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6.25전몰군경유자녀 미 수당 최상영49수석부위원장님의 글을 옮겨 왔습니다>
故 백선엽 장군 국립 대전현충원 안장 “전사한 전우들과 함께 하고 싶다”
6·25전쟁 영웅 故 백선엽 장군님 우리 아버님과 전우이셨다
6·25전몰군경신규승계유자녀 비대위 김화룡 위원장께서는 지난 13일 서울아산병원 고 백선엽 장군님의 빈소를 찾아 조문 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6·25전쟁에서 전사하신 저희 아버님과는 전우 이셨습니다, 며 국가에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내신 6·25전쟁 영웅에 대한 예우가 없고 원하셨던 서울 현충원 전우들 곁에 안장되지 못하시게 되어 크게 분노를 느낀다며 위로의 말씀드리고 국군장으로 조문객을 맞이해 주신 김정수 중장님께 백 장군님의 공적을 지켜 달라 하였습니다.
고 백선엽 장군님은 1920년~2020년 평남 강서 출생으로 대한민국 육군 제1사단 사단장, 육군 제1군단 군단장, 제7대 제10대 육군참모총장, 제4대 합동참모총장을 역임하셨으며 1953년 6·25전쟁 공훈을 인정받아 육군 대장으로 진급하여 국군 최초의 4성 장군이라는 영예를 얻으셨으며 6·25전쟁 휴전 뒤 한국군 현대화에 전적과 업적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다부동 전투〛 육탄 저지로 전세 뒤집은 6·25전쟁 “최대 혈전“
다부동은 대구 방어에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다부동을 중심으로 북서쪽에는 유학산이 북쪽에는 횡격실을 이루고 있고. 동쪽에는 지역 내에서 가자 높은 가산〚902m〛이 있어 방어에 유리하였다. 반면 6·25전쟁 중 다부동 방어선이 돌파되면 10km 남쪽의 도덕산〚660m〛 일대까지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대구가 적 포병 사격의 사정권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6·25 전쟁 중 국군 제1사단 ‘328고지〚석적면〛 유학산〚839m〛 741고지(가산면 금화리 902고지를 연결하는 약 20km의 방어선은 최후의 보루였다. 국군 제1사단은 사단 좌측에서 왜관 낙정리〚의성군 단밀면 다부 북방 43km〛를 방어하고 있던 미 제25사단이 8월1일 경남 마산으로 이동하게 됨에 따라 이 지역을 맡아 제11·12·15연대 등 3개 연대로 북한군의 남아를 막는 지연전을 펼쳐 왔다. 8월12일에 주저항선인 낙동강 방어선선으로의 철수 명령에 따라 이날 밤 8시 다부동 일대의 주저항선〚Y선〛으로 철수를 시작 하였다. 사령부를 동명 초등학교에 두고 예하 3개 연대에 대해 방어 지대를 부여하였다.
국군 제1사단은 이들 지형의 이점을 활용해 다부동 일대에 설정된 주저항선에서 대구를 공략하려는 북한군 3개 사단을 상대로 낙동강 방어 작전중 치열한 혈전을 벌였다. 다부동 일원에서는 대구를 놓고 피아(彼我) 간에 유학산 전투, 837고지 전투, 674고지 전투, 볼링장 전투, 가산산성 전투, 등 낙동강 방어선 상 뿐 아니라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가운데 837고지는 대구 사수의 최고 요충지였고, 유학산은 아홉 번, 328고지는 무려 열다섯 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뀔 정고로 피아간에 물러설 수 없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1사단을 이끈 백 장군은 후퇴하려는 한국군 병사들을 가로막고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저 사람들(미군)은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순 없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고 말했다.
국군 제1사단은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미 8군 사령부에 병력 증원을 요청하였고, 미 8군사령부에서는 미 제27연대〚마이켈리스 연대〛를 신속히 지원하고, 이어서 미 제23연대를 추가 배치하였으며, 육군본부도 1개 연대를 추가 배속시켰다. 이렇게 병력 증가을 지원받은 국군 제1사단은 낙동강 방어선 구축 이래 북한군의 ‘8월공세’와 ‘9월공세’를 방어하고 나아가 이를 격파함으로써 위기에 빠진 전황을 타개하였다.
이후 국군 제1사단은 신녕〚新寧) 서쪽 지역으로 이동하여 팔공산·가산 전투를 수행한 후 유엔군의 총 반격전에 가담하였다. 특히 다부동 전투는 55일간이나 계속되었으며, 북한군 2만 4천여 명과 국군 1만 여명이 죽거나 다치는 인명 피해를 냈다. 그 결과 당시 투입된 북한군 3개 사단에 치명적인 패배를 안겨 주어 전세를 역전 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6·25 전쟁사에서 다부동 일원에 벌어진 전투는 국군의 위대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다부동 전투가 벌어진 칠곡은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피로 지켜낸 ‘전쟁 성지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전세를 역전시키고 나라를 지켜낸 호국의 성지이다. 전투는 8월1일부터 9월24일까지 55일간 벌어졌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진 이름 모를 병사들 속에는 수많은 최승갑이 있었다. 아내와 자식을 두고 온 아버지, 밤마다 어머니를 그리워했던 어린 학도병들이 다부동에서 목숨을 바쳤다. 한 번의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전우의 절반을 잃으면서도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대한민국이었다, 이것이 오늘의 6·25 승리다.
백선엽 장군 유언 “전사한 전우들과 함께하고 싶다”
향년 100세 故 백선엽 장군님은 국군장으로 2020년 7월15일 국립 대전현충원 장군 제2묘역에 안장되어 6·25전쟁 당시 입으셨던 미군 전투복과 같은 옷차림으로 “6·25전쟁 중 잃은 전우들을 생각하며 가슴 아파했다” 전우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장군님의 생전 유지를 받들어 허토의식에 따라 칠곡 다부동을 비롯 경기도 문산 파평산, 파주 봉일천, 화천 소토고미, 안성 입장초교 등 격전지 8곳의 흙을 품에 안고 전우들 곁에서 영면 하셨습니다.
2020년 7월 17일대한민국 6·25전몰군경신규승계유자녀 비상대책위원회
첫댓글 정말 잘 하셨습니다
보훈단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