동스튜디오에서는 옛날 교복을 입고 흑백사진을 남길 수 있다. 송화칩스는 뉴트로 감성의 ‘기름병 밀크티’와 ‘깡통 감자칩’으로 유명하다. 밀크티, 커피, 사자발약쑥라테 등 각종 음료는 시장 방앗간에서 종종 보던 기름병에, 가마솥에서 튀겨내는 감자칩, 고구마칩은 페인트통 같은 깡통에 담아내 비주얼이 이색적이다.
옛날 교복 입고 사진 촬영하는 교동스튜디오
옛날 교복 입고 사진 촬영하는 교동스튜디오
대룡시장 인기 뉴트로 스폿, 송화칩스
독특한 담음새로 눈길을 끈다.
기름병에 담아내는 음료
페인트통에 담은 감자칩
교동도 이야기가 시작되는 교동제비집
마을 관광안내소 역할을 하는 교동제비집
시장 인근 교동제비집 방문은 필수다. 교동도 관광 안내와 전시, 체험, 농산물 판매가 종합적으로 이뤄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교동도 여행 출발점으로 삼아도 좋다. 근데 왜 이름이 제비집일까? 제비가 연백평야의 흙을 물고 와 교동에 제비집을 짓는다는 이야기를 담은 이름이다. 실제 교동도 실향민들은 당신들은 가지 못하는 고향 땅을 오가는 제비들을 귀한 손님으로 여겼다.
교동신문 만들기 체험
교동신문 만들기 체험
교동제비집은 주민들이 운영하며 생생한 로컬 이야기를 들려주고 교동신문 만들기 같은 체험도 진행한다. 디지털로 교동의 역사와 명소를 선택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해 넣으면 신문이 완성된다. 종이로 인쇄까지 하면 나만의 교동도 신문 완성!
모두의 그리움을 담은 망향대
망원경을 통해 북녘땅을 자세히 볼 수 있다.
교동도에서 명절이 되면 유독 분주해지는 곳이 있다. 섬 북서쪽 밤머리산에 자리한 망향대로, 실향민들이 뜻을 모아 조성했다. 실향민들은 이곳에서 고향 땅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내는데 물길 너머 북녘땅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망원경을 통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 다니는 사람들까지 보여 신기할 정도다. 그래서 실향민들은 더 애달프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곳을 갈 수 없으니 말이다.
망향대에는 잠시 쉬어갈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기어코 여기까지 올라오시는 어르신들도 많아요. 죽기 전에 고향 땅을 더 보고 싶다고.” 망향대에서 이동식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장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한다. 고향 땅이 그리운 실향민 어르신부터 실향민이었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을 그리워하는 후손들까지, 연중 많은 이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단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으면 어머니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저 땅을 보러 온다며 울고 가는 사람도 있지요.” 망향대에 놓고 간 많은 이의 그리움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북녘땅이 지척에 내다보이는 강화평화전망대
북한과 인접한 강화평화전망대
강화도 최북단에 조성한 강화평화전망대도 북한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전망대에서 북한까지 최단 거리가 불과 2.3km 정도. 송악산, 예성강, 연백평야, 개성공단 등이 내다보인다. 거리가 인접한 만큼 북녘의 생활 모습이 자세히 보여 실향민들도 많이 찾는다. 야외에는 실향민들을 위한 망배단도 마련해뒀다.
육안으로, 망원경으로 북녘땅을 볼 수 있다.
전망대와 함께 북한 생활상을 소개하는 전시관과 강화 역사 및 전쟁사를 주제로 꾸민 전시관,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아내는 공간 등이 조성되어 있다. 북한 땅을 조망하는 전망대는 실내외에 마련되어 있는데, 3층 전망대에서 상설 해설 프로그램이 진행되니 참고하자.
야외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풍경
여행정보
※여행 팁 : 교동도와 강화평화전망대 방문 시 검문소를 거쳐야 하므로, 신분증을 꼭 챙기자.
대룡시장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대룡안길54번길 일원
문의 : 032-934-1000(교동제비집)
이용시간 : 매장별로 다름
교동제비집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교동남로 20-1
문의 : 032-934-1000
이용시간 : 하절기 10:00~18:00, 동절기 10:00~17:00
입장료 : 무료
망향대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지석리 산70
문의 : 032-934-1000(교동제비집)
이용시간 : 상시
입장료 : 무료
강화평화전망대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전망대로 797
문의 : 032-930-7062
이용시간 : 3~11월 09:00~19:00, 12~2월 09:00~17:00
입장료 : 어른 2,500원, 청소년 1,700원, 어린이 1,000원
홈페이지 : www.ghss.or.kr/user/facilities/tour/ghTower.do
글·사진 김수진(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25년 9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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