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희 시인님의 낭독입니다
살구가 떨어져
하늘이 가벼워진 이유는
늙은 별을 내려놓듯 밤새
볼이 불콰한 살구 몇을 버렸기 때문
밤이 툭툭 터지는 바람에
놀란 쥐똥나무 꽃이 가득 뛰쳐나온 길을 걷다 보면
고향 집 뒤꼍으로 이어질 듯
참한 살구나무가
장독대 건반의 도, 레, 미를 손가락 끝으로 짚을 때마다
반음씩 굵어지던 살구
살구가 시큼 달콤 구르고 굴러 새끼들 입으로 들어가길 바라는
할머니의 채근은 아침으로 바뀌죠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어요
떨어져 애틋한 살구를 굽어보는 오월은 다정합니다
양손 가득 공손히
모셔온 살구는 할머니와 항렬이 같고요
시큰둥해지면 어디 에이드에 댈까요
잘 친 사기처럼 뺀질뺀질하게 최대한 말랑말랑하게
그러다 보면 몇 알의 달콤한 문장이 살구를 따라 발효되고요
바람 없이도 때가 되면 살구가
나뭇가지를 건너오듯이
나를 건너온 한 편의 시가
또 다른 나를 불러 다정하더라는 것, 요즘 알아가는 중이에요
손진은 시인님과 박숙경시인의 대담 순서입니다.
좋은말씀으로 유익한 시간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플룻연주 두번째 무대입니다 (이혜성&허나연)
모란동백
4월과 5월의 장미
연이은 두곡의 연주 즐겁게 잘 감상했습니다.
최영선님의 낭독입니다
비산동 그, 집
왼쪽 머리카락이 몽땅 잘린 딸아이가 돌아왔다
웃다가 들킨 낮달 혼자만 바깥에 세워두고
문고리도 없는 미닫이문을 닫고서
집주인도 아닌, 내가 서러워 괜한 말을 마구 쏟아냈다
화난 엄마가 처음인 듯
아이는 다섯 살처럼 울었고
울던 울음을 낚아채고 주인집 여자가 자기 딸을 두들겨 패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집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집에 있는 여자들은 아이를 돌보며 마늘을 까거나 알밤을 깎거나 우산을 꿰매거나, 가만히 놀지는 않았다
비산동이지만 가난했고 날개가 없었지만 자주 모여 밥을 비벼먹기도 했다
가끔은 없는 사람의 뒷말들이 귀신처럼 골목을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온 여름 혈서만 쓰다가 열매 하나 매달지 못한 석류나무가 작은 마당을 지키던 집, 연탄아궁이 하나에 찬장 하나가 전부였던 부엌, 연탄재를 들고 청소차를 따라가다 엎어졌는데 아픈 곳 하나 없는 기억, 마당 수돗가에서 비 맞으며 설거지와 빨래를 해도 손 시리지 않던, 지금은 희미해진 동네가 있었다
오래 문밖에 세워둔 낮달에게 이제 겨우 미안하기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