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이면 집안에 들어 앉아 미동도 않고 있다가 3복이 지나야 슬슬 돌아다니는 내가
금년은 뭔가에 홀렸는가 지인의 권유에 따라 4박6일 백두산 탐방 여행길에 올랐다.
심야 비행기를 타고 연길시에 도착을 하니 새벽 1시다.
첫날은 연길시 모아산 공원을 오르는것으로 가볍게 일정을 마치고 서파(백두산 서쪽 능선)을
오르기 위하여 송강하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에 보이는 자작나무숲은 년전 바이칼 호수에서 본 그보다도 훨신 더 아름답다.
다음날 민족의 영산 백두산 정상을 향하여 오르기 시작하였다.
숙소를 떠날때 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그치질 않아 천지를 향한 1450여 계단이 멀게만 느껴진다.
숨이 턱까지 차서야 전망대에 도착했다.
그러나 운무에 가려진 천지는 제 모습을 보여줄 기색이 전혀 없다.
가이드의 농담이 생각이 난다. "백번을 올라야 두번 천지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산 이름이 백두산 입니다".
실망한 등산객들의 아쉬움도 모르는듯 세찬 비바람에 모래까지 날려 더 이상 지체 할 수가 없었다.
전에 귀한것을 지닌 친구가 보여 달래는 나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끝내 보여 주지 않던 일이 생각이 나 고소를 머금고 하산을 했다.
아쉬움을 달래며 내려오는길에 금강 대협곡 에 들렸다.
천년전 백두산 대 푹발시 용암이 흘러 생겼다는 협곡은 그 깊이가 약 200여 m에 달한다 한다.
지금도 백두산은 사화산이 아니고 휴화산이라 한다. 어제 다시 깰지 모르는...
서로 다른 품종의 두 나무가 몸을 합쳐 같이 자라는 연리지 나무 주위에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절대 떨어지지 말자고 약속하는
자물쇠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세째날
북파(백두산 북쪽 능선)로 백두산을 올랐다.
경사도가 서파보다 심하나 10인승 봉고차가 2500고지 이상 태워주니 어렵지 않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하늘이 도왔는가 뚜꺼운 운무가 바람에 날리기 시작하더니 까칠하던 천지가 제모습을 살짝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좋은 전망을 칮기위해 이동을 하는데 수백명의 사람들이 환성을 지른다.
언뜻 돌아보니 천지가 제모습을 적라라하게 들어내고 있다,
그도 잠간 다시 운무가 흩날려 그 신비한 호수를 가리고 말았다
내려 오는길에 장백 폭포를 들렸으나 꾀가 나기 시작해 다른 일행을 올라가라 두고 몇몇은 뒷쳐져 백두산 온천을 즐겼다.
등산을 가면 으례 뒷쳐져 아랫녘에서 얼쩡거리는 버릇이 학창시절부터 있었으니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허사는
아니다.
대신 아름다운 폭포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택도 없이 비싼 20000만원이란 비싼 목욕만 하고 소천지를 경유해 녹원당으로
내려왔다.
숙소에서 자고 나니 뒷뜰에서 짐승 울음소리가 들린다.
호텔뒤가 호랑이 사육장이다.
철책을 두른 차를 타고 후랑이 우리로 들어 갔으나 이녀석들은 본척 만척이다.
사람이 호랑이를 구경하는지 호랑이가 사람을 구경하는지.....
채신머리없이 응가를 하는 녀석도 있다.
두만강과 조중 국경지대를 보기위해 도문으로 향하는중 용정을 들렸다.
노래에서만 듣던 혜란강, 일송정, 비암산등이 이곳에있다.
대성학교 들리니 조그마한 연변 아가씨가 피곤한 눈을 비비며 학교 연혁이며. 독립운동사에 대해
교과서를 읽듯 달달 외어 들려주고 있다.
"두만강 푸른물에 노젖는 뱃사공~!" 은 옛 이야기 이고 탁한 흙탕물에 수량 또한 볼 품이 없다.
그래도 동력이 달린 뗏목을 타고 두만강을 오르니 강건너 북한땅이 눈앞에 보인다.
획일화 된 주택들이며, 옷벗은 군일들도 보이고, 소에게 물을 먹이러 강가로 나온 농부도 보인다.
무사히 관광을 맞치고 8월 2일 새벽 비행기를 타고 청주 공항에 도착을 하니 아침인데도 공가가 후끈한다.
그 동안 천안은 엄청 더웠다고.....
얼결에 백두산 구경도 잘했고 피서도 확실히 한편이 되였다.
다만 큰 사진기로 백두산 야생화도 찍고 많은 사진을 담아 왔는데 컴퓨터로 옮기는 중
어디로 휙 날아 들어갔는데 찾을 길이 없다.
아무리 뒤져봐도 종적이 묘연해 할수 없이 핸드폰으로 찍은 좀 열악한 사진을 평강이들에게
보이게돼 죄송할 뿐이다.
<선구자>
첫댓글 한번은 백두산에 가보리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미리 그곳의 풍경과 내용 설명을 들으니
앞으로 배두산 여행하는데 참고가 되겠지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과 사랑이 가득한 가정되시고
아름다운 성가정 되길 기도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회장님을 이공간에서 뵙게 되니 반갑습니다.
7,8,9월은 연길로 직접 비행기가 들어가 백두산 여행이 한결 편하더군요. 9월은 단풍이 아름답답니다.
폭염에 사업장이나 댁내 두루 편안하시기 바랍니다.
여름휴가를 요란뻑적하게 다녀오셨군요
근데, 호랭이 체신을 생각해 주셔야지ㅎ응가하는것까지 ㅋ
그밑에 두분사진ㅋ 정은아빠 ㅎ포스 작렬 경직된 시찰ㅋ ㅋ
그러잖아도 김정은이 아빠친구가 왔다고 마중을 나오겠다 하는걸
지금은 자리 비우고 왔다 갔다 할 때가 아니지 조신히 자리지키고 있으라고 말렸습니다.ㅎ
더위에 피서 잘하셨습니다. 전여사 찾느라 한참을 살폈습니다. 어디계신가?
같이간 일행들의 단체 사진이 있는데 혹여 열린 공간에 올려놓으면 불편해 하실분이 있지 않을까 해서 올리지 않았습니다.
전여사님은 수백명이 모인 진달래 공원에서 -이판 사판- 이라며 춤추고 신나게 놀다 오셨습니다.ㅎ
피서 제대로 잘 하셨습니다. 백두산엔 긴팔입었어야 했나보죠? 부럽다.연일 찜통더위에 숨도 조그맣게 쉰답니다.
사진 설명을 잘해주셔서 더욱 잘 보았습니다.
성당분들이 가는 모임에 같이가게 되였습니다. 백두산 근처에서는 시원하게 지냈는데 천안에 들어오니 완전 찜통이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몇일더 개기다 오는건데....ㅎ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동행하게되여 기뻣습니다. 여행은 동행하는 사람에 따라 분위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만 요번 여행은 같은 교우 분들과의 동행이여서 스스럼 없이 모두가 즐거운 한 마음으로 4박 6일을 지냈습니다. 운무에 쌓인 천지도 보았고 아름다운 우리의 영산이 반쪽이 되여 남의 나라에서 천지를 보다니........... 아쉬움으로 가슴이 무거웠습니다만 야생화의 매력에 빠져 사진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계단을 이탈해서 사진찍다가 관리요원에게 쫒겨나기도하고..............상세한 여행기 읽으며 다시 한번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게 되여 기쁨니다. 자작나무를 유심히 좋아하셨든 유림님!! 여독은 다 푸셨는지?
밤비행기 타기전에 예쁜 처녀에게 안마를 받고 나니 여행의 피로가 한방에 날라갔습니다.ㅎ
연변 여인들과 어울려 춤을 추시는 들꽃님을 뵈니 그 솜씨가 예사롭지가 않았습니다. 야생화 뿐만이 아니고 歌舞에도 능하시구나 느꼈습니다.ㅎ
여러가지로 고마웠습니다.
이글을 올리면서 김선생님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 같으면 산 정상의 모습이나 산행모습을 올릴텐데 나는 여기 저기 관광지모습이나 올리는 구나 하고....
4년전에 전 북파로 올라갔는데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날아갈것 같았는데 다행히 백두산 천지를 보았읍니다
저는 어제 몽골에 왔읍니다 우리나라가 폭염으로 난리인데
여긴 년중 강우량이 적어 땅은 넓어도 농사를 못짓는데 때아닌 비가 자주와서 이변이라네요
가을날처럼 조석으로는 바람이 선들선들 하네요
항상 여행기를 상세히 보여주시고 기록해 주셔서 감가합니다....
왕지 금영씨도 같이 가셨나요? 형제분들이 함께 다니시는 모습이 보기가 좋습니다.
천안은 오늘도 36도를 넘기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농장에 급한일이 없으면 몇일더 푹 쉬시다 오시면 이 염치없는 더위도 물러가겠지요.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드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신 모습으로 백두산 여행 다녀오셨다니 보기 좋으십니다
전 몇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저희 대장님 만류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올리신 기록사진으로 백두산 여행 대신했습니다
무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는듯합니다..
무더위에 건강히 지네시는 지요.
멀지 않은 곳이니 다녀오실 기회가 많으시리라 생각이 됩니다.
사람은 참기 힘든 무더위 이지만 벼 생육에는 아주 좋다고 하는군요. 금년 쌀농사는 대풍을 기대해도 좋을것 같습니다.
성거산 성지 카페로 모셔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