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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이 위기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집중한다. 그러나 세상에 나온 해법은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위기를 증폭시킬 뿐이다. 외부에서 위기가 발생해도, 내부적 요인에 의해서 위기가 가중되고 해법에 가용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고갈시켜 선택의 폭을 좁힌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가계 부채, 부동산 문제, 자영업자 파산 등의 문제는 수십 년간 해결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썩어들어가는 형국에 이르렀다.
문민정부 이후에 집권한 어느 정부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지금, 우리는 다시 한 번 이러한 위기와 해결책에 대해 진지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국 경제의 위기에 대한 문제 인식과 해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도출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사실’과 ‘진실’에 대해 먼저 잘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이 글에서 사실과 진실에 대해 고민하고 공유해보려고 한다.
‘사실’이란 말 그대로 무언가 발생한 그 자체이다. 어떤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 기간을 연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일 레스터전에서 손흥민은 쐐기골을 넣었다” 사실은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그 자체로 발생한, 일어난 일인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시간 개념이 없고, 공간 개념도, 관계성없는 단편적인 것으로 흩어진 퍼즐 조각에 그치지 않는다.
위 설명을 다시 풀어보면, 사실은 사후적이다. 일어난 현상 또는 사건이기 때문에 특정한 맥락 (Context)이 없고 심지어 그 자체도 정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기록이 남아 있다면 역사적 사건을 알 수 있지만 또 다른 사실이 기록된 경우에는 어느 것이 실제 사건인지 알기 어렵다. 역사적 사건의 발생 시점이 위로 거슬러 올라갈 수록,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기 어려워 진다. 그저 발견한 역사적 기록 또는 유물을 통해서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경제적 사실에는 무엇이 있을까?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가 발생했다”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그저 단락적이다. 이 사실들은 무질서하고 어떤 관계도 서로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이러한 사실만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면 어떻게 될까? 문제 해결책도 그저 단편적이고 뜬끔없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사실을 무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1차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이 사실을 바탕으로 문제를 이해하고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흩어진 조각을 맞추기 위해 사실들 간에 관계를 맺어줘야 한다. 즉 맥락을 제공해야 한다. 맥락을 불어넣으면 그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되묻게 된다. 이 때 사실은 진실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진실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저 발생한 사건을 말하는 것과 사뭇 다른 느낌을 풍긴다. 진실하면, 무언가 감춰진 것을 밝히거나 왜곡된 것을 규명해야 할것만 같다. 진실은 목적하는 바가 있다. 무언가 숨겨진 일의 전체를 밝히려고 한다. 사법을 예로 들면, 법정에서 왜 우리는 진실을 규명하려고 하는가? 진실을 규명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진실은 지향점이 있고 어떤 사건의 전체를 포괄하고 있다. 사실은 맥락없이 나열할 수 있지만 진실은 사건의 처음과 끝을 잇기 때문에 맥락 속에서만 이야기할 수 있다.
죽어있는 사실에 맥락을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따라서 원인 분석과 해법이 달라진다. 진실은 단순히 사실만 나열해서 규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관계가 기계적이고 절대적이고 천편일률적이지 않아 언제나 똑같이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맥락을 구성한다는 것은 ‘관계 맺기’를 말한다. 관계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무시간성, 무공간성인 사실이 어떤 인과관계를 맺는, 서로 연결되는 하나의 틀 (Frame), 체계 (System) 속에 놓인 상태를 말한다. 경제적 현상, 사건은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구조, 틀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어떤 관계 속에서 사건이 발생하는 경제적 현상들의 연결고리가 ‘경제적 진실’에 해당한다. 경제적 진실은 사실 관계를 엮고 그 사건들의 발생 이유를 되짚어가는 하나의 여정이다. 이 여정의 끝은 그 진실이,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금융권 부실 자산이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 투기 거품이 붕괴하고 있다. 투기 거품은 외환위기때 발생했다. 외환위기때 금리가 급락했다. 높은 수익을 위해 부동산에 투기가 시작됐다.”와 같이 ‘경제적 사실’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으면 ‘경제적 진실’이 드러나고 경제를 형성하는 구조나 틀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관계를 파악하면 그 흐름을 타고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예측해나간다. 정확한 사실 관계와 구조를 파악했기 때문에 이 구조 속에서 문제는 어떻게 흘러가고 어떤 대책을 구상해야 하는지 예견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런 관계 속에서 경제위기가 근원적으로 발생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경제위기를 초래한 경제적 진실을 규명한 것이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진실을 규명한 것은 ‘증명’했을 뿐이다. (하편에서 계속)
"본 글은 2012년 7월 24일, 김광수 소장이 팟캐스트 강연 중 "경제위기의 해법과 경제적 진실"편에서 내용을 발췌 및 편집하여 게시하는 글입니다. 내용의 의미와 내용은 편집자의 이해를 토대로 각색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