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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2: 8 물이 모인 못 같더니 - 나 2: 10 주민이 낙담하여
나 2: 8 물이 모인 못 같더니 -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 보는 자가 없도다. )
저자는 물의 이미지를 살려서 생생하게 니느웨의 운명을 풍자한다.
1]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니느웨는 그들이 가진 막강한 힘을 굳게 믿고 그들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였다.
게다가 성 주위를 둘러싼 물로 인해 어떠한 외세의 침입에도 끄덕없이 유지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Calvin).
또한 '물이 모인 못'은 니느웨의 인구를 상징하는 것으로 많은 인구는 고대 사회에서 힘의 상징이었다.
그렇지만, 본 절은 앗수르의 상황이 어렵게 되자, 썰물 때 물이 재빨리 빠져나가듯이 니느웨 군사들은 자신의 수비 지역을 사수하라는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아날 모습을 묘사한다(C. E. Armerding).
2]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니느웨가 망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이다.
(1) 앗수르의 패망은 스스로 심어서 거둔 것이다.
탐욕 때문에 - 영토와 재물을 약탈하려고 열국을 짓밟고 전리품을 자랑했다. 정복지에서 조공으로 착취했다.
잔인해서 - ‘날개 달린 사자’를 자처하여 횡포했다.
거짓 행위 - 간사한 술책으로 미혹하여 조약을 맺고 어겼다.
(2) 긍휼 없는 자에게 긍휼 없는 심판이 예비 되었다.
니느웨의 권세는 힘센 사자와 같았지만 심판이 이르면 “사자 굴이 어디 있느냐?” 빈정대는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11).
앗수르의 영화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만 남았다(13).
세계 만방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다.
(3) 모으기만 하는 물웅덩이
당시 최강대국의 수도로 번창하고 풍부하였던 니느웨를 ‘물이 모인 못’ 같았다고 표현했다(8).
이는 거주하는 인구의 많음을 상징하고 있으며, 인구수는 고대 사회의 세력을 말한다.
니느웨는 ‘물이 모인 못’ 같이 모아놓은 재화를 자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무자비한 침략에서의 전리품이었고 정복한 나라로부터 수탈한 것이었다.
(4) 고인 물은 썩는다.
더불어 누리지 못하면서 끌어모으기만 하는 니느웨의 재물은 빼앗긴 사람들의 원성이 하늘에 사무치게 했다.
(5) 웅덩이 물에 불순한 것이 섞이면 쉽게 썩어서 악취를 낸다.
앗수르는 악하게 모은 재물이 심판을 부른다는 사실을 몰랐다.
썩은 물웅덩이는 메우거나 둑을 터뜨려서 말려야 한다.
그날(심판)이 오면 니느웨의 자랑이던 인구가 불러도 돌아볼 틈 없이 뿔뿔이 달아날 것이다.
무자비한 침탈로 쌓은 니느웨의 영화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침공당하고 침탈당할 것이다.
하나님은 세계의 주관자이시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바르게 모으고, 바르게 나누지 못한다면 무엇을 모아도 헛수고일 뿐이다.
나 2: 9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 은을 노략하라. 금을 노략하라.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함이니라. ( 은을 노략하라. 금을 늑탈하라.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함이니라. )
수고하고 노력하였는데도 그 수고와 노력한 만큼의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헛된 수고야 말로 참으로 아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수고, 노력한 것이 제대로 남은 것이 없이 다 없어지고 만다면 차라리 수고하지 않음보다도 못하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전도서를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 행하는 인생들의 해 아래에서의 모든 수고가 헛됨을 교훈하였다.
본문은 위로자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나훔 선지자가 니느웨의 멸망에 대한 예언으로 당시 최강대국의 수도로 번창하고 풍부하였던 니느웨가 패망의 참상으로 ‘모으고 저축해도, 움키고 취해도’ 다 빼앗겨 남은 것이 없는 비참한 모습을 미리 보여 주었다.
1] 은을 노략하라. 금을 노략하라.
앗수르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면서 많은 재물을 빼앗기는 모습이다.
앗수르 사람들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빼앗은 물질로 많은 풍요를 누렸다.
앗수르는 초대 왕 디글랏 빌레셀의 치세 때(B. C. 1115-1076)부터 전쟁에서 빼앗은 전리품을 자랑했고, 앗수르에 복속되었던 나라들은 조공 제도로 그들의 자원을 상당히 수탈당했다.
2]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함이니라.
그러나 본 절은 그러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 앗수르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모든 재물을 노략당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 같은 예언은 바벨론 연대기에 기록된 대로 다음과 같이 성취되었다.
"그들은 성과 신전 지역에서 많은 물건들을 가져갔다."(Gailey).
나 2: 10 주민이 낙담하여 -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폐하였도다. 주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무하였도다. 거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
1]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폐하였도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부카 우메부타 우메불라카'는 히브리적인 리듬과 두운(頭韻)을 잘 활용하여 독자로 하여금 깊은 인상을 받게 한다.
이것을 직역하면 '텅비고, 또 공허하고 황폐하였다'라고 할 수 있고, 세 히브리어 모두 비슷한 말로 앗수르의 황량한 상태를 매우 강조한다.
앗수르가 유다를 망쳐 놓았다.
그러나 유다의 자력으로는 도저히 국권을 회복할 형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주님은 원수들을 심판하셨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른다.
그것은 우리에게 독이 되고 만다.
(1) 하나님은 특별한 방법으로 심판을 진행하신다.
매우 위력적인 무적의 용사들이 동원되었다.
최신 무기가 동원된 특수부대였다(1: 5).
속전속결로 감히 당할 자가 없었다.(1: 6-7).
(2)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자는 아무도 없다.
인간들이 경쟁적으로 개발한 모든 최신의 무기는 심판날을 위해 예비한 도구일 뿐이다.
도적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방범 창살 때문에 긴급히 만난 화재를 피하지 못하고 불에 타 죽었다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심판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예고가 된다.
(3) 심판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린다(10).
남은 것은 황폐한 쓰레기뿐으로 모든 장식품은 다 털렸고 쓸만한 것은 모두 약탈당했다.
남은 것은 상처와 슬픔으로 가슴에는 공포가 쌓이고 사지는 벌벌 떨리고 공포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러므로 욕심이라는 미련을 아낌없이 청산하자.
욕망의 바벨탑은 모두 무너져버릴 존재들이다.
따라서 헛되고 분요한 모든 욕심을 청산하자.
그리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자. 주의 강림이 가까이 오고 있다.
2] 주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주민이 낙담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브 나메스'는 직역하면 '마음이 녹아내린다'(hearts are melting)라는 의미로 개역 성경에서 번역된 '주민'은 의역이다.
이처럼 육체가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것은 히브리 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반적으로 두드러진 특징이다.(C. E. Armerding).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성도들에게 부탁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 33) 하셨다.
그리하여 바울 사도는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 6: 17)라고 하였다.
(1) 살기 위해서 국가를 버렸다.
본문 8절은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곳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하였다.
바벨론이 니느웨를 칠 때에 백성들은 성을 즉 나라와 민족을 버리고 도망하였다.
이는 사람이 먼저 생각하는 것은 자기 생명인 것을 말한다.
그렇습니다. 천하보다도 귀한 것이 있다면 사람의 생명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마 6: 25)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물질을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서 목숨을 건 도박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우리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때로는 국가도 버리고 부모도 버릴 수 있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생의 사명을 위해서는 신앙 안에서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부모를 공경하며 값진 일을 해야 한다.
* 욥 2: 4 -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2) 모아 놓은 것 다 빼앗겼다.
본문 9절은 "은을 노략하라 금을 노략하라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함이니라"하였다.
니느웨는 많은 은, 금 보화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나라에서 착취한 것으로 결국에는 바벨론에게 빼앗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늘의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것을 잠시 맡아 있는 것뿐이다.
바울 사도는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 4: 7)라고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의 것은 이 세상에 있을 때만 필요하지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아무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도 언제까지나 내것이라고 보장할 수도 없다.
그래서 땅의 것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하였다.
* 딤전 6: 17-19 -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남을 학대하거나 착취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반드시 보복을 당하기 때문이다.
* 사 33: 1 - 너 학대를 당하지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이고도 속임을 당하지 아니하는 자여. 화 있을진저. 네가 학대하기를 그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
(3) 세상 기쁨을 잃었다.
본문 10절은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무하였도다 주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라고 하였다.
건강할 때의 기쁨은 건강이 나쁘면 기쁨도 없어지는 것이고 재산이 많을 때의 기쁨은 재산을 잃게 되면 기쁨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기쁨을 찾아야 한다.
* 빌 4: 4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예수 안에서는 딴 근심이 없다. 그리고 죄를 회개하는 기쁨은 또한 더욱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 행 3: 19 -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따라서 선을 행하는 기쁨 또한 측량할 수 없는 기쁨이다.
* 전 3: 12 -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그러나 니느웨는 세상의 것에서 기쁨을 누리고 살다가 세상의 것을 잃고 나니 기쁨 자체를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땅의 것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세상의 것은 지나가기 때문이다.
결론
땅의 것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없다.
그러므로 땅의 것에 소망을 두지 말고 모든 것을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두고 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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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희망은 언제나 오늘 부터 입니다.
언제나 함께하는 마음과 좋은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건강 하시고 행복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