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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조지현(內助之賢)
현명한 아내의 내조라는 뜻으로, 아내가 집안 일을 잘 다스려 남편을 돕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內 : 안 내(入/2)
助 : 도울 조(力/5)
之 : 갈 지(丿/3)
賢 : 어질 현(貝/8)
(유의어)
내조지공(內助之功)
출전 :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후비전(后妃傳)
아내가 남편을 돕는 것을 내조(內助)라 한다. 남녀의 역할 구분이 엄격했던 옛날부터 남자는 바깥일을 하여 식구들을 책임졌고 여자는 집안에서 뒷받침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래서 남편을 도와 크게 출세시킨 아내를 ‘내조의 女王(여왕)’이라며 칭송했다.
남편을 가정에서 도운(內助) 아내의 현명함(之賢)을 이르는 이 말은 내조지공(內助之功)과 같은 말이고 줄여서 내조 또는 내보(內輔)라 하기도 한다. 중국 삼국시대(三國時代)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曹丕)가 문제(文帝)가 되고 왕후를 정할 때 한 신하가 반대하면서 올린 상소에서 유래했다.
조조가 세력을 떨칠 때 남군태수(南郡太守)로 있던 곽영(郭永)이란 사람에게 영특한 딸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곽영은 ‘내 딸이 여자중의 왕(吾女中王也)’이라 자랑했다. 조조가 위왕이 됐을 때 딸 곽씨(郭氏)는 동궁(東宮)으로 갔고, 조비를 왕세자로 정할 때 여러 계책으로 공을 세웠다.
문제가 즉위한 뒤에 황후를 정하는데 곽씨는 반대에 부딪쳤다. 곽씨가 미녀로 이름난 견후(甄后)를 참소하여 죽게 만들기도 하는 등 악행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사 삼국지(三國志)의 위서(魏書) 후비전(后妃傳)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조비가 곽씨를 황후로 삼으려 하자 왕실 경비의 감독관인 중랑(中郞) 잔잠(棧潛)이 나섰다. "옛날 제왕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 밖에서 도왔을 뿐만 아니라, 안에서도 돕는 바가 있었습니다(在昔帝王之治天下/ 不惟外輔 亦有內助)." 잔잠은 견후 살해의 경위 등으로 보아 곽씨가 내조의 공을 세울 수 없다고 보고 은근히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잔잠의 의견을 묵살하고 곽씨를 택했다.
오늘날에는 남자와 대등하게 사회 활동하는 부인도 많고, 집안에서 가사를 전담하는 남편도 많아 외조(外助)라는 말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집 안에서 밖으로 일 나가는 사람을 도우니 이것도 내조 아니냐고 하겠지만 부인을 아직까지 안사람이라 하니까 내외조 구분은 어쩔 수 없다. 그렇더라도 남녀공학의 학교에서 여학생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어렵다는 사시, 공시에서 합격자가 남자를 압도하니 내외라는 말도 바뀔지 모르겠다.
내조지현(內助之賢)
내조(內助)란 내부에서 하는 원조라는 뜻으로, 아내가 집안일을 잘 다스려 남편을 돕는다는 말로 쓰이고 있으며, 내조지공(內助之功)이라고도 한다.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위(魏)나라 문제(文帝) 조비(曹丕)의 황후(皇后)인 곽씨(郭氏)는 군(郡)의 장관인 곽영(郭永)의 딸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똑똑하였으며 곽영이 "내 딸은 여자 중의 왕이다"라 말하여 '여왕'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조(曹操)가 위나라 왕이 되고 나서 후계자로 장자(長子)인 조비를 정할 것인가, 똑똑하고 문장이 뛰어난 조식(曹植)으로 정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나이와 장자라는 명분으로 조비를 황태자로 정하였다. 그러나 뒤에 조비의 황후 곽씨가 책략(策略)을 썼다는 설도 있다.
조비가 즉위하자 조예(曹叡:3대 명제(明帝))를 낳은 견후(甄后)를 참소(讒訴)하여 죽였는데, 머리로 얼굴을 덮고 겨로 입을 틀어막은 채로 매장하였다고 한다.
이후 곽씨를 황후로 삼으려고 하자 중랑(中郞: 궁중 宿衛의 감독관)인 잔잠(棧潛)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상소하였다. "옛날 제왕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在昔帝王之治天下 재석제왕지치천하) 밖에서 돕지 않으면 안에서 돕는 것이 있었다(不惟外輔 亦有內助 불유외보 역유내조). 다스려지고 어지러움이 이로 말미암고 성하고 쇠하고 이로 쫓아 된다(治亂所由 盛衰終之 치란소유 성쇠종지)." 위지(魏志) 문덕돈후전(文德敦后傳)에 나온다.
이어서 경계해야 할 전례(典例)로 주역(周易)이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기록된 내용을 인용하면서, 견후 살해의 경위 등으로 보아 내조의 공을 세울 수 없는 위인(爲人)으로 보고서 신분이 천한 사람을 귀한 자라에 앉히는 위험을 말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 말을 듣지 않고 곽씨를 황후로 삼았으며, 여기서 '내조지공'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남편의 사회생활이나 출세에 미치는 아내의 도움을 내조의 공이라고 말하는데,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지면서 외조지공(外助之功)이라는 말도 요즘에는 자주 쓰인다.
잔잠의 상소문, '내조지공', '내조지현'
조비(曹丕)는 조조의 3남이자 무선황후 변씨의 소생이다. 원래 위로 조앙(曹昻)과 조삭이란 이복형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젊은 나이에 죽어 조비가 사실상 장남이 되었다. 관도대전의 승리에 이어 조조는 204년, 원소(袁紹)의 잔존 세력을 섬멸하는 전투에 조비도 참전하여 이겼다. 이때 조비는 원소의 둘째 아들 원희(袁熙)의 아내인 미모의 견(甄)씨를 약탈하여 자기 부인으로 삼았다.
사실 이 전투를 승리한 조조는 견씨가 천하절색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즉시 그녀를 데리고 오게 하였다. 그러나 주위에서 조비가 견씨를 먼저 데리고 갔다고 전하자 조조는, "이번 전쟁은 조비 그 녀석을 위한 것이었다"고 탄식할 정도이었다. 조비보다 5세 연상인 견씨는 몇 년 동안 조비의 총애를 독차지하였고 아들 조예(曹叡)와 딸 동향공주를 낳았다.
217년, 조조가 위나라 왕이 되고 나서 후계자로 장자인 조비를 정할 것인가, 똑똑하고 문장이 뛰어난 조식으로 정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나이와 장자라는 명분으로 조비를 왕세자로 정하였다. 이때 조비의 나이 31세였으며, 견부인은 왕세자비가 되었다.
220년, 조비는 조조에 이어 후한의 두 번째 위왕(魏王)이자, 삼국시대 위나라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조비는 한(漢)나라 헌제(獻帝)로부터 선양을 받은 왕조 교체에 성공한 최초의 황제이기도 하다. 조비가 황제에 등극하자 견부인은 조비의 정실(正室)로 견황후(甄皇后)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조비가 황제로 등극하자 조비의 총애는 견후에서 다른 후궁인 곽귀인으로 바뀌자 견후는 점점 실의에 빠져 조비를 원망하는 말을 자주 하였다. 이 말을 전해들은 조비는 화가 나 견씨에게 죽음을 내렸다고 하는 주장과 견씨의 죽음은 곽귀인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설도 있다.
이 시기 조비에게는 총애하는 후궁 곽귀인이 있었다. 그녀는 남군태수 곽영(郭永)의 딸이었는데 곽영이 그녀가 어렸을 때 "내 딸은 여자들 중에서 왕이 될 자격이 있다"라고 하여 그녀의 자(字)를 여왕(女王)이라고 지었다. 그래서 곽씨는 흔히 곽여왕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녀는 총명하고 재주가 많았다고 한다.
조비는 기존의 황후였던 견후(甄后)를 폐하고 곽귀인을 황후로 삼으려고 했다. 한편 이 시기 견후를 참소(讒訴)하여 죽였는데,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덮고 겨로 입을 틀어막은 채로 매장하였다고 한다.
이후 조비가 곽씨를 황후로 삼으려고 하자, 이때 궁궐에서 황제를 호위하며 지키는 중랑(中郞)인 잔잠(棧潛)이 겁도 없이, 본래 첩이었던 여자를 정실로 삼는 것은 예법에 어긋나고 위로부터 화가 일어날까 두렵다며 곽황후 추대를 반대하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옛날의 제왕이 세상을 잘 다스린 것은 재상과 같이 정사를 공적으로 보좌한 사람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안에서 '아내의 도움(內助之功)'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곽씨를 황후로 세우는 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누르는 것이어서 질서를 어지럽히게 되어 나라가 어려워지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라고 충언했다.
상소문은 실제로는 더 길지만, 내조지공(內助之功)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내조지공(內助之功)이란 아내가 집안일을 잘 다스려 남편을 돕는다는 뜻이다. 내조(內助)란 내부의 도움이라는 의미로, 현명한 아내의 내조라는 뜻의 내조지현(內助之賢)과 같은 뜻이다.
하지만 조비는 잔잠의 상소를 무시하고 곽여왕을 황후로 책봉하였다. 조비는 재위 6년만에 39세의 나이에 죽자, 조비와 견후 사이에 태어난 조예는 21세에 즉위한 후 죽은 어머니 견후를 문소황후(文昭皇后)로 추존하여 명예 회복을 시켰다.
황후로 지낸 곽여왕은 조예가 2대 위 황제로 즉위한 뒤, 황태후가 되었다. 조예가 어머니 견씨를 그리워하며 여러 번 견씨의 사망 당시 정황을 곽여왕에게 물어보자 곽여왕이 반복되는 같은 질문에 화를 냈다. 이에 조예는 235년, 어머니를 모함하여 죽게 만든 곽여왕을 죽이고 견후가 죽었을 때처럼 곽여왕 입에 쌀겨를 들이부은 뒤 땅에 묻었다고 한다.
잔잠(棧潛)은 조조 시절에는 현령을 지냈고 나중에는 업성을 감독해 지키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조비가 즉위한 후 잔잠이 중랑으로 있던 222년에 황후 옹립이 거론되자, 잔잠은 조비에게 경계해야 할 전례(典例)로 주역(周易)이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기록된 내용을 인용하면서, 견후 살해의 경위 등으로 보아 곽귀인은 '내조의 공'을 세울 수 없는 위인(爲人)으로 보았다.
집안 관리를 잘해 남편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을 '내조지공'이라 하듯이 같은 의미로 '내조지현(內助之賢)'이란 말이 있다. 춘추시대 말 제(齊)나라 재상 안영(晏嬰, 字는 안자)의 말을 끌던 마부와 그 아내 이야기에 나오는 '내조지현'에서 유래되었다.
마부의 아내는 재상의 마부임을 뽐내고 다니는 남편의 교만한 모습을 보고 “안영보다 키도 큰 당신이 마부 노릇을 하는 게 자랑스러우냐. 안영은 재상인데도 자세를 낮추지 않느냐”며 조언했다. 이후 겸손해진 마부에게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안영은 마부의 아내를 '내조지현'이라 불렀다.
남성의 성공 뒤에는 헌신한 ‘내조의 여왕’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더 이상 내조의 남녀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남성 전업주부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지면서 외조지공(外助之功), 외조지현(外助之賢)이라는 용어도 생겨야할 것 같다.
내조(內助)의 여왕
집안 관리를 잘해 남편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을 내조(內助)라고 한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재상 안영의 말을 끌던 마부와 그 아내 이야기에 나오는 내조지현(內助之賢)에서 비롯됐다.
마부의 아내는 재상의 마부임을 뽐내고 다니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안영보다 키도 큰 당신이 마부 노릇을 하는 게 자랑스러우냐. 안영은 재상인데도 자세를 낮추지 않느냐”며 조언했다. 겸손해진 마부에게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안영은 마부의 아내를 내조지현이라 불렀다.
17세기 미국 소설가 너대니얼 호손의 아내 소피아의 내조는 남성들의 로망이라 할 만하다. 세무서 직원이었던 호손이 실직하자 “당신이 글쓰기에만 몰두하게 되어 기쁘다”며 불평은커녕 창작을 독려했다. '앞으로 어떻게 생활을 유지할지 걱정'이라고 하자 남편이 가져온 월급에서 일부를 저금한 통장을 내밀었다. 아내의 배려에 감동받은 호손이 1850년 내놓은 역작이 '주홍글씨'다.
남녀평등이 일반화된 요즘도 내조의 미덕은 빛난다. 미 프로야구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활약 중인 추신수는 수영장과 극장까지 갖춘 1200평 저택의 삶을 TV로 공개해 시청자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런 그가 지금의 성공은 아내 덕이라고 공개했다. 미국 진출 초기 슬럼프에 빠져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나와 자식 때문이라면 한국으로 가버릴 테니 다른 마음 먹지 말고 운동에만 전념하라”며 독려했다. 스포츠 마사지를 배워 몸관리를 해줬고, 임신해서 배가 부른데도 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올해 청룡 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해 12년 무명생활을 떨쳐낸 영화배우 진선규도 '작은 성취'를 아내의 공으로 돌렸다. 배역이 없어 쌀이 떨어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아내는 “괜찮다.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며 응원했다. 얼굴이 좀 알려지자 “이제 시작이다. 뭐가 된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며 하심(下心)을 주문했다고 한다.
남성의 성공 뒤에는 헌신한 ‘내조의 여왕’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더 이상 내조의 남녀 구분이 무의미해질지 모른다.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남성 전업주부가 16만명이라고 하니. 새해엔 남편의 내조에 공을 돌리는 여성의 성공담도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내조(內助)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안영은 덕망이 높고 재능이 뛰어나 재상까지 지낸 인물이다. 어느 날 안영이 마부가 끄는 마차를 타고 외출하게 됐다. 마부의 아내가 문틈으로 내다보다 남편이 우쭐거리며 마차를 끌고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현숙한 마부의 아내가 보기에 마부인 주제에 우쭐대는 남편이 한심했다.
그날 저녁 남편이 돌아오자 아내는 낮에 느낀 심정을 털어 놓았다. “안영은 키가 오척이 못되어도 제나라의 재상인데, 당신은 팔척장신으로 마부 노릇이나 하는 주제에 부끄럽지도 않은 모양이지요.” 아내의 말을 깊이 새겨들은 마부는 그 뒤부터 겸손하고 침착해졌다.
마부의 태도가 달라지자 안영이 이상해 물었다. 안영은 마부가 아내의 말을 듣고 개과천선한 것을 가상히 여겨 대부 벼슬을 천거해 줬다. 내조지현(內助之賢)에 얽힌 고사다.
내조지공(內助之功)의 일화는 삼국지에 전해진다. 조조가 위나라 무제로 등극하자 후계 문제로 한동안 고심했다. 맏아들인 조비로 할 것인가, 똑똑하고 문장이 뛰어난 조식으로 할 것인가. 결국 조비가 황태자가 된 데에는 훗날 황후가 된 곽씨의 도움이 컸다. 곽씨가 여러 방책을 썼던 것이다. 남달리 영특한 곽씨는 아버지가 “내 딸은 여자 중의 왕”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문제 조비가 견후를 폐하고 곽씨를 황후로 삼으려 하자 중랑인 잔잠이 상소를 올려 말렸다. “옛날 제왕이 세상을 잘 다스린 것은 재상과 같이 정사를 공식적으로 보좌한 사람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안에서 아내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잔잠은 이어 곽씨를 황후로 세우는 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누르는 일이어서 질서를 어지럽히고 나라가 어려워지는 원인이 될 것이라고 간했으나 문제는 듣지 않았다. 황후가 된 곽씨는 명제 조예를 낳은 견후를 끝내 모함해 죽이고 말았다.
'내조지현'과 '내조지공'에는 미묘한 차이가 엿보인다. 이화여대가 내조의 리더십을 발휘한 공적을 높이 사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에게 '자랑스러운 이화인상'을 준 것을 둘러싸고 적격성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모교 출신 대통령 부인들에게 주는 관례라지만, 내조를 상의 명분으로 삼는 게 독립적 여성상을 훼손한다는 주장이 시대를 추월해 과속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역사 속 내조의 여왕들
아내가 집안일을 잘 다스려 남편을 돕는다’는 뜻의 내조(內助)는 고사성어 내조지현(內助之賢)과 내조지공(內助之功)에서 비롯되었다.
내조지현은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재상 안영의 말을 끌던 마부와 그 아내의 이야기다. 마부의 아내는 뽐내며 다니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재상인 안영은 그렇지 않은데, 안영보다 키도 큰 당신이 마부 노릇을 하는 게 그리 자랑스러우냐”며 조언한다. 겸손해진 마부에게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안영은 마부의 아내를 내조지현이라 일컫고 마부에게 벼슬을 내린다. 내조지현은 다른 사람의 아내를 올려 부르는 말이었으나, 현재는 남편의 지위를 올려주는 아내의 역할을 뜻한다.
삼국지에서 전해지는 내조지공은 조조가 위나라 무제로 등극한 뒤 후계문제로 고민할 때의 에피소드를 바탕에 두고 있다. 조조가 곽씨의 도움을 받아 맏아들인 조비를 후계자로 책봉한 이후, 조비가 곽씨를 황후로 삼으려 하자 잔잠은 “제왕이 세상을 잘 다스린 것은 재상과 같은 정사를 보좌한 사람뿐만 아니라 안에서 아내의 도움(내조지공)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반대한다. 내조지공은 남편이 아무런 근심 없이 바깥일에 신경 쓸 수 있도록 안살림을 문제없이 이끌어가는 것을 말한다.
내조(內助)에 관한 고서를 살펴보자면, '삼국사기'에는 '주몽이 나라의 기초를 개척하여 왕업을 창시함에 있어서 소서노의 내조(內助)가 매우 많았다'고 적고 있다. 주몽의 아들 유리가 나타나자 소서노는 자신의 아들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백제를 건국한다.
영화 '쌍화점'의 배경이 되었던 고려 말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노국공주는 원나라 세조의 딸이었지만, 원의 세력에서 벗어나 자주 개혁을 내세운 공민왕을 따랐다. 노국공주는 원나라의 압력에서도 공민왕을 후원했고 원나라와 연결된 세력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는 공민왕이 숨은 방 앞에서 그를 지켰다. 원나라가 공민왕을 폐위하자 국새를 지켜 공민왕의 왕위를 유지하는 역을 자처했다.
내조(內助)와 관련해 성공한 남성의 표본인 대통령을 만들어낸 부인들의 에피소드가 많다.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는 대통령 선거운동 시절 이 후보에게 숨겨둔 아들이 있다는 소문이 돌자 “있으면 좀 데려와봐라. 안 그래도 손 딸려 죽겠는데 일 좀 시키자”고 응대했다. 소문을 유머와 자신감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도 유명하다. 힐러리 여사의 첫사랑이 주유원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클린턴 대통령이 “나와 결혼하기 잘하지 않았냐?”고 묻자, “저 사람이 나와 결혼했다면, 미국의 대통령이 바뀌어 있겠지”라고 대꾸했다. 내조(內助)의 힘이 대통령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내조(內助)의 완벽한 스타일을 보여준 이는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아내 재클린 케네디다. 여전히 ‘재클린 스타일’은 내조(內助)의 여왕이라면 필히 챙겨야 할 퍼스트 레이디의 패션 표본이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부인 브루니는 단신인 남편을 위해 플랫슈즈를 자주 신는다. 모델 출신답게 패션 스타일이 입소문을 타면서 새로운 퍼스트레이디 패션을 만들어가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내 미셸 오바마는 현재 가장 언론의 조명을 받는 내조의 여왕이다. “담배를 피우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충고로 30년간이나 담배를 피운 오마바 대통령을 금연하게 만들었다. 특히 미셸의 세련된 패션 스타일도 인기지만,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단독 연설을 하는 등 적극적인 내조를 선보이기도 했다.
작가 이외수는 '하악하악'에서 “내조를 잘하는 아내는 우렁이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남편이 평생을 다 바쳐 만들어가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무릎팍 도사’에서는 아내의 내조 덕분에 인기 작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을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아내의 내조(內助)가 없었다면 역사는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 內(안 내, 들일 납)는 ❶회의문자로 内(내)는 통자(通字), 内(내)는 간자(簡字)이다. 토담집 따위에 들어가는 일의 뜻으로, 멀경몸(冂; 경계, 성곽)部는 여기에서는 나중에 갓머리(宀; 집, 집 안)部로 쓰는 것으로서 궁전이나 집을 나타낸다. 궁전이나 집에 들어가는 것으로 어느 범위 안으로 들어감, 안쪽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內자는 '안'이나 '속', '대궐'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內자는 冂(멀 경)자와 入(들 입)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冂자는 '멀다'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모양자 역할만을 하고 있다. 內자의 갑골문을 보면 冂자 안으로 入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전통가옥의 내부를 그린 것으로 지붕을 받치고 있는 '대공'과 양쪽을 지지하고 있는 '도리'가 표현되었다. 內자는 이렇게 가옥의 내부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안'이나 '속'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內(내)는 무엇의 안이라는 뜻으로 ①안, 속 ②나라의 안, 국내(國內) ③대궐, 조정(朝廷), 궁중(宮中) ④뱃속 ⑤부녀자(婦女子) ⑥아내 ⑦몰래, 가만히 ⑧비밀히 ⑨중(重)히 여기다, 친하게 지내다 그리고 ⓐ들이다(납) ⓑ받아들이다(납)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바깥 외(外)이다. 용례로는 사물의 속내나 실속을 내용(內容), 국내에서의 수요를 내수(內需), 물체나 장치나 구조물 등의 안쪽 부분을 내부(內部), 분명하고 자세한 내용을 내역(內譯), 남에게 대하여 자기의 아내를 일컫는 말을 내자(內子), 나라 안과 나라 밖을 내외(內外), 어떤 성질이나 뜻을 그 속에 지님을 내포(內包), 아낙네들이 거처하는 안방을 내실(內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육지를 내륙(內陸), 나라 안 싸움을 내전(內戰), 나라 안에서 정권을 차지하려고 싸움을 벌이는 난리나 반란을 내란(內亂), 안쪽 또는 마음을 내면(內面), 나라 안의 걱정 근심을 내우(內憂), 어떤 사물이나 범위의 안에 있음을 내재(內在), 마음속으로 작정함을 내정(內定), 속은 부드럽고 겉으로는 굳셈을 일컫는 말을 내유외강(內柔外剛), 겉으로 보기에는 유순하지만 속마음은 단단하고 굳셈을 일컫는 말을 내강외유(內剛外柔), 내부에서 일어나는 근심과 외부로부터 받는 근심이란 뜻을 이르는 말을 내우외환(內憂外患), 겉으로 보기에는 가난한 듯하나 속은 부유함을 이르는 말을 내부외빈(內富外貧), 마음속으로는 소홀히 하고 겉으로는 친한 체함을 이르는 말을 내소외친(內疏外親)등에 쓰인다.
▶️ 助(도울 조, 없앨 서)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힘 력(力; 팔의 모양, 힘써 일을 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且(차; 고기를 수북히 담은 모양, 조)로 이루어졌다. 힘(力; 팔의 모양, 힘써 일을 하다)을 더하여 돕는다는 뜻이 합(合)하여 '돕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助자는 '돕다'나 '힘을 빌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助자는 且(또 차)자와 力(힘 력)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且자는 비석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죽은 사람의 이름이나 행적 또는 업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비석에 글을 새겨 세웠다. 특히 큰 업적을 기리는 비석은 크기가 매우 컸었다. 큰 돌을 깎아 만든 비석을 혼자 힘으로 세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助자는 비석을 세우기 위해 여럿이 힘을 합친다는 의미에서 '돕다'나 '힘을 빌리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助(조)는 ①돕다, 힘을 빌리다, 거들다 ②기리다 ③유익하다 ④이루다, 완성하다 ⑤도움, 구조(救助), 원조(援助) ⑥구실(온갖 세납을 통틀어 이르던 말), 조세(租稅) ⑦문체(文體)의 하나, 그리고 ⓐ없애다 (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도울 우(佑), 도울 좌(佐), 도울 방(幇), 도울 필(弼), 도울 부(扶), 도울 원(援), 도울 비(毗), 도울 비(毘), 도울 비(裨), 도울 익(翊), 도울 양(襄), 도울 호(護), 도울 찬(贊), 도울 보(輔)이다. 용례로는 도와서 이루게 함 또는 힘이 되어 성공 시킴을 조성(助成), 남의 말에 덧붙여 도와줌 즉 말로 일깨우거나 거들어 주어서 도움 또는 도움이 되도록 슬쩍 깨우쳐 주거나 거들어 주는 말을 조언(助言), 어떤 책임자나 주장하는 자에 속하여 그의 지도를 받으며 그 일을 도와주는 사람을 조수(助手), 힘을 써 도와 줌을 조력(助力), 도와서 거듦을 조거(助擧), 도와서 자라나게 한다는 뜻으로 좋지 못한 행위나 습관을 조급히 키우려다 오히려 망친다는 경계의 뜻을 지닌 말을 조장(助長), 도적을 잡는 일을 도움 또는 그런 사람을 조포(助捕), 농토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짝을 이루어 농사를 도움을 조우(助耦), 해조가 많은 곳에서 사는 어류를 조어(助魚), 힘을 보태어 서로 도움을 협조(協助), 물질적으로 보태어 도움 또는 보충하여 돕는 것을 보조(補助), 어떠한 일을 거들어서 도와 줌을 또는 타인의 범죄 수행에 편의를 주는 유형 무형의 모든 행위를 방조(幇助), 어떤 사람이나 단체가 다른 사람이나 단체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서로 돕는 것을 공조(共助), 구원하고 도와 줌을 구조(救助), 도와 줌을 원조(援助), 남의 큰일에 돈이나 물건 등을 도와 줌이나 남을 거들어서 도와 줌을 부조(扶助), 곁에서 도와 줌을 방조(傍助), 서로 도움을 상조(相助), 뜻을 같이하여 도와줌을 찬조(贊助), 아내가 남편을 도움을 내조(內助), 생각하여 주고 도와 줌을 고조(顧助), 자기 힘으로 자기를 도움을 자조(自助), 중국 하나라의 폭군 걸을 부추겨 포악을 일삼게 한다는 뜻으로 악인을 도와 악한 짓을 더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조걸위학(助桀爲虐), 빨리 자라라고 모를 뽑는다는 뜻으로 빠른 성과를 보려고 무리하게 다른 힘을 더하여 도리어 그것을 해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조장발묘(助長拔苗), 장점을 발전시키고 단점을 보완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조장보단(助長補短), 닭 울음의 도움이란 뜻으로 어진 아내의 내조를 이르는 말을 계명지조(鷄鳴之助), 서로 서로 도움을 일컫는 말을 상부상조(相扶相助), 강산의 도움이란 뜻으로 산수의 풍경이 사람의 시정을 도와 좋은 작품을 만들게 함을 이르는 말을 강산지조(江山之助), 안에서 돕는 공이란 뜻으로 아내가 집안 일을 잘 다스려 남편을 돕는 일을 이르는 말을 내조지공(內助之功), 아내가 집안 일을 잘 다스려 남편을 돕는 일을 이르는 말을 내조지현(內助之賢), 곡식이 빨리 자라도록 하려고 이삭을 뽑아 올린 때문에 모두 죽어 손해를 보게 된다는 뜻으로 성급하게 이익을 보려다가 도리어 해를 보게 되는 일을 두고 하는 말을 알묘조장(揠苗助長), 악인도 악한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 돕는다는 뜻으로 동류끼리 서로 도움을 이르는 말을 동악상조(同惡相助)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
▶️ 賢(어질 현)은 ❶형성문자로 贤(현)은 간자(簡字), 贒(현)은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조개 패(貝; 돈, 재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구휼(救恤)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 臤(현, 간)으로 이루어졌다. 많은 재화를 가지고 있어 남에게 나누어 준다는 뜻이 전(轉)하여 뛰어나다, 어질다는 뜻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賢자는 '어질다'나 '현명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賢자는 臤(어질 현)자와 貝(조개 패)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臤자는 신하가 일을 능히 잘 해낸다는 의미에서 '어질다'나 '현명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본래 '어질다'라는 뜻은 臤자가 먼저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사람이 어질고 착해 재물까지 나누어 줄 정도라는 의미가 반영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貝자가 더해진 賢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賢(현)은 흔히 편지에서 자네의 뜻으로 아랫 사람을 대우하여 쓰는 말의 뜻으로 ①어질다 ②현명하다 ③좋다 ④낫다, 더 많다 ⑤넉넉하다, 가멸다(재산이 넉넉하고 많다) ⑥존경하다 ⑦두텁다 ⑧착하다, 선량하다 ⑨지치다, 애쓰다 ⑩어진 사람 ⑪어려운 사람을 구제(救濟)하는 일 ⑫남을 높여 이르는 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어질 인(仁), 어질 량(良),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어리석을 우(愚)이다. 용례로는 마음이 어질고 영리하여 사리에 밝음을 현명(賢明), 어질고 훌륭함 또는 그런 사람을 현준(賢俊), 어질고 총명하여 성인의 다음 가는 사람을 현인(賢人), 어질고 총명하여 성인의 다음가는 사람을 현자(賢者), 어진 신하를 현신(賢臣), 어짊과 어리석음을 현우(賢愚), 어질고 훌륭한 사람을 현영(賢英), 현명한 보좌를 현좌(賢佐), 어진 이와 착한 이 또는 어질고 착함을 현량(賢良), 여자의 마음이 어질고 깨끗함을 현숙(賢淑), 현명하게 생긴 얼굴을 현안(賢顔), 남보다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을 현재(賢才), 남의 아내를 공경하여 일컫는 말을 현합(賢閤), 어진 사위를 현서(賢壻), 덕이 높고 현명한 사람을 고현(高賢), 매우 현명함이나 아주 뛰어난 현인을 대현(大賢), 성인과 현인을 성현(聖賢), 유교에 정통하고 행적이 바른 사람을 유현(儒賢), 밝고 현명한 사람을 명현(明賢), 재주가 뛰어나서 현명함 또는 그런 사람을 재현(才賢), 뛰어나고 슬기로움을 영현(英賢), 이름이 난 어진 사람을 명현(名賢), 어진 사람을 존경함을 상현(尙賢), 어진 어머니이면서 또한 착한 아내를 일컫는 말을 현모양처(賢母良妻), 현인과 군자로 어진 사람을 일컫는 말을 현인군자(賢人君子), 남의 눈을 어지럽고 아뜩하게 한다는 말을 현인안목(賢人眼目), 현인은 중용을 지나 고상한 행위를 함을 이르는 말을 현자과지(賢者過之)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