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선택권 김사리 여자는 전시실의 일부였다. 제1관은 작은 눈물방울, 기억이라는 얼룩이 부화해서 꽃송이가 되었다. 꽃대 위에서 영근 꽃송이는 신비로웠다. 제2관은 언어발달사를 중심으로 무언극이 펼쳐졌다. 첫울음이 옹알이로, 자기중심적 언어는 젓가락으로 총으로 인형의 친구로 역할 마임이 펼쳐졌다. 제3관, 제4관은 소녀기와 청년기를 거치는 시기별 여자가, 제5관을 거쳐 부위별 여자가 전시되었다. 가장 쓸모없는 부위는 잔머리, 가장 활발한 부위는 저장장소가 불확실한 감당하기 벅찬 마음이었다. 미용실을 나서는 순간 김리사가 되고 침실에선 김세라, 직장에선 김샘이 되었다. 수업이 많아질수록 꾀꼬리는 침팬지로 변해가고 허리가 두루뭉술, 엉덩이가 펑퍼짐해 가려야 할 부위별 의상이 더욱 정교해졌다. 제6관은 선택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게임 방식. 우정을 선택하면 사랑이 울고, 부모를 선택하면 형제를 등져야 했다. 남편은 우선순위를 원했지만 언제나 넘쳐나는 일 다음 순위였다. 엄마보다는 가장을 선택하고 집을 넓히는 등 몰입도 높은 선택과 집중을 하다 보면 다음, 다음이 눈앞에 도래했다. 마지막 관에 다다르자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여기까지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당신의 모든 선택권은 소멸되었습니다. 다시는 문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함구하고 자신의 귀를 책망하시길 바랍니다.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 돌발행동이나 간섭 따위는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 주변과의 조화는 최상의 밑그림입니다. 돌이나 식물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이 관은 가상 체험 시뮬레이션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가품이던 김사리가 진품으로 인정받는 날을 기대하며 여자는 미래형 모델이 전시된 요양원을 휠체어를 타고 두루 관람했다. 김사리, 월간「시인들」, 2023년 3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