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미 사무국장님의 낭독입니다
감포종점
추령재를 지나면서부터야
포구에 닿으면
나머지 몸무게 절반이 또 사라지지
온 바다가 내 것인 양 풍선처럼 들떠 읍내를 통과해야 하네
감포종점은 그렇게 있지, 문득
막 고개를 돌리면 거의 지나쳤음을 아는 곳
밤이 깊어야 했지만 분명 한낮이었고
나도 모르게 마포 종점이 입술을 빠져나왔네
있을 리 만무한, 갈 곳 없는 밤 전차를 호출하는 사이
바쁜 자동차들은 녹슨 간판이 걸린 다방 거리를 지나쳐 가네
불행하게도 비는 내리지 않았고
오가는 사람들 눈에 담긴 무수한 기다림도 읽지 못했네
차들은 수평선 쪽으로 자꾸 달아나네
― 이다음 내가 지나가는 사람이 되면 궂은비 정도는 내려주겠지
포구 맞은편,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 구석진 자리 물 날린 비로드 의자 위에 쓸데없이 명랑해지는 엉덩이를 주저앉히고 퀴퀴한 냄새 따윈 모른 체하며 늙은 마담의 주름진 손으로 건네는 칡차나 마시면서 연락선 뱃고동 소리가 얼마나 서글픈지 들어보고 싶었네*
우연히 눈에 든 종점을 생각하면
첫사랑 하나쯤은 있어야 될 것만 같았네
어디서 나처럼 늙어가지 싶은,
*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변용
김임백 시인의 낭독입니다
혼자 울기 좋은 시간
와글와글, 추억을 꺼내도 되겠습니까
개구리처럼, 짝을 해도 되겠습니까 둥글게 둥글게
우기雨期가 맨발로 서성이는 새벽 세 시,
여전히 지구는 토란이 품은 잎처럼 생각을 밀어내는 시간입니다
날카로운 고양이 울음을 밀쳐내는 매미 소리
풀벌레 소리를 빈 병 던지는 소리가 지워버립니다
소리가 커지는 만큼 행복해져도 되겠습니까
도시에 살아야 사람의 무늬를 갖는다고 말하는 사람들
저마다 기대거나 비빌 언덕 하나쯤은 숨기고 있어야
숨 쉬기가 조금은 나을 듯 하다던가요
그런 언덕엔 가 닿을 수 없어요
새벽 문장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때
개구리는 개구리 소리에 기대고
사람들은 사람들의 소리에 기대어 살고
담쟁이에 담장이 기대어 살아도 될 텐데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들으며 슬픈 시 하나 읽어도 되겠습니까
당신의 이데아를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 영화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OST <A Love idea>
김금주 낭송가님의 낭독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금계국 떠난 옆자리에 핀 기생초 꽃 피운 걸 보면
가뭄의 실개천에서 하루만큼의 목숨을 연명하는 왜가리와 마주치면
모노레일 위를 옮겨 다니는 까치들을 보면
큰물 지나면 허물어질 걸 알면서도 정성껏 돌탑을 쌓는 이의 손길이 느껴지면
수레국화 피었다 진 자리에 다시 수레국화 철없이 피어난 걸 보면
시멘트 담벼락을 잡고 오르는 담쟁이넝쿨을 보면
걷다가 지칠 때 이마를 만지고 가는 몇 올의 바람을 생각하면
무엇에 쓰일까 싶어도 나비에게 무당벌레에게 꽃술을 내주는 꽃에 비하면
이지희 시인의 낭독입니다
그래서, 내가 있습니다
물고기가 자라납니다
팔거천은 어제보다 오늘 더 자랐습니다
어린 새가 나뭇가지를 건너다니며 지저귈 때마다
꽃은 피고 세상은 더 환해집니다
한 뼘씩 그늘을 넓혀가는 칠엽수를 안은 햇살을 사랑합니다
건듯 건듯 어깨를 지나는 바람을 사랑합니다
오후 볕을 핥는 열여덟 살 고양이를 사랑합니다
사랑이 범람이면 팬데믹을 건널 수 있을까요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간절함처럼
별빛을 당겨오는 일도 오래도록 간절해서
늘, 우리를 꿈꿉니다
기다림이란 말에 이미 익숙하지만
꽃 울고 새 피면 다시 주저앉고 싶어져서
더 그래서, 뜨거워지는 가슴으로
낯선 길엔 내가 있기도 가끔은 사라지기도 합니다
돌담에 기대어 가물거리는 산 너울을 보면 눈물이 나서
이화우梨花雨 흩날리는 돌배나무 그늘이 하 좋아서
오늘도 어느 골목길 모퉁이에 나는 있습니다
이지희 시인께서 낭송에 이어
Foster 작곡 Beautiful Dreamer를 멋지게 불러주셨습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늘 수고 한가득입니다.
이영희 선생님!
동영상 녹화를 도맡아 수고해 주시고
이렇게 올려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행복한 나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