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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筆분과 방 작가와 작품(54) -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이동민 추천 0 조회 509 22.03.19 07:32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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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2.03.19 07:33

    첫댓글 <발자크>
    1799년 프랑스 투르 지방에서 태어났다. 근대 사실주의의 대가로 손꼽힌다. 1815년부터 아버지의 바람대로 법학공부를 시작하였고, 이후 공증인 사무실에서 서기를 했으나 1819년 공증인의 길을 포기했다. 그가 원했던 대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발자크가 자신의 이름으로 작가적 명성을 얻기까지는 10년이란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1799년 투르에서 태어난 발자크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 평생 자유롭지 못했다. 어머니는 겨우 여덟살 때 기숙학교로 보내고, 6년 만에 쇠약해진 심신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를 찾지 않았다. 냉정한 모성은 발자크 소설의 주요한 모티브가 된다.
    인쇄업의 실패로 많은 빚을 지게 된 발자크는 평생 빚쟁이에 쫓기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처럼 상상하기 힘든 작업의 결과 발자크는 본명으로 작품을 발표하여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1830년 무렵부터 마지막 소설 ≪가난한 친척≫을 발표한 1848년까지 20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100여 편의 소설을 남길 수 있었다.

  • 작성자 22.03.19 07:33

    등장인물만 2천여 명이 넘는 ≪인간희극≫은 대혁명 직후부터 1848년 2월 혁명 직전까지 정치, 경제, 사회적 영역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내밀한 사적 영역까지 넘나들면서, 사회를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인간희극≫은 프랑스 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역작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고리오 할아버지> <골짜기에 핀 백합> <사촌 누이 베트> 등이 유명하다. 그는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발자크의 작품 세계는 『인간 희극』이라는 대작으로 대변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소설들이 당시 프랑스 사회전체를 이해하는 수단이 되게 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으며, 한 소설의 등장인물을 다른 소설에서 재등장시키는 기법을 통해 통일된 하나의 소우주를 형성함으로 작품 속의 세계는 그 깊이와 폭에서 더욱 현실감을 얻게 되었다.

  • 작성자 22.03.19 10:03

    발자크는 '호적부 보다 더 완전히 당대인의 생활을 기록하였다는 평을 듣는다. 연애와 풍류가 주류였던 당대 프랑스 소설에 충격을 주었다. 전체적인 작품의 기조는 정밀한 관찰, 완전한 기록에 초점을 둔 사실적이며 자연적인 것이었다. 염세주의자, 회의주의자, 비도덕성, 거친 문체 등으로 그 당시의 대중들에게 환영을 받았으나ㅣ 전문가들에게는 작품을 혹평하고, 그를 멸시하였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 와일드, 딜타이, 빅토르 위고와 같은 문인들에게는 찬사를 받았다.
    낭만주의와 리얼리즘, 거기에 신비주의적 사상을 담은 작품을 써내기도 하는 등 정력적인 작품 활동을 펼친 발자크는 1832년부터 사귀어온 한스카 부인과 1850년 3월에 결혼식을 올렸으나 그 해 8월 18일 병세 악화로 사망한다.

  • 작성자 22.03.19 13:16

    발자크(1799-1850)는 23세 때 백작 집의 가정교사로 들어갔다. 백작 부인은 23세나 나이가 많았으나, 백작 또한 그녀보다 나이가 아주 많았다. 백작 부인에게 사랑에 빠져 사랑을 고백했으나, 남편이 죽거든 보자고 했다.
    18년을 기다려서, 그녀와 결혼한다. 그러나 결혼 5개월 만에 죽었다. 그는 다작 작가이고(돈을 벌려고), 글을 쓸 때 줄 커피를 마셔, 하루에 40-50잔을 마셨다고 한다. 그의 죽음도 너무 많이 마신 커피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발자크라면 커피를 떠올린다는 글도 보았다.

  • 작성자 22.03.19 20:06

    발자크의 작품은 심미적(예술을 위한 예술 사조, 즉 낭만주의 사조)이기보다는 사회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실제 인생을 다루었다. 그는 전통 양식인 고전주의(영웅 이야기, 이상적인 연애 이야기)를 따르지 않았다. 자연주의도, 심리주의도 아니다. 그는 독자에게 맞장구 쳤을 뿐이다. 부르주아지가 새롭게 독자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그러나 발자크의 소설은 발자크가 살았던 시대보다 한 걸음 더 앞서 나갔다고 말한다. 부르주아지가 발을 담그고 자기의 세력을 확대해가는 현재보다 한 발자국 더 나간 미래를 그렸다고 한다.

  • 작성자 22.03.19 22:34

    발자크가 가장 즐겨 다루는주제는 시골 출생의 젊은이가 파리로 나와 경쟁사회에서 출세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그렸다. 이때는 약삭빠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회-경제적으로 출세한 사람에게 찬탄을 보냈다. (오늘의 우리 사회가 아닐까. 출세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러다 보니 도덕심은 없어지고,)
    소설에서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보다 더 활동적이고, 재미있는 인물로 묘사한 경우가 많다. 풍요로움을 중요시하는 부루주아지의 가치관이 귀족사회의 도덕적 가치관을 밀어내던 사회 분위기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귀족사회의 가치관을 더 안정된 것으로 보았다.
    그의 소설이 사회를 비춰준다고 하나. 군대, 정치계의 묘사는 불완전하다고 한다

  • 22.03.20 02:12

    발자크의 깊이 탐구하시는 모습에 경의를 표합니다.
    무릇 한 주제를 놓고 이처럼 깊은 천착이 있어야만
    진정한 전문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나중에 <발자크 평전>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내내 건안욱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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