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강화 성지순례 행복한 이여은
주제문 : 강화 성지순례를 탐방해 보자
강화도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천광역시의 작은 섬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숨 쉬는 기독교 역사박물관이라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기독교 유적지가 많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강화 교산교회 선교역사 박물관이 있다. 사실 이 곳도 교회였지만, 선교 역사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온수리 성당이 있다. 온수리 성당은 한옥 양식으로 첫 번째 아니 최초의 역사가 잠들어 있다. 그것의 가치가 잘 느껴진다. 나는 강화도 탐방을 하며 온누리 교회도 선교 역사박물관이 있었으면 했고, 강화에는 많은 기독교 유적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제목 : 정약용의 고민 이루는 성다윤
주제문 : 슬퍼도 용기를 내자
이 책에서 정약용은 시와 책을 많이 쓴다. 자신에 고민이 담긴 시도 많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만큼 정조라는 큰 버팀목이 없어진 정약용은 아버지를 잃은 이상으로 서글펐고, 세상이 두려웠던 것이다.’ 이다. 아버지를 잃은 것보다 더 슬프면 얼마나 의지했을까? 언젠가는 자신이 의지하는 사람이 떠날 것이다. 언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정약용에게 또다른 버팀목이 나타난 것처럼 그 사람만큼 큰 버팀목이 나타날 것이다. 정약용이 슬펐지만 곧 잘 일어날 것처럼, 나도 슬픈 일이 있으면 곧 잘 일어날 것이다.
제목 : 고인돌 박물관 사랑받는 김수현
주제문 : 신기한 고인돌 박물관
내가 이 책 중에서 가장 첫 차시인 ‘강화도는 고인돌 박물관’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왜냐하면 고인돌 박물관이라는 제목에 내가 아는 단어가 나와서 인 것 같다. 어쨌든 고인돌에 있는 돌 중에 유명한 돌은 부근리 고인돌, 내가면 고천리 고인돌, 하점면 부근리 고인돌 등등이 있다. 그리고 내가 고인돌 박물관에 가 보면 책에 나온 고인돌이 아니고 내가 직접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정결한 이나윤
강화도
우리의 강화도
강화도를 모르면 안 된다.
강화도는 우리의 유산이다.
그러니
강화도를 지키자!
고인돌도
삼랑산도 강화도에
그러니
우리는 커서 강화도를 지키자!
제목 : 강화도 정직한 정민기
강화도에는 4만 여개의 고인돌이 있다고 한다. 덮개 돌의 길이가 7.1미터고 너비는 5.5 미터고 덮개돌의 무게는 50톤이나 나간다고 한다. 고딘돌은 대부분 돌의 크기가 크다. 성혈이라는 구멍도 있다. 마니산은 해발 469미터로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꼭대기에서 바다랑 마을이 다 내려보인다고 하니 야경이 멋지겠다. 아침에 갔었는데 다음에는 밤에 가봐야겠다. 강화도 하면 삼별초도 생각난다. 고려는 원이라 화친했지만 삼별초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싸운 정신이 대단하다. 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가질 것이다. 오읍약수는 하늘 땅 신 임금 백성이 함께 울었다는 뜻이다. 물맛이 좋다고 하니까 가서 먹어보고 싶다.
제목 : 고인돌 천국이자 최초의 세례자가 나온 강화도 소망하는 민시야
주제문 : 강화도에 대해 책도 많이 읽으며 알아보자.
이 책은 강화도에 대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고인돌에 관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왜냐하면 고인돌에 대해 알게 되었고 강화도에서 정말 유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고인돌에 대해 몰랐고 고인돌이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무덤이고 종류에는 북방식 고인돌, 남방식 고인돌, 개석식 고인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인돌을 본 적이 없어서 꼭 한번은 보고 싶다.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세례자가 강화도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강화도에 대한 기독교 역사가 궁금하다. 이 책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는데 기독교 역사를 좀 더 찾아봐야겠다.
나는 이 책을 읽은 후 강화도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2021 Rise up camp 에 가지 못하더라도 우리 가족끼리 가보고 싶다. 또 강화도에 대해 많이 알아보고 싶다. 앞으로 강화도에 대한 책을 열심히 읽어야겠다.
용감한 이의찬
조선시대 정조가 지은 수원시의 성곽 건축물.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록되었고 치밀한 사전 계획 하에 만들어진 계획도시다. 또 수원화성은 수 차례의 자연 재해와 한국전쟁 당시 파괴된 것을 일부 복원한 상태이다. 규칙에 맞지 않지만 조선시대에 수원화성을 계획하면서 그림과 글로 설계도와 내용을 철저하게 남겨놓은 화성성역의궤 덕분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었다는 점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실제로 수원과 화성은 같은 고을로 수원화성 축조 전까지 수원부의 원래 읍치는 현재의 화성시 화산동 일대였으나 바로 이 곳에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원을 조성하면서 기존 읍치를 밀어버리고 수원화성을 축조하면서 읍치를 이전했다. 또한 수원부의 진산인 화산은 수원 고을의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고 이를 본따 이 성의 이름을 화성이라 짓게 된 것이다. 1793년 수원부가 유수부로 승격되면서 수원부사를 화성유수로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라 불렀다.
수 원화성은
원 래 아주 튼튼하다
화 성인
성을 지을려고 거중기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